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2부 17화
6장. 개척마을, 마룬의 보물(3)
마을 주민들은 현성과 리베우스가 몬스터 군단으로 튀어 나가는 것을 숨을 죽이고 지켜봤다.
이성적으로는 도망치자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생각했다.
여기서 도망치면 어디로 가야 해?
도시에서도 나와 이곳으로 온 이들이지 않나.
한데 여기서 도망치면 어디로 가야 할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자 먹먹해졌다.
도무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곳은 자신들이 직접 개척하고 일군 마을이지 않나.
이런 자신들의 마을이다.
한데 어디로 가란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때.
리베우스가 그들에게 말했다.
믿으라고.
자신의 주인을 믿으라고.
뭐 때문일까.
항상 힘들고 도시에서 도망쳐 나온 그들이었지만.
왜인지 이번만큼은 믿고 싶었다.
저들을 믿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게 신을 믿고 따르는 사제이지 않은가.
신을 따르고 자신들을 돕는 이마저 믿지 않으면 누구를 믿으란 건가.
“…히, 힘내요!”
“주, 죽지 마세요!”
“파이팅!”
“으아아아! 사제님! 파이팅!”
하나둘씩 마을 사람들이 둘을 응원하기 시작했고.
모두가 힘을 모아 목소리를 합쳤다.
그리고 그런 힘이 닿은 것일까?
현성과 리베우스는 압도적인 수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적들을 쓸어버렸다.
엄청난 수였음에도 압도하는 건 오히려 고작 둘밖에 없는 그들이다.
사람들은 그런 모습에 다들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으어허어어어엉!”
“으아아아아어아!”
“제발! 제발!”
“신이시여!”
“사제님을 돌봐주십시오!”
모두가 한마음으로 현성과 리베우스를 응원한다.
한데.
쿵.
“그워어어!”
멀리서도 느껴지는 막대한 힘.
저주받은 트롤의 등장이었다.
척 보아도 강력한 녀석의 모습에 마을 사람들은 아연실색하며 창백해진 표정으로 멀리서 트롤을 바라봤다.
이건 아니다.
저 녀석은 상대할 수 있는 녀석이 아니다.
“도, 도망치세요!”
“사제님! 제발! 도망치세요!”
“저희는 괜찮습니다! 제, 제발! 살아주세요!”
“제바아알!”
절규하며 악을 지르는 마을 사람들.
하지만 그런 악에도 현성은 물러나기는커녕 오히려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저리도 숭고한 자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었던가.
마을 사람들은 그런 현성의 모습에 모두가 말을 잃었다.
어째서 저렇게까지 싸우는 것일까.
“…….”
“…….”
마을 전체가 적막에 휩싸였다.
그럼에도 현성은 마구잡이로 공격한다.
하나 전혀 통하지 않는 모습에 마을 사람들은 절망했다.
제발 현성이 도망쳐 줬으면 좋겠건만.
그러지 않는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저리도 숭고한 사람은 오래도록 살아남아야 하건만.
자신들 때문에….
그때였다.
누군가가 적막을 깨고 소리쳤다.
“우, 우리 믿어요!”
손과 다리를 부르르 떨지만 울먹이며 말하는 아이.
다들 그런 아이를 보며 가슴속 무언가가 찔리는 느낌을 받았다.
저런 아이조차 굳게 믿고 응원하거늘.
어른이 된 자신들은 도대체 뭐 하고 있는 것인가!
그 생각에 다들 얼굴이 화끈거렸다.
언제까지 누군가에게 바라기만 할 것인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자 누군가가 먼저 외쳤다.
“우리도 도웁시다!”
“옳소!”
“아무리 사제님이라지만 이건 아니지 않소! 이곳은 엄연한 우리 땅이오! 아무것도 모르는 타지인인 사제님조차 저리 싸워 나서는데! 우리라고 가만히 있을 수가 있겠소!”
“으아아아!”
그렇게 외친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신의 농기구를 들었다.
결사항전의 의지!
숭고한 현성의 모습을 보고 그 의지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한데 그때였다.
모두가 들고일어났을 때.
저주받은 트롤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은.
“그워어억!?”
척 들어도 괴롭고 고통스러운 괴성이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현성의 공격은 하나도 먹히지 않았던 거 아닌가.
한데 갑자기 고통스러워한다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마을 사람들이 멀리서 전장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때 온 세상이 고요해졌다.
한 소리를 제외하고 모든 소리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세상이 적막으로 휩싸이자 어두운 밤하늘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선율.
하나하나가 아름다운 선율에 마음까지 평안해지는 소리였다.
불과 방금까지만 해도 결사항전의 의지를 불태우던 사람들이었건만.
모두가 농기구를 떨구고 선율에 집중했다.
이리도 아름답고 서정적인 선율이 있을 줄이야.
그리고 그 순간 모든 선율이 멈췄다.
세상이 멈춘 것처럼.
─────────!
고요한 벼락이 내리쳤다.
하얀빛으로 빛나는 벼락은 세상의 부정한 것은 모조리 없애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그야말로 천벌.
하얀 벼락이 그대로 저주받은 트롤에게 내리치자.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
“……어?”
“도, 도대체?”
마을 사람들 모두가 패닉에 휩싸여 인지 부조화가 온 듯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봤다.
벼락이며 빛이며,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한데 왜 그들의 눈에 빛이 가득해 보일까.
모두가 그걸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을 때.
누군가가 외쳤다.
“서, 성자님이시다.”
“아, 아아.”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성자님이시다아아아!”
그 외침에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자리에 주저앉아 형용할 수 없는 울음을 터뜨렸다.
살았다는 안도감에.
더 이상 도망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으아아아우어허어우어어어!””
* * *
현성이 타나노스의 야상곡으로 저주받은 트롤을 처치했을 때.
마을 멀리서 그걸 지켜보는 노인 하나가 있었다.
“이, 이, 이게 무슨!?”
하지만 예상과 달리 일어난 일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계획에서 벗어나도 너무 벗어나지 않았는가.
저 하얀 벼락은 대체 무엇이며 방금까지만 해도 건재하던 트롤은 어디로 갔느냔 말인가.
모든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수십 년을 바쳐서 지식을 갈구해왔지만.
이런 상황은 들어본 적도, 배운 적도 없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다른 모든 건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명확했다.
“제기랄!”
자신의 계획이 실패했다는 것.
지금이라도 자신이 마을에 쳐들어가서 공격을 해야 하나?
아니, 그건 결코 안 될 말이다.
몬스터를 다루는 것 외에 무능한 자신이 할 수 있는 마법은 기껏해야 5가지도 되지 않는다.
한데 어떻게 마을을 부수고 보물을 손에 넣을 수 있겠나.
“제길! 제기랄!”
욕지거리가 거듭해서 튀어나왔으나 어쩔 수 없다.
계획이 모두 엉망이 되었다.
“결사대에 전해야겠어.”
실패했음을 인정하는 수밖에.
지금이라도 당장 결사대에 연락을 넣어야 할 거 같다.
벌은 받겠지만….
몬스터를 다루는 능력이 있는 자신을 버리진 않을 거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자리에서 도망치려던 순간.
“오우? 어딜 가시려고 하는 겁니까요?”
“으, 으어헉!”
갑자기 튀어나온 올백 머리의 집사 복장을 한 사내.
분명 그 사제의 어깨에 있던 인형 같은 펫 아니던가.
한데 어떻게 이곳에 있는 거지.
꿀꺽.
노인 마법사는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두려움을 느끼고 부르르 떨었다.
설마 모든 걸 다 알고 온 건가.
그러면 목숨이 위험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곳에 오면서 타고 온 몬스터는 지금 없다는 것.
즉, 발뺌을 할 수 있다는 거다.
“허, 허어허, 그대는 아까 사제님과 같이 봤던 그 펫이로군?! 여,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겐가?”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하려 했지만.
그러진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의심할 여지는 아니지 않나.
깜짝 놀란 마음에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거 아니겠나.
노인 마법사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꽤 그럴싸한 생각이기도 했고.
하지만 하나 예상하지 못한 게 있었다.
다름 아닌 리베우스.
“허어, 통탄할 일이군요. 감히 주인님이 신전을 처음으로 만들 이 땅에 몬스터를 들이셨으면서 그리 뻔뻔하시다니요.”
처음 봤을 때와는 달리 상당히 싸늘하고 냉정한 목소리.
그 어느 때보다도 서늘한 그 모습에 노인 마법사는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났음에도 뭐라 할 수 없었다.
부정도 긍정도.
어떻게든 살아야겠다.
그 마음만 가득했다.
“제, 제발 살려주게. 나, 나를 살려주면 결사대에….”
노인이 그렇게 간절히 말하고 있을 때.
리베우스는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죄송합니다요. 그런 건 진작 말하셨어야 하는 겁니다요.”
“뭐, 뭐?”
“전 이미 죽은 사람과 대화하는 취미는 없어서 말이지요.”
리베우스의 말과 함께 노인의 목에 붉은 혈선이 생기더니 머리가 그대로 떨어졌다.
[7대 주선 스킬, 순결이 발동됩니다.]
[악명 수치에 따라 위력이 결정됩니다.]
노인이 마지막으로 본 메시지였다.
사라져 가는 노인의 시체를 보곤 리베우스는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주인님께 뭐라 말씀드려야 할지 곤란합니다요. 그래도 그가 가지고 있던 증표를 가져가면 덜 혼나겠지요?”
씨익 미소를 지으며 리베우스는 그대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푸른 달이 참으로 아름다운 밤.
리베우스는 그걸 보며 미소를 짓고는 홀로 중얼거렸다.
“역시 주인님은 대단하시다는 겁니다요. 어떻게 이런 걸 다 아셨을까요?”
미리 현성이 이곳으로 가라고 하지 않았다면 리베우스도 정신이 팔려서 몬스터를 쓸어버리는 데만 집중했을 거다.
트롤이 나타나면서 조용히 알린 현성.
혹시 노인 마법사가 알아차릴까 봐 조심스럽게 알린 것이다.
하늘에 대고 말하는 리베우스.
누구에게 말하는 걸까?
그런 리베우스의 모습이 어쩐지 조금은 쓸쓸해 보였다.
너무나도 기쁜 모습과 아쉽고 쓸쓸한 마음이 공존한 모습.
하지만 그래도 기쁨이 더 커 보이긴 했다.
저 해맑은 미소를 보고 있다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주인님이 돌아오셔서 너무 좋습니다요. 혼날 때도 많지만, 그래도 기쁜 것입니다요. 타나, 라이. 둘도 곧 만날 수 있길 기대하겠습니다요.”
리베우스는 그렇게 말하며 현성에게 다시 향했다.
정보도 얻지 않고 죽였다는 사실에 혼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미소를 지었다.
증표는 얻었으니까.
“주인님하고 얽히기만 하면 다혈질이 되는 것도 고쳐야 하는데 역시 악마 출신이라 그런지 쉽지는 않습니다요.”
배시시 웃으며 달려가는 리베우스는 그대로 빠르게 달렸다.
그래도 퀘스트는 완료했으니.
기뻐해 주시겠지.
영영 이렇게 현성과 같이 여행을 떠나고 싶은 리베우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