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2부 32화
11장. 수호천사 길드 VS 데빌 길드(3)
데빌 길드가 투기장에 등장했을 때는 이미 수호천사 길드가 대기하고 있었다.
아직은 절망보다는 희망이 있어 보이는 표정들.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않을 거라는 건 천익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심어둔 스파이가 이제 사실을 알려줄 테니.
이쪽에서도 유일등급 사제를 고용했다는 사실을.
아니나 다를까 얼마 가지 않아 몇몇이 고개를 숙이며 어깨를 늘어뜨려 놓는 걸 볼 수 있었다.
방금 말한 모양이다.
천익은 계획대로 흘러가자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여기서 멈출 천익이 아니다.
“부탁하오.”
“길드전 시작 직전이니 지금 버프를 거는 게 좋겠군요.”
천익의 말에 말하면서 앞으로 나서는 머닉은 자신이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광역 버프 스킬을 걸었다.
녹빛과 갈색빛이 도는 마치 숲과 같은 빛을 뿌리는 이펙트에 모두가 환호했다.
무려 유일 등급 광역 스킬!
직업 스킬로 얻은 스킬이었는데 상당히 효과가 좋았다.
‘미쳤군.’
이미 머닉의 힘을 알고 있던 천익조차 놀라게 할 버프 효과였다.
확실히 이 정도나 되어야 7대 길드인 흑사자에 내정될 수 있구나 싶었다.
그 정도로 뛰어난 버프였다.
수호천사 길드도 그걸 보더니 모두가 경악하며 절망했다.
그만큼 뛰어났다는 거다.
“푸하하하하! 이거 상대가 어떻든 이긴 거 같소.”
눈을 빛내며 말하는 천익을 보며 머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자신과 같은 등급인 유일등급의 같은 사제계열?
그렇다면 자신이 질 이유가 없다 생각했기에.
무엇보다 직업 전용 스킬로 나온 스킬들도 모두 효과가 좋은 것들뿐이었다.
상성상 자신이 유리하다.
머닉에게도 그렇게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뭐지?’
두 손을 올려 마치 세례를 하듯 수호천사 길드원들에게 버프를 주려는 모습.
거기까지만 본다면 평범해 보였다.
동작만 본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수호천사 길드 쪽 사제가 버프를 시전하자 하늘에서 화사한 빛이 내려왔다.
그와 동시에 은은한 빛을 띠는 흰색 깃털들.
천사의 깃털과도 같은 그 모습에 머닉이 두 눈을 부릅떴다.
저런 이펙트가 나려면 최소 유일, 아니, 영웅 이상이어야 한다.
영웅등급 스킬을 가지고 있다, 확실하다.
머닉은 그 이펙트를 보며 범상치 않음을 느끼고 천익에게 말하려 했다.
하지만 천익 역시 그걸 느끼고 먼저 선수를 쳤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실력자인가 보오.”
수호천사 길드원들의 반응이나 이펙트를 보면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머닉도 천익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 스킬 하나만 특별하다 생각하더라도….”
“완전 승리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리고 최선을 해야겠구만.”
“바로 그렇습니다.”
머닉의 대답에 천익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보다 호탕하고 무식해 보이는 외견과 너무나도 달리 냉정한 판단이었다.
그리고 그 수완 좋은 머리에서 계획이 빠르게 나왔다.
“내가 저 사제를 치러 가겠소.”
“그러는 게 제일 확실하죠. 제가 보조하겠습니다.”
“나보다도 다른 길드원들을 신경 써주시오.”
“…말씀이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머닉은 여기서 느꼈다.
천익이 뛰어난 수완가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게임에서의 실력은 그리 높진 않다고.
물론 뛰어나니 이만한 길드를 꾸리고 유일등급에도 적응을 한 거겠지.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유일등급을 넘어서는 실력은 가지고 있지 않다.
딱 직업보다 못한 실력.
그게 천익의 한계가 될 거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만큼은 승리를 쟁취할 테다.
머닉은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리 영웅등급 버프가 있더라도 다른 실력들은 내가 우세할 겁니다.’
길드전이란 결국 대규모 전투.
이런 상황에서 가장 강력한 길드장인 천익이 나서서 저 사제를 죽이려 한다면?
막을 수 있는 이가 없을 터.
머닉은 그래서 천익을 서포터 하겠다 했지만, 길드원들을 맡아달라니.
여기서 사제를 빠르게 처리해야 전황을 달리할 수 있건만.
실력이 없지만, 오만하다 느꼈다.
머닉의 서포터가 없어도 자기 혼자서 빠르게 돌파할 수 있다 여긴 거겠지.
‘실력도 그리 뛰어나지 않으면서.’
쩝, 입맛을 다시는 머닉이었지만, 고용주의 말을 따라야지.
머닉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때.
[길드전이 10초 뒤에 시작됩니다.]
메시지 창이 떴다.
10초.
그 안에 준비할 건 그리 많지 않다.
일반적인 유저라면 말이다.
하지만, 머닉은 아니었다.
이미 광범위 버프를 날렸는데 무슨 더 준비를 하려고 하는 걸까.
“단단한 대지.”
풍요와 전쟁을 담당하는 마레스의 신성 스킬 중 하나였다.
길드원들에게 버프를 주는 게 아닌 이쪽의 땅에 버프를 걸었다.
이곳을 지나는 아군에게 효과를 주는, 결과적으로 길드원들에게 버프가 걸리게 하는 스킬.
“우와아아!”
“최고다!”
“우리가 이긴다!”
여기까지 준비하자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저쪽 사제가 대단해 보이긴 했지만.
그뿐이다.
이쪽 사제가 더 뛰어나다.
그렇게 믿고 있었다.
머닉 역시 마찬가지로 그랬고.
하지만 역시나 방심은 금물.
아무리 수호천사 길드가 천익을 막기 힘들다 하더라도 길드는 길드.
그러니 방비를 해야 한다.
‘사제를 빠르게 처리하지 못한다면 조금 전투 양상이 길어질 수도 있겠군요.’
물론 천익을 막을 수 있는 자가 존재한다는 전제가 깔려야 한다.
매우 어렵겠지만.
여럿이서 막는다면 또 모르는 일이지 않나.
저쪽 길드장인 티미라는 자도 꽤 실력자로 알려져 있으니까.
그를 포함해 셋에서 넷 정도 막아서면 아무리 천익이라도 단숨에 돌파할 수 없을 거다.
머닉은 그거 때문에 서포터를 하겠다 한 거였다.
아무리 천익이라도 셋이나 넷이 달라붙으면 주파하기 힘들 테니.
물론 그러다 보면 미세한 균형에 금이 가 대규모 전투인 길드전에서 야금야금 수가 줄어 결국은 패배하리라.
‘어쨌든 승리 수당은 챙길 수 있으니까요. 더 관여하지 말죠.’
속으로 그렇게 생각한 머닉.
그리고 그때 길드전이 시작되었다.
[길드전이 시작됩니다.]
팡!
무언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길드전이 시작을 알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수호천사 길드와 데빌 길드가 충돌했다.
한데 이게 웬걸.
“크악!”
“크윽!”
“밀어붙여!”
“작살내 버려!”
“이, 이 새끼들! 뭐 이리 세!”
예상과 달리 데빌 길드원들이 맥을 못 추고 있었다.
혹여 전력에서는 데빌 길드가 밀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원인이 있다면 딱 하나.
사제 차이!
버프의 효과 자체가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난다는 뜻이다.
“이, 이거 미쳤어!”
“버프가 진짜 엄청나다!”
“현성 님이 계신다! 다들 미친 듯이 달려!”
“이, 이 새끼들 왜 이렇게 세!”
“저, 저번까지만 해도 이러지 않았는데!?”
아비규환의 상황.
모두들 뒤엉킨 전장에서 눈먼 공격을 맞기 십상이었다.
그걸 아는 머닉이 인상을 찌푸렸다.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하지만 그래봐야다.
‘확실히 엄청난 버프인가 보네요.’
아까도 그랬지만, 그것만큼은 인정했다.
하지만.
“레서 힐, 타이니 힐, 미약한 축복.”
빠르게 힐과 제각기 상황에 맞는 자잘한 버프를 넣어주는 머닉.
그 속도와 실력이 상당했다.
순식간에 당할 뻔한 데빌 길드원 하나가 깜짝 놀라 외쳤다.
“미친! 제때제때 힐이 들어와!”
“이거면 할 수 있지!”
“가즈아아!”
“으아아아압!”
기합을 외치고 다시 충돌을 감행하며 전투에 나섰다.
모두가 각오하여 덤비는 와중에 사기가 돋아났다.
하기야 그럴 수밖에 없다.
뒤의 실력 좋은 서포터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마냥 든든했으니까.
다들 그렇게 감행하면서 수호천사 길드를 압박하려 했다.
한데 충돌 후 밀려나려는 한 수호천사 길드원.
그런 길드원의 머리 위로 미약한 빛이 일렁였다.
이펙트로 보건대 미약한 기도가 분명하다.
한데 저 순간에 기도를 주며 밀려나던 게 순간 멈췄다.
그리고 늘어난 능력치에 더 밀리지 않고 오히려 반격하는 수호천사 길드원.
상대 사제 역시 제각기 당하는 사람에게 적절히 힐을 넣어준다.
“뭐, 뭐야!?”
“우, 우리도! 제때 힐이 들어온다!”
“밀리지 마!”
“다 죽여!”
“현성 님 믿고 달려!”
“으아아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기 바로 직전에 힐이 들어와! 미쳤어!”
머닉은 그걸 보며 저도 모르게 경악했다.
자신이 밀린다.
아니, 밀린다고도 할 수 없다.
압도적으로 부족했다.
머닉이라 하더라도 이런 대규모 전장에서 빠르게 파악해서 제각기 버프와 힐을 넣어주는 건 어려운 일이다.
쿨타임과 시전 속도, 그동안 받을 피해까지 예상하고 힐과 버프를 주는 거다.
하지만 그게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한계가 존재하는 법.
한데 상대 사제는 그게 없다는 듯이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전황을 모두 파악하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아니, 그걸 하고 있다 한들 손이 꼬이게 마련인데.
‘……도대체 얼마나 뛰어난 거야.’
머닉은 경악하면서 저쪽 사제의 플레이를 봤다.
마치 무슨 연주회를 하는 지휘자의 모습과도 같았다.
빠르게 시야를 돌리며 빠르게 파악한다.
저런 동체 시력과 저런 판단력이라고?
자신조차 감히 따라갈 수 없는 실력이다.
‘절대 밀린다.’
사소한 흐름에도 시시각각 변하는 게 바로 전장이다.
한데 이만한 서포터가 뒤를 받쳐준다?
패배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머닉 역시 뛰어난 서포터긴 하다.
하지만 상대가 더 뛰어난 이상 이쪽이 얼마나 뛰어나건 상관이 없다.
전황은 밀리게 마련이니까.
승리하기 위해서는 딱 하나밖에 없었다.
‘……천익은?’
머닉은 그렇게 생각하며 빠르게 고개를 돌렸지만.
천익은 웬 이상한 놈과 충돌 중이었다.
쿠───웅!
강대한 일격.
진동이 이곳까지 느껴지는 충돌이었다.
상대 역시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건데.
문제는 머닉도 알고 있는 상대라는 것이었다.
불과 길드전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저쪽 사제의 어깨 위에 있던 자그마한 펫.
그 펫이 커져서 천익을 막고 있었다.
아니, 단순히 막고만 있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밀린다고?’
머닉이 실력이 떨어진다고 평가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유일등급에 비해서 좀 부족하다는 뜻이었다.
다시 말해 적어도 일반 유저들보다는 월등하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유일등급 직업을 가진 자이지 않나.
한데, 고작해야 펫에게 밀리고 있다.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
도대체 뭐가 어떻게 흘러가는 건지.
머닉은 순간 핑 도는 머리를 부여잡고 상대 사제를 바라봤다.
그리고 머닉은 볼 수 있었다.
마치 이럴 줄 알았다는 것처럼 시시하기 짝이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귀공자 같은 사제의 얼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