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2부 20화
7장. 복귀 준비(2)
데이트 준비야 사실 남자보다 여자가 오래 걸리는 법 아니겠나.
현성도 마찬가지였다.
딱히 화장을 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기껏해야 시간이 드는 게 머리였는데.
거울을 보는 현성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꽤 길긴 했지만, 여전히 짧은 머리.
스타일을 하기엔 좀 애매한 기장이었다.
“흐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현성은 거울을 봤지만.
그런다고 빨리 자랄 머리가 아니다.
그냥 적당히 고정만 하고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왁스가 아닌 스프레이만 살짝 뿌려 고정시켜 줬다.
그러고 마음에 드는 향수와 옷까지 입어주면 끝.
물론 씻기는 애저녁에 씻었다.
지갑하고 핸드폰도 챙기고, 혹시 몰라 차 키도 준비하니.
정말 준비는 끝났다.
‘슬슬 나갈까?’
현성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즈음.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띠링~!
아니, 벌써?
보통 예린이 톡을 했다는 건 도착했다는 얘긴데.
이번에도 설마?
현성은 설마 하는 심정으로 바로 휴대폰을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도착했다는 메시지였다.
[예린이: 오빠, 천천히 오세요~]
[예린이: (토끼가 느긋하게 홍차를 마시는 이모티콘)]
귀여운 이모티콘까지 쓰는 여유까지.
다른 커플이었으면 은근히 눈치를 주는 거였겠지만, 이 커플은 아니었다.
진짜 천천히 오라는 뜻이었다.
처음 현성도 이걸로 좀 착각을 많이 했지만 이젠 서로 잘 알게 되었다.
하여간 너무 부지런해서 탈이라니까.
아직 약속 시간까지 거의 30분이나 남아 있는데 벌써 도착이라니.
심지어 현성의 집 근처에서 보는 거지 않았나.
둘 집 거리가 그리 멀진 않았다고는 하나.
여기까지 와준 게 고마웠다.
‘그럼 나가볼까?’
예린도 벌써 도착했으니 빠르게 나가보자.
현성이 그렇게 준비하고 나가려고 거실에 나가자 현아가 방에서 코 고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저렇게 코를 고나.
뭐, 그래도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 않나.
본인도 본인이 원하는 거라 하니 냅둬야지.
현아도 성인이니 제 몫은 충분히 잘하지 않겠어.
오히려 다른 집 동생들 이야기 들어보면 현아는 양반이다.
백수로 부모님 등골 빼먹는 거에 비해 훨씬 낫지.
‘이러다 더 기다리게 하겠네. 빨리 가자.’
딴생각을 한다고 또 시간을 빼앗겼다.
다행인 건 펜트하우스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거.
이거 덕분에 빨리 내려갈 수 있었다.
그렇게 현성이 도착한 곳은 펜트하우스 1층에 위치한 카페였다.
이러면 항상 늦게 나오는 현성이 민망했지만.
사실 그런 시기는 지나긴 했다.
벌써 둘이 연애한 지 4년이 되어갔으니까.
‘나도 이제 29살이네.’
곧 서른이 다 되어가는 나이.
새삼 실감이 났다.
벌써 서른이라니.
살짝 착잡하면서도 서른도 아직 젊은 거라며 합리화를 하는 그였다.
아무튼 커피숍을 둘러보자 한쪽에서 무언가를 읽고 있는 예린을 볼 수 있었다.
‘저건 보고서인가?’
파일철을 보면 맞는 거 같았다.
데이트 와서도 일을 할 정도로 바쁘다니.
저렇게 보면 좀 짠하기도 하지만, 내심 조금은 미안하기도 했다.
‘나만 노는 거 같아서 좀 그러네.’
현성은 순간 그렇게 생각했다가 문득 로스트 이데아를 하는 걸 떠올렸다.
어떻게 보면 이것도 일이라 해야 하나?
어쨌든 아수라의 이름으로 복귀를 할 건 아니지만.
영상을 다시 찍고는 있었으니.
복귀는 복귀지 않나.
‘어라? 나 일하고 있는 거였나?’
순간 혼동이 온 현성은 고개를 저었다.
데이트 중에 이상한 생각 말고 데이트에나 집중하자.
괜히 로스트 이데아 때문에 데이트 약속도 까먹을 뻔하지 않았나.
반쯤 까먹은 걸 현아 덕에 기억한 거긴 하지만.
어쨌든 기억은 했으니까.
참 다행이라 생각하며 집중하고 있는 예린의 앞에 다가가 앉았다.
현성이 앞에 앉았음에도 아직 눈치채지 못하고 일을 마저 하고 있는 예린.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을 사용하고 있어서 더 집중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조금 이대로 두자.’
데이트 와서 일을 한다는 게 어떻게 보면 못마땅할 수도 있지만.
누가 그러지 않았나.
일하고 있는 애인의 모습이 가장 멋있고, 예뻐 보인다고.
현성도 그랬다.
평상시의 예린도 예뻤지만, 일하고 있을 때는 유달리 예뻤다.
하기야 누구나 집중하고 있는 모습은 멋있는 법이니까.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거기에 몰두한다는 것만큼 보기 좋은 게 드물지 않나.
현성도 딱 그랬다.
사각, 사각.
촤륵, 촤르륵.
때로는 보고서에 무언가를 쓰고, 때로는 보고서를 넘기면서 다음 장을 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현성이 슬며시 미소를 짓고 예린에게 집중하고 있자.
문득 예린이 커피를 마시기 위해 보고서를 잠깐 치우다 현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엇! 뭐, 뭐예요! 언제 왔어요!?”
진짜 놀라서 묻는 예린의 모습에 현성은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좀 됐지.”
“아, 오셨으면 말을 해주죠. 나는 그것도 모르고 너무 집중했네요. 아고, 미안해요.”
“아니야, 좋은 거 볼 수 있어서 좋았지. 뭐.”
“헤헤, 좋게 말해주시니 고맙네요.”
“좋게 말해준 게 아니라 사실을 말한 건데 뭐.”
사귀는 동안 큰 진전은 현성이 드디어 예린에게 말을 놨다는 거.
반대로 예린은 현성에게 아직까지 존대를 하는 중이었다.
현성도 예린에게 말을 놓아달라고 했지만.
자신은 존대를 하는 게 로망이라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현성도 처음에는 존재로 유지하려다 결국 예린이 생일 선물로 반말로 해달라 해서 결국 이렇게 말을 놓게 되었다.
참 보기 좋은 커플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면 밥 먹으러 갈까요? 미안해요, 배고프지 않아요?”
“음, 조금 고프긴 한데 천천히 먹어도 괜찮아. 뭣하면 여기서 빵이라도 먹어도 되고.”
“아니, 빵은 밥이 아니잖아요. 끼니 때우기 전에는 빵같이 간식 같은 거 먹으면 안 좋아요. 가요, 제가 알아둔 곳 있어요.”
“알겠어.”
현성은 어쩔 수 없다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음에는 현성이 자신의 차로 운전해서 가려다가 예린이 만류했다.
마침 예린도 차를 가져왔으니 자기 차로 가자고 한 거다.
식당도 예린이 알아 왔으니 그러는 게 효율이 좋긴 해서 그러기로 했다.
그렇게 차로 이동 중 현성은 뒷자리에도 가득 찬 서류들을 볼 수 있었다.
너무 바쁜 거 아닌가?
“바쁜 거 같은데 괜찮아?”
“아, 네. 사실 요즘 점점 일이 줄고는 있어서 괜찮아요.”
“일이…?”
“네, 뭐 로스트 이데아 덕이긴 하죠.”
“크흠, 그렇구나.”
괜히 로스트 이데아 이야기가 나와 찔린 현성이었다.
일단 비밀로 하기로 했다는 거부터 찔리긴 했지만.
그래도 비밀인 건 비밀이다.
이 정도는 예린도 봐줄 거라 믿었다.
사실 게임을 하는 걸 비밀로 하는 게 웃기긴 했지만.
무슨 유부남도 아니고.
어쨌든 아직은 알릴 생각이 없었다.
“오빠도 해보셨어요?”
“응? 뭐를?”
“로스트 이데아요.”
“아, 으, 음. 나 어제 전역했는데.”
그걸 또 했단다.
라고는 차마 할 수 없었다.
더 현성이 뭐라 변명을 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
예린이 슬며시 웃으며 말했다.
“괜히 제 눈치 본다고 안 한다 하지 마시고, 한번 해보세요.”
“응? 그래도 괜찮아?”
“네, 괜히 저한테 비밀로 하고 하지 마시고 그냥 편하게 말씀하셔도 돼요. 아버지 회사도 지금 자리도 잡았고, 로스트 이데아가 대단한 게임인 건 사실이니까요.”
상당히 쿨하게 넘어가는 예린의 모습에 현성은 좀 안도할 수 있었다.
예린이 이렇게 말한다는 건 그냥 떠보려고 하는 말이거나 현성을 압박하려고 하는 말이 아닌 온 진심을 다해 하는 말이라는 걸 잘 알았으니.
현성도 이러면 편히 얘기할 수 있었다.
“사실 어제 좀 했는데 대박이긴 하더라.”
“오! 해보셨어요?”
“응, 근데 다른 사람들에겐 말하지 마.”
“어? 으음, 하긴 그럴 수 있겠네요. 워낙 아수라 길드 분들이 극성이셔야죠.”
“하아아. 그치.”
“에헤헤, 다들 오빠를 좋아하니까 그러는 거니, 너무 미워하진 마세요.”
현성도 잘 안다.
그걸 잘 알아서 미워할 수도 없고, 뭐라 하지도 못하는 거다.
예린도 그런 현성의 마음을 아니 더 말하진 않았다.
가끔은 밥 먹으면서 이야기하는 것보다 이렇게 차에서 드라이브하면서 이야기하는 것도 썩 괜찮은 거 같았다.
이렇게 나와서 데이트를 하는 거 자체도 꽤 오랜만이었고.
현성은 상쾌하다는 표정으로 차창을 바라봤다.
편해도 너무 편했다.
이렇게 사랑하는 애인과 같이 밥 먹으러 가면서 드라이브까지 하다니.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편했다.
그래서일까.
“그… 갑작스럽긴 한데 오빠, 아버지가 오빠를 보고 싶어 하세요.”
“아.”
갑자기 확 불편해졌다.
‘어우, 왜 목이 막히지?’
분명 목을 조이는 옷은 아니었는데.
왜 이리 숨이 턱턱 막히는지 모르겠다.
* * *
데이트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현성은 거의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그걸 본 현아는 뭔 문제라도 있는 건가 싶어 현성을 바라봤다.
왜 무슨 차이기라도 한 사람처럼 저렇게 구는 걸까.
현아가 아는 바로 예린이나 현성이나 서로 좋아 죽어서 헤어질 일은 없을 텐데.
결혼을 했으면 했지.
“무슨 일인데 그리 초상집 얼굴이야?”
“어, 어? 아, 아니야.”
현성은 그렇게 대답하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왜 저래?
현아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피식 웃었다.
숨겨봤자지.
바로 예린에게 물어보려고 휴대폰을 들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현아였다.
그런 현아를 뒤로하고 현성은 얼빠진 표정으로 침대에 누웠다.
‘어, 어쩌지?’
사실 뭐 어쩔 게 없긴 하다.
그냥 여자친구 부모님을 뵙고 오면 되는 일 아닌가.
다른 사람들도 겪는 일이고 별일 아니다.
분명 별일은 아니다.
한데 왜일까?
이렇게 긴장감 넘치는 기분이 드는 이유가.
살면서 이렇게 긴장한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긴장됐다.
‘당장 보자고 하신 것도 아니니 긴장 풀자.’
그렇게 생각하니 좀 나아졌다.
아니, 착각이었다.
나아지긴 개뿔.
현성은 답답한 마음에 곧바로 재환에게 전화를 걸었다.
벨이 얼마 울리지도 않았는데 바로 받는 재환.
역시 찐 친구구나 싶었다.
-어 왜?
“야 큰일이야.”
-뭔데? 복귀하기로 마음먹은 거야? 아수라로?
“아니, 그딴 게 아니야.”
-미친놈인가 아수라 복귀가! 인마! 그딴 거!? 야이 새….
“야, 예린이 아버지가 나 좀 보자고 하셔.”
-씨X, 그거부터 먼저 말하라고. 진짜 복귀는 그딴 거네!
한순간에 아수라 복귀 이야기가 그딴 게 되어버리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