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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만 자도 랭커 2부-24화 (350/472)

잠만 자도 랭커 2부 24화

9장. 불신 성기사 레이나(2)

현성의 입장에서도 난감하기 짝이 없는 퀘스트였다.

갑자기 다른 교단에 있는 성기사를 자신의 신도로 만들라니.

어디 저급한 만화책에서나 나올 거 같은 전개이지 않나.

그렇다고 무시하기에도 상당히 큰 건이긴 했다.

타나노스 직업 관련 스토리.

이건 많이 탐나지 않나.

이제는 즐겜러가 되어버린 현성에게 있어서 스토리는 상당 부분 중요하다.

괜히 퀘스트를 많이 하려 하는 게 아니다.

보상도 보상이지만, 그 과정이 재미있어서 하는 거 아니겠나.

누가 뭐라고 해도 현성은 그랬다.

그러다 보니 레이나를 꼬셔서 신도로 만드는 건 반드시 해야 할 일.

‘너무 어려운 퀘스트긴 하네.’

난이도를 짐작할 수 있게 등급이라도 나오지.

직업 전용 퀘스트라고 못을 박는 걸 봐라.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하지만 현성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에겐 치트키나 다름없는 리베우스가 있었으니.

골치 아픈 녀석이긴 하지만 여태까지 해낸 걸 생각해 봐라.

미친 영향력을 선사하면서 여태껏 신도를 모은 건 다 리베우스 아니던가.

가만 생각해 보면 현성은 딱히 한 게 없긴 하다.

그냥 간지나게 서 있기 정도?

사실 그게 꽤 크긴 했지만.

아무튼, 현성이 생각하기에 자신은 한 게 별로 없었다.

그래서 최대한 조용히 리베우스가 작업할 수 있게 뒀는데 막상 두니 왜 조용한 걸까.

‘미치고 팔짝 뛰겠네.’

어떻게든 최하급 마족도 같이 잡자고 왔건만.

막상 도움이 되라고 밀어줄 때는 이렇게 도움이 안 된다.

‘어쩔 수 없지.’

완전히 퀘스트를 잃는 게 아닌 약간 늦어질 수 있다는 게 실패 시 리스크였다.

더 빨리 볼 수 있다는 메리트가 사라진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현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빠르게 최하급 마족을 잡기 위해 레이나에게 버프를 걸어줬다.

처음에는 2종 세트 미약한 버프들.

셋을 걸고 나서도 좀 아쉽기에 현성은 그다음을 준비했다.

고작 이 정도로 준비라고 하진 않으니까.

“헤븐즈 링.”

현성이 나지막하게 말하자.

권태로운 목소리와 함께 순간 주변이 새하얀 빛에 휘감겼다.

순간 세상이 모두 새하얗게 물들었다.

그리고 하늘 앞에서 생겨나는 푸른 종 하나.

차라랑.

그 청아한 소리와 함께 새하얗기만 하던 세상이 푸르게 물들었다.

청명

이것이야말로 청명이구나.

하늘은 푸르고 바람은 싱그럽게 분다.

새하얀 빛이 그대로 세상을 감싸며 그 품에 안기는 착각이 들었을 때쯤.

손가락에서 무언가 이질감이 들었다.

다름 아닌 링의 마크.

마크가 생겨나자 진정한 버프의 효과가 나타났다.

‘끝내주네.’

버프 효과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이 반지가 유지되는 동안은 1회 부활까지 달려 있다.

그야말로 사기적인 효과의 버프였다.

비단 현성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었나 보다.

경악을 넘어서 넋이 완전히 나가버린 레이나.

놀라긴 한 모양이다.

하기야 이만한 효과라면 놀랄 수밖에 없다.

자신도 놀랐는데 레이나라고 뻐길 수나 있겠나.

현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레이나 님?”

“네, 네?”

“그럼 가시죠.”

“아, 아. 네.”

얼이 완전히 빠져 몽롱한 표정으로 앞서 나서는 레이나.

현성은 그걸 보며 저거 괜찮은 게 맞나 싶었지만, 일단 두고 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때.

그런 현성을 보던 리베우스가 감탄을 하며 박수를 쳤다.

심지어 존경한다는 눈빛으로 현성을 바라본다.

“진짜, 대단하십니다요, 주인님. 압도적인 신성력으로 이렇게 신앙심을 불어넣으시다니요! 정말 이 리베우스, 경탄이 앞섰습니다요! 오우! 역시 위대하신 주인님이십니다요!”

“…….”

뭐라는 건지.

현성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리베우스를 바라봤을 때.

마침 메시지가 떠올랐다.

[불신 성기사 레이나가 당신에 대한 신앙심을 조금씩 품기 시작했습니다.]

‘미친.’

불신 성기사라더니.

그냥 신의 기운이 미약해서 그런 거였나.

아무리 현성이 약해졌어도 현성 쪽의 신의 기운이 훨씬 강해서?

어라? 이거 어디서 본 느낌인데.

현성은 애써 무시했다.

‘진짜 미치겠네.’

왠지 모르게 처음 생각했던 저급한 만화책과 비슷한 전개가 되어가는 거 같아 기분이 묘한 현성이었다.

더 생각했다가는 진짜 이상해질 거 같으니 생각을 버렸다.

일단 들어가서 마족이나 족쳐야겠다.

괜한 화풀이 대상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 * *

관리본부 룬 제국 담당팀 한문석 팀장.

그는 언제나 철저하고 냉철한 인상을 남기는 사람이었다.

항상 계산적이고 이성적인 모습만 보이던 사내였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결코 그렇지 못했다.

“제기랄!”

쾅!

너무나도 열불이 나 그 분을 삭이지 못하고 그대로 책상에 표출해 버렸다.

이렇게나 화난 이유?

당연히 하나뿐이다.

“현성, 이 X발 새끼가!”

으드득. 으득.

이를 빠드득 갈며 모니터를 바라봤다.

도대체 뭐를 하는 건가 봤더니.

자신이 상당히 공을 들인 NPC에게 접근하는 걸 발견했다.

다름 아닌 불신 성기사 레이나.

로스트 이데아가 출시하기도 전부터 플라톤 회사에 잠입하여 공을 들인 몇 안 되는 중요한 피스 중 하나였다.

한데 지금 그걸 건드렸다?

“으하하! 해보자는 거지?”

너무 흥분했다.

아무리 팀장실의 방음이 좋다고 해도 이 이상 하면 소란을 눈치챌 거다.

한문석 팀장은 최대한 이성을 찾기 위해 심호흡을 했다.

스으으읍, 후우우우우.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고.

그걸 반복하고 최대한 화를 삭였다.

처음에야 너무나도 화가 나 주체할 수 없었으나.

그것도 잠시다.

‘오냐, 좋다. 불신 성기사 레이나까지 건드렸다 이거지?’

아직도 한문석 팀장은 민유라나 조민우 본부장이 자신의 정체를 알아차렸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그랬다면 전에도 말했듯 이미 처리를 당했을 거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는 건.

확신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는 것.

계획을 최대한 변경하는 수밖에 없다.

‘불신 성기사 레이나는 내가 직접 건든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지.’

컨셉부터 설정까지.

모두 그의 손을 거친 작품이나 다름없었다.

한데 고작 종 딸랑이는 걸로 레이나의 설정을 뒤흔들어 놨다.

나중에 비밀 결사대와 손을 잡고 암흑 성기사로 만들 레이나를 망쳐 놓은 거다.

이번 최하급 마족으로 그 피스가 완성되기 직전이었거늘.

불신에서 암흑으로 넘어가는 최종 단계였건만.

방해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괜찮다.

언제나 플랜B는 존재하는 법이니.

‘최하급 마족, 당장은 상처 입은 최하급 마족에 불과하지만… 이렇게 하면 또 모르는 일이지.’

한문석 팀장은 자신의 권한을 최대한 사용하여 상처 입은 최하급 마족이 진화를 할 수 있는 코드를 넣기로 결정했다.

한낱 평사원이라면 모를까.

팀장인 한문석은 이 정도의 권한은 가지고 있었다.

결국 마족에게 진화 코드를 부여하고 피식 미소를 지었다.

어디 아끼는 비밀 병기가 망가지는 기분을 맛보라는 듯이 비릿하게 웃었다.

비록 자신의 작품 역시 망가지겠지만.

어쩔 수 없다.

이미 손을 떠난 물건이다.

가질 수 없다면 누구도 가지지 못하게 부숴 버리는 수밖에.

‘조민우 본부장, 민유라 회장. 절대 가만히 안 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조민우 본부장과 민유라 회장.

이 둘만이 현성의 코드를 볼 수 있게 해놓은 이유는 간단했다.

현성이 나타나면 바로 자신들에게 알려 최대한 빠르게 조치를 취하기 위해!

하지만 그게 한문석의 손에 먼저 들어가자.

결국 두 사람의 손에 들어갈 수 없게 되어버렸다.

심지어는 한문석은 그런 현성을 두 사람의 비밀 병기로 오해해 버렸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니, 현성의 등장을 모르고 열심히 일만 하고 있는 조민우와 민유라는 적어도 행복한 걸까?

거기다 직접 현성이 한문석의 계획을 박살 내고 있었으니.

어떻게 보면 가장 득을 보는 둘이었다.

* * *

“크륵, 켁, 켁.”

연신 잿빛 피를 토하는 최하급 마족.

어떻게든 마계를 벗어나 중간계로 왔으나.

예상외로 강력한 성기사들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꼼짝없이 죽을 줄만 알았건만.

자신이 약하다는 걸 느끼곤 상처만 입히고 도망치게 했다.

그러곤 견습 성기사들에게 숙제를 내주듯 자신을 잡으라 한 거다.

최하급 마족은 그런 취급을 도무지 참을 수 없었다.

수치스럽고 모욕스럽다.

어찌 신을 모신다는 작자들이 명예도 모르는 짓을 행하는가.

최하급 마족은 분노했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증오스러운 성기사 녀석들.

녀석들을 씹어 먹겠노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힘이 부족하다.

“마, 마신이시여. 부, 부디 저에게도 복수할 기회를…….”

하나 신에게서 응답이 있겠는가.

상처 입은 마족은 그대로 쓸쓸히 견습 성기사들에게 죽을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처량한 생각에 마족은 눈을 감았다.

분하고 원통하다.

힘만 있었다면.

이런 취급에서 벗어났을 거다.

그런데 그때.

몸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기운.

“크헉, 컥!”

온몸에 격통이 느껴졌다.

이대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순간 떠올랐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느낄 수 있었다.

마신은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심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까 동굴 입구에서 느껴진 거대한 신성력 때문일까?

누군가 자신이 지지 않길 원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에 마족은 피식 웃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은 꼭두각시다.

“켁! 켁! 성기사 놈들에겐 숙제로 내던져지더니! 이번에는 꼭두각시인가! 좋다! 원하는 대로 해주마! 대신 나에게 힘을 다오! 그 빌어먹을 성기사 놈들을 씹어 먹을 수 있는 힘을! 다오!”

간절히 바라며 악을 쓰자.

어디선가 뜯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뿌드득. 뿌득.

다름 아닌 마족에게서 나는 소리였다.

무언가가 껍질을 벗고 나온다.

최하급?

아니다.

고작해야 그 정도가 아니다.

“아아.”

힘이 차오른다.

이전과는 다른 격이 느껴진다.

상처 입었을 때의 최하급 마족은 이미 없다.

자신은 그때보다도 월등해졌다.

진화.

꿈에만 그리던 그것을 이뤄냈다.

비록 최하급에서 하급으로밖에 성장을 이루지 못했으나, 이걸로 충분하다.

자신을 무시했던 성기사들은 충분히 잡을 수 있으리라.

“크흐흑흑흑. 하지만 그전에 이 힘을 준 자의 바람도 이뤄줘야겠지.”

자신에게 이질적인 힘을 부여한 존재.

그 존재가 누구인진 알 수 없지만 한 가진 확실했다.

자기 같은 마족을 이용하는 걸 보아하니.

속이 깨끗한 존재는 아닐 것이라고.

최하급, 아니, 이제는 하급이 된 마족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토악질이 나오는 신성력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갔다.

녀석들을 모조리 죽여버리기 위해.

“성기사를 잡기 전 발판으로 써주마.”

호기롭게 말하는 하급 악마.

누가 허접한지는 결과가 말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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