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220화
바다 한가운데 이름 없는 작은 섬.
아니, 작은 섬이었던 한 땅덩어리 가 대부분 파괴되어 있었다.
운석이라도 맞은 것인지 표면은 사 라져 있었고, 섬을 이루고 있는 땅 덩어리만 남아 있었다.
그런 땅 가운데 움직일 힘 하나 없이 바닥에 누워 있는 현성.
그리고 그런 현성을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
“와, 이게 안 되네.”
그 말에 서아와 레이먼은 어이없다 는 듯 현성을 봤다.
“……현성 씨, 그걸 양심 없다고 하는 겁니다.”
서아와 레이먼을 상대로 한 대련.
정확히는 대련이라기보단 실전에 가까운 전투였다.
현성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해 싸웠고, 저 둘도 마찬가지. 처음 에는 둘이 밀리는 듯싶었으나, 서로 숨기는 기술을 모두 꺼내니 밀리는 건 당연하게도 현성이었다.
하기야 이제 300도 안 된 현성이 레벨 400을 넘긴 둘을 상대로 선전 했다는 것만으로 대단한 것 아니겠 는가.
그래도 이로써 확실한 것은 하나 알았다.
‘대인전은 몰라도 몬스터를 상대하 는 건 내가 더 강해.’
사룡 아퀼레오르의 그림자와 싸웠 을 때 저 둘이 유난히 약해 보였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내가 몬스터를 상대로 강해지는 거였어.’
사실 그거 때문에 둘에게 싸우자고 한 것이었다.
그동안 얻어 온 엄청난 칭호들 덕 에 보스나 다른 몬스터들을 상대할 때 대미지나 공격력들이 상승하다 보니 저 둘보다 더 강력하게 공격할 수 있었던 것.
하나 그것도 잠시일 거라 확신했 다.
‘레벨 200 퀘스트와 레벨 300을 찍으면 달라진다.’
현성은 아직 성장할 여지가 남아 있고, 저 둘은 현재 성장이 막혀 있 다는 것. 거기다 레벨 200때 얻어야 할 스킬을 아직 받지 못하지 않았던 가.
퀘스트를 클리어해야 얻을 수 있다 보니 아직 얻지 못했다.
그것만 얻더라도 지금의 상황은 꽤 달라졌을지 모른다.
‘아직이 다.’
여태까지 현성은 대인전이라고 할 법한 전투가 없었다.
아직 멀었다.
그리고 더 강해질 여지가 있지 않 은가.
다만.
‘여기서 더 레벨을 올리기가 쉽지 않을 텐데.’
레벨 300.
여기서부터는 현아도 상당히 힘들 었다고 한다.
그런데 현성은 어떻겠는가.
권능과 직업 등급 덕에 높아진 경 험치의 장벽.
지금도 이번처럼 특별한 이벤트라 도 있어야지 레벨을 올릴 수 있는 수준이다.
‘이건 어떻게든 해 봐야겠다.’
현성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겉으론 표현하진 않았으나 서아와 레이먼은 둘 다 충격을 받은 상태였 다.
‘내가 졌다.’
특히 서아의 충격은 상당했다.
아무리 지치고, 쿨타임들이 있었고, 주력인 사신들이 무력화되었다곤 해 도 레벨 100 이상 차이 나는 유저 다.
그런 유저를 상대로 자신과 같은 레벨대의 유저와 합동으로 겨우 이 겼다?
그녀의 자존심에 상처가 없다면 거 짓이다.
부들부들.
떨리는 두 손.
사실 그동안 오만했다.
아니, 오만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 보다 뛰어난 유저들을 본 적이 없었 고, 그나마 아수라가 저레벨 때 기 대된다고만 생각했지, 자기를 이길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으니 까.
아수라, 그러니까 현성의 컨트롤은 인정했다.
자신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하나 그렇다 한들, 이기는 건 자기 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녀이다.
그런데 그게 깨진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저 레이먼이라는 사람이 약한 것 도 아니고, 최소 린, 그 여자 수준 이나 그 여자 이상이야. 특히 마지 막에 보여준 모습은……
하기야 타나노스 관련 직업 아니던 가.
강하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하리 라.
서아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레 이먼도 비슷하게 생각했다.
‘둘이 아니었다면 졌겠네요.’ 담담하게 말을 하지만 자존심이 크 게 상했다.
나름 자부심이 가득한 그였다.
게임으로 자신보다 뛰어난 이는 세 계에서 꼽아도 거의 없을 것이라고. 아니, 어쩌면 아예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강력하다는 타나노스의 성자가 바로 자신이었으니.
그런데 이 좁은 땅 한국에서만 방 금 둘이나 봤다.
‘현성 씨는 그렇다고는 쳐도 저 여 성분은 진짜…… 현성이야 현실에서도 만나보지 않 았던가.
그의 실력이라면 자신보다 뛰어나 리라 생각했었고, 혹시 아수라가 아 니었던가 생각도 했었다. 그게 사실 이기도 했고.
그래서 그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 생각했다.
아무리 승부욕이 강하다 한들, 이 런 것을 인정하지 못할 정도로 아둔 하진 않으니.
그런데 설마 자신과 같은 타나노스 의 직업을 가진 저, 서아라는 여자 가 저만 한 실력자였을 줄이야.
‘그 사신들이 있었다면 제가 분명 졌을지도 모르겠군요.’
지친 상태긴 했으나 지금 현성과 싸우면서 보인 실력으론 엇비슷했 다.
하나 그녀는 주력으로 쓰던 사신이 무력화되지 않았던가.
그걸 감안한다면 최소 반 수, 적어 도 한 수 이상은 강하다 판단했다.
‘저도 아직 멀었네요.’
나름 오만하진 않았다 자부했건만.
그것부터가 오만이었던 것 같다.
“저는 이만 가볼게요.”
“아아, 저도 볼일이 생겨서, 하하. 대련은 즐거웠습니다. 현성 씨.”
서아와 레이먼이 동시에 대답을 했 고, 현성은 그 둘을 보며 몸을 일으 켰다.
그리고 가려는 그 둘을 보며 말했 다.
“다음엔 온전한 상태에서 한판 붙 으시죠.”
씨익.
그 말에 둘은 섣불리 대답하지 못 했다.
갑옷들이라곤 넝마가 되었고, 체력 도 온전치 못한 현성이다.
그러나 눈빛만큼은.
오싹-
“다, 다음에 보고요.”
“새,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둘도 남들과 비교할 수도 없는 수련 광들이다.
그러니 서아는 린을 가볍게 이긴 것이고, 레이먼은 현실에서 현성을 이긴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현성의 저 눈빛에 기가 질 릴 수밖에 없었다.
순수한 열의.
저걸 보곤 다른 이들은 광기라 불 렀다.
파앗!
슈욱!
도망치듯 떠나는 두 사람을 보며 현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재미는 있었으나 너무 지쳤다.
‘로그아웃을 해야 하나?’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
200에 얻는 퀘스트, 그것도 깨야 하지 않던가.
하지만 쉴 땐 쉬어야 한다. 그간 오래 플레이하지 않았는가.
할 일이야 태산같이 많았으나 일들 대부분은 타나노스교와 신화 길드, 영웅 길드를 맡은 린이 해주리라.
‘타나노스의 꿈은 나중에 들어가 자.’
직업 전용 퀘스트.
사도의 흔적을 찾는 것이 아닌 중 앙 대륙에 사도가 없어 바뀌어버린 직업 퀘스트였으나, 현성은 이게 더 마음에 들었다.
‘그 빌어먹을 잠의 사도는 안 봐도 되는 거니까.’ 다음에 접속했을 땐 직업 퀘스트를 깨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대로 로그아 웃을 했다.
화면이 암전되며 현실로 돌아왔다.
취이이이이이익.
“후우우.”
사룡 아퀼레오르의 그림자, 그리고 서아와 레이먼과의 전투까지.
정신적인 피로가 없다면 말이 안 된다.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오 자 평소와 달리 한산한 거실.
아주머니도 요즘은 일이 생기면 일 찍 퇴근했기에 없는 모양. 거기다 현아는 아직 대륙에서 일어나는 일 들을 같이 처리하고 있을 테니 아직 로그아웃을 하지 못했나 보다.
“TV나 봐야겠다.”
대충 상황을 알기는 하지만 중앙 대륙의 정확한 상황은 모르지 않던 가.
그렇게 TV를 틀자마자 게임 방송 채널로 이동했다.
쿠구궁!
-축복! 사제들! 축복!
-언데드 새X들 조져! -이쪽 뚫린다! 공성전 처음해 보 냐!
-히, 힐! 힐 좀!
-야! 내가 딜량 1위인데 나 케어 해 줘야지!
게임 화면에서 중계하는 화면은 그 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생방송은 아니고 전투 상황을 그대 로 녹화한 것이었는지 도중에 녹화 를 한 유저가 사망하고 영상이 끝이 났다.
영상이 끝나고 나오는 패널들이 그 걸 보며 다소 불만 어린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하기야 저런 대규모 이벤트에 참여 도 못 하고 방송에 출현하고 있으니 불만이 없을 리가. 하나 일이었기에 되도록 티 내지 않으려 하나, 몇몇 사람들은 대놓고 불만을 표하고 있 었다.
-와, 진짜 아쉽네요. 방송이 아니 었다면 저도 참여하고 싶었는데 말 이죠.
MC 지수의 말에 뼈가 담겨 있긴 했으나 표정은 매우 밝게 웃고 있었 다.
하기야 프로가 이런 곳에서 티를 낼 수는 없지 않은가.
?이번 메인 시나리오3. 아수라가 1부터 3까지 모두 열었다는 걸로 알고 계신데 이번 3은 대규모였죠? 중앙 대륙을 침공하는 썩어가는 죽 음의 군단. 판테온 씨는 어떻게 생 각하시나요?
MC 지수의 말에 그 옆에 앉아 있 던 한 남성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 을 하며 입을 열었다.
-저는 뭔가 함정이 숨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호? 함정이요?
-예. 썩어가는 죽음의 행보를 본다 면, 제가 만일 대륙을 지배하고 싶 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이렇게 움 직이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더군다 나 원정대도 있지 않았습니까. 제 생각으로는 썩어가는 죽음은 원정대 의 전력을 분산시킨 뒤 남은 전력은 대륙을 침공하는 몬스터들로 시선을 분산시켜 무언가를 노렸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호.”
분석가라는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 판테온.
전에도 소개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현성이 봐도 꽤 그럴싸한 추측이었 다.
거기다 사실에 근접하기도 했고 말 이다.
썩어가는 죽음이 진정 원했던 것은 다름 아닌 사룡 아퀼레오르의 부활 이었으니.
-아마 아수라도 여러 정보를 통해 서 알았을 수도 있을 것이라 판단됩 니다.
-오! 그 증거가 따로 있을까요?
-세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저는 아수라가 몇몇 길드들과 친분 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한 곳 에 속하진 않았겠지만 말이죠. 그리 고 그 가능성이 가장 높은 길드로는 영웅 길드와 신화 길드라고 생각합 니다.
-아, 그러고 보니 그 두 길드도 이 번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었죠?
다른 길드들이 활약상을 펼치고 있 었을 때 요즘 가장 이름이 핫한 두 길드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판테온 역시 그렇게 생각한 모양.
-예, 그렇습니다. 길드의 목적은 홍보에 있죠. 대형 길드 대부분을 보면 스폰이라든가 여러 광고를 합 니다. 그 효과를 보려면 활약을 펼 치는 것이 좋죠. 스폰을 받지 않는 다 해도 그동안 길드가 활약을 한다 면 좋죠. 하나 그 두 길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수라의 원정대에 참여했다고 보기 엔 모집 기간이 짧았죠.
-예, 그랬죠.
-그래서 제가 생각했을 때. 이번에 썩어가는 죽음이 노리는 것을 그 두 길드가 막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거의 정확한 추측에 현성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거기다 앞으로의 썩어가는 죽음 은 이번 일로 인해 다른 세력과 결 탁하진 않을까, 생각을 하고 있습니 다. 자신들만의 힘으로 카린 제국을 넘어설 수 없고, 플레이어들의 저항 도 상당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테니 까 말이죠.
현성도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 였다.
그 또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 니.
-어떤 세력일진 모르겠지만, 단언 하는데 메인 시나리오4는 이번처럼 아수라 혼자 해결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 또한 맞는 말이다.
하나 현성에겐 하나의 노림수가 있 었다.
‘리베우스가 잘 해줘야 할 텐데 말 이야.’
리 베우스.
이데아 역사상 가장 또라이 NPC 이자 타나노스교의 전략 무기!
그가 움직이고 있었다.
빛이 한 점 없는 거대한 공동.
그곳에 있는 이라곤 그림자뿐이 남 아 있지 않은 작은 용의 모습과 썩 어 문드러진 황제였다.
〈한…… 심하군.〉
-면목이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반대의 상황이 었건만.
자존심이 상했는지 으득 하며 아퀼 레오르의 그림자가 이를 갈았다.
고작해야 인간에게, 그것도 그 증 오스러운 타나노스의 후예에게 당할 줄이야. 수백의 군대에게 당했다면
이렇게 자존심이라도 상하지 않았을 터.
그런데 그 간악한 술수에 속아나 처참하게 당하다니.
후에는 정신을 차렸다곤 해도 진 것은 진 것이다.
〈우…… 리의 힘만…… 으로 안…… 된다.〉
이번 일로 인해 대부분의 힘을 잃 었다.
사룡 아퀼레오르가 부활했다면 모 르지만, 그러지도 못하지 않았던가.
〈네…… 놈이 반대…… 한다 해도 이젠 더…… 미룰 수 없…… 다. 그…… 분의 의지에 따르…… 는 수 밖에.〉
-크흑, 그 빌어먹을 놈에게 내 정 수를 내놔야 한단 말이냐!
〈그렇다…… 면 이제 어쩔 생…… 각이지?〉
모든 작전을 실패했다.
더군다나 이제 병사들 또한 잃었 다. 더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것밖 에 남지 않았다.
-……알겠다.
〈동…… 부 대륙과 손을 잡는…… 다. 그리고 천…… 공의 신과 협약 을…… 맺는다.〉 썩어가는 황제의 말에 사룡 아퀼레 오르의 그림자는 고개를 숙였다. 하 나 어쩔 수 없다는 걸 인지하는 것 인지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썩어가는 황제가 눈을 빛내 고 있을 때. 빛이 하나 없을 동공 구석에서 회색 안광이 뿜어져 나오 고 있었다.
‘오우! 엎질러진 물을 담을 수 있 을 거 같습니다요!’
매우 기대된다는 눈빛을 한 안광을 둘은 알아차리지 못한 채로 그대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