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308화
〈곧 검은 태양이 뜨겠…… 군〉
썩어 문드러지는 목소리.
하지만 힘이 가득하다.
썩어가는 죽음의 황제.
그가 고개를 든다.
검은 하늘.
그리고 그 사이에서 물들어가는 태 양.
점차 빛을 잃어가는 모습이 절망과 도 같아 보인다.
죽음의 황제는 그대로 뒤를 돌아 물었다.
〈왜 배신했는지 따위는 묻지 않…… 겠다.〉
이유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뜻.
죽어가는 모습의 퀸살노르.
하지만 그는 미소 지었다.
〈나를 이용할 생각이로군.〉
천공의 사도.
그가 암흑 기사의 정수를 사용하지 못한 이유가 이것이었다.
죽음의 황제에게 사로잡혔기 때문.
점차 침식이 되어가는 그의 정수는 이미 쓸모가 없어졌고, 파괴되었다 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몰골이 피폐해졌다.
하지만, 웃고 있는 퀸살노르.
이해가 안 된다.
뭐가 우스운 것이지?
무어가 저리 가소롭다는 듯 웃는 것일까.
〈뭐가 우스운 것이지……?>
참지 못하고 죽음의 황제가 물었 다.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기에.
그러나 기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네 종으로 만들어라. 어서.〉
미소를 지으며 그리 말할 뿐.
눈빛만은 살아 있으며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두렵지 않다는 모습.
신념이 가득하다.
어째서 일까?
어째서……
〈무…… 어가 그리 우습냔 말이 다!〉
터뜨렸다.
초조함을.
불안함을.
하지만 요지부동이다.
미동조차 없다.
그저,
〈네 종으로 만들어라. 어서.〉
빨리 선악과를 먹으라는 사탄처럼.
재촉한다.
무어가 저리 당당하게 만든 것일 까?
무어가 저리 신념을 만든 것일까. 알 수 없다.
다만,
〈조오옿다! 네놈을 삼켜…… 주 지.〉
불안하다.
죽음이.
썩어 문드러진 죽음이
그를 삼켰다.
으적으적 씹히며 온몸이 문드러지 고 있음에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신념이 가득한 미소.
그것이,
죽음의 황제에게 치명적인 불안감 을 선사했다.
쿠웅-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
암흑 기사가 죽음의 기사로 탄생한 순간이다.
진정한 죽음이 거부한 죽음.
썩어 문드러진 죽음.
그것이 뒤덮여 새로운 기사가 탄생 했다.
《명…… 령을.》 죽음의 황제.
그의 군단 중 최강의 기사.
최강의 기사를 얻었건만.
이게 뭘까.
이 불안한 감정은……
〈검은 태양을 기다린…… 다. 이곳 은 우리의 성지가 되리라.〉
《충.》
그 말과 함께 사라지는 죽음의 기 사.
사라지고 난 뒤 검은 그림자의 용 이 나타나 물었다.
-괜찮은 것이겠지?
죽음의 황제, 그가 가지고 있는 불 안이 전염된 것일까.
아니면 애초에 느끼고 있었던 것일 까.
불안해하는 사룡의 그림자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모…… 른다.〉
알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승…… 리한다.〉 -그 빌어먹을 사도로부터. 그리고 타나노스의 개들로부터.
〈그리고…… 신이 된다.〉
자신들을 버린 타나노스에게 복수 하기 위해.
버려진 자들의 슬픔을 울부짖기 위 해.
더는 버려지지 않기 위해.
그들은 움직였다.
자신들을 버린 신을 대신해 신이 되기 위해서.
취이이이이이익.
취사가 되는 소리가 울리며 캡슐이 열렸다.
후우.
긴 숨을 뱉으며 나오는 현성.
아주 땀범벅이었다.
“대략 450에서 500대 몬스터들이 었지.”
명계의 몬스터들이 아주 수준이 높 았다.
예전에 300을 찍고 300 후반대 몬 스터들을 잡던 때와는 전혀 다르다.
차원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나?
일반 몬스터들이 하나하나 보스처 럼 의지를 가지고 전투에 임한다.
진짜 전사들처럼.
그것도 힘들지만, 무엇보다 합이 잘 짜여 있다는 게 문제.
‘모두 유령 타입이라는 것도 문제 가 되지.’
모두가 고스트 타입이라는 것 또한 힘들었다.
대부분 공격을 무효화했으니까.
그리고 그걸 이용할 줄 아는 자들 이었다.
난이도가 높긴 했지만, 확실히 재 미는 있었다.
아케론이 죄인들을 괴롭히지 말라 고 징징거리긴 했지만, 이것 또한 형벌 아니겠냐는 말에 감명을 깊게 받곤 방해하지 않았다.
“후우.”
생각해 보면 길게 왔다.
상당히 길게 왔다.
‘썩어가는 죽음이랑은 특히 길었 네.’
이제는 진짜 최종 장이다.
그때까지 힘을 키워야 한다.
적어도 퀸살노르를 상대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겠지 않나.
그리고 그때는,
‘신살자는 못 쓰지.’
이번에 신을 상대하면서 전력‘?
다하지 못했다.
아포론은 강했다.
하지만, 그것만큼 현성도 강해졌다.
적어도 신을 상대할 때만큼은 누구 보다 강해지기에 모든 걸 다할 필요 는 없다.
삼신기의 세트 옵션만 사용하더라 도 괜찮은 수준.
그러나 썩어가는 죽음. 그들은 다 르다.
우선 그들은 신이 아니다.
‘신살자 효과는 기대할 수 없어.’
그렇다는 건 본신의 힘을 키워야 한다는 뜻이 된다.
대륙 오천은 힘들다 하더라도 적어 도, 레벨 500.
거기까진 달성해야 한다.
물론,
‘그건 힘들 거 같지만.’
죽어라 사냥을 했음에도 종일 했는데 1업도 못했다.
이게 말이 되는가.
정말 극악.
레벨이 오른다고 그만큼 강해질까?
그런 의문도 들었다.
하지만 적어도 현성은 그렇다.
사냥을 할수록 강해진다.
‘타나노스의 기운을 쌓아야 해.’
타나노스의 기운은 타나노스의 스 킬을 사용하는 만큼 늘어난다.
그것도 무한히.
MP처럼 한계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많이 쌓을수록 높아진다.
그것도 강한 상대에게 사용하면 더 욱 높게 쌓인다.
반대로 약한 상대에게는 그다지 쌓 이지 않는다.
즉, 지금 현성은 사냥만으로 강해 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이게 만족할 수 있을 만큼 쌓인다면?
‘레벨 500대의 힘도 낼 수 있다.’
현성은 확신했다.
신살자로 인해 타나노스의 기운 또 한 2배 이상이 되었을 때 느꼈다. 타나노스의 기운을 응축시킬 수 있 다는 것을.
그것은 신살자가 아니더라도 위력 적일 터.
하지만 아직 모인 타나노스의 기운 은 부족하다.
‘더 모아야 해.’
신살자 때보다 훨씬 많이.
적어도 그때보다 몇 배 이상으로.
현성, 그가 이렇게 집착하는 이유 는 간단했다.
‘퀸살노르가 잡힌 게 틀림없어.’ 연락이 없어서?
단순히 그런 이유는 아니다.
천공의 사도.
빛의 신, 아포론과의 전투 중에서 도 현성은 계속 천공의 사도를 신경 썼다.
타나노스의 힘을 봉인할 수 있는 걸 가지고 있었기에.
이미 알고 있던 정보다.
그런데 사용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사용하지 못했다.
퀸살노르의 정수를.
뻔하지 않은가.
정수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은.
‘죽었거나 조종당하고 있다는 거 지.’
전자라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복수는 당연히 해줄 거니까.
하지만, 후자라면.
곤란하다.
‘난감하지.’
최강의 기사가 탄생할 거다.
그것도 최강의 네크로멘서에게서 재탄생된다?
어쩌면,
‘썩어가는 죽음의 황제보다 강할 수도 있어.’
일반적일 때도 강했는데 그것보다 더 강해진다?
상대하기 난해해진다.
유리아와 카론 황제?
맡긴다면 맡아줄 이들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래야 하나.
마지막 시나리오다.
추정이긴 하지만.
적어도 썩어가는 죽음과는 마지막
시나리오다.
그것 또한 맡긴다라.
‘자존심이 상하지.’
그러고 싶진 않았다.
‘운동하고 밥 먹고 들어가자.’
휴식은 당장 필요 없다.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괜찮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유리 아.
황제는 그런 눈을 한 유리아를 보 며 피식 웃었다.
저 어리기만 한 줄 안 친우가 걱 정 어린 모습을 하다니.
패배도 썩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닌 듯하다.
“나는 괜찮다.”
“괜찮긴! 너는 늘 안 괜찮아도 괜 찮다고 하잖아!”
그럴 거면 왜 물어봤냐고 하고 싶 었지만 굳이 말하진 않았다.
이렇게 간호받는 것도 나쁘진 않았 으니.
“그 잠의 사도라는 새끼 죽여줄 까?”
“허허허허.”
“뭐야 그 웃음? 나는 못 할 거 같 다는 얘기야? 허어! 내가 얼마나 강 해졌는지 알아!?”
양손을 허리가 아닌 가슴 옆까지 끌어올린 손동작.
정말이지 귀여웠다.
마음에도 없는 소릴.
그때, 유리아의 뒤에서 씨익 웃으 며 대답하는 사내.
“아아, 죄송합니다. 적당히 하긴 했 는데 워낙 강하셔서 말이죠.”
싱긋 웃으며 대답하는 사내.
잠의 사도였다.
거의 사지가 소멸하다시피 망가졌 었으나 다시 복구된 모습.
황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었고, 유리아는 후들후들 떨며 고 개를 갸웃거렸다.
“네가 왜 여기 있어?”
“왜긴요? 황제가 불렀으니까 왔 죠?” “으응?” 어이가 없다는 듯 황제를 보는 유 리아.
황제는 피식 웃으며 침상에서 상체 를 일으켰다.
누워만 있어서 대화를 할 수 없었 으니.
앉아 있어도 통증이 아직 가시지 않았으나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 같다.
하지만
“당신 전쟁에 참여하지 않을 생각 이지?”
“그럼요. 오히려 다른 신들이 나서 지 못하게 막고 있는 중이긴 하지 만…… 어느 분이 제 몸을 엉망으로 만들어놓으셔서 조금 힘이 든답니 다.”
“그거 우리도 돕지.”
“으잉?”
우리라는 말은 황제 혼자가 아니란 말이다.
유리아도 같이 간다는 뜻.
하지만,
“나, 나도?”
“안 갈 생각이었나?”
“아니, 갈 거긴 한데 왠지 순순히 허락한다 해서…… 거기다 우리는 전쟁 참여 안 하는 거야?”
유리아의 물음에 황제는 웃었다.
아직도 저리 어린아이 같으니.
곁에 있어 줘야 하지 않겠는가.
“엘고르스의 내단도 먹었겠다, 더 강해지지 않았나? 그러니 적어도 중 위신까지 이길 수는 있겠지.”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아수라 느 9”
“우리 제자는 더는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컸다. 거기다,”
“응?”
“더 도와줬다가 미움받을 수도 웃 지.”
다소 쓸쓸하다는 미소.
하지만 그건 슬픈 미소는 아니웃 다.
마치 딸아이가, 아니, 아들이 결혼 한다고, 혹은 다 커서 독립한다! 말한 걸 들은 아버지의 모습과도 긑 았다.
대견하고, 자랑스럽고, 한편으로 슽 쓸한.
그런 감정이랄까?
그러나
“으잉? 왜 도와줬는데 미움을 받 아! 아수라는 그런 애 아니거든!”
그저 빼액 거리면서 아니라고 하는 유리아.
이럴 때 보면 진짜 철부지 같다.
“이제 우리도 아수라를 인정해 줘 야지. 그 정도로 성장했으니. 도와주 었다가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 원래 사춘기란 그런 것 아니겠나.”
라고 사춘기 엘프 꼬맹이에게 말해 주었다.
“하긴. 아수라가 사춘기가 올 때가 되긴 했어.”
유리아가 그걸 받아들이는 게 더 웃겼다.
귀여운 유리아를 보며 황제는 웃으 며 말했다.
“그러니 우리는 신계로 간다.”
“신들을 막기 위해서?”
“그렇지.”
“자, 얘기는 끝난 것 같네요. 그럼 전이만, 다른 아군도 꼬드겨야 해서 말이죠.”
잠의 사도.
그가 말하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 다.
“그럼, 그때 보지.”
황제의 말과 함께 고개를 숙인 잠 의 사도.
그는 그렇게 사라졌다.
잠의 사도, 그가 다시 나타난 곳은 다름 아닌 명계.
그곳에서 그는 아케론과 마주했다.
〈오랜만이군.〉
“그러게 오랜만이네요.”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는 사이.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 다.
“신계에 가서 잠시 도와주실 수 있 겠습니까?” <……주인님을 위한 일이겠군.〉
“물론이지요. 하지만…… 다른 뜻 도 있답니다.”
그 말에 아케론은 두 눈을 부릅떴 다.
설마.
설마 하는 눈으로 그를 본다.
아니겠지 생각했으나,
“엘리시움을 위하는 것도 있습니 다.”
<……자네가 그년의 이름을 말할 줄은 몰랐군.〉
“하하, 제가 용서한다는데 무슨 상 관이십니까? 그래서 도우시겠습니 까?”
〈알겠네, 다만 조금 늦을 수도 있 을 거 같군.〉
“양해해드리죠. 아무래도 주인님이 이곳에 있으시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럼.”
사라지려는 잠의 사도를 보며 아케 론이 말했다.
〈부디, 엘리시움이 한 짓을 잊지 말길, 타르타로스.〉
“하하, 그럴 리가요.” 그렇게 대화는 끝났다.
엘리시움을 위한다라.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고개를 끄덕 였다.
하기야,
〈오래전의 일이긴 하지.〉
이제는 용서할 때도 되었다고.
아케론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