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302화
허공에 찢긴 흔적들이 가득하다.
상식을 초월하는 모습.
그냥 보기에는 언뜻 잘못 본 것 같으나 그렇지 않다.
정확히 봤다.
강대한 힘의 파동에 의해 공간이 찢겨진 모습.
한두 군데도 아니다.
여러 곳.
꽤나 여러 개.
흔적은 수도 없이 쌓여있다.
도대체 어떤 전투가 오갔으면 이런 지경이 되었을까.
“끄으으으응, 이…… 제 만족하십 니까?”
“……충분히.”
힘겹게 입을 여는 잠의 사도.
그리고 황제.
끔찍한 참상이었다.
잠의 사도의 왼팔은 이미 잘린 지 오래다.
왼손을 대신하고 있던 잿빛의 기운 도 아지랑이처럼 하늘로 올라간다.
거기다,
“하체까지 잃을 줄은 몰랐네요. 거 기에 제 잘생긴 얼굴 반쪽까지 말이 죠.”
허리가 잘렸다.
내장 대신 잿빛의 기운이 흐르고 있었고, 공중에 떠서 반쪽만 남은 얼굴을 싱긋 웃어 보인다.
괴물 같은 모습에 황제는 고개를 저었다.
“신의 종자란…… 치사하군.”
치사하지 않은가.
인간이라는 한계 때문에 저러지 못 한다.
활동에 제약이 생길 수밖에.
거기다 황제는 상당히 온전한 모습 이다.
적어도 잠의 사도에 비해서.
상처는 크지 않다.
복부와 어깨, 가슴에 총 3군데의 거대한 치명상이 있으나 아물고 있 다.
그것도 빠른 속도로.
즉, 불편을 겪을 정도의 상처는 아 니라는 얘기.
그럼에도,
“내가 졌다.”
황제가 패배를 시인했다.
도저히 이길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 다.
“……지금은 말이다.”
“진짜 제정신이 아니시네요. 우리 사랑스러운 타나노스교의 마스코트 인 리베우스 사제님도 그 정도는 아 닙니다.”
졌다는 걸 인정했다.
적어도 지금은.
그 얘기는 다음에 또 싸우자는 얘 기가 된다.
잠의 사도는 진심으로 고개를 저었 다.
다음은 진짜 어떻게 될지…….
“어쨌건 아직 당신은 쓸모가 많죠. 특이 점이시 니까요.”
반쪽밖에 남지 않은 얼굴로 잘도 웃는 놈.
잠의 사도는 그대로 공간을 깨며 말했다.
“남은 기운으로 봐서 앞으로 한참 뒤에 나오시겠네요. 저는 그럼 대계 를 위해서 말이죠. 후후후후.”
“……가라.”
패배했음에도 살아 있다.
이를 치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다시 검을 쥘 수 있단 얘기고, 다 시 싸울 수 있다는 얘기니.
이 얼마나 설레는 이야기 아닌가.
거기다 놈의 계획?
알고 있다.
그러니 딱히 막을 생각도 없던 거 다.
“아쉽겠습니다, 그렇게 원하시던 신들은 죽이지 못하셔서 말이죠.”
공간을 가른 그 게이트를 넘어서기 직전.
잠의 사도가 한 그 말에 황제는 피식 웃었다.
“천공의 신 외엔 관심 없다. 그리 고……
'‘제자를 과도하게 믿으시는군요. 아하하하. 그럼 다음에는 부디 뵙질 안 길……
마지막 말을 하며 사라지는 잠의 사도.
뒷모습을 보며 황제는 눈을 감았 다.
제자.
걱정이 되긴 한다.
그러나 그 걱정이 크진 않다.
“우리 제자라면 그 정도는 이겨낼 수 있을 걸세.”
황제는 그리 말한 뒤 슬며시 눈을 감았다.
회복에 전념하기 위해.
제자보다는.......
‘유리아가 걱정이야.’
그 여린 아이가 어떤 일을 벌였을 지.
혹시 엘고르스에게 당하지는 않았 을까?
괜한 걱정이라는 건 안다.
유리아의 전투력을 누구보다 잘 아 는 것은 황제니 까.
그래도,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구나.’
회복에 전념해야 할 거 같다.
신경 쓰이니까.
미국 서버의 길드들?
대부분이 무너졌다.
지금 남아 있는 전력이라고 해봐야 많지 않다.
수인들, 한국 서버 반아수라 연합.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은 다름 아닌 한국 서버 반아수라 연합.
가장 많이 살아남았다.
강하기도 강하지만, 전황을 보며 상황을 빠르게 파악한 덕.
천공의 사도는 천공의 추기경들에 게 보호받으며 미소짓고 있었다.
‘곧 계획이 이뤄지겠어.’
푸른 벼락.
그리고 검은 벼락.
조화로울 수 없는 그 둘이 섞이며 내리친다.
서로를 집어 삼키려는 듯.
뇌신의 후예, 그리고 타나노스의 후예.
그 둘이 전투를 하고 있는 것일 터.
‘레이라 씨가 뇌신의 후예가 되신 건 예상치도 못했다만, 별 차질은 없을 거다.’
레이라.
아무리 강해도 아수라의 상대는 절 대 되지 않을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흐음.”
슉!
콰지지지지지직!
고개를 쓱 하고 피하자 번개가 그 자리를 귀신같이 지나친다.
번개라는 그 말이 무색할 정도.
너무나도 느려 보였다.
하지만 그 모습은 정말 찰나에 불 과한 모습.
그럼에도 현성은 모든 번개를 저리 한 끗 차이로 피해 버렸다.
“왜! 왜! 안 맞는 거지!”
처음에는 그저 견제용으로 날린 번 개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오기다.
한 대라도 맞추겠다는 오기.
그러나 오기라는 이름에 걸맞은 모 습.
능력도 되지도 않으며 지기 싫어하 는 게 딱 보였다.
딱하다는 듯 현성은 고개를 저었
“이거 루시퍼가 훨씬 재밌었는데.”
-솔직히 인정.
옆에서 재환도 인정했다.
루시퍼는 마지막에 진짜 대단했다.
처음에?
레이라와 같았다.
누가 전쟁의 사도 아니랄까 봐 아 군의 수당 아주 소폭 증가하는 능력 치를 무려 30만 아군으로 매우 강 력하게 능력치를 증폭시켰다.
특수한 상황이라고는 하나 사기는 사기.
역시 신의 사도다운 모습이었다.
그런데 레이라를 봐라.
“당신 신의 후예 아니야?”
신의 후예.
원래도 알고 있었지만, 퀘스트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가.
[한계돌파 퀘스트]
-등급: 직업 퀘스트.
-설명: 신의 사도와 후예들이 모 인 전장에 섰습니다.
타나노스는 항상 악신을 벌해왔습 니다.
후예인 당신 역시 그래야 합니다.
타락한 신의 후예와 사도들.
그들에게 천벌을 내리십시오.
-보상: 한계돌파.
-실패 시 레벨 1로 강등.
신의 후예와 사도들에게 천벌을 내 리라고.
현성은 이미 천공의 사도를 안다.
그리고 다른 사도들인 전쟁의 사도 와 투신의 사도는 이미 천벌을 받은 지 오래.
남은 건 레이라뿐.
정보를 얻은 것과 수도 똑같았다.
한 가지.
딱 한 가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시시해.’
빠르기?
빠르다, 당연히 빠르다.
번개인데 느리면 그게 번개인가.
그러나 번개는 늘 본다.
타나노스의 야상곡. 그것 또한 번 개이지 않은가.
거기다 그 번개를 다루는 게 자연 이 아닌 사람이라는 문제도 한몫했 다.
번개의 속도는 빠르다.
하지만, 인간의 연산 속도가 그것 보다 빠르기가 과연 가능할까?
잘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레이라는 부족하다.
머리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그저,
‘컨트롤이 엄청난 편은 아니야.’
물론 현성의 기준에서.
현성의 기준 컨트롤이 엄청나다는 건, 레이먼이나 한서아, 린, 아크, 루시퍼 같은 이들.
그 외에 다른 비공식 랭커들은 관 심 있게 안 본 것도 있지만, 그리 뛰어나단 느낌도 받지 못했다.
레이라 역시 마찬가지.
성능 좋은 스포츠카를 얻었으면 뭐 하나.
과속방지턱 때문에 달리지를 못하 거늘.
거기다 동선은 너무 뻔하다.
미리 예측해서 피할 수 있을 정도.
-이놈 봐라? 부캐로 회피 연습만 하니까 회피가 는 거 실화임?
고작 피하는 것만으로 영상을 찍긴 아쉽긴 하다.
하지만 멋있는 것 역시 사실.
고개만 까딱하며 번개를 피한다.
간지 중에 간지 아닌가.
아쉬운 게 있다면,
-야야! 피하면서 ‘느려.’ 하면서 한 번 노려봐줘라!
“좀 닥치고 있어라. 제발.”
절대 그걸 하는 일은 없을 거다.
좀 오글거리지 않은가.
컨셉도 그렇긴 한데, 그거야 본인 이 좋아서 하는 거니.
까놓고 말해 별다른 차이점은 못 느끼겠다.
“그, 뇌신의 후예님? 그게 다면 좀 실망인데……
신기가 빼앗겨 인성짓도 못한다.
뭐 권능이 있긴 하지만, 굳이 그걸 로 약 올리고 싶진 않다.
그럴 만한 상대여야 상대를 하지.
안 그런가.
이미 인성짓을 하고 있다는 건 모 르는 모양.
레이라는 차갑게 분노했다.
자신을 깔보는 아수라에게.
그리고 그걸 듣고 반박을 하지 못 하는 자신에게.
이래서야, 이래서야!
‘언니에게 승부도 못 걸어보겠잖 아.’
손발이 떨린다.
이대로 있으면 안 된다.
뭐라도 해야 한다.
그냥 이대로 넘어간다면…….
‘진짜로 아무것도 아니게 돼.’
츠팟!
최대 속도.
지금 인지할 수 있고, 조절할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다.
여태껏 쏘던 번개와는 다른 속도.
큰 차이까진 나진 않지만, 상당히 난다.
“흐읍!”
뇌력을 두른 몸.
압도적인 속도.
그 속도로 휘둘러진 검.
그러나,
“쯔 ”
"X.
허무한 혓소리.
그것과 함께 검은 선이 그녀의 몸 에 그어졌다.
하나.
둘……? 셋? 아니…… 모두 다섯.
짧은 시간 안에 다섯 번이나 그어 진 검은 혈선.
레이라는 차마 끝까지 보지 못했 다.
사망한다는 메시지를.
“루시퍼보다 못했다.”
끝까지 악담을 퍼부은 현성.
이제 남은 목표라곤…….
“천공의 사도뿐인가?”
걸음을 옮기려는 그 순간.
“하, 하와와…… 주, 주인님 피하라 는 것이와요.”
“도, 도망쳐야 하는 것입니당!”
현성의 품속에서 부르르 떨고 있는 두 아이.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이기에 이 둘 다 두려움에 떠는 것일까.
아직 현성이 이해하지 못하자 라이 가 말했다.
“오, 온다는 것이와요. 제, 제가 부 족한 탓이와요.”
그러니까 뭐가 오냐는 말은 건네지 못했다.
찌 이 이 이 이 이 이 이이 익.
거대한 균열.
허공이 찢어지는 그 굉음을 들은 현성이 고개를 들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뇌신의 후예가 사망했습니다.]
[천공의 신 측 신들이 분노합니 다.]
[신들이 명분을 얻었습니다.]
[일시적으로 신계와 중간계의 간섭 이 줄어듭니다.]
[빛의 신 아포른이 강림합니다.]
“미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