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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만 자도 랭커-267화 (267/472)

잠만 자도 랭커 267화

용암이 득실거리는 화룡의 둥지.

그곳으로 가는 길.

생각보다 간단했다.

“저기로 쭉 가시면 됩니다.”

퉁명스럽게 말하는 윌.

아무리 그런 일이 있다고는 하지만 까칠하다.

건방지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이런 꼬맹이의 도발에 넘 어가는 것이야말로 민망한 일.

그냥 두었다.

딴지를 걸어봐야 발뺌할 게 분명하 니.

“그럼 조심히 가십시오.”

“네. 감사합니다.”

상대가 퉁명스러운 만큼 마찬가지 로 대해줬다.

아무리 유리아에게 당한 게 있다고 해도 그렇지.

그걸 왜 현성에게 푸는가.

듀라셸도 용서하는 것을.

심하긴 했지만.

‘심하긴 했어.’

유리아만 생각하면 골이 썩는 황제 가 아니다.

진짜 힘만 믿고 설치는 것도 아니 다.

그만큼 황제가 보상도 해주지 않 나.

듀라셸도 그래서 용서한 것.

그러나 윌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 다.

하기야 그럴 수 있다.

‘신경 쓰지 말자.’

그렇게 무시하고 지나갔다.

좌우로 용암이 득실거리는 동굴로.

지름길이라 그런지 길이 꽤나 험했 다.

원래라면 산 천지에 올라가 던전에 입장했어야 하니.

차라리 이게 나았다.

조심만 하면 되니까.

‘연계 퀘스트도 오랜만이네. 화룡 잡는 건 라이브로 가야겠다.’

이데아를 플레이한 지 약 4개월. 방송을 시작한 지는 대략 3개월.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시간.

하지만 현성에겐 꽤 의미가 있었 다.

우선 현성의 생활이 변했고, 상황 이 많이 나아졌다.

현아는 이제 걸어 다닐 수 있고, 친구도 생겼다.

현성도 더 이상 회사에 나가 조롱 받지 않아도 되고, 편히 즐거운 일 을 하며 돈을 벌 수 있다.

인기도 생겼으며, 친구의 회사도 잘된다.

없던 여유도 생겼고, 웃음도 생겨 났다.

그러기에 길었다.

길게 느껴졌다.

‘좋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았던 직업.

허구한 날 잠만 자고, 중요한 순간 에 쓰러지기나 하고.

이제는 그것도 적응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게 기면증은 가끔만 터지지 않던가.

용암길.

그곳을 걸으며 생각했다.

예전 생각을.

‘너무 좋다.’

도중에 몬스터도 만났다.

가볍게 처리했다.

예전 생각도 난 김에 예전 복장으 로.

철검에 가벼운 가죽 갑옷.

그것으로 충분했다.

수준이 높?긴 했으나 어려운 몬스터 는 아니었다.

충분히 잡을 수 있었다.

“후우. 이제 던전인가?”

잔잔한 미소를 지었을 때.

눈앞을 반긴 건 다름 아닌 한 메 시지 였다.

그것도 처음 플레이했을 때 나왔던 메시지.

[타나노스의 기면증 스킬이 발동됩 니다.]

[강제로 수면 상태에 빠지게 됩니 다.]

[강제로그아웃 때까지 캡슐이 망가 져도 캐릭터는 게임에 남아 있으니 접속을 해제해도 됩니다.]

[타나노스의 알람시계 설정을 하시 겠습니까?]

‘아, 그럼 그렇지.’

이젠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다.

알람을 맞춘 뒤 그대로 쓰러졌다.

그리고 몇 시간 뒤.

현성이 자고 있는 그곳에 한 사람 이 나타났다.

아그니라는 랭커가.

‘이게 내 시작점이다.’

각오를 다진 모습.

하지만 그런 아그니의 앞을 막는 건 다름 아닌 현성이었다.

가면도, 그리고 신기도 착용이 되 어있지 않은 상태.

거기다 갑옷들도 다 해제하여 초반 그 모습과 비슷하나 전설로 도배되 어 있다.

그러기에 아그니는 알 수 없었다.

저기서 호구처럼 자고 있는 놈이.

그 대단한 아수라라는 것을.

‘저 전설 아이템 중 아무거나 나왔 으면 좋겠군.’ 결국 그 욕심이 화를 부르고 말았 다.

“이, 이게 뭐야? 으아아아악!”

* * *

까앙! 까아아앙

묵묵히 철을 두드리는 듀라셸.

그런 그 옆에 묵묵히 서 있었다.

작은 아이가 신경 쓰이기라도 하는 것일까.

듀라셸의 망치가 허공에서 멈칫거 렸다.

“허허, 무슨 일이 있나 보구나?”

스승이 제자의 고민을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저리 티를 내는데 모른 척을 하기 도 힘들다.

고민과 걱정이 동조하는 얼굴.

그것을 보며 허허 웃으며 물어왔 다.

“예.”

“허어, 마음에 안 드는 일이라도 있었던 게냐?”

말을 하며 망치를 내려놓는다.

제련을 멈춘다는 건 이 무구를 포 기한다는 뜻과 같다.

최적의 타이밍을 놓친 거니.

거기에 월은 죄송스럽다는 표정이 더해 졌다.

“윌아, 걱정하지 마라. 철이야 다시 녹이고 만들면 그만인 것을. 그것보 다 너의 걱정을 신경 쓰는 게 옳 다.”

역시 현자다운 말이다.

거기에 탐복한 월이 고개를 숙였 다.

“스승님은 아무렇지 않으신가요?”

“무어가?”

“그 엘프가 여기 와서 장난을 친다 고 피해를 주는 것이 말입니다. 거 기에 황제는 협박까지 하지 않았습 니까!”

말을 하면서 분노가 이른다.

그럴 수밖에.

분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당했다 생각하니.

그러나 스승, 듀라셸은 껄껄 웃어 재 꼈다.

“그리 보이더냐?”

“ 예?”

“엘프 그 꼬맹이가 와서 장난을 치 고 황제가 협박을 하는 것으로 보이 더냐?”

“예, 예에.”

그게 아니면 무어인가.

엘프는 와서 피해를 주고, 황제는 그 피해를 수습하기는커녕 협박을 한다.

윌이 보기엔 그랬다.

“허허허, 배워가는 중이구나.”

어리둥절한 윌.

그 아이를 보며 미소 지었다.

“엘프 꼬맹이는 장난을 친다. 맞다.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건 사실이 지. 하지만 그 엘프 꼬맹이도 그냥 그러고 가진 않는다.”

“ 예?”

처음 듣는 사실이다.

그것도 그렇다.

처음 얘기해 주니.

“늘 그러고 가서 미안한 것인지.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더구나. 이를테면 이 공방을 뒤덮고 있는 온 도 유지 마법. 누가 건 것 같으냐? 설마 나?”

“아, 아니. 그건 아니죠.”

“이 대륙에서 가장 위대한 마도사 가 누구더냐.”

“그, 그건.”

“그저 심심해서 그러는 거야. 그러 고 미안해서 수습하고 말이야. 이번 밤에도 뭘 두고 갔는데 에잉, 심심 하면 놀아달라고 하면 될 것이지, 와서 왜 그러고 가는지 모르겠어.”

살짝 투덜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윌은 그걸 듣고 꿀꺽 침을 삼켰다.

설마 그럴 줄이야.

황제는?

그럼 황제는 무어였던가.

“황제는요?”

“그분은 대단하신 분이지. 우리에 게 지원을 주는 쿠크다슨 왕국. 그 들의 지원도 좋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이렇게 뛰어난 광석들을 모두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느냐? 이 변방의 왕국에서?”

“아.”

“알게 모르게 사과하고 도와주고 있는 거다. 황제는 체면 때문에, 엘 프 꼬맹이는 자존심 때문에.” “어른들의 세계인가요?”

“으음, 황제는 그럴 수 있지만, 엘 프 꼬맹이는 어른의 세계라 보긴 힘 들지.”

인자한 미소.

그리 말하며 미소를 지으니 현자가 따로 없었다.

그 미소에.

“저, 저도 사과해야겠어요.”

누구에게?

그런 질문은 하지 않았다.

뻔했으니까.

그저,

“조심해서 다녀오려무나.”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배웅을 해줄 뿐.

허겁지겁 뛰어가는 저 작은 드워프 를 보라.

하나 배워 그 깨달음을 실천하러 간다.

보기 좋지 않은가.

‘보기 좋구나.’

스승들은 서로 사이가 그리 좋지 못했다.

그러니 이렇게 모르게 도와주는 것 아니겠는가.

이제는 그 증오가 사라지고, 서먹 해졌다 하나, 아직 그 응어리가 남 은 자도 존재한다.

그러기에 제자들끼리는 사이좋게 지냈으면 했다.

부디.

그러나 한 놈이 떠올랐다.

전에 제자들끼리 겨뤘을 때 심상치 않게 당했었던 뮤벨.

그의 스승이,

‘엘고르스 녀석,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했다.’

나태하고, 오만한 녀석.

그 녀석이 움직였다고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지.

‘에잉, 늙으면 이게 문제라니까.’ 늙어서 잔걱정이 늘어난 걸까.

그게 아니라면,

‘지금은 신경 쓰지 말자. 그냥

황제에게 이미 이 사실은 전달했 다.

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대륙, 아니, 이 세계에서 가장 강 력한 황제에게 말이다.

‘부디 별일 아니길

동쪽 대륙.

미국 서버라고 불리는 곳에.

잠의 사도가 생글거리는 미소와 함 께 나타났다.

한 남자를 데리고.

백금색 털이 팔과 가슴, 그대로 목 과 얼굴 테두리를 감싸고 있는 남 자.

결정적으로 꼬리가 달려 있었다. 아름다운 백금의 꼬리.

천공의 사도가 그를 보고 감탄한 건 외형 때문이 아니다.

“오호, 이분이……

“아하하, 데려오는 데 힘들었습니 다. 워낙 말을 안 듣는 분이시라.”

“인사가 늦었습니다. 천공의 신의 사도입니다.”

고개를 숙이는 천공의 사도.

그 인사를 거만하게 받는 그 인물 은 인상을 찌푸렸다.

〈용건.〉 말조차 강력하다.

소리를 들은 것에 불과할 뿐인데 데미지를 입었다.

꿀꺽.

이것이 대륙오천.

대륙최강의 생명체.

“다름이 아니오라, 중앙 대륙의 황 제와 싸워주셨으면 합니다. 대신 에……

조건을 말하려 했을 때.

눈썹이 꿈틀거린다.

〈애송아, 그 제안이 매혹적이지 않 았더라면 네놈은 죽었다.〉

단언.

그리고 천공의 사도는 느꼈다.

이 남자는 위험하다고.

그 증거로,

[천공의 신이 위험하다 알립니다.]

[천공의 신이 언행을 조심하라 경 고합니다.】

신조차 경고를 했으니.

절로 긴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육체의 정점. 최강의 생명체.’

수왕, 엘고르스.

대륙오천 중 최강의 생명체였으니.

가장 강한 건 황제이긴 하다.

하지만, 단순 육체만 따지자면 황 제가 가장 강한 게 아니다.

순수한 육체의 힘.

생명체의 한계를 뛰어넘은 육체의 힘은 황제도 한 수 접어줘야 한다.

그게 엘고르스이며, 수왕이다.

모든 수인들의 왕.

〈황제와 싸워 달라 했느냐.〉

“예, 폐하.”

폐하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위압감.

그것이 현실에서 왕처럼 사는 천공 의 사도조차 굽실거리게 만들었다.

〈싸워 달라는 것으로 나에게 무엇 을 주려 하느냐.〉

“신좌에 오를 수 있는 잊혀진 신의 정수를 드리겠나이다.”

잊혀진 신의 정수.

희귀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아이템.

위대하다고 할 수 있는 그 아이템. 이름 잃은 신의 정수와 비슷하다.

이것만 있다면 신이 될 수도 있다. 탐이 나는 아이템.

그럼에도 수왕은 만족하지 않았다.

오히려 오만한 눈빛으로 그를 보며 물었다.

〈그렇다면 놈을 죽여주면 무엇을 주겠느냐.〉

오싹.

소름이 돋았다.

싸워주는 것만으로 준다는 아이템 이 신의 정수이다.

그런데,

‘죽여준다고?’

꿀꺽.

〈자, 제시해 보거라. 놈을 죽여주 면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느냐.〉

깊은 눈.

수왕의 눈을 본 천공의 사도는 부 르르 떨었다.

이게 왕의 기운을 가진 자의 모습.

오만함이 절로 어울리는 자의 모 습.

아아,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그 모습을 마주한 천공의 사도가 입을 열었다.

“황제를 죽여주신다면 ……을 드리 겠습니다.”

그 말에.

〈좋다.〉

왕이 윤허했다.

거래는 완료되었다고.

왕의 오만일지.

자신감일지.

그건 결과로 드러날 터.

황제가 최강이라는 것을 과연 깰 수 있을지.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아수라를 막을 수 있다.’

그 광경을 보는 잠의 사도는 그저 방긋거리는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재미있게 되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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