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2부 9화
3장. 전 사제가 아니라 신인데요?(5)
‘하아, 진짜 뭔 이런 경우가 다 있냐.’
멋진 모습을 보인 후에 바로 비루하게 쓰러지다니.
쪽팔려도 이렇게 쪽팔릴 수가 없다.
하필이면 타이밍이 딱 이러냐.
현성은 속으로 꿍얼거려 봤지만, 뭘 할 수 있진 않았다.
기면증 상태가 되면 자동으로 영혼 상태가 되는데.
그 상태로 살펴보니 다들 깜짝 놀라 자신에게 달려온 것을 알 수 있었다.
“아, 어쩌지?”
“갑자기 쓰러지셨는데?”
“보니까, 위험하거나 다치신 건 아닌 거 같아. HP도 멀쩡하고….”
“……하긴, 그런 강력한 스킬을 사용했는데 리스크가 없을 리가 없긴 하지.”
마지막 코브루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즉사기에 가까운 스킬이었던 거 같다.
라고 판단하는 거 같다.
하기야 그렇게 생각하는 게 편하긴 했다.
그 골렘을 파괴했으니.
아무래도 그게 더 아다리가 맞았으니까.
압도적으로 골렘을 쓰러뜨린 정체불명의 유저보다는 리스크가 있는 강력한 스킬을 지닌 정체불명의 유저가 낫지 않나.
반응을 보아하니 쪽팔리긴 해도 나쁘지 않은 방향이긴 하다.
문제는….
‘저 녀석이 뭔 짓을 할지가 무섭네.’
현성이 기면증에 빠져 자고 있는 모습에 연신 절을 하는 광신도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리베우스.
아니, 광신도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광신도지?
가끔 잊을 뻔한다.
어쩌면 좋을까.
고민을 해봤지만 답은 생각 이상으로 명쾌하게 나왔다.
‘나가자.’
이전처럼 기면증이 발동되면 강제 로그아웃 때까지 자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1시간은 긴 시간이다.
1시간 동안 멍하니 여기서 구경하는 거보다 나가는 게 신상에 이로울 거다.
리베우스가 무슨 짓을 하는지 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 봐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리베우스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기와 1시간 동안 캡슐 밖으로 나가서 다른 거 하고 와서 사고 친 걸 보는 것.
뭐가 더 정신 건강에 좋을까?
당연히 후자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다면 현성도 알고 싶지 않았다.
‘로그아웃.’
[로그아웃을 하더라도 타나노스의 기면증 상태는 유지됩니다.]
[로그아웃하시겠습니까?]
통상적인 메시지를 무시하고 나가겠다고 대답했다.
그 후 캡슐이 열리고, 현성은 취사 소리를 들으며 밖으로 나왔다.
차라리 이렇게 나와서 1시간 뒤에 들어가는 게 마음이라도 편하지.
그런데 왜일까.
이리도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
‘…사고 치더라도 적당히 치겠지.’
생각해 보면 리베우스의 행동이 골치를 썩이긴 해도 한 번도 현성을 곤란하게… 했지.
많이 했다.
결과적으로 이득을 보긴 해도.
상당히 골치가 아프긴 했으니까.
생각을 하니 더 머리가 아파온다.
더 생각하지 말자.
‘1시간 후에 보자. 그래, 지금 생각해 봐야 바꿀 수도 바뀔 것도 없으니까.’
최대한 그렇게 마음을 편하게 먹었다.
하지만 어째 불안한 마음은 왜 틀린 적이 없을까.
현성이 밖으로 나가자마자 리베우스는 연신 절을 하다 문득 생각했다.
‘으음, 주인님이 잠드신 모습을 참배하는 것도 참으로 좋은 일이지만, 이러고만 있어서는 아니 될 것 같습니다요.’
현성이 들었다면 부디 그냥 가만히 있어 달라고 했을 법한 생각.
하지만 주체적인 삶을 사는 우리의 리베우스는 그것을 참을 수 없었다.
자신 스스로 움직여 주인님을 기쁘게 하자!
짧은 시간 만에 그런 결론에 도달했다.
리베우스가 엉뚱하고 미치긴 했어도 머리가 꽤 잘 돌아가는 편이다.
실제로 전쟁을 주도하고 현성의 적들을 물리치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흐음,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는군요.’
씨익 비틀린 미소를 짓는 리베우스.
역시 악마 출신 사도라서 그럴까.
상당히 악마다운 미소였다.
하지만 집사복과 올백을 한 머리가 참으로 어울리는 미소이기도 했다.
감은 눈에서 살며시 눈을 뜨곤 코브루의 파티원들을 봤다.
이거 아주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표정을 지으며.
‘후후후, 우리 불신자들을 주인님께 도움이 되게끔 만들어야겠습니다요.’
리베우스가 그렇게 웃고 있자.
파티원들은 모두 흠칫 몸을 떨었다.
“왜, 왜 저 펫이 우리를 보고 웃는 거지?”
“자, 잘 모르겠는데 좀 무섭네.”
“누, 누나도?”
“뭐, 뭐지?”
다들 흠칫 떠는 동안 리베우스는 그런 파티원들을 보며 싱긋 웃고는 가볍게 두 손을 들었다.
집사복과 한 몸과도 같은 흰 장갑을 낀 손.
그래 봐야 자그마한 손이다.
하지만 그 둘이 맞부딪치자.
짝.
“어?”
“뭐, 뭐야?”
“커, 커졌어.”
“가, 갑자기?”
정상적인 신체 사이즈로 변한 리베우스는 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며 그들을 봤다.
당황해하는 파티원들.
리베우스는 그러곤 잠들어 있는 현성의 캐릭터를 둘러업더니.
파티원들을 보며 말했다.
“자, 불신자 여러분. 이제부터 제가 친히 포교 활동을 해드리겠습니다요. 우리 위대하신 주인님의 힘을 느끼게 해드리겠습니다요.”
꿀꺽.
시련의 동굴 안에서는 그저 침 넘기는 소리만 울렸다고 한다.
* * *
리베우스가 포교 활동을 시작하고 있었을 때.
한편 김유나 사원은 바로 자신의 직속 상관인 정지환 대리에게 찾아갔다.
바로 옆자리는 아니라 좀 떨어져 있는 곳에 있다 보니.
오는 데 조금 걸리긴 했지만.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정지환 대리는 그렇게 찾아온 김유나 사원을 봤다.
상당히 불편하고 불안해 보이는 표정.
무슨 일이라도 난 건가?
왠지 불안하다는 생각을 하며 정지환 대리가 물었다.
“어? 유나 씨 무슨 일이야?”
“선배님, 보고드릴 사안이 있어서 왔습니다.”
“보고? 무슨 일이라도 있어?”
“예, 다름이 아니라 시련의 동굴 골렘이 파괴되었다는 코드가 떠서….”
“엥? 그게 무슨 소리야, 골렘이 왜 파괴가 돼?”
선배인 정지환 대리조차 당혹스러워하는 말.
룬 제국의 중앙 부분을 담당하는 정지환 대리 역시 시련의 동굴 골렘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룬 제국 마탑에서 만든 만큼 성능은 확실한 골렘이건만.
그게 갑자기 왜 부서진단 말인가.
고작해야 초보자 지역에 있는 유저가 부술 수는 없는 골렘일 텐데.
대략 레벨 20은 되어야 부술 수 있고, 최소한 30은 되어야 압도적으로 부술 수 있다.
그것도 높은 등급의 스킬이 있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한데 그게 부서졌다?
범상치 않은 일이 일어난 게 분명하다.
정지환 대리가 자세를 고쳐 앉고 김유나 사원을 바라보자.
끊긴 말을 김유나가 이었다.
“그래서 저도 이상해서 확인해 보니까, 유저 하나가 일격에 골렘을 파괴하는 영상을 모니터링했습니다.”
“일격에?”
말이 되나?
불가능에 가까운 일 아닌가?
자칫 심각해질 수 있는 상황이다.
초보자 마을에 고렙 유저가 들어가기라도 한 걸까?
아직까지 그런 사례는 없었다.
시스템적으로 막고 있었으니.
하지만 편법을 이용해 들어갔을 수도 있지 않은가.
불안해져서 김유나 사원을 바라보자 김유나도 상황 보고를 빠르게 이어서 했다.
그리고 이어질수록 보고는 가관이었다.
“유저 정보를 확인해 보니 고레벨도 아닌 고작해야 레벨 1이었는데 신등급 직업이었습니다. 그것도 매뉴얼에는 없는 신등급 직업이요. 여기 정보를 뽑아 왔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 지, 진짜네.”
이게 왜 진짜냐.
딱 그런 심정으로 정지환 대리는 작게 한숨을 쉬며 눈을 끔뻑거리다 다시 현성의 데이터를 살폈다.
정말 레벨 1에 신등급 직업.
심지어 정지환 대리도 본 적 없는 직업명이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건지.
플라톤의 직원들은 이데아, 그러니까 이전 인페르노에서 일한 적 없는 직원들이 훨씬 많았다.
특히나 이 관리본부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더 그랬다.
예전 책임자인 조민우 팀장의 경우 민유라가 관리본부 본부장으로 모셔오긴 했지만.
이 둘은 조민우를 만나기에는 한참이나 말단 직원이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냐.”
위로 보고를 올릴까?
정지환 대리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저도 모르게 끔찍한 상상을 했다.
이걸 발견한 김유나 사원은 자신의 직속 부하다.
만약에 그런 부하의 실수로 발견하지 못한 거라면?
최소 시말서고, 잘못하다간 곧 있을 승진에 악영향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등골이 서늘해졌다.
꿀꺽.
일단 자신이 해결하는 쪽으로 생각해 보자.
당장은 이 유저가 사고를 친 게 골렘을 파괴한 거 말곤 없지 않나.
아니, 더 있나?
“이거 말고 보고 사안 있어요?”
“아뇨… 골렘을 파괴하고 지금은 상태이상 수면에 빠져 있어서 별다른 일은 없습니다.”
“하, 다행이다. 그러면 일단 봐볼까요?”
“아, 네!”
김유나 사원이 관리하는 것 중 현성을 찾아내고 정지환 대리가 살폈다.
더 큰 일은 없나 하고 유저 정보를 살피는 거다.
당연히 김유나보다 훨씬 많은 걸 볼 수 있을 거다.
아무래도 직급이 더 높으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게 웬걸?
나오는 거라곤 몇 개 없었다.
“뭐, 뭐야 이거?”
캐릭터 생성 일 외에 스킬이나 다른 정보를 볼 수 없었다.
당혹스러운 순간.
놀란 건 김유나 사원도 마찬가지였다.
“왜, 왜 안 보이는 거죠, 이게?”
“어, 어어?”
정지환 대리는 김유나 사원처럼 2개월만 일한 초짜가 아니다.
플라톤에 오기 전에도 관련 직종에 있었고, 이곳에 온 지도 벌써 1년이나 되었다.
다시 말해 출시부터 일하던 직원이라는 뜻이다.
한데 이런 경우는 처음 봤다.
생성 일 말고 스킬이나 심지어 직업 정보조차 볼 수 없었다.
열람을 누르자 떠오르는 붉은색 코드.
분명 이게 의미하는 거는 최소 본부장급 임원만 볼 수 있다는 뜻인데?
이게 왜 여기서 뜨는 건가.
정지환 대리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꿀꺽.
“어, 어쩌죠?”
“후우. 잠시만요.”
생성 일을 보아하니 오늘 바로 만든 캐릭턴데.
능력치는 또 왜 이러며, 전직은 왜 신등급인가.
심지어 처음 보는 신등급 직업이다.
스킬도 뭐가 있는지 볼 수도 없고.
펫 정보조차 열람이 불가하다.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황.
그런데 그때.
“그, 근데 저 펫이 저렇게 커, 컸었나?”
김유나 사원의 말에 정지환 대리는 저도 모르게 현성 캐릭터 모니터를 살폈다.
그리고 그곳에서 펫이 자고 있는 현성을 어깨에 메고 골렘들을 상대하는 영상을 볼 수 있었다.
고작해야 펫이 골렘을 상대하는 것부터가 이해가 되지 않는데 심지어 홀로 잘 상대하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다른 파티원들은 그냥 구경만 하는데요?”
김유나 사원의 말처럼 다른 파티원들은 그냥 보고만 있었다.
오직 리베우스만이 골렘을 상대하면서 외쳤다.
-오우! 자! 불신자 여러분들도 따라 하는 겁니다요!
-오, 오우.
-지, 진짜 해야 해?
-일단 해. 오, 오우!
-오우!
-아하하! 바로 그겁니다요!
리베우스 맛을 처음 본 정지환 대리는 그저 눈앞이 깜깜해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