잠만 자도 랭커 194화
타나노스교의 본단.
거대한 산 내부에 신성한 제단 앞 에 교황이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우락부락한 근육은 여전히 건재했 고, 기도보다는 주먹을 쓰는 데 더 어울려 보였으나 그 모습이 자못 성 스러워 보였다.
하기야 신앙심으로 최고라 할 수 있는 자가 교황이라는 직책 아니겠 는가.
신의 가장 성실한 종. 그게 바로 교황이지 않겠는가.
그가 그렇게 기도에 심취해 있을 때 누군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두 눈을 떴다.
험악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본다.
기도를 방해받아서 그런 것일까.
그도 아니면 침입자인 것일까.
“캐럿 추기경께서 오셨군요.”
그 무엇도 아닌 다가오는 캐럿을 반기는 표정이었다.
매우 험악했으나 캐럿은 그 속에 담긴 자상함과 따스함을 알고 있기 에 고개를 숙이며 그에게 인사를 했 다.
“타나노스의 가장 성실한 종, 교황 프란시스 님을 뵙습니다.”
“저야말로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오 신 충직한 종, 캐럿 추기경을 뵙습 니다.”
정중하게 인사하는 캐럿을 보며 껄 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마찬가 지로 인사를 하는 교황.
그 인사를 받은 캐럿은 평소와 같 은 미소로 화답을 해주지 못했다.
교황은 캐럿의 굳은 표정을 보며 마찬가지로 표정을 굳혔다. 늘 미소를 짓는 캐럿이 저런 표정 을 지을 때면 두 가지 중 하나였다. 리베우스가 연관이 되어 있다던가, 정말 심각한 일이 있다는 것.
그리고 지금 캐럿은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상황이다.
어떤 상황인지 이해를 못 할 리가 없었다.
“잘 안 풀린 모양이군요.”
“예, 썩어가는 죽음의 함정이었어 요. 저희가 습격한 곳들은 모두 제 물들이었고, 저희가 그곳들을 습격 함으로써 결국 제물이 제단에 바쳐 진 효과만 일어난 것이죠. 결과적으 로는 저희가 그 이단들을 도운 것입 니다.”
상당히 분한 표정을 짓는 캐럿.
이런 표정을 지은 것은 참 오랜만 이었다.
하나 교황은 진정하라는 듯 두 손 을 들어 캐럿의 머리에 얹고 기도를 했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성스러운 검은 빛이 캐럿에게 물들더니 이내 다시 차분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교황님 앞에서 추태를 부렸네요.”
“아닙니다. 캐럿 추기경이 그냥 돌 아왔을 리도 없을 테니 찬찬히 얘기 를 들어야겠네요.”
교황의 말에 캐럿이 고개를 끄덕이 며 의자에 앉았고, 그 맞은편에 교 황이 앉아 캐럿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몇 가지 충격적인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흐음…… 그게 진짜란 말입니까?”
교황의 말에 캐럿이 고개를 끄덕였 다.
그리고 교황은 그것을 보고 침음을 삼켰다.
“허어, 다른 신들이 움직이고 있다 니. 그것도 썩어가는 죽음의 편에 서다니.” 잔잔한 목소리는 여전했으나 그 속 에 담긴 분노는 활화산과도 같았다. 하나 그것을 최대한 억누르며 나머 지 사실을 듣기 위해 캐럿을 봤다.
마치 그 정보는 어떻게 얻었냐는 듯 묻는 듯이 말이다.
“이번에 썩어가는 죽음을 조사하던 중 동부대륙에서는 천공의 신력을 발견했고, 서부대륙에서는 빛의 신 력을 감지했습니다. 그리고 각각 조 사해 보니 썩어가는 죽음을 조금씩 돕고 있더군요. 신력을 다루는 존재 는 오직 하나 사도들뿐입니다. 이유 까지는 알아내지 못했으나 그들이 썩어가는 죽음에게 협력하고 있다는 건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흐음 다른 종교들이 다른 대륙에 서 활개를 치고 있는 모양이군요.”
“예, 타나노스 님에게 고개조차 들 지 못하는 신들이건만 그분께서 자 리를 비운 순간 등을 돌리려 하다 니.”
“아둔하기 짝이 없고, 오만한 이들 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지 않았습니 까.”
교황의 말에 캐럿은 더는 말하지 않았다.
하나 그녀의 눈에 담긴 것만으로 다른 신들에 대한 증오를 알 수 있
타나노스가 있을 때만 해도 이러니 저러니 하면서 타나노스를 찬양하던 신들이 자리를 비웠다는 것을 알아 차리자마자 반역을 저지르다니.
감히 용서치 못할 행위였다.
교황은 그런 캐럿을 달래듯 말했 다.
“후예님께서 진정한 힘을 찾기만 하신다면 그런 반역자들 따위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보다 썩어가 는 죽음들이 마음에 걸리는군요.”
“저 역시 그렇습니다. 그들이야말 로 진정한 반역자들이건만, 사도들
께서는 왜 그자들을 그냥 뒀는지 이 해할 수 없습니다.”
“그것조차 모두 타나노스 님의 뜻 이겠지요.”
더 무어라 말하고 싶으나 캐럿은 말할 수 없었다.
교황의 말을 캐럿도 믿고 있었으 니.
다만 답답해서 나온 소리였다.
“우선은 두고 보도록 하지요. 당장 움직이는 것이 보이는 건 아니니.”
“예, 예전 성지가 있던 곳을 추측 해서 몇몇 사제들을 보냈으니, 움직 인다면 연락이 올 겁니다.” 캐럿의 말에 교황이 고개를 끄덕이 긴 했으나 과연 그게 쉽게 될지가 의문이었다.
진정으로 썩어가는 죽음을 다른 신 들이 돕고 있었다면 더욱 쉽게 발견 하지 못할 게 분명하다. 지금 캐럿 이 저렇게 사제들을 보냈다고는 하 나 헛수고가 될 확률이 높다.
그걸 알기에 그저 눈을 감았다.
‘역시 리베우스를 푸는 수밖에 없 나.’
타나노스교의 사냥개이자 미친개라 불리는 리베우스.
교황이 그를 떠올리곤 이상하다는 듯 캐럿을 봤다.
그러고 보니 캐럿에게 리베우스와 같이 다니라 말을 했는데 이곳에 온 것은 정작 캐럿 하나였다.
“그보다 리베우스는 어디에 있습니 까?”
“후우.”
그 짧은 말에 깊은숨을 내뱉는 캐 럿.
그것만 보더라도 무언가 잘못되었 다는 걸 느낀 교황이 망연자실한 표 정을 지으며 캐럿을 보자 캐럿이 면 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말했 다.
“죄송합니다…… 임무가 끝나자마 자 자기는 자유라면서 주인님에게 달려가겠다며 사라졌습니다. 전보다 더 강해졌는지 저조차 잡지 못했습 니다.”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다행 입니다. 적어도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캐럿도 그 말에 동의했다.
적어도 리베우스가 갈 곳은 현성이 있는 곳이었으니.
그러나 문제가 있다는 듯 캐럿이 말했다.
“저, 그게 후예님의 기운이 며칠째 느껴지지 않기에 조금 걱정이 듭니 다.”
“흐음.”
교황은 캐럿의 말에 난감하다는 듯 눈을 감았다.
리베우스가 향할 곳은 후예인 현성 이 있는 곳뿐이다. 그걸 생각한다면 어떻게든 잡아 올 수 있겠지만, 현 성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니.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했으나 고개를 저었다.
현성은 여행자고, 여행자는 절대 죽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의 뇌리에 이미 박혀 있었으니.
그러나 며칠째 오지 않는다는 건 조금 불안했다.
교황과 마찬가지로 불길한 생각을 하는지 안색이 좋지 못한 캐럿이 교 황에게 물었다.
“서, 설마 후예님께서도 어디론가 로……
“아닙니다. 그리 자애로우신 분이 저희를 두고 어디로 떠날 리가 없습 니다.”
단호하게 말하듯 했으나 교황의 음 성 역시 떨려 왔다.
그만큼 불안하다는 증거.
하나 굳건히 의지를 다져 캐럿에게 말했다.
“후예님의 기운이 느껴지면 저에게 보고해 주십시오.”
“예.”
충직하게 대답하는 캐럿을 보며 걱 정 어린 눈을 한 교황이 중얼거렸 다.
“설마 리베우스를 보기 싫어서 ......‘?”
지금으로써는 가장 신빙성 있는 말.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그렇게 생각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제국으로 향하는 리베우스가 웃음 을 터뜨리며 외쳤다.
“오우! 주인님 이번에야말로 주인 님의 가장 충직한 종인 리베우스가 갑니다요!”
마찬가지로 리베우스 또한 현성의 기운를 느끼지 못했다.
당연히 바다에 간 상태라 접속하고 있지 않았으니 느껴지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하나 리베우스는 그러거나 말거나 제국, 아니, 정확히는 황실로 향했 다. 어쨌든 간에 황제에게 가면 어 떻게든 알 수 있지 않겠느냐며 말이 다.
“오우!”
현성을 만날 생각에 신난 리베우스 가 다시 제국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 간이었다.
어느새 어두워진 하늘.
캠핑장에는 군데군데 붉은 불빛으 로 물들었다.
LED와 같은 빛이 아닌 직접 불을 붙인 바비큐의 불빛.
그리고 재환의 캠핑카 앞에서도 그 릴에 붉은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 불 앞에 서서 자연스레 고기를 굽고 있는 재환이 어리둥절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야, 근데 내가 왜 고기 굽고 있는 거냐?”
이쯤 되면 운전기사 겸 짐꾼으로 데려온 것 같은 착각까지 드는 재환 이 묻자 현아가 그 입을 막기라도 하듯 쌈을 싸서 재환에게 건넸다.
“재환 오빠, 아 하세요.”
“아이고, 고맙다.”
거기에 또 넘어가는 재환.
말은 그렇게 해도 재환도 즐길 걸 다 즐기고, 놀 걸 다 놀기는 했다.
다만 현성이 너무 격하게 수영을 하는 바람에 고기를 굽는 걸 재환이 맡게 된 것일 뿐이었다.
하기야 접영으로 바다 파도를 뚫고 수영을 했는데 지칠 법도 하지 않은 가.
물론 수영을 못 한 재환인지라 피 부가 붉게 익은 현성과 현아에 비해 탄 것 같지도 않았지만 어쨌든 재밌 게 놀긴 하지 않았는가.
그러다 현성도 내심 미안했는지 피 곤한 몸을 이끌고 재환에게 말했다.
“재환 교대하자, 이제 좀 너도 먹 어라. 내가 구울게.”
“오, 땡큐. 너도 적당히 굽고 같이 한잔하자.”
“당연하지.”
현성이 고기를 굽기 시작하자 그릴 의 열기에 땀에 흠뻑 젖은 재환이 식탁에 앉아 고기를 한 점씩 먹기 시작했고, 현성도 그걸 보며 피식 웃으며 소주 한 병을 깠다.
“고기 먹는 데 빠질 수는 없지.”
“좋지!”
“오오!” 다들 그렇게 삼겹살에 소주 한 잔 씩 기분 좋게 마셨다.
숯불에 구워서 그런지 노릇노릇하 게 잘 익은 삼겹살. 거기다 소주가 들어가니 정말이지 환상의 궁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술이 조금씩 들어가니 재환 이 아쉽다는 듯 말했다.
“1박 2일은 좀 아쉽지 않냐? 좀 더 있다 가자. 아니면 더 다른 곳도 가던가.”
평소에 일정대로 움직이는 재환이 었건만 진심으로 아쉬웠는지 저런 소리를 했다.
또 거기에 반응하는 현아.
“맞아 오빠, 이런 기회 거의 없잖 아. 더 있다 가자.”
현아까지 조르자 현성은 잠시 고민 했다.
현성이 애초에 잡은 시간은 1박 2 일이었다.
솔직히 게임 안에서는 그것도 충분 히 긴 시간이다.
게임 시간으로는 대략 10일이나 되는 시간이었으니까. 그러다 보니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가장 필요하다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끝 내놓은 상태다.
굳이 따진다면 메인 에피소드 2와 아로민 길드가 왜 자신을 공격했는 가에 대해 알아보는 것 정도.
그러나 둘 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걸 생각한다면 급한 일은 아니다.
“으음.”
고민하는 현성을 보며 더 조르려고 했으나 현성의 단호한 눈빛을 보며 재환과 현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에 또 오면 되지.”
“진짜지‘?”
“딱 날짜 정하면 콜.” 재환까지 가세하자 현성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2주 뒤에 다시 오자며 말했다.
이렇게 가끔 쉬어주는 것도 중요하 다 생각했으니 허락한 것이었다.
현성도 더 있고 싶었으나 왜인지 게임에서 좋은 예감이 들어 빨리 집 으로 가고 싶은 것도 있었다.
‘이번에 운이 좋을 거 같아.’
그리고 현성은 얼마 후 리베우스의 얼굴을 보고 지금 이 결정을 극심히 후회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