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2부 34화
11장. 수호천사 길드 VS 데빌 길드(5)
길드전이 시작되기도 전 관객들은 다들 떠들썩했다.
자기들끼리 떠들기도 했지만, 원래 많은 이들이 응원의 함성을 보내는 곳.
그곳이 바로 관객석 아니겠는가.
야구장과 같은 떠들썩한 분위기에 모두가 열광했다.
물론 수호천사 길드보다는 데빌 길드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그런 와중에 몇몇 유저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데빌 길드를 응원하는 사람들을 노려봤다.
상당히 아니꼬운 표정.
아니나 다를까.
“아니, 데빌 길드가 뭐가 좋다고 저렇게 빠는지 모르겠네.”
“뭐 그래도 확실하긴 하잖아.”
“에휴, 수호천사 길드는 꽤 좋았는데 진짜.”
“그건 그렇지.”
파이튼 지역의 유저라면 수호천사 길드를 모를 수가 없었다.
도시에 새로온 뉴비들도 많이 도와주고 지원도 조금이지만 해주는 곳이지 않았나.
한데 그런 곳이 데빌 길드같이 근본도 없는 곳에 밟힐 걸 생각하니.
아니꼬울 수밖에.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데빌 길드를 응원하는 이들이 훨씬 많았다.
간단하다.
그만큼 행동들이 시원시원했으니까.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 길드전을 해대니.
인지도도 빠르게 오르고 흥행도도 오른 것.
데빌 길드 길드장 천익의 수완도 한몫했다.
덕분에 승승장구하며 꽤나 지위가 오른 데빌 길드.
경기장 분위기만 봐도 그랬다.
“으하하하하! 데빌 길드 파이팅이다!”
“천사 따윈 짓밟아버려!”
“죽여버려!”
“데빌 길드가 이길 게 뻔하지!”
저런 응원들을 보며 유저 중 한 명인 마빈은 고개를 저었다.
분명 저 중 이 도시에서 뉴비 때 수호천사 길드에게 도움을 받은 이들도 있을 텐데.
저런다는 게 참 속이 뒤틀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응원한들 뭐가 달라질까?
마빈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누가 보더라도 수호천사 길드가 불리한 건 당연했으니까.
거기다 마빈의 옆에 앉은 친구가 말했다.
“야, 들었냐? 수호천사 길드 주력이 절반이 빠졌다더라.”
“하아. 들었지.”
“천익이 돈 써서 매수했다던데?”
“알지, 알아. 그 새끼 늘 더러운 수 쓰긴 하니까.”
“그러니 저렇게 인기가 많지. 어떡해서든 이기려 하니까.”
쩝. 입안에 가득 돈 쓴맛을 다시며 마빈은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든 수호천사 길드가 이겼으면 좋으련만.
불가능한 거 같다.
무슨 수를 써도 이미 늦었다.
수호천사 길드가 와해될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마빈이 여기 앉아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혹시나 하는 심정에.
만에 하나라는 게 있지 않겠나.
그래서 오긴 왔는데 바로 후회하는 마빈이었다.
‘나를 도와준 사람들이 이렇게 무너지는 걸 봐야 하다니.’
그런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었을 때였다.
수호천사 길드와 데빌 길드의 길드원들이 도착했다.
서로 마주 보는 형태의 진형.
“오, 곧 시작하겠는데? 넌 누가 이길 거 같냐? 그래도 수호천사?”
“쩝, 아니, 이쯤 되면 모를 수가 없지. 데빌이 이기겠지.”
“하긴, 아무리 수호천사 길드가 대단해도 고작해야 친목 길드긴 하니까. 작정하고 키우는 기업형 길드인 데빌하고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지.”
“실력 자체는 수호천사 길드가 더 높겠지만, 천익이 있는 이상 힘들긴 하지.”
“그치, 유일 등급이니까.”
마빈은 그런 기대감 없는 눈으로 길드전을 관람했다.
그리고 시작 전 데빌 길드 측에서 나온 사제가 버프를 거는 걸 볼 수 있었다.
“미친?! 저게 말이 되나? 최소 유일등급 사제 아니야!?”
옆에서 호들갑을 떨면서 경악하는 친구의 모습.
마빈이라고 다를 게 없었다.
저만한 광역 버프라면 무조건이다.
유일등급의 사제구나.
그와 동시에 마빈은 생각했다.
수호천사 길드가 졌노라고.
하지만 최대한 티 내지 않았다.
응원은 하지 못할망정 표정까지 썩어가며 초를 칠 순 없었으니까.
한데 그때였다.
분위기가 이상하게 바뀌기 시작한 것은.
시작은 수호천사 길드의 사제가 두 손을 들어 올리면서부터다.
그리고 발동되는 버프.
처음에는 모두 그냥 구색만 갖추려는 건 줄 알았다.
한데 이게 웬걸?
‘뭐, 뭐야 저거.’
수호천사 길드 쪽 사제가 버프를 시전하자 하늘에서 화사한 빛이 내려왔다.
그와 동시에 은은한 빛을 띠는 흰색 깃털들.
저걸 본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했다.
‘저건 천사의 깃털이다.’
데빌 길드 측 사제보다도 강렬한 버프가 하늘에서 은은하게 내렸다.
천사의 깃털이 나부끼는 버프.
누가 보더라도 범상치 않다.
무엇보다.
‘데빌 길드 사제가 당황한다고?’
그렇다는 건 유일등급보다도 높은 등급일 수도 있다는 것 아니겠나.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니 마빈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이며 긴장했다.
무언가 달라지는 거 아닐까?
하지만 옆에 앉았던 친구가 입을 열어 초를 쳤다.
정말 아쉽다는 표정으로.
“하, 진짜 아깝겠다. 주력 파티가 다 있으면 몰라도 없는 이상 천익을 막을 순 없으니까.”
“아.”
그 말에 마빈 역시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아무리 뛰어난 사제라고 한들.
천익을 막을 수 없다면 패배하는 거니까.
수호천사 길드의 길드장 티미가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천익에 비하면 두 수는 접어줘야 한다.
그렇다면 천익을 막으려면 최소 네다섯은 몰려서 막아야 하는데, 본진에서 그 정도 수의 차이가 나면 결국 수호천사 길드가 밀릴 수밖에 없다.
점차 벌어지는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질 게 뻔하다.
뛰어난 사제를 어떻게든 구해 온 모양이지만.
데빌 길드도 뛰어난 사제를 데려온 이상 승패는 이미 갈렸다.
하지만 반전의 반전이 이런 것일까?
“야! 저 집사는 뭐야!?”
“뭐, 뭐?”
“미친! 작았던 놈이 갑자기 커진 거 보니까 펫인 거 같은데 고작해야 펫이 천익을 단독으로 막는다고?!”
옆자리에 앉은 친구의 말처럼 집사가 홀로 천익을 막는 걸 봤다.
이거 어쩌면?
마빈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때.
점차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본진에서조차 데빌 길드 측 사제가 밀리기 시작했을 때는 걷잡을 수 없이 함성이 커져 있었다.
“미친! 수호천사 길드! 이게 무어야! 씨X!”
“대박이다! 진짜!”
“와 미친! 저 사제 컨트롤 보여? 아니, 뭔 틈을 엄청 압박해 오듯 사람들 힐하고 버프하고 미쳤는데? 저게 말이 되나?”
“아니, 데빌 길드 사제가 못하는 거 아니야?”
“아니야! 그러기에 데빌 길드 사제도 존X 잘 싸워! 근데 씨X! 수호천사 길드 쪽 사제가 훨씬 압도적으로 잘해!”
“미친! 저런 사람이 왜 이런 곳에서 길드전을 하는 거야!?”
“모르지 씨X! 근데 진짜 대박이다. 내 생에 이런 경기를 직관하다니!”
고작해야 사제 하나가 추가가 된 건데 전황이 달라졌다.
물론 그 사제는 평범한 사제가 아니었지만.
어느덧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치챌 수 있었다.
“저 천익 상대하는 집사, 내가 아까 분명 봤어. 수호천사 쪽 사제 어깨 위에 있던 펫이야.”
“미친! 본인 실력도 개쩌는데 저렇게 개쩌는 펫도 있다고?”
“와 진짜 불공평하다 진짜로.”
“배가 아파 죽겠네!”
“근데 저만한 실력자면 가질 만하지 않냐?”
“인정이긴 해!”
“어우, 진짜 대박이다. 펫도 전투 존X 잘하는데?”
“천익을 그냥 압도하네?”
“아니, 뭔 천익을 장난감 다루듯 다루네.”
“그냥 보면 봐주고 있는 게 티가 난다.”
다들 압도적인 집사의 모습과 사제의 모습에 모두가 감탄하고 경악했다.
심지어 사제가 상대 사제에게 공격까지 넣는 걸 봤을 때는 무슨 축제를 방불케 했다.
“우와아아아! 저러면서 견제까지 가능하다고?”
“아니, 이걸 그냥 두고 보는 병X이 어딨어! 우리 길드 스카우터 불러와!”
“미친! 너희 길드로 되겠냐! 대형 길드 오겠는데?”
“아니, 대형 길드 정도가 아니라고! 7대 길드가 와도 이상하지 않다고! 이건!”
“미치겠다 진짜! 진짜 쩔어!”
흥분의 도가니 속에서.
마빈 역시 잔뜩 흥분한 표정이었다.
설마 진짜로 수호천사 길드가 이길 줄이야.
정말 상상도 못 한 일이 일어나자.
마빈은 절로 흥분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자기가 응원하는 길드가 승리를 거머쥐기 직전이란 이렇게도 짜릿한 거구나.
왜 길드전을 다니며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이해가 되는 심정이었다.
‘미쳤다.’
마빈이 그렇게 경탄하고 있었을 때.
집사가 그대로 천익의 머리를 깨부쉈다.
한순간에 사망한 천익.
무엇보다 저 펫 집사를 단 한 번도 공격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압도적인 실력 차.
이제 수호천사 길드가 이겼다!
천익을 꺾은 강자인 펫이 남아 있고, 무엇보다 사제 역시 남아 있지 않나.
다들 그렇게 함성을 내지르려던 순간.
길드전 전장이 침묵에 휩싸였다.
세상의 그 어떤 소음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느낌의 적막.
그 누구도 깰 수 없는 적막 속에.
잔잔한 피아노의 선율이 울렸다.
‘이, 이게 뭐지?’
마빈이 숨을 죽이며, 아니, 모든 관중이 그렇게 숨을 죽이며 전장을 지켜봤다
그러자.
데빌 길드 측 머리 위로 하얗고 고요한 벼락이 내리쳤다.
그리고 그곳에 남은 건 무엇도 없었다.
마치 그곳에 원래 아무것도 없었던 거처럼.
“…….”
그 후에도 모두가 한참이나 말을 잇지 못했다.
너무나도 압도적인 모습에 전율하며 모두가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미쳤다.”
마빈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보다 압도적인 광경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은 광경이었다.
아직 데빌 길드에 많은 길드원들이 남았지만.
그들이 이길 거란 생각을 하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수호천사 길드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 * *
길드전은 당연하고도 뻔하게 수호천사 길드의 승리로 이어졌다.
천익과 머닉이 죽고 난 뒤에 오합지졸로 변한 데빌 길드는 현성이 나설 것도 없이 부서졌으니까.
현성은 그 광경을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진짜 내가 사제로서도 좀 뛰어난 모양이네.’
심지어 대부분을 숨기면서 했다.
헤븐즈 링은커녕 하늘의 은총도 사용하지 않았다.
성혈의 무구도 그랬고, 여러 스킬을 다 사용하지 않고도 승리하니 끝내줬다.
좀 재능이 있을지도?
그런 생각을 하며 현성은 피식 웃었다.
뭐, 그렇게 생각해도 되긴 하지.
마지막 데빌 길드 길드원이 사망하자 현성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길드전을 승리로 이끈 막대한 전공을 획득하셨습니다.]
[길드원들이 미약한 신앙심이 생깁니다.]
[당신의 신도로 인정됩니다.]
[신성력이 31 상승합니다.]
신성력이 이걸로 무려 115가 되었다.
마력에 몰빵한 것도 이걸로 곧 따라잡히게 생겼다.
그때였다.
“현성 님!”
정말 티 없이 맑은 미소로 달려오는 수호천사 길드의 티미.
현성도 그걸 보며 피식 웃었다.
보상도 보상인데 이렇게 불리한 전황을 도와 승리로 이끌다니.
상당히 재밌었다.
서포팅도 꽤 재밌다는 걸 느꼈다.
무엇보다 군단을 지휘하듯 버프와 힐을 넣는 건.
생각 이상으로 재밌었다.
‘생각보다 체질일지도?’
직접 몸을 쓰는 것도 좋지만 이것도 상당히 즐거웠다.
티미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현성에게 다가와 허리를 푹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이길 수 있었습니다.”
“하하, 뭘요. 고용된 이상 당연한 거죠.”
겸양은 떨지 않았다.
현성도 자기의 공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티미 역시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거듭 감사를 표하고는 현성에게 이것저것을 건네주었다.
딱히 필요도 없는 데빌 길드의 제물들.
대부분 골드였다.
상당한 골드였지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으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지.
【자유도시 파이튼의 지하 수로】
-등급: B
-설명: 자유도시 파이튼의 시장 파론 자작은 요즘 골머리를 앓는다고 한다.
다름 아닌 지하 수로에 대한 시민들의 원성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예전처럼 영주민이 아니라 이제는 자유를 지닌 신분이었으므로, 파론 자작은 그걸 해결할 의무가 있었다.
한데, 이상하게도 자신의 병사들을 보내 조사를 시켰더니, 어째서인가 돌아오지 않는다.
기사단을 쓰자 하니 혹시 몰라 그전에 뛰어난 이방인들을 고용해 수로를 탐사시키려 한다.
-제한: 파론 자작에게 인정받은 길드의 인원이거나 혹은 길드에게 자리를 양도받은 유저만 가능하다.
-보상: 랜덤 스킬북(유일), 랜덤 아이템 박스(유일), 10,000골드.
-실패 시 사망, 파론 자작의 신임 하락, 자유도시 파이튼에서의 불이익.
‘와.’
확실히 엄청난 보상이긴 했다.
귀족이 준 퀘스트니까 그러려니 생각하긴 했는데.
확실히 대단했다.
“퀘스트는 3일 후이니. 3일 후 로이 시간으로 3시쯤 길드본부로 오시면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네! 그러면 그때 뵙겠습니다! 오늘은 정말 감사합니다!”
현성은 그렇게 끝까지 티미의 인사를 받고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리베우스 역시 그런 현성의 어깨 위에 올라타 빵긋 미소 지었다.
“불신자가 점점 줄어드는군요! 모두 주인님의 위대함 덕분입니다요! 오우!”
“참나.”
리베우스의 말에 현성은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지만.
부정하진 않았다.
칭찬은 좋으니까.
그렇게 현성이 길가를 지나가며 다음에는 어디를 갈까 고민하고 있던 중.
어디선가 본 듯한 문양의 사제복을 입은 사제가 스쳐 지나갔다.
분명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워낙 이 대륙에 교단이 많아야지.
그냥 그렇구나 생각하고 현성은 지나갔다.
다음에는 어디로 갈지 정하기도 했고, 느긋하게 가보자며 떠났을 때.
현성을 스쳐 지나간 사제는 한참이 지나서야 품속에 수정구를 꺼냈다.
그러곤 어디론가 연락을 넣었다.
“예, 찾은 거 같습니다. 테라 님의 기운이 미약하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