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2부 16화
6장. 개척마을, 마룬의 보물(2)
쿠구구구구구.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발 구름 소리.
한두 개로 울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땅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만한 거대함.
이건 분명 거의 군대에 가깝게 울리는 군단의 진군 소리다.
갑자기 울리는 땅에 현성은 당황하면서도 순간 마법사의 표정을 살폈다.
찰나에 스쳐 지나가는 의아함.
한데 그 의아함에 공포나 두려움이 아닌 묘한 게 걸려 있었다.
‘찾았다.’
미심쩍은 부분을 찾았다.
이것 역시 심증이긴 했지만.
틀림없다.
하지만 당장은 그거보다 신경 써야 하는 게 있지.
몬스터 군단을 막는 일.
이만한 수를 과연 현성과 리베우스 둘이서 막을 수나 있을까 싶지만.
‘해봐야지.’
퀘스트도 받지 않았던가.
최대한 해봐야지.
게다가 이렇게 어려우면 또 그것 나름대로 괜찮지 않겠나.
현성이 씨익 미소를 짓자 리베우스 역시 미소를 지었다.
“감히 주인님이 있는 땅인지 모르고 돌격하는 무지한 몬스터들에게 천벌을 내리겠습니다요! 오우!”
“그래, 오우다!”
현성도 신나서 진군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다급히 달려갔다.
그러면서도 마법사에게 말하는 건 잊지 않았다.
“몬스터가 쳐들어온 모양입니다! 저 먼저 가겠습니다!”
외친 지 얼마나 지났다고 상당히 멀어진 현성.
마법사는 그런 현성을 보면서 칫, 하고 혀를 찼다.
역시 현성의 예상대로 마법사, 그가 흑막이 맞았다.
예상하지 못한 게 있다면.
하나였다.
“빌어먹을, 녀석이 봉인에서 깨어난 모양이군. 어떻게든 잠재우려 했지만, 곤란하게 됐어.”
자신이 어떻게든 사로잡아 봉인을 시켜둔 녀석.
너무나 강력한 패이지만.
제어를 하지 못해 끝내 봉인을 선택했었다.
그런데 녀석이 풀려나 군단을 이끌고 이곳으로 온 모양이다.
참으로 곤란한 일.
아니, 오히려 잘되었다.
사제라는 작은 불안 요소가 있었는데.
녀석이 라면 확실히 그걸 꺾어 놓겠지.
‘끌끌, 나는 느긋하게 구경이나 하면 되겠군.’
단지 조금 걸리는 게 하나 있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멀찍이 보이던 현성이 보이지 않게 된 방향을 향해 고갤 갸웃거렸다.
‘사제가 저렇게 빨리 달릴 수 있던가?’
순간 의문이 들었지만 괜한 생각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 봐야 자신의 군단에는 절대 안 된다.
이전이었다면 또 몰랐겠지만, 녀석이 깨어난 이상 절대 안 된다.
저주받은 트롤.
그건 이 주변 일대를 다스리던 보스 중 하나였으니.
‘그러면 나도 슬슬 준비를 해야겠군.’
이 마을의 보물을 얻기 위해 무려 1년이나 고생했다.
모든 요소를 제거하고 아무런 의심을 받지 않게 하는 데 1년이나 걸렸다.
그 끝이 보이는 순간.
어떻게 이걸 참겠는가.
“자, 이제 가보자꾸나.”
노인 마법사가 그렇게 말하자 바닥에서 거대한 애벌레 몬스터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위에 탄 노인 마법사는 씨익 웃고는 지팡이를 쥐었다.
모든 준비는 완료되었다.
이제 보물을 가져다 비밀 결사에 가져가면 자신도 막강한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
얼마나 기다린 일인지.
조금이라도 빠르게 얻고 싶어서인지 마법사는 빠르게 걸음을 재촉했다.
* * *
몬스터들의 엄청난 군단을 보곤 현성이 처음 든 생각은 하나였다.
이렇게 몬스터가 많으면 레벨이 쭉쭉 오르겠구나!
그다음으로 떠오른 생각은 조금 더 나아갔다.
얘들을 다 죽이고 얻는 퀘스트 보상? 얼마나 좋은 거길래?!
딱 그런 생각이었다.
보물이라더니.
진짜 어마어마한 가치를 가진 모양.
‘이건 무조건 깨야겠는데?’
현성이 그렇게 웃으면서 속으로 중얼거리자.
그런 군단을 보며 리베우스 역시 미소를 지었다.
“오우! 꽤 득실득실거리는군요. 이 머나먼 타지에 영광스러운 주인님의 첫 신전을 만들려는데 이리 방해를 하다니,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일입니다요.”
유쾌하게 말하고는 있지만, 현성은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리베우스 이 녀석이 화났다는 걸.
현성은 리베우스의 말에 피식 웃었다.
광신도 녀석이긴 해도 자신에 대한 충성심은 누구보다 으뜸이었으니.
나쁜 기분은 아니다.
“다만 저만한 수라면 처치하는 데 좀 고생하겠는데?”
“오우! 저 없이 주인님 혼자서도 충분하시지 않습니까요!”
“크흐흐, 뭐 가능은 할 거 같네.”
고생은 하겠지만.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상당히 오만하고 불손한 생각이긴 해도.
남이 듣는다면 비웃지나 않으면 다행인 일.
현성은 가볍게 몸을 풀면서 마을에 오기 전 잡은 PK범이 흘린 아이템을 쥐었다.
근접 무기류가 거의 없었다.
얻는 즉시 팔았던 모양.
그나마 가장 좋은 게 창이었다.
창지기가 직접 쥐고 있던 거였으니.
제일 좋은 게 당연하긴 하지.
그렇게 창을 쥔 현성이 가볍게 몸을 풀고 있을 때.
마을 사람들이 주변에서 울먹이는 표정으로 현성의 소매를 붙잡았다.
“사, 사제님, 그, 그러지 마시고 저희와 도망치시죠.”
“마, 맞습니다. 도, 도무지 이길 수 있는 수가 아닙니다.”
모두가 울먹이는 표정이다.
자신들의 터전이 사라지게 생겼다.
그리고 자칫 잘못하면 모두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어느 누가 울지 않을 수 있겠나.
다들 절망과 공포에 질린 모습이다.
한데 그럼에도 현성에게 같이 도망가자고 하는 거다.
제 한 몸 먼저 돌보지 않고 돕겠다고 한 사제인 자신까지.
이런데 어떻게 두고 도망치나.
그런 마을 사람들을 보고 현성은 피식 웃었다.
그러곤 나지막하게 말했다.
“보고 계십시오.”
현성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에게 걸 수 있는 모든 버프를 걸었다.
미약한 기도, 샘솟는 용기 이 둘밖에 없긴 했지만.
이거라도 있는 게 어디인가.
미약한 기도로 옅은 빛무리가 현성의 몸에 스며들었고.
샘솟는 용기로 붉은 아우라가 순간 현성의 몸에 깃들었다.
확실히 효과가 미비하긴 한데.
없는 거보다는 훨씬 나았다.
‘이만하면 충분하지.’
현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온몸의 근육을 이용해 땅을 차 앞으로 나갔다.
펑!
뭔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빠르게 앞으로 쏘아지는 현성.
그런 현성을 보며 마을 사람들은 저들도 모르게 동그랗게 눈을 떴다.
사제라고 하지 않았던가?
저런 엄청난 육체를 가지고 있다니.
놀라서 다들 멍하니 보고 있는 마을 사람들 앞에, 리베우스는 미소를 지으며 스킬을 사용해 일반 성인 남성의 크기로 커지더니.
마을 사람들을 보고 말했다.
“지켜봐 주시지요. 주인님께서는 위대하신 분이시니, 그저 믿고 기다리시는 게 현명한 방법입니다요.”
나긋나긋하게 말한 리베우스 역시.
그 말만 남기고 빠르게 움직여 현성의 뒤를 따랐다.
리베우스보다도 빠르게 달린 현성.
당연하게도 그가 먼저 몬스터들의 군단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더 많은 수.
대략 수십은 넘어 보였다.
최소가 그랬고, 더 되면 근사치로 백 정도는 되어 보이는 수다.
그래도 그 이상은 넘지 않을 거 같았다.
‘그랬으면 퀘스트 등급이 C가 아니었겠지.’
그리고 수가 그리 많았으면 오히려 좋았다.
레벨을 올릴 수 있어서?
그것도 그거지만, 수가 많다는 건….
촤아아악!
“잔챙이가 많다는 뜻이거든!”
단 한 번의 창을 휘두르자 셋이 쓰러진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위용.
창 관련 스킬조차 없으면서 엄청난 모습이었다.
물론 타나노스의 악몽 덕분에 더 강하게 힘을 낼 수 있는 것도 있었지만.
어쨌든 현성이 극한으로 컨트롤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영역.
그런 현성의 뒤에서 리베우스가 따랐다.
단순히 따르기만 하진 않았다.
“오우!”
[펫, ‘리베우스’의 스킬 『관용Lv1』이 적용 중입니다.]
[1분간 모든 공격에 상대하는 적의 공격력까지 더해 공격을 가합니다.]
[펫, ‘리베우스’의 스킬 『자비Lv1』가 적용 중입니다.]
[10분간 모든 능력치가 10% 상승합니다.]
[펫, ‘리베우스’의 스킬 『절제Lv1』가 적용 중입니다.]
[5분간 모든 소모가 50% 줄어듭니다.]
진짜 미친 듯한 효과.
역시 7대 주선 스킬다운 효과들이었다.
고작 저게 끝은 아니겠지.
아마 스킬 안에도 다양한 옵션들이 있을 거다.
삼종 버프를 받으니 좀 살 거 같았다.
‘확실히 엄청나네.’
고작해야 레벨 1인 스킬들이건만.
이만한 효과를 낸다니.
최소 신등급이다 저건.
전설로는 낼 수 없는 효율이다.
이런 버프를 받고도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사제 컨셉은 최대한 유지하려 했지만.
오늘만큼은 예외다.
어쨌든 퀘스트는 깨야지 않겠나.
이만한 이벤트면 분명 엄청난 보상을 줄 거다.
“가자!”
“오우!”
현성과 리베우스가 그렇게 외치며 전방을 향해 빠르게 달렸다.
달리면서도 손과 스킬은 놀리지 않았다.
홀리 애로우와 라이트 애로우.
둘 다 사용하면서 손도 놀리지 않고 창을 미친 듯이 휘두르고 찔러댔다.
내지르는 창살을 견디지 못하고 그야말로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몬스터 군단.
확실히 수가 많으니 잔챙이들이 넘쳐났다.
골렘보다도 못한 녀석들이 수두룩했다.
아니, 그건 당연한 건가.
하긴, 그래도 제국 마탑에서 만든 골렘들이니.
이런 녀석들과 비교하는 건 미안하긴 하지.
현성이 그렇게 생각한 그 순간.
어디선가 들리는 괴성 소리.
“그워어어어!”
몸의 크기만 대략 4미터는 되어 보이는 모습.
원래라면 녹색의 피부를 가졌어야 하지만, 조금 더 진해 늪의 색과도 같은 모습의 짙은 군청색의 피부.
행색만 본다면 트롤의 모습이었으나 여느 트롤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이름부터 봐라.
[저주받은 트롤]
이름이 저렇게 표기가 되었다는 건 최소한 네임드, 아니면 보스라는 뜻이다.
저 녀석이 이 군단의 군단장인 모양이다.
현성은 그런 녀석을 보며 피식 웃고는 리베우스에게 말했다.
“내가 가진다.”
“오우! 주인님의 뜻대로!”
리베우스는 그렇게 말하고 눈치껏 주변에 있는 몬스터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순간 레벨이 올랐다는 메시지를 몇 개 보고는 피식 웃었다.
현성이 그렇게 웃자 못마땅하기라도 한지 괴성을 지르는 트롤.
“그워어억!”
괴성을 내지르곤 곧바로 달렸다.
거대한 몸집에 걸맞게 움직임은 그리 빠르진 않았다.
솔직히 굼뜨다 할 수 있는 속도.
하지만 그 크기가 크다 보니 그것도 꽤 느리진 않았다.
물론 현성보다 너무나도 느렸지만.
파악!
현성을 노리고 뻗은 손이건만.
애꿎은 바닥만 때린 트롤.
예로부터 트롤은 재생력이 뛰어난 몬스터로 유명했다.
보스로 나오는 녀석들은 더 그랬지.
페이즈가 나뉜 보스들은 페이지를 넘어갈 때마다 상처를 모두 회복하곤 했으니까.
PC게임 때부터 있던 패턴 아닌가.
녀석도 그러겠지.
그래서 현성은 피식 웃으며 빠르게 몸을 놀렸다.
처음으로 나선 공격은 쿨타임이 돌아온 홀리 애로우와 라이트 애로우였다.
푹! 푹!
하지만 역시 간에 기별도 없다는 듯 HP도 별로 깎이지도 않았다.
이쯤은 이미 예상한 바다.
그는 순식간에 접근해 빠르게 창을 내질렀다.
리베우스의 스킬 관용으로 녀석의 공격력까지 더한 공격들이지만, 녀석의 공격력이 약한 건지, 회복력이 미친 건지 HP가 크게 닳지 않았다.
정확힌 크게 닳았다가 빠르게 회복된다.
골치 아픈 녀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현성은 웃으며 끊임없이 공격했다.
소용이 없다고?
그럴 리가.
[타나노스의 악몽이 발동했습니다.]
[저주받은 트롤이 상태이상 악몽에 걸렸습니다. 5초간 환각과 고통을 느낍니다.]
“그워어억!?”
상상도 못 할 끔찍한 고통.
그런 녀석을 향해 현성은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타나노스의 야상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