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2부 38화
13장. 붉은 형제!(1)
각 도시마다 유명한 던전들은 으레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던전들의 특징이 있다.
서로 힐러를 모셔가려고 한다는 거다.
파이튼의 흡혈 동굴.
이곳이 그랬다.
현성이 파이튼에 오기 전 알아본 던전이기도 했다.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 동굴에서 아직 떨어진 곳임에도 요란했다.
“힐러 구합니다!”
“유능한 사제님 구합니다!”
“아아! 저 역시 테라 교단의 형제랍니다? 부디 저희 파티 오실 테라 교단 사제분 환영해요!”
“제발! 제발 저희 파티 와주세요!”
간절하다 못해 절절한 목소리들.
현성은 저 목소리 모두가 힐러를 원한다는 사실에 피식 웃었다.
예전에 현성도 저렇게 소리를 질러가며 파티를 구한 적이 있었다.
라이칸 동굴 때, 그러니까 예린과 첫 만남 때였는데.
그때가 새록새록 떠올랐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현성은 그렇게 정신을 차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오우! 모두 주인님 눈치를 봅니다요!?”
“그러게.”
확실히 사제가 오니까 다들 경쟁을 하듯 목소리를 더 높였다.
그러나 막상 현성에게 직접 다가오진 않는다.
무언가 불문율이 있는 모양이다.
현성은 그걸 보며 피식 웃었다.
테라 교단의 사제복.
확실히 이게 효과가 있었다.
다들 침을 꼴깍꼴깍 삼키는 것 좀 봐라.
거짓말 안 치고 모두가 현성을 바라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기야 힐러는 언제든 부족한데 이곳은 더한 곳이니.
‘고급 인력이다, 이거지?’
결국 힐러는 부족한데 파티는 넘친다는 거 아니겠나.
골라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이중 재미있을 거 같은 파티를 현성이 픽하기만 하면 된다.
과연 어떤 파티에 가야 좋을까.
즐겜러가 된 현성의 시점에 마침 들어온 파티가 있었다.
복장부터 범상치 않은 모습이었다.
‘오.’
하나는 방어구는 착용하지 않은 전사의 외형이었는데.
각종 무구들이 붉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현성은 저 흔적을 보며 빠르게 직업을 눈치챌 수 있었다.
‘버서커 관련된 직업들이 다 저렇지?’
방어구는 착용할 수 없다는 디메리트를 가지고, 압도적인 공격력을 자랑하는 직업 계열.
특징으로는 착용 중인 아이템에 핏빛이 흐른다는 점이 있다.
웬만한 눈썰미로는 발견하기 쉽지 않지만, 현성이지 않나.
이 정도는 기본이다.
그리고 그 동료로 있는 자도 상당히 특이했다.
핏빛 로브와 살짝 심장의 모양을 한 루비 지팡이.
붉은 피를 연상케 하는 모습의 마법사다.
옆에 있는 버서커와 마찬가지로 붉은 핏빛이 전반적으로 도는 게 보였다.
‘버서커랑 블러드 매지션? 괴상한 조합이네.’
로스트 이데아의 직업들은 꽤 알아봤기에 알 수 있었다.
상당히 특이한 조합의 파티라는 걸.
버서커 계열 직업은 체력이 낮을수록 강해지는 직업이다.
그리고 블러드 매지션 계열 직업은 피와 관련된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 류 직업이다.
둘의 공통점은 딱 하나 있었다.
HP를 소모로 스킬을 사용한다는 것.
가뜩이나 사제가 까다로워하는 조합이 둘이나 있다는 얘기다.
현성은 그걸 보며 피식 웃었다.
“아이씨! 형 때문에 사제들이 다 도망가잖아!?”
“나 때문이라고? 이거 형제가 아니라 순 미친놈일세? 블러드 매지션 계열은 비인기에 사제도 꺼리는 계열이잖아!”
“아! 씨! 진짜! 위력은 세다고!”
서로 티격태격하는 모습까지.
참 재미있어 보이는 파티다.
현성은 피식 웃으며 그런 파티를 향해 다가갔다.
마침 새로 얻은 스킬들도 확인할 겸.
딱 좋은 상대이지 않나.
현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그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혹시 사제 구하십니까?”
“어엉?”
“으잉?”
형제는 형제인지 비슷한 반응이었다.
그리고 리베우스의 반응은 여느 때와 같았다.
“멍청한 소리를 하는 게 겉보기랑 비슷합니다요. 생긴 대로 사는 모양입니다요.”
“크흠. 반갑습니다.”
오늘도 웃참을 하는 현성이었다.
* * *
마르코와 미구엘은 자신들을 찾아온 사제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가 보더라도 악동으로 보이는 그들을 보고 사제가 먼저 찾아온다?
그것도 호객 행위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뭔가 수상했지만, 형인 마르코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딱 그렇게 생각하고 마르코가 외쳤다.
“오! 형제여! 우리를 선택한 걸 후회 않게 해주지!”
누가 보더라도 스페인 계열이라고 할 만한 제스처와 행동.
그 모습에 동생 미구엘은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저었다.
둘은 쿠바계 미국인들.
최고의 인공지능인 이데아가 자동 번역을 해주었지만.
행동과 그 말투에서 살짝 티가 났다.
미구엘은 형의 저런 모습을 보면 늘 한숨이 나왔지만, 어쩌겠나.
저게 형인 걸.
“하아, 반갑습니다. 미구엘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형인 마르코와는 다르게 점잔한 미구엘도 인사를 했다.
둘이 인사를 해오자 테라 교단의 사제는 슬며시 웃으며 마찬가지로 인사를 했다.
“저는 현성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오우! 저는 리베우스라고 합니다요. 주인님의 충직한 종이지요.”
현성이 자신을 소개하자 현성의 어깨 위에 있는 작은 펫도 인사를 해왔다.
펫과 함게 다니는 사제라.
특이하기는 하지만 자신들보다 특이하진 않다며 미구엘이 생각했다.
그새를 못 참고 마르코가 그런 둘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또 형제 어쩌고 저럴 게 분명하다.
“크흠, 이쪽은 우리 형 마르코라고 합니다.”
“암, 그렇고 말고 마르고 율리안 라울 바티스타.”
“아! 형! 본명을 까면 어떡해! 진짜 쫌!”
“허어! 동생아 그러는 거 아니다. 우리 동료가 되실 사제에게 무슨 그 예의이냐.”
“하하, 재밌으신 분들이시군요.”
형인 마르코가 저래서 여러 사람들이 튄 거 아닌가.
사제를 구하면 뭐하나.
저런 형에게 도망치는 걸.
미구엘은 한숨을 작게 쉬며 현성을 봤다.
그래도 도망갈 거 같진 않을 거 같고.
그나마 다행이다.
‘이번에도 못 구하면 그냥 가려고 했는데.’
여기서 계속 죽치고 있는 거보다 잘 조절해서 사냥을 하는 게 나으니.
근데 이렇게 사제를 구하게 되다니.
운이 따라줬다.
그것도 도망가지 않는 사제라니.
미구엘은 눈물이 눈앞을 가리는 심정을 느꼈지만.
최대한 티를 내지 않았다.
그걸 알았다가 현성도 도망칠 수도 있으니.
“그, 그럼 던전으로 갈까요?”
“좋지!”
“저도 좋습니다.”
미구엘의 말에 마르코는 당연하고 현성도 좋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밝게 웃으며 미구엘이 안내를 하듯 먼저 앞서나갔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보통 마법사인 미구엘은 현성과 같이 후방에 서는 게 맞지만 앞장서는 걸 보니 실력에는 자신이 있는 모양.
아니면…….
‘형이 막무가내로 해서 동생이 고생하는 걸 수도 있겠네.’
현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마르코가 좀 무데뽀 기질이 강해 보이긴 했지만, 나쁜 사람은 아닌 듯했다.
단순히 활발한 사람 정도?
그게 많이 과해 보인다는 게 문제지만.
반면 동생으로 보이는 미구엘은 상당히 점잖았다.
지금도 봐라, 형인 마르코를 앞에 데려가 뭐라 하는 걸.
‘얌전히 있으라는 건가?’
현성은 그렇게 생각하고 엿들을까 하다가 거리도 멀기도 했고, 귀찮았기에 그냥 뒀다.
대충 형을 말리는 내용이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도 그리 다르진 않았다.
미구엘이 일방적으로 마르코에게 뭐라 하는 중이었으니까.
“아니, 형. 형이 쿠바계 미국인들에 대한 편견을 만들고 있으니까 제발 얌전히 좀 있어.”
“허어, 나의 동생 미겔! 그러면 못쓴다.”
“하아, 그러면 하다못해 좀 점잖은 척이라도 해봐.”
“그럴 순 없지! 그보다 동생아.”
“응?”
무언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씨익 웃는 마르코.
그걸 보며 다소 불길한 표정으로 미구엘이 그를 봤다.
그러자.
“저 샌님 같은 형제 말이다.”
“또 뭔 생각하는 거야…….”
“우리에게 적응하려면 힘들겠지?”
“당연하지, 그래서 나간 사제가 몇인데?”
“그러니까, 저 샌님을 좀 시험해 보자.”
“뭐?”
“아니, 그렇지 않냐, 우리 둘 다 HP 관리가 상당히 힘들지 않냐. 한데 저 사제가 도중에 튀어버리면 곤란하니 좀 시험을 해보자 이거지. 애초에 우리에게 먼저 다가온 거부터 수상하고!”
형인 마르코에게서 나올 만한 말치고 상당히 날카로웠다.
하지만 어떻게 자신들을 먼저 찾아준 호의에 그렇게 보답할 수 있겠나!
뭐 하는 거냐고 거절을 하려던 그때.
씨익 웃으며 묻는 마르코.
“재밌지 않겠냐?”
다만 현성이 예상하지 못한 게 하나 있다.
“그렇긴 해.”
“좋아! 해보자.”
형제는 어쨌건 닮기 마련이라는 걸.
* * *
상황만 본다면 썩 좋은 상황은 아니긴 하다.
현성은 현 상황을 살폈다.
이미 형제에게 직업 설명을 들었다.
물론 등급이나 자세하게는 말고 이미 알고 있듯 버서커와 블러드 매지션 계열이라는 것 정도만.
가뜩이나 둘 다 HP 관리가 쉽지 않은 직업들.
한데 여기가 어디였던가.
다름 아닌 흡혈 동굴!
이름처럼 흡혈 관련 몬스터들이 나오는 던전이다.
덕분에 경험치도 짭짤했다.
문제는 형제의 직업들이라는 거.
하지만 현성은 괜찮다 했다.
오히려 좋지.
무엇보다 파티가 아니면 이 던전에 들어오지도 못하니.
‘여기서 레벨 50은 찍을 수 있겠네.’
길드전에서는 경험치를 얻을 수 없었으니.
아직도 레벨은 그대로인 상태였다.
여기서 레벨 1을 올리면 새로운 스킬을 얻을 수 있으니까.
현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형제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러면 어디 한번 실력을 봐볼까?
“오우, 몬스터가 나왔습니다요.”
리베우스의 말에 마르코 역시 눈치를 챈 모양이다.
상당히 날카로운 감을 가지고 있다.
리베우스보다는 느리긴 했지만, 얼마 차이나지 않고 몬스터의 기척을 느낀 거니.
이것만 봐도 상당한 실력자임을 알 수 있었다.
무슨 스킬을 사용하는 건지 몸 주변에 핏빛 안개가 감싸지는 마르코.
두 눈마저도 붉은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빠르게 바닥을 차며 전방으로 쏘아졌다.
상당히 빠른 속도.
꽤 압도적인 능력치를 지닌 현성조차 따라하기 조금은 벅찬 속도다.
아직 몬스터는 등장도 하지 않은 상태.
하지만 알 수 있었다.
바로 저 앞에 꺾인 부분에서 곧 튀어나올 거라는 것을.
아니나 다를까 사람의 몸통만 한 거대한 흡혈박쥐가 나타났다.
“키에에에!”
찢어지는 듯한 소리를 내뱉은 녀석.
그리고 녀석이 등장하자마자 타이밍 좋게 마르코가 대검을 들어 휘두른다.
녀석은 미처 대처하기도 직전 날개 한쪽이 찢어진다.
정확히 들어간 일격.
현성은 그걸 보며 미소를 지었다.
‘좀 하는데?’
하지만 그에 비례해 빠르게 사라져가는 마르코의 HP.
그걸 보며 현성이 생각했다.
‘내 실력도 보여줘야겠네.’
현성이 그렇게 웃자.
리베우스는 그런 현성을 보며 외쳤다.
“오우! 위대하신 주인님께서 나서실 차례입니다요!”
“오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