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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만 자도 랭커 2부-26화 (352/472)

잠만 자도 랭커 2부 26화

9장. 불신 성기사 레이나(4)

현성이 마구잡이식으로 전투를 하는 것 같았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았다.

처음 애로우 스킬 두 가지를 사용한 건 신성 스킬에 대한 내성을 확인한 거다.

그 후 리베우스에게 순결을 쓰게 해서 팔을 자른 것은 재생에 대한 능력을 파악하기 위함.

두 가지 실험으로 녀석은 재생력이 다소 떨어지고 신성 스킬에 약하다는 걸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걸 아는 것만으로 녀석을 쓰러뜨리긴 부족하다.

때문에 현성이 선택한 것은 타나노스의 오르골과 하늘의 은총으로 인한 단비 데미지.

그러나 그것도 지속적인 효과를 주기에는 하늘의 은총은 유지 시간이 너무 짧았고, 타나노스의 오르골은 데미지는 강력했으나 MP 소모가 너무 심했다.

무엇보다.

‘도트딜은 악몽 스택이 쌓이지 않네.’

두 스킬로 인한 타나노스의 야상곡으로 끝내려 했다.

그러나 흔히 도트뎀이라 하는 데미지는 스택이 쌓이지 않는 모양이다.

타나노스의 야상곡이 발동되지 않는 걸 보니.

물론 여기까지 현성의 상정 내이긴 했다.

타나노스의 야상곡이 도트뎀에도 스택이 쌓이면 너무 사기니.

그거까지는 막지 않았을까 하고 현성은 생각했건만.

진짜였다니.

좀 아쉽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아까도 생각한 거처럼 현성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질 거 같진 않단 말이지.’

당장 확인하고 어떻게든 해보려 했지만, 대부분 실패에 가깝게 되었다.

한데도 지진 않을 거 같다니.

오만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었음에도.

현성은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자신은 누구보다도 객관적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럼 가볼까.’

다시 계획대로 가야겠다.

후우우.

심호흡을 내뱉는 소리가 들려오곤 현성의 눈이 번뜩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옵니다요.”

“알고 있어.”

리베우스의 말에 현성이 대답했고.

그런 둘을 보며 하급 마족은 비릿하게 웃으며 외쳤다.

“찢어 죽여주마!”

* * *

레이나는 작금의 상황을 모두 파악할 수 없었다.

아까보다도 더 빠른 움직임들.

동굴에 있을 수 없는 단비가 내린 후 현성의 움직임이 더 빨라지긴 했다.

하나 그뿐이었다.

동굴 벽면을 타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틈이 보이는 족족 마족을 찔러 들어갔다.

하나 모두 얕은 공격일 뿐.

공격 횟수는 늘었으나 결정적인 공격은 하나도 없었다.

리베우스 역시 마찬가지.

현성과 마찬가지로 빠르게 움직여 동굴 벽과 천장, 바닥 할 거 없이 박차며 이리저리 튕기며 공격을 했다.

변수가 너무 많고 특유의 통통 튀는 움직임 때문에 더 난해했다.

잡기란 쉽지 않은 일.

‘대, 대단하다.’

레이라는 자신도 모르게 순수하게 감탄했다.

분명히 신성력의 순도가 자신보다도 뛰어났던 현성이지 않나.

로브를 착용하고 있어서 분명 사제라 생각했거늘.

그 어떤 성기사보다도 뛰어난 움직임이었다.

레이라는 본교에 있는 수많은 성기사들과 현성을 비교했다.

하나 솔직히 말해서, 그 누구도 현성의 움직임을 따라 하기란 쉽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건 리베우스 역시 마찬가지.

‘단순히 더 강하다는 게 아니라 가지고 있는 힘을 모두를 활용, 아니, 그 이상을 활용하고 있어.’

레이나도 재능이 있기에 보면 알 수 있었다.

현재 할 수 있는 가장 최선.

가장 최고의 움직임만 보인다.

그것이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지.

집중력도, 정신력도 빠르게 소모되는 행위이다.

한데, 그걸 벌써 10분 넘게 유지 중이었다.

정말 엄청나다.

본교에 있는 어떤 성기사도, 아니, 몽크를 포함하더라도 저게 가능한 분이 계시던가?

레이라는 고개를 저었다.

단언컨대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레이라가 보기에 길지 않을 거 같았다.

‘버, 벌써 적응하고 있어.’

처음에는 더 빨라진 현성과 리베우스의 독특한 움직임에 적응을 못 하고 모든 공격을 허용하던 마족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10분이 지나니 양상이 현저하게 달라졌다.

챙! 챙! 채채채채챙!

순식간에 이어진 창격을 고작해야 한 팔로 막아낸다.

그 후 뒤를 급습한 리베우스의 공격조차 뒤차기를 이용해 막아냈다.

오히려 뒤차기로 공격이 막힌 리베우스가 뒤로 튕겨 나가 바닥을 길게 끌며 뒤로 밀려났다.

심지어 데미지 역시 상당하다.

상황이 많이 좋지 않다.

빨라진 이동속도에도 녀석이 적응하기 시작했으니.

이에 마족 녀석은 피식 웃으며 단호하게 외친다.

“이제 죽여주지.”

자신이 가득 찬 목소리.

레이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무력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더 노력했다면, 여기서 저들을 도울 수 있지 않았을까?

신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태만하지 않고 더 노력했다면 결과가 달랐을까?

후회한들 어쩌랴.

바뀌는 건 그 무엇도 없다.

주먹을 으스러져라 쥐었다.

핏기가 가셔 희게 질린 두 주먹 사이로 피가 타고 흘렀다.

‘무력해.’

만일 신이 있었다면.

결과는 조금 달랐을까?

아니, 그래 봐야 달라질 거 없다.

애초에 신은 없었다.

레이나는 그렇게 생각하려 했다.

지금 당장은 그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자신의 힘을 사용할 뿐이다.

신의 힘이 아닌.

자신의 의지로 만들어낸 스스로의 힘을!

“활력과 생기의 노래, 전장의 노래, 환희의 노래.”

아아아아아────!

순식간에 무수히 많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각각의 노랫소리가 현성과 리베우스의 몸에 깃들고 각종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처음 동굴에 들어올 때는 당황했기에 쓰지 못했던 버프.

현성의 버프에 너무도 놀라 당황하지 않았나.

그래서 잊고 있었으나.

상황이 불리해진 지금에 와서는, 더 극적으로 버프를 쓸 수 있으리라.

레이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있는 힘껏 노래를 외쳤다.

목에 핏대가 서며 악을 내지르는 노래.

생전 처음으로 악을 지르는 것 같았다.

부디 이 노래로 둘이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는 저 균형을 깼으면 하고 더 악을 썼다.

자신의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라고.

하지만.

“쫑알쫑알 시끄럽군.”

“……아.”

순식간에 자신의 앞에 나타난 하급 마족.

팔이 잘려 있고, 온몸에 창과 주먹에 의한 상처들이 가득했으나.

여전히 무시무시한 위용이었다.

전혀 힘이 줄지 않은 모습.

레이나는 자신의 앞에 선 녀석이 주먹을 들어 올리는 걸 보며 눈을 감았다.

이렇게 끝나는구나.

하지만 미끼가 되었으니.

가치를 증명한 셈.

그대로 레이나가 죽음에 몸을 맡기려는 순간.

현성이 큰 소리로 외쳤다.

“리베우스으!”

“오우!”

파앗! 팟!

마족 녀석이 레이나에게 도착하자마자 현성과 리베우스가 달렸다.

둘 중 더 가까운 건 리베우스.

도움도 되지 않았던 자신을 구하려고 둘이 뛰어온다?

레이나는 현성과 리베우스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자신을 돕고자 달려오는 현성과 리베우스를 보기 위해.

하지만 그보다 먼저 들어온 것은 찢어질 듯 웃고 있는 마족의 낯짝이었다.

‘아.’

함정이었다.

자신을 노린 것부터 함정이었다.

미끼라고 생각하다니.

어리석고 한심하다.

결국 이걸 봐라, 자신의 존재 때문에 저 둘이 죽게 생겼다.

뭐라도, 뭐라도 해야 한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퍼석.

맥없이 무언가 터지는 소리.

레이나는 그걸 들으며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리고 보이는 건… 절망이었다.

머리가 터져 목 위로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집사복을 입은 시체.

리베우스였던 것이 허무하게 스러져 육신이 바스러지고 있었다.

“아아아아악!”

절망. 절규.

레이나가 느끼는 감정들이었다.

하다못해 자신을 버리고 현성이 도망쳤으면 좋으련만.

그러지도 않았다.

리베우스가 죽은 걸 보곤 눈을 동그랗게 뜬 현성.

마족은 그런 현성을 보며 히죽 웃었다.

“걱정 마라, 곧 보내주지.”

마족이 그 말과 함께 뻗은 정권.

이미 달려오던 터라 피하긴 늦었다.

현성은 곧바로 두 팔과 창을 들어 올려 막았지만.

빠각!

“커헉.”

창이 부러지고 현성의 두 팔도 부러졌다.

힘없이 두 팔이 흔들리며 뒤로 쏘아져 그대로 벽면에 처박혔다.

쿠우우웅!

동굴 전체가 울리는 듯한 착각이 일게 만드는 거대한 충격파.

하지만 그것만으로 현성을 죽이긴 힘들었다.

그것만으로는.

파앗!

“크하하하! 죽어라!”

동굴 벽에 박힌 채 무력하게 고개를 든 현성의 머리 위로 마족의 거대한 주먹이 포개졌다.

그 후 동굴에 울리는 끔찍한 소리.

퍼석.

앞서 들은 소리보다도 더 허무하리만치 힘이 없게 사그라드는 소리였다.

머리가 그대로 바스러지는 소리.

터진 것도 아니고 그대로 짓눌려 죽은 현성의 시체에 레이나는 혼을 잃은 것마냥 눈의 빛을 상실했다.

모두 자신 때문이다.

자신 때문에 모두가 죽었다.

하지만 괜찮다.

곧 그에 대한 속죄를 할 수 있을 테니.

아니나 다를까, 레이나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마족을 볼 수 있었다.

‘이걸로 모두 끝이겠구나.’

절망만 가득한 상황에 떠올릴 수 있는 건.

오직 하나였다.

‘……신이 있었다면.’

뭔가 달랐을까.

불신 성기사.

평생을 속에 감추고 살아온 그 비밀을 처음으로 푼 사람들이 죽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때 그녀가 찾은 것도 신이었다.

부디 존재한다면.

저들을 살려달라고.

부디 저 끔찍한 마족을 섬멸해 달라고.

기도하고 기도했다.

하지만 신이 있을 리가….

“리베우스!”

“오우! 성자의 빛이라는 겁니다요!”

레이나가 빛을 잃고 절망에 빠져 있었을 때.

비로소 빛을 볼 수 있었다.

동굴 전체를 감싸는 따스한 빛.

태양의 신 테라를 섬기는 본교에서조차 느껴보지조차 못한 따스한 빛.

레이나의 눈에 다시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무, 무슨!?”

분명히 죽었을 테다.

한데 어떻게 살아 있는 걸까.

마족뿐만 아니라 레이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의 손에 있었던 링을 보기 전까지는.

“아아.”

설마 여기까지 상정했던 것일까.

레이나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고는 거대한 빛에 휘감긴 마족을 바라봤다.

이로 인해 상당한 충격을 입을 거라는 건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빛만으론 부족하다.

레이나도 느낄 정도.

너무 강력한 빛이고 따스한 빛이지만.

그게 끝이다.

마족을 섬멸할 정도의 힘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레이나가 아닌 마족 역시 그걸 느꼈다.

“이번에야말로 죽여주마!”

당장은 빛 때문에 움직일 수 없었으나 저 빛은 그리 길지 않으리라.

그리고 저 빛이 끝나는 순간이 바로 저 둘의 죽음이다.

마족은 확신했다.

저 성가신 빛만 사라지면 녀석들을 찢어 죽일 수 있으리라고.

이번에는 머리를 바스러뜨려 죽이는 게 아닌.

찢어 죽이겠노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타나노스의 야상곡.”

나지막하게 이어진 현성의 목소리에 모두가 어떠한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아니,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온 세상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기라도 한 듯 고요해졌다.

전투 중에도 간간이 들리던 동굴의 물이 떨어지는 소리조차.

사라졌다.

적막에 휩싸였던 그 순간.

동굴에서 들릴 리가 없는 피아노 선율이 울려 퍼졌다.

“…….”

“…….”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그래, 이거야말로 천상의 노랫소리가 아닐까.

하나하나가 아름다운 선율에 마음까지 평안해지는 소리였다.

불과 방금까지만 해도 발악하려 했던 마족이었다.

하지만 피아노의 선율을 듣자 모든 걸 포기했다는 듯 멈춰 섰다.

‘아아, 이 무슨….’

레이나 역시 선율에 집중했다.

이리도 아름답고 서정적인 선율이 있을 줄이야.

마치 신의, 그래, 신의 노랫소리다.

환희에 젖은 레이나가 눈물을 흘렸을 때.

모든 선율이 멈췄다.

세상이 멈춘 것처럼.

──────────!

고요한 벼락이 내리쳤다.

하얀빛으로 빛나는 벼락은 세상의 사특한 것은 모조리 없애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그야말로 천벌.

신이 내리는 천벌이 그렇게 마족에게 내리꽂혔다.

하얀 벼락.

성자의 빛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여러 갈래의 벼락은 그대로 녀석을 집어삼키기 위해 떨어졌다.

마족은 그걸 보며 눈을 감았다.

결국 복수는 이리도 허무한 것이로구나.

‘어리석은 꿈이었구나.’

신벌.

마족의 형상은 그대로 사라졌다.

그 앞엔 오직 현성만이 서 있었다.

그런 현성을 향해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는 리베우스.

레이나는 그것이 단순한 찬양의 의미가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신앙.

아아, 저것이야말로 신앙이구나.

그리고 깨달을 수 있었다.

‘저분이야말로 신이시구나.’

경외와 신앙을 담아 레이나는 그대로 현성에게 몸을 숙여 절을 했다.

지금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찬미였다.

물론 현성이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쟤, 쟤는 왜 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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