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2부 35화
12장. 테라 교단 주교 다니엘(1)
길드전을 막 마친 현성은 마땅히 갈 곳이 없긴 했다.
파이튼에 대해 그리 잘 알아본 것도 아니라 아는 게 별로 없었다.
무엇보다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거의 바로 길드전에 참여하지 않았나.
그러니 당장은 뭐 할지 결정하기 쉽지 않았다.
보상으로 받은 스킬북을 떠올리기 전까진.
생각해 보니까 이걸 까면 되는 거 아닌가.
현성은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여관으로 향했다.
적당히 밖 어디서나 까도 되긴 했지만.
‘좀 신경 쓰이니까.’
그래도 희귀등급 스킬북이지 않나.
그냥 자신이 깔까 생각하던 현성은 잠깐의 고민 후 결정을 내렸다.
리베우스에게 주기로.
당장은 현성이야 스킬이 넘쳐나지 않나.
지금 리베우스는 7대 주선 스킬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걸로는 좀 부족하긴 하다.
상시 스킬이 없다는 뜻.
현성처럼 적당한 공격 스킬이라도 있으면 모르겠는데.
당장 공격 스킬은 순결밖에 없어 보이니.
‘이 둘은 리베우스 주는 게 낫지.’
현성이야 당장도 3일 뒤에 진행되는 퀘스트를 깨기만 해도 유일등급 스킬북을 얻으니까.
그거면 충분하다.
거기기다 현성은 곧 레벨 50이다.
스킬을 얻을 수 있는 레벨.
무엇보다 오늘은 아직 기면증도 발동되지 않았으니까.
그걸로 스킬까지 사용하면?
현성이 당장 얻을 수 있는 스킬은 셋이 넘으니.
그래서 여관으로 향하는 거였다.
리베우스가 스킬북을 사용하면 별 생쇼를 다했으니까.
‘누구에게 보이긴 좀 그렇지.’
그때는 다행히 길목이라 아무도 못 본 거지.
이런 도로 한복판에서 하면 문제다.
골목에서 하면 더 수상하다.
마법진 같은 걸 그리고 거기다 대고 기도를 드리는 리베우스?
아무리 생각해도 위험한 걸 섬기는 거 같지 않나.
물론 평상시의 리베우스도 그러긴 하지만.
그래도 그건 진짜 이상한 짓거리니.
여관에서 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도시라 그런가, 확실히 여관도 괜찮네.’
당연하지만 묵을 돈 따위는 걱정하지 않았다.
길드전 끝나고 목돈이 생기지 않았나.
아무튼, 그러면 인벤토리를 열어볼까?
현성은 그렇게 인벤토리를 열자.
문득 잊고 있던 아이템들을 볼 수 있었다.
‘이것도 좀 곤란하긴 하네.’
일단 얻긴 했는데 바로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아이템들.
그중 하나는 마룬 마을에서 얻은 거였다.
【결사대의 증표】
《퀘스트 아이템》
-설명: 현재로서는 알 수 없는 아이템이다. 어느 결사대의 증표로 보인다. 사용법을 알게 되면 어떠한 비밀에 빠져들지도 모른다.
설명조차 애매한 이 아이템.
당장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처박아뒀지만.
‘역시 심문을 해야 했나?’
퀘스트 아이템이면 뭐하나.
아는 게 너무 없으니 할 수 있는게 없는데.
아무리 현성이라도 모르는데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나.
이건 역시 그냥 놔두는 게 좋을 거 같다.
그리고 다음 아이템?
이거 역시 너무 곤란하다.
다름 아닌 레이나가 주고 간 처치 곤란 아이템.
【위벨 가문의 가보】
《영웅》
-종류: 퀘스트 아이템
-설명: 테라 교단의 성물과도 같은 펜던트이다. 미약하게나마 테라 신의 기운이 남아 있다.
이미 스토리는 봐서 의미는 없는 아이템 같긴 한데.
현성은 혹시 모르니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가보라고 하는 걸 버릴 수도 없는 거 아니겠나.
설마 이거 가지고 있다고 해서 테라 교단과 트러블이 생기진 않겠지?
라고 생각한 현성이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있겠는가.
현성이 아무리 부정적으로 생각해도 그럴 일은 없을 거 같다.
심지어 테라 교단의 성물과도 같은 펜던트라 하지 않은가.
그런 걸 가보로 가지고 있는 가문?
필히 테라 교단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가문이 틀림없다.
현성은 그걸 보며 이걸 어쩌면 좋나 싶었건만.
그때 리베우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펜던트를 봤다.
“오우? 아까 스쳐 지나간 사제의 기운과 비슷한 신성력입니다요. 생각해 보니, 그 불신 성기사, 이젠 충직한 성기사가 된 그 여자의 기운과도 비슷한 신성력입니다요!”
“야! 그걸 왜 이제 말해!”
“오우! 저도 힘이 약해지다 보니 헷갈렸습니다요! 아하하!”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약해졌다는 말을 하니 현성이 왠지 미안해졌다.
하기야 예전 리베우스였으면 놓칠 리가 없긴 하다.
다만 지금은 약해졌으니 어쩔 수 없긴 하지.
당장 따질 문제는 그게 아니기도 했고.
현성은 리베우스의 말에 순간 생각했다.
‘그럼 당장 나가야 하나?’
여관이라고는 하지만 여기까지 테라 교단이 쳐들어오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특히 룬 제국에서는 국교로 삼은 교단이기도 하지 않나.
그곳에서 높은 분이 나오면 귀족보다도 더한 대우를 받으며 여관 문 따윈 그냥 열어줄 가능성이 농후하다.
현성은 거기까지 생각하자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일단 뜨자!’
퀘스트야 3일 후에 다시 오면 되는 거 아닌가.
3일이면 교단들도 어느 정도 철수했을 수도 있고.
당장은 성녀를 탈취한 테라 교단의 분노를 피하는 게 우선이다!
현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서 최대한 벗어나려 했건만.
그때 리베우스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또 뭐지?
현성이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자.
리베우스는 그런 현성을 보며 신이 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오우! 주인님! 이 주변에 펜던트에서 느껴지는 신성력을 가진 녀석들이 잔뜩 몰려옵니다요!”
“이런 미친!”
“오우! 성전! 성전입니다요! 종교 전쟁! 이곳 모든 종교를 통합하는 겁니다요!”
“야 이 미친놈아! 아니야! 빨리 준비해!”
“오우? 역시 성전을!?”
“아니! 도망갈 준비 하라고! 아니다 됐다, 내 어깨 위에만 있어!”
“오우!”
현성은 그러고 도망치기 위해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려 했으나.
이미 창문 밖에도 테라 교단의 문양을 가진 성기사와 사제들이 잔뜩 깔린 걸 볼 수 있었다.
저쪽은 이미 다 준비가 끝난 거다.
현성이 속으로 욕을 하며 어떻게 빠져나갈까 고민하던 그 순간.
누군가 밖에서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미친.’
벌써 온 건가?
타나노스의 스킬이나 지금 낼 수 있는 전력을 낸다면 창문 밖으로 튈 수는 있을 거다.
상대하는 게 아닌 도주하는 것이니.
무엇보다 현성이지 않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을 거다.
그만한 컨트롤은 가지고 있었으니.
정면돌파만이 답이다.
현성이 그렇게 도망치려는 순간.
끔찍한 메시지를 볼 수 있었다.
[‘타나노스의 기면증’ 스킬이 발동됩니다.]
[강제로 수면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앞으로 1시간 동안 캐릭터를 조종하실 수 없습니다.]
‘아! 하필!’
결정적인 순간에 기면증이라니.
하필이면!
현성은 그런 탄식을 내쉬며 영혼 상태로 자신의 몸을 살폈다.
바닥에 철푸덕 쓰러져 잠을 자는 모습.
현성이 기면증 상태에 빠지자 리베우스가 그런 현성을 들고 도망칠 겨를도 없이 여관 방문이 열렸다.
누가 봐도 직급이 높아 보이는 사제복을 입고 있는 중년 남성.
머리가 희끗한 상당히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남성이었다.
‘아, 클났다.’
* * *
테라 교단 주교, 다니엘.
그가 움직이기 시작한 건 사소한 보고 하나 때문이었다.
테라 신의 미약한 기운을 발견했다는 사제의 보고.
사소한 보고가 틀림없지만, 다니엘에겐 그렇지 않았다.
지금 테라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수단은 테라 교단의 성물들뿐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테라 교단의 성물들은 모두 테라 교단 본단에 존재한다.
한데 밖에서 그런 테라의 기운을 느꼈다?
보고를 올린 사제가 고작해야 테라의 신성력을 느낀 게 아니다.
테라의 기운은 신성력과는 그 질이 다르니.
결은 같을 수 있으나, 많이 다르다.
비슷하다고 느낄 수는 있지만, 기운을 느꼈다면 얘기가 다르다.
현재 테라 교단의 성물 중 밖에 존재하는 건 딱 하나.
위벨 가문의 가보.
그것뿐이다.
‘레이나다.’
정확히는 레이나가 도망치게 만든 존재일 터.
다니엘이 움직이지 않을 이유는 단 하나도 없었다.
주교라 함은 응당 부하들에게 시키게 마련이건만, 사안이 사안이니.
다니엘이 직접 움직이기로 했다.
물론 그전에 병력을 움직이는 것 역시 마다하지 않았다.
레이나를 꼬드겼다면 상당한 실력자일 수도 있으니.
“성기사단을 운용하라.”
“예, 주교님.”
“나 역시 그곳으로 간다.”
“하, 하오나.”
“더 말하지 말고 준비하게.”
“……예, 알겠습니다.”
다니엘 주교가 가기로 한 후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고작해야 20분.
20분 사이에 모든 준비가 완료되어 자유도시 파이튼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급하게 온다고 시장이 마중 나오지 못하긴 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고작해야 인사치레에 시간을 빼앗길 이유가 없다.
다니엘이 그대로 움직이자.
대기하고 있던 성기사 하나가 빠르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이쪽으로 오시죠, 현재 여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방인이라고?”
“예, 그렇다 들었습니다.”
“흐음.”
이방인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레이나를 꼬드긴 걸까.
현재로서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놈을 없앤다.’
고작해야 이방인일 뿐이다.
다른 교단의 사람도 아니다.
그랬다면 보고가 왔겠지.
하지만 다니엘에게 그런 보고가 없었다는 건 치워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
지금 교황과 추기경이 맛이 간 상태다.
아니, 교단의 대부분이 맛이 갔다.
응당 그럴 수밖에 없겠지.
‘테라께서 응답이 없으시니.’
다들 초조해졌을 게 분명하다.
그런 상황에서 성녀의 자질을 지닌 레이나가 탈선했다?
레이나를 제물로 바치자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그런 상황이다.
이게 들키기 전에 빠르게 처리를 해야 한다.
다행히 이곳에 오기 전 대주교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자신이 어떻게든 하겠다고.
아직은 숨길 수 있다.
이대로 그 이방인을 처리하고 레이나를 다시 데려오고 성물 역시 가져온다.
그러면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가는 거다.
물론 레이나가 탈선한 직접적인 이유는 이미 안다.
테라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기에.
딱 그 이유뿐이다.
하지만 그건 다니엘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아니, 모든 교단이 풀 수 없는 문제.
‘……테라께서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있을 거다.’
그저 테라를 믿고 기다리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다니엘은 그리 생각하고 여관에 도착하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성기사들과 함께 여관방 앞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다니엘은 그런 여관방 문 앞에 서서 잠시 생각을 하더니.
노크를 했다.
똑똑.
인기척이 느껴지는가 하더니.
별안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설마 도망친 건가?
마력이나 마나가 움직인 흔적은 없다.
스킬을 사용하지 않고 사라질 수 있나?
‘들어가야겠군.’
다니엘이 그리 생각하고 들어가려 했을 때.
성기사가 만류하며 말했다.
“제, 제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 없네. 내가 들어가지.”
하지만 다니엘은 완고했다.
그렇게 키를 쥐고 문을 열자.
그곳에 곤히 자고 있는 사제복을 입은 남성을 볼 수 있었다.
귀공자처럼 생긴 남성.
사제복과는 심히 어울리지 않는 외관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내 옆에서 감복하며 절을 하고 있는 작은 크기의 인간형 펫.
다니엘은 그걸 보며 눈빛을 낮게 내리깔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