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2부 40화
13장. 붉은 형제!(3)
혈귀.
파이튼의 인기 던전 흡혈 동굴의 메인 몬스터.
초반에 등장하는 흡혈박쥐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의 강함을 가지고 있었다.
전투 센스는 물론이오, 그 위력까지 강했으니.
오죽하면 6인 파티를 구해 하나를 겨우 상대할 정도였다.
그만큼 강력한 몬스터였다.
처음 경험하면 네임드 몬스터라 생각할 정도.
때문에 처음 혈귀를 만난 파티는 당황하여 전멸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았다.
다행인 점은 녀석들은 단독 행동을 한다는 것.
지금도 그랬다.
마르코는 자신이 상대하는 혈귀를 바라봤다.
박쥐와 같이 검붉은색의 거죽을 가지고 인간의 형상을 했다.
정확히는 흡혈박쥐인간이라고 봐야 할까?
기다란 손톱과 등 뒤에는 날개까지 있어 상당히 까다로운 녀석이다.
심지어는 혈술이라는 스킬이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분명 그래야 하는데.
‘왜 이리 편하지?’
마르코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녀석을 대검으로 밀어붙였다.
검을 그대로 팔로 막아낸다.
까가가각!
피의 갑주를 두른 녀석의 팔은 강철보다도 단단했다.
스킬을 사용해 대검을 휘둘렀지만 강철을 긁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검을 막아낸 녀석은 그대로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거대한 발로 마르코를 차내려 했다.
하나 마르코는 그걸 보며 방어구를 착용하지 않아 유연한 몸으로 그대로 허리를 젖혀 피한 후 땅을 박차 공중제비를 돌며 뒤로 물러났다.
더 있다가는 녀석에게 후속타를 입을 테니.
원래라면 이 일련의 동작들이 이렇게까지 깔끔하게 나올 수 없었다.
할 수는 있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능력치가 부족했기에.
한데 현성의 버프들로 인해 이게 가능해진 거다.
‘말이 되나 이게?’
전율했다.
압도적인 능력치 증가 폭.
이게 가능한 수치인가 싶을 정도로 놀라웠다.
그러면서도 혈귀가 달려드는 걸 보며 다시 대검을 들어 올렸다.
원래라면 강한 적에겐 부담이 되어 잘 사용하지 못했던 스킬.
흑혈.
일정 시간 동안 엄청난 힘을 주지만 그만큼 초마다 빠르게 HP를 소모하는 스킬.
마르코는 아무런 걱정 없이 흑혈을 사용했다.
온몸이 검게 물들며 검붉은 증기가 몸에서 뿜어져 나온다.
그야말로 악마를 현현시키기라도 한 듯한 모습에 혈귀의 동공이 흔들렸다.
순간 다가오는 압박.
혈귀 역시 느꼈다.
이건 직접 대면해야 자신이 패배한다는 것을.
빠르게 날개를 펼쳐 피하기 위해 허공에 떠올랐다.
“어딜!”
그와 동시에 들어오는 미구엘의 피의 가시.
상대를 속박시켜 버리는 스킬이다.
그러나 녀석은 그걸 진작 눈치챈 건지 위를 보고 돌풍을 뿜어내 피하려 했다.
혈귀의 속도라면 분명 피하고도 남을 타이밍이다.
마르코도 그걸 분명 아는데 굳이 걱정하지 않았다.
여태껏 이런 상황이 너무나 많아 왔으니.
그리고 그럴 때마다 자신의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 하얀 화살.
푹!
“크아아아아악!”
상당한 위력의 데미지로 녀석을 순간 멈추게 하고 피의 가시가 그 틈에 녀석을 속박한다.
자로 잰듯한 타이밍.
절묘하다는 말을 뛰어넘는 상황이다.
몇 번을 봐도 마르코는 이 칼같은 타이밍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다시 말해 이 칼같이 잰 타이밍을 노리고 했다는 뜻인 거다.
미구엘이 피의 가시가 딜레이 시간을 계산하고 혈귀의 움직이는 속도, 반응, 그리고 방향까지.
모든 게 손안에 놓인 것 같은 관찰력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아니.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마르코는 흑혈로 인해 빠르게 빨려나가는 HP를 바라보곤 빠르게 속박된 혈귀를 향해 뛰어올랐다.
흑혈이라는 극딜기를 킨 상황에서 낭비는 아깝지.
“크아압!”
서서서서서석!
무려 대검으로 한 호흡에 열 번 이상 휘두른다.
흑혈의 리스크로 흑혈을 사용 중 스킬도 사용할 수 없으니.
오직 자신의 움직임만으로 만들어낸 검격!
순식간에 생겨난 열 개의 혈선.
하나하나가 스킬을 사용한 것 같은 강력한 위력을 담고 있었다.
원래라면 이 열 번의 검격이 한계였다.
흑혈의 한계라면 마르코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나.
하지만 왜일까?
‘더. 더! 할 수 있을 거 같다.’
두근.
순간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호흡이라면 진작에 끝났다.
지금부터 휘두르는 건 그야말로 무호흡에서 움직이는 상당히 무리한 행동.
하지만 왜인지 마르코는 더 움직일 수 있을 거 같았다.
한계를 넘어선 움직임.
분명 현성의 버프로 인한 능력치 상승 효과임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몸이 움직인다.
서걱.
한 번.
서걱!
두 번!
서걱───!
세…….
샤샤샤샤샤샤샥!
다시 한번 이어진 열 번의 검격.
고작 한 번의 호흡에 도합 스무 번의 검격이 놈의 몸을 휩쓴다.
스무 개의 혈선이 혈귀의 온몸에 새겨졌다.
“커헉!”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공격에 당한 듯 두 눈을 부릅뜨는 혈귀.
그리고 이해가 되지 않는 건 마르코 역시 마찬가지였다.
분명 상승된 능력치는 고작해야 30%.
아니 30%도 고작이라 할 수 없는 수치임은 잘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추가로 열 번의 공격을 더 이어서 할 정도의 수치는 절대 아니다.
꿀꺽.
그렇다는 건…….
‘한계를 넘어섰다?’
자신의 컨트롤이 늘었다는 말 외에는 답이 되지 않는다.
마르코는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감정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행동이 먼저 나서는 타입.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머리를 쓰지 않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이만한 컨트롤을 가지고 있는 이들 중 머리가 나쁜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빠르게 판단한 마르코는 쉽게 결론을 낼 수 있었다.
‘성장하고 있는 거야.’
이유는 간단하다.
모두 현성 때문.
칼 같은 그 타이밍.
그리고 제때 들어오는 힐과 버프들.
그것들이 마치 답안지를 알려주듯 어떻게 움직여야 한다는 걸 알려준다.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
마르코는 도합 스무 번이 넘는 검격을 욱여넣고는 뒤로 빠졌다.
몸이 시켜서?
그런 게 아니다 현성이 힐을 넣었기에 무의식적으로 뒤로 빠진 거다.
현성이 힐을 넣었을 때는 어김없이.
미구엘의 강력한 스킬이 발동되었으니까.
“피의 역류!”
미구엘의 외침에 혈귀를 속박하고 있던 가시에서 무수히 많은 가시들이 솟아났다.
검격에 이어서 강력한 공격에 당한 녀석은 당연히 고통에 두 눈을 부릅떴다.
푸욱!
“커헉!”
힐이 들어오자마자 뒤로 빠졌더니 미구엘의 스킬이 완성이 되었다.
반복으로 인한 마르코의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현성의 지시가 들린 듯 행동을 한다.
그리고 그 지시는 그 어떠한 답안지보다도 정확했다.
이게 말이 되는가.
서포터가 할 수 있는 영역의 일일까?
‘대체…….’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일을 겪은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마르코가 순간 그 얼빠져 있는 순간.
“크하아악!”
혈귀가 속박에서 풀려났다.
고속으로 이동하는 녀석.
녀석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이, 이런!”
“혀, 현성 님!”
마르코가 잠시 딴생각에 사로잡혀있었을 틈을 노린 절묘한 한 수.
그리고 혈귀의 판단은 옳았다.
‘사제가 머리다!’
모든 것이 사제의 손에 놀아나고 있다는 걸 방금의 공격에 깨달을 수 있었다.
곧 죽기 직전의 모습이었지만, 괜찮다.
저 사제를 죽이면 모든 걸 회복할 수 있을 거다.
혈귀는 그렇게 생각했다.
정말 뛰어난 생각과 전투 센스가 아닐 수 없었다.
즉흥적으로 생각해서 짜낸 임기응변.
정답에 가까웠다.
가장 정석적이고 가장 옳은 답.
물론 현성을 녀석이 죽일 수 있다면 말이다.
“타오르는 빛.”
순간 발동한 스킬에 혈귀는 움찔거렸다.
테라 교단의 희귀등급 공격 스킬.
혈귀가 그것에 대해 당연히 알 리는 없었다.
하지만 스킬 자체에서 느껴지는 격을 느끼고는 피식 웃었다.
고작해야 이런 낮은 격의 공격에 자신이 죽을 리가 없다.
그리 판단하고 빠르게 현성의 목을 움켜쥐려 했다.
목을 잡히기 직전, 빛이 내렸다.
고작해야 미약한 빛.
견디고 녀석의 목을 꺾으면 그만이다.
한데 왜일까?
왜……?
파사사사사삭.
온몸이 타들어 간다.
그리고 바스라져 간다.
재로 변해가는 자신의 몸을 보곤 혈귀는 입을 열었다.
“……아아.”
그게 마지막이었다.
현성의 목을 꺾으려던 손은 그대로 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졌고, 그대로 재로 변해 사라졌다.
고작 스킬 한 방에 혈귀가 죽었다.
물론 그 전까지 미구엘과 마르코가 미친 듯이 공격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제의 공격 스킬에 마무리가 된다고?
“…….”
“…….”
마르코와 미구엘은 그걸 멍하니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여태까지 대부분의 몬스터들이 현성의 공격을 맞고 치명적인 데미지를 입긴 했었다.
한데 이 정도로 강하다고?
아무 말도 없이 현성을 바라보는 형제를 보며 리베우스가 싱긋 웃었다.
마치 우매한 불신자를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놀랄 만합니다요! 오우!”
리베우스가 그렇게 말할 때 현성은 그저 자신의 옷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아무래도 바로 앞에서 혈귀가 재로 변하다 보니.
먼지가 꽤 쌓인 모양.
훌훌 털곤 현성도 슬며시 웃으며 형제를 봤다.
그러곤 입을 열었다.
“설마 지치신 건 아니시죠?”
“……예? 아, 네.”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형제님.”
미구엘도 마르코도 겸손해진 모습을 보며 현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가시죠.”
“오우!”
현성이 그렇게 말하자 형제는 서로를 한번 바라봤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건 느꼈지만.
둘은 어쩔 수 없다는 걸 느끼곤 외칠 수밖에 없었다.
“오, 오우.”
“오, 오우우!”
형제의 모습을 보며 리베우스는 아하하! 웃으며 더 힘차게 외쳤다.
“오우!”
이상한 짓을 하는 리베우스를 말리고 싶긴 했지만.
굳이 그러진 않았다.
[당신의 충직한 사도이자 펫인 ‘리베우스’가 포교 활동을 시행했습니다.]
[파티원들이 당신의 위대함을 조금이나마 깨닫습니다.]
[유저를 신도로 만들었습니다.]
[스킬, ‘신의 권위’로 신성력이 상승합니다.]
[신성력 능력치가 10 상승합니다.]
[신성력의 총합이 150을 넘어 새로운 신성 스킬을 획득합니다.]
[다섯 개의 스킬 중 원하는 신성 스킬을 고르십시오.]
오히려.
‘잘한다, 리베우스.’
* * *
3시간.
처음 혈귀를 만나고 보스까지 잡는데 걸린 시간이었다.
흡혈박쥐 구간을 넘기는 데까지 30분 걸렸으니.
토탈 3시간 30분 정도.
파이튼의 흡혈 동굴 최고 기록은 다름 아닌 8시간이었다.
그걸 아득히 뛰어넘은 마르코와 미구엘 형제의 감상?
“우워에에우오워어억!”
“웩! 우웨에에에엑!”
보스를 잡고 보상을 얻은 뒤에 둘이 나란히 고개를 숙이며 토악질을 하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게임이라 토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토하고 싶은 심정만큼은 진짜였다.
‘주, 죽는 줄 알았어.’
‘서, 성장도 심하면 이렇게 괴로운 거일 줄이야.’
현성의 서포팅대로 딸려가다 보니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하지만 형제는 기뻐하지 않았다.
다시 하라고 한다면?
컨트롤이 는 걸 생각하더라도 고심할 정도.
둘 다 그렇게 헛구역질을 하는 걸 보며 현성은 피식 웃었다.
“두 분 다 수고하셨습니다.”
“우우우우워어그, 아, 아닙니다, 혀, 현성 님이야말로 수고하셨습니다.”
“우웩! 으으, 지, 진짜 수고하셨습니다.”
둘 다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현성은 속으로 생각했다.
극한까지 밀어 넣긴 했지만, 둘 다 잘 따라와 줬다.
덕분에 새로운 스킬들은 질릴 때까지 실험할 수 있었다.
‘이걸로 서포트는 거의 완벽하네.’
현성의 생각을 들었다면 미구엘과 마르코가 기겁을 했을 생각이었지만.
다행히 말로 꺼내진 않았다.
물론 그게 다가 아니었다.
드디어 레벨 50을 달성해 새로운 스킬을 얻었다는 거.
신성 스킬도 골라야 하지 않는가.
잠깐 확인하긴 했지만, 제대로 확인하진 않았기에.
형제와 헤어지고 확인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현성이 형제에게 먼저 말을 하려던 순간.
“후우, 현성 님 혹시 친구 추가 할 수 있을까요?”
“저도 부탁드리겠습니다, 형제님.”
미구엘과 마르코가 동시에 말해왔다.
“어……?”
그렇게 글렸는데 친구를 하자고 한다?
의외긴 했지만.
“근성이 있는 불신자들이군요.”
리베우스가 소곤거리며 말했다.
현성도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좋습니다.”
그렇게.
[유저, ‘마르코’ 님의 친구 요청을 수락하셨습니다.]
[유저, ‘미구엘’ 님의 친구 요청을 수락하셨습니다.]
로스트 이데아 첫 친구들이 생기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