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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만 자도 랭커 2부-19화 (345/472)

잠만 자도 랭커 2부 19화

7장. 복귀 준비(1)

로스트 이데아의 개발사 플라톤.

자타공인 최고의 게임 회사인 플라톤에서 늦은 밤이 되었음에도 퇴근하지 못한 이가 하나 있었다.

무수히 많은 모니터를 켰지만 딱 하나만 멍하니 확인하는 직원.

다름 아닌 정지환 대리였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보고 있는 모니터는 다름 아닌 현성의 모니터였다.

정말 무슨 영혼이라도 나간 것처럼 두 눈에 초점 없이 모니터만 바라보는 정지환 대리는 저도 모르게 웅얼거렸다.

“개쩔긴 한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솔직히 현성이 망했으면 좋겠는 순간에도 자기도 모르게 응원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하얀 벼락이 내리치는 그 순간에는 또 어땠는가.

저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봤다.

정말 압도적인 임팩트의 연출!

애사심이 무럭무럭 생겨났을 때쯤 현실이 그에게 차게 다가왔다.

이제 다 봤으면 정신 차리고 수습이나 하라고.

어쩌면 좋나.

이렇게 프로젝트 하나가 날아가 버렸다.

만약에 이게 정지환의 프로젝트 하나만 있는 거였으면 또 모른다.

하지만 대륙 전방에 있는 거대한 단체 중 하나인 비밀 결사대와 연관된 프로젝트 아니던가.

큰 프로젝트의 일환이기도 한 거였는데.

하나가 소멸하고 말았다.

‘이건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 티, 팀장님께 보고를 드리는 수밖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건 맞지 않나.

최대한 막으려 했지만, 현성이 뛰어난 걸 어떻게 하나.

불가항력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좀 편해졌다.

시말서?

쓰면 그만이다.

승진?

그건 좀 뼈가 아픈데 슬프긴 해도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이 와중에도 최선을 다했다는 어필을 하자.

보고서에 그렇게 쓰면 그래도 좀 참작되지 않을까 싶었다.

“진짜 그래도 끝내주긴 했다.”

자기 자리가 지금 승진이 떨어지냐 마냐의 자리였음에도 아직도 생생한 하얀 벼락의 여운은 가시지 않았다.

진짜 끝내주게 멋있었다.

여태 모니터링하면서 PK범들과 싸우는 것도 예술이긴 했다.

파이어 애로우의 지점을 예측해 그곳에 스킬을 시전하여 서로 상쇄하는 컨트롤.

그걸 봤을 때도 순간 놀라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기까지 하지 않았나.

하기야 그런 컨트롤이라면 당연히 깰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야 했는데.

보는 눈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좋은 구경은 했으니.

그걸로 위안을 삼으려 했다.

보고서 내용도 좀 착실하게 쓰면 당장 승진은 물 건너가도 만년 대리는 안 하겠지.

정지환은 그렇게 생각하며 늦은 시간임에도 보고서를 작성했다.

* * *

한편 현성은 여전히 마룬 마을에 있었다.

당장 어디 떠나기도 좀 애매한 시간이었으니.

무엇보다 플레이 타임이 곧 끝나갔다.

하루에 플레이할 수 있는 시간이 대략 10시간이었으니까.

곧 10시간이 되어간다는 게 좀 놀라울 정도로 시간이 빨리 갔다.

하기야 이데아를 처음 하던 때도 그랬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했었는데.

지금도 그랬다.

‘슬슬 정리하고 로그아웃이나 할까?’

마을 사람들은 이미 다 각자 집에 들어가 잠을 청하는 중이었다.

긴장이 풀려 다들 피곤이 몰려왔나 보다.

하긴 그럴 만도 하지.

그 후에도 현성에게 감사 인사를 하겠다고 거의 1시간 동안 인사를 하고 다녔으니.

피곤에 절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애초에 거의 새벽이 다 되어가는 시간대였기도 하고.

그러면 안전한 장소로 이동해서 로그아웃을 해야겠다.

현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아까 지정받은 숙소로 향하려던 그때.

리베우스가 그런 현성을 불렀다.

“오우? 주인님 돌아가시렵니까요?”

“응, 그러려는데?”

평소에 이러지 않는 녀석이 왜 이러나 싶었다.

한데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밤 중에 도망친 몬스터들이 혹여나 몰려오지 않게 마을 전체를 정화해서 몬스터들이 오지 않는 땅으로 만들어야 안전할 것 같습니다요.”

“아.”

“오우!”

역시 악마 출신이면서 사제 출신인 리베우스답게 상당히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차원이라는 설정이긴 했지만, 문명 수준이나 여러 법도가 이데아와 같았으니.

리베우스가 말한 게 맞을 거다.

퀘스트 창에서도 얼핏 본 기억이 있다.

땅을 정화하면 몬스터가 침입하지 않은 지역이 되는군.

이건 몰랐던 사실이다.

하긴, 생각해 보면 이전 마을인 라하르트 마을에도 신전이 있었다.

거기도 정화된 땅이겠구나 싶었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

“나 근데 정화 스킬이 없는데?”

아주 치명적인 문제.

현성은 정화 스킬이 없다는 거.

얼핏 보면 하늘의 은총이 정화 스킬 같지만 전혀 아니었다.

버프 스킬이긴 하지만 정화 스킬은 아니었다.

이거 참 난감하게 되었다.

‘밤사이에 리베우스에게 마을을 지켜달라 해야 하나?’

좀 무리한 부탁이지 않을까.

걱정하던 현성에게 리베우스가 가슴을 내밀고 맡겨만 달라는 듯 가슴을 통통 두드렸다.

“엣헴! 저에게 스킬이 있다는 것입니다요!”

“뭐? 아! 성자의 빛?”

“오우! 바로 그것입니다요!”

생각해 보니 그랬다.

리베우스한테 성자의 빛이 있었다.

설마 그게 정화 스킬이었을 줄이야.

진짜 질투했던 게 좀 많이 부끄러워진다.

정화 스킬에 부러워했던 거라니.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신 그러지 말자.

속으로 다짐하는 현성이었다.

아무튼 리베우스는 그렇게 호언장담을 하며 현성에게 말했다.

“그러면 마을 중앙으로 가주실 수 있겠습니까요?”

“그래, 빨리 끝내고 자러 가자.”

“오우! 역시 현명하십니다요!”

둘은 그렇게 마을 중앙으로 도착했다.

그러자 리베우스는 그대로 현성의 어깨에서 등으로 가 붙었다.

뭐 하는 건가 싶어서 현성이 물어보려는 때.

리베우스가 먼저 답했다.

“제 신성력이 부족해서 그런데, 주인님의 신성력을 사용해도 되겠습니까요?”

“아, 물론이지.”

“그럼 실례하겠습니다요.”

“응응.”

현성이 그렇게 대답하자 등에 착 달라붙은 리베우스가 그대로 스킬을 시전했다.

동시에 나타나는 거대한 빛.

천상의 빛과 같은 하얗고 성스러운 빛은 금세 마을 주변을 휘어 감았다.

빛은 점차 형태를 만들어가며 마을을 감싸는 거대한 돔이 되어갔다.

주변의 사특한 모든 것을 몰아내는 정화의 기운.

이게 성자의 빛이었다.

시작한 어마어마한 빛은 그대로 마을 전체를 정화하기 시작했다.

모든 게 현성에게서 뿜어져 나온 빛.

정확히는 리베우스에게서 뿜어져 나온 빛이었지만, 빛이 너무 강렬해서 리베우스는 보이지 않았고, 현성만 얼핏 보일 뿐이었다.

“워.”

현성도 감탄하며 빛의 돔을 바라봤다.

이게 정화구나.

싶어서 바라보고 있자.

점차 빛이 옅어지더니 이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성은 느낄 수 있었다.

사라진 게 아닌 숨은 것이라는 걸.

[개척마을, 마룬 마을 전체를 정화하였습니다.]

[당신의 명성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명성이 퍼진다고?’

현성이 한 게 아닌 리베우스가 한 것이건만.

펫이라서 그런 건가.

사실 큰 상관은 없었다.

어쨌든 끝났으면 된 거니.

현성은 그렇게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곤 리베우스에게 말했다.

“잘했다. 그럼 나 다녀올 테니 마을 잘 지키고 있어.”

“오우!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요! 걱정 말고 조심히 다녀오십시요! 오우! 오우! 오우입니다요!”

연신 오우라고 외치는 리베우스를 보며 피식 웃고는 현성은 그대로 숙소로 이동하여 로그아웃을 했다.

그렇게 사라진 현성을 보곤 리베우스는 씨익 웃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오우! 그렇게 강렬한 성자의 빛을 쐈으니 마을 사람들이 다 봤겠다는 겁니다요!”

리베우스의 말대로였다.

모든 이들이 자는 줄 알았지만 그만한 빛이 쏘아지면 자다가도 일어나게 마련.

당연하지만 모두가 리베우스가 빛을 쏘는 걸 봤다.

물론 현성이 하는 걸로 착각해서 말이다.

모두가 그걸 보면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당연히 뻔했다.

“주인님이 성자라고 불리는 건 좀 속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포교 활동엔 도움이 되니 결과적으로 주인님께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요!”

모든 것이 리베우스의 계획대로!

이렇게 새로운 신전을 만들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기뻐하는 리베우스였다.

당연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주인님께서 돌아오시기 전에 부지런히 포교 활동을 해야겠다는 것입니다요. 후후후, 오우! 입니다요!”

리베우스가 그런 깜찍한, 아니, 끔찍한에 가까울까.

아무튼 그런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고 있었을 때.

현성은 로그아웃을 하고 캡슐에서 나와 뻐근한 몸을 풀었다.

역시 장기간 게임을 하면 이게 단점이다.

온몸이 뻐근하다는 것.

현존하는 최고사양 캡슐을 사용해도 뻐근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저사양보다야 훨씬 낫기야 했지만.

가볍게 스트레칭해 주는 게 좋았다.

‘오랜만에 하니 더 뻐근한 느낌이네.’

현성이 그렇게 몸을 풀고 있을 때.

도어락 소리가 들렸다.

삐삐비비삑.

또로롱.

“하아아아.”

들어오자마자 깊은 한숨.

누군지는 뻔했다.

사실 현성 빼고 이 집에 사는 사람은 하나뿐이지만.

“왔냐?”

“어어어어.”

늘어지게 대답을 하고 정장 재킷을 벗어 던진 뒤 그대로 소파로 가서 녹듯이 흐르는 현아를 보며 현성은 피식 웃었다.

이렇게 보니 직장인이 다 되었다.

평범한 직장인은 아니긴 했지만.

“죽겠다.”

“엄청 바빴나 보네.”

“어, 진짜 죽겠어.”

“하기야 새벽까지 일했으면 그럴 수도 있겠네.”

벌써 새벽 1시다.

회사가 바로 집 앞인 걸 생각하면 지금 퇴근했다는 건 바로 방금 일이 끝났다는 얘기가 된다.

진짜 괜찮은 거 맞나?

현성은 좀 걱정 어린 표정으로 현아를 바라봤다.

평상시에는 늘 티격태격하는 여느 남매였지만.

이럴 때 보면 또 짠하단 말이지.

“쉬고 싶을 땐 좀 쉬어라.”

“에휴, 오빠는 언제 쉬었나.”

“흐음.”

또 저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긴 했다.

현아가 아픈 동안 현성도 미친 듯이 일하긴 했었으니까.

쉬는 날도 없이 말이다.

심지어 현아는 강제로 하는 것도 아니지 않나.

아니나 다를까.

“내가 좋아서 시작한 거긴 한데 힘들어서 투정 부린 거지. 오빠 때랑은 상황이 달라요 달라.”

“뭐 그렇긴 하지.”

“에휴, 재수 없지만 봐준다.”

“참나, 그래서 다들 어때?”

“하아, 그건 내일 예린 언니한테 물어보는 게 어때?”

내일?

순간 그렇게 생각했다가 현성은 떠올렸다.

바로 내일 데이트 약속이 있구나.

로스트 이데아 하다가 순간 까먹었다.

빨리 답장도 줘야겠다.

“…설마, 까먹었던 거야?”

“……그, 그럴 리가.”

“내가 봐줄 테니까, 빨리 언니한테 연락이나 해.”

“고, 고맙다.”

“에휴, 언니는 뭔 일주일 전부터 기대했는데. 저 등신.”

“고맙다!”

아무리 현성이 강해도 데이트 약속을 까먹을 뻔한 건 역시 아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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