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250화
상당히 어두운 골목에 위치한 작은 카페.
장사나 될까 하지만 그곳에 있는 인원은 상당히 많았다.
42 명.
그러나 누가 보더라도 일행으로 보 이는 그 인원은 모두 숨죽인 채 누 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노인과 나란히 앉아 있는 아크. 그가 노인을 불렀다.
“세바스.”
“예, 도련님.”
“나 어디 이상한 부분 없나?”
보통이라면 소개팅에 처음 나간 사 람이나 물어볼 법한 말.
그런 물음에도 노인은 진지하게 살 핀 후 고개를 끄덕였다.
여느 때와 같이 완벽한 모습이었으니.
“한 곳도 없습니다.”
“표정이나 머리도 너무 건방져 보 이진 않겠지?”
“물론입니다, 도련님. 한국 서버 최 고의 스타일리스트에게 받은 머리와 옷이지 않습니까. 너무 긴장하실 필 요 없습니다.”
“후우.”
나름 거대한 기업을 운영하고 있기 까지 한 아크다.
그런 아크가 긴장하고 있다니.
하나 노인도 인정하고 있었다.
그토록 존경하던 인물을 만나게 되 는 것 아니겠는가. 거기다 단순히 만나는 것이 아닌 그동안의 성과를 보이고 선택받을 기회!
이 기회를 놓치게 된다면 제아무리 아크라도 크게 실망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이렇게 긴장할 만도 하다.
‘무례해서는 안 된다.’
이를테면 돈으로 회유하는 것.
그것만큼은 안 된다.
‘그것만큼 무례한 것은 없지.’
돈.
돈이야 많다. 하나 아수라도 많을 거다.
그걸 떠나서 한 사람의 산하로 들 어가는데 무턱대고 돈으로 먼저 회 유를 한다? 그 사람을 속물적인 사 람으로 보는 것과 다름없다.
아수라가 그런 사람일지 아닐지는 아크로선 모르는 일.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결정에 후회하진 않을 거다.
사람마다 가치관은 다 다른 거니.
‘영상을 보면 아닐 확률이 높지.’
플레이 영상을 보면 어느 정도 그 플레이어에 대한 것을 단편적이나마 알 수 있다.
이 사람이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도 나오지만 어떤 생각을 가지고 플레 이하는지도 알 수 있다.
아크가 본 아수라는 하나였다.
‘즐겁다.’
게임을 진정으로 즐기고 또 더욱 발전하기 위해 생각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니 그런 실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고 그런 사람이니 그 런 실력이 걸맞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실력자를 돈으로 고용 할 순 없다고 생각했다.
아수라야말로 모든 게이머의 정점 에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으니.
‘그분이 오신다.’
이미 아크에겐 아수라는 하나의 종 교나 다름없었다.
자신은 넘을 수 없는 하나의 거대 한 벽.
대회에서 느꼈다.
넘을 수 없다면 그 옆에서 그가 얼마만큼 높아질지, 얼마나 멀어질 지 지켜보고 싶었다. 그걸 도와주고 싶다.
그러기에 이렇게 준비한 것.
‘거절당하면 어쩔 수 없다.’
영상 속 아수라는 늘 홀로 고고했 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멀리서나마 자신들이 있다 는 것을 알릴 생각이었다.
도울 수 있을 때 언제든 도울 수 있는 이들이라며.
딸랑, 딸랑.
카페의 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한 사내.
희한하게 푸른 가면을 쓰고 있는 그 사내를 보며 아크는 감격한 표정 으로 그를 봤다.
‘처음으로 나를 상대했던 푸른 가
마도사 아수라를 처음 등장시켰을 때 상대했던 게 다름 아닌 아크다.
그런 아크를 다시 볼 때 그때의 그 파란 가면을 쓰고 올 줄이야.
엄청난 팬서비스였다!
물론 현성의 생각은 달랐다.
‘파란색이 무난하지.’
그냥 파란색을 좋아했을 뿐 그때의 기억은 1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 때문에 현성은 아크가 감격한 이유를 알 수 없었으나 그냥 자신의 열렬한 팬이라고만 생각하고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그 인사에 아크는 심각해진 표정을 지으며 그대로 고개를 숙이며 무릎 을 꿇었다.
흔히 큰 절이라 부르는 동작.
그러더니 그 옆에 있던 노인도 대 뜸 절을 하고, 카페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일어나 현성에게 절을 하기 시작했다.
첫 만남부터 이런 모습이라니.
‘어디서 익숙한 느낌인데…’
무언가 싸한 느낌이지만 이제는 적 응한 것인지 그러려니 했다.
하다못해 본인 역시 타나노스의 꿈 속에서 리베우스 연기를 하지 않았 던가.
적응하다 못해 이해까지 할 수준인 지라 현성은 그것에 뭐라 하지 않았 다. 오히려 좋게 봤다.
‘적어도 배신은 안 하겠네.’
신뢰.
저것조차 함정일 확률도 있다.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는 것이니 까.
하나 그럴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 다. 감에 의한 불확실한 생각이긴 하지만, 적어도 그랬다. 거기다가.
‘저런 또라이들은 의외로 신뢰도가 높지.’
이미 리베우스나 다른 이들을 겪지 않았던가.
타나노스교도 또라이 집단이지만, 그 신앙심만큼은 진짜다.
다른 게 있다면 그들은 그저 게임 속 캐릭터에 불과하고 아크는 현실 에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것.
게다가 굳이 현성을 이렇게 속여서 무슨 이득이 있겠나.
있다고 한다면 고작해야 복수겠지 만, 복수를 당할만한 행동을 한 적 이 없다.
아마도.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저도 반갑습니다. 일단 일어나주 시죠.”
가볍게 웃으며 대답하자 아크와 노 인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역시 대단하시다. 이런 저자세가 익숙한 분이시군.’
‘도련님의 눈은 역시 정확하시군 요.’ 이렇게 많은 이들이 절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
군림하는 자!
역시 아수라다! 하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정작 현성은 그저 리베우스처럼 머 리는 안 찍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 고 있었던 것이지만, 그들이 보기에 는 달랐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카페에서 모셔봐야 자리겠지만, 별 말을 하지 않고 현성은 아크가 안내 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마주 앉는 아크.
노인은 그런 아크의 뒤에 서 있었다.
‘서양 부자는 다르네.’
전속 집사와 같은 모습의 노인.
그 모습을 보니 왠지 멋있다고 생각 했으나 지금은 중요한 것이 아니니.
“그럼 얘기해볼까요?”
“여, 영광입니다.”
평소에 그렇게 냉철하고 이성적인 아크의 모습이라고 하기에 너무 푼 수 같은 모습이었으나 이해할 수 있 었다.
우상이 앞에서 말하고 있으니 얼마 나 떨리겠는가.
현성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길드를 거둬줬으면 한다는 것이 정확히 무슨 얘기인지 궁금하군요.”
올 게 왔다.
그런 표정으로 아크는 진지하게 입 을 열었다.
“저뿐만 아니라 제 길드에 있는 모 든 이들은 아수라님을 존경합니다. 저희의 우상이라 할 수 있지요. 하 지만 현실을 살아가는데 그 존경심 만으론 힘들지요.”
맞는 말이긴 한데 왜 그런 말이 이어질까?
일단 계속 말을 들어봤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아수라님은 거의 완전무결한 존재라 생각합니 다. 이제는 레벨도 높아지셔서 아수 라님을 범접할 수 있는 유저는 없다 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더욱 아수 라님에겐 길드가 필요 없다 판단했 습니다.”
맞는 말이다.
실제로 현성과 재환이 그런 얘기를 나누지 않았던가.
그런데 길드를 거둬달라니.
꽤 이야기할 줄 아는 모습에 현성 은 더 집중하며 아크의 이야기를 들
“하나 그렇다 해서 그들이 간섭하 고 방해하는 것이 달가우실 리가 없 지요. 거기다 아무리 수천, 수만의 몬스터를 쓸어버릴 힘이 있으시다 하더라도 그런 몬스터를 모으는 데 에 귀찮으실 수 있으십니다.”
“ 오호.”
“그럴 때 저희가 돕겠습니다. 저희 의 길드장님이 되신다면 저희가 드 릴 수 있는 것은 충성심. 그리고 저 희가 원하는 조건은 아수라님이 필 요하실 때 부르는 친위대가 되고 싶 다는 것입니다. 그게 저희의 조건. 돈과 아이템은 필요 없습니다.”
그 말에 현성은 눈을 빛냈다.
재환의 말과 똑같은 내용 아니던가.
이를테면 레이드를 할 때 저번 아 로민 길드 때와 같이 방해 세력이 있다면?
그런 세력을 처리할 순 있다.
현성은 그럴 힘을 가졌으니. 하나 그런 이들이 한둘씩 늘면 점점 귀찮 아질 터.
그런데 아크의 길드를 먹게 된다면 그럴 수고가 사라지는 거다. 저들이 다 처리해줄 테니.
더더군다나 몬스터를 모아준다니.
“허어. 조건이 너무 좋은데요?”
너무 자신만을 위한 조건이다.
좋기는 하지만 부담이 안 된다면 거짓이다.
저만한 인원이 아무 대가 없이 자 신을 돕는다.
현실에는 자선봉사 단체만 있는 것 이 아니다.
“아무 소득이 없는 행동이나 다름 없는데 그러는 이유가 뭔가요. 단순 히 팬이라고 하기엔 과한 행동 같은
데.”
현성의 말도 맞다. 아크에겐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는 다 생각했으니.
그러나 아크는 그게 아니었는지 무 슨 소리냐는 듯 현성을 보며 말했다.
“전설이 되실 분의 영상에 나올 수 있고, 그 역사를 써내려가는 데 그 현장에 있었던 것. 그리고 그분을 직접 도왔다는 그 영광이 있는데 왜 아무런 이득이 없다고 생각하시는지 요.”
“어... 어어.”
“이데아의 역사뿐만이 아닙니다. 앞으로 이데아, 그리고 그 이데아 이후에도 전설을 쓰실 것이 분명하
신 아수라님입니다. 저희는 그런 분 의 친위대로 활동하고 싶습니다. 그 것만큼 이득인 것이 어디 있을까요. 돈이야 벌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전 설과 함께하고, 더 나아가 전설이 되는 명예는 그렇지 않습니다.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이지요. 하나 아수 라님이라면 가능합니다. 저희는 그 걸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고 그 자리에 있고 싶은 것입니다.”
진짜 진정한 팬.
아무리 현성이라도 이거엔 좀 기가 질렸다.
리베우스가 완전히 광적인 또라이 라면 아크는 신사적인 또라이였다.
둘의 공통점은 충성심이고.
‘대단한데?’
자신을 이렇게 고평가해주는 것이 솔직히 낯부끄럽긴 했다.
하나 기분이 나쁠 리가 있겠는가.
칭찬을 해주는 것인데.
기분이 좋다 못해 다소 부담스러울 지경.
하지만 저들의 생각은 이해했다.
‘내가 시나리오 퀘스트를 한다든 가, 새로운 기록을 세울 때 그 옆에 서 직접 보거나 그걸 돕고 싶다는 거군.’ 레이드를 같이 뛰게 해달라는 것도 아닌 다른 이들이 현성의 레이드를 방해하지 못하게 막을 수 있게 해달 라니.
뭔가 반대가 된 느낌이었으나 괜찮 았다.
다만.
“언제나 불러야 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필요하실 때 부르시면 언제든 달려갈 수 있게 준비해 놓겠 습니다. 틈틈이 레벨도 올려야 아수 라님의 친위대로서 꿀리지 않을 테 니까요.”
좋은 대답이다.
그 말에 현성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자세한 전력을 들을 수 있을까 요?”
“아! 네!”
현성이 아직 긍정의 표시도 길드장 이 되겠다는 말도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크는 기뻤다.
일단 전력을 듣는다는 것은 상당히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거니.
“우선 저는 전설 등급 직업에 레벨 은 310대입니다.”
“오호.”
전설 등급 직업에 310대. 이미 랭킹 안에 들 수 있는 레벨.
솔직히 놀랐다.
거기다 레벨이 높으면 높을수록 높 은 등급 직업으로 전직하는 과정이 매우 힘들어진다.
그런데 전설 등급이라니.
“모두가 300 이상에 희귀 등급 이 상이라 하셨는데 모두 일반 등급에 서 레벨을 올린 후 전직을 한 건가 요?”
“물론입니다. 그편이 훨씬 편하니 까요.”
“확실히. 그 외의 전력은 어떤지 듣고 싶군요.”
현성의 말에 노인이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현재 평균 레벨 300 초반대에 영 웅 등급은 저를 포함해 3명, 유일 등급은 13명, 남은 25명 모두 희귀 등급입니다.”
태연한 척을 했으나 현성은 속으로 생각했다.
‘미쳤다.’
전설 등급 1명과 영웅 등급 3명, 그리고 유일 등급 13명과 희귀 등 급 25명이라니.
대형길드에 있는 고등급의 수와 비 슷한 숫자.
그것도 신화 길드와 비교했을 때다.
다른 대형 길드들은 저만한 고등급 이 없을 터.
그 말을 하며 가면을 쓴 현성을 바라보는 노인과 아크.
마치 숙제 검사를 기다리는 아이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 둘을 보며 현성은 가면을 벗으며 말했다.
“현성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 탁하겠습니다.”
“물론입니다!”
그렇게 아수라 없는 아수라 길드에 아수라가 길드장이 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