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2부 44화
14장. 첫 레이드(1)
로스트 이데아에서 초짜를 뗐다고 한다면 보통 레벨 50을 찍은 후를 의미하는 것이다.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가 있는 때기도 하니까.
대부분의 직업이 레벨 50 때 2차 전직을 하곤 하니.
레벨 1 때도 전직을 할 수 있는 1차 전직과는 궤를 달리하긴 했다.
조금 더 직업별로 전문화되어 가는 과정.
그리고 레벨 5 단위마다 얻었던 스킬도 이제는 레벨 10단위마다 받게 된다.
당연히 그만큼 더 강력한 스킬을 얻게 된다.
그게 2차 전직이었다.
하지만 간혹 높은 등급의 직업들 중 2차 전직이 없는 직업들이 있곤 했다.
현성의 타나노스처럼 말이다.
‘타나노스의 후예 때도 좀 그랬지.’
이데아 때 현성이 레벨 50을 찍었을 때는 퀘스트가 생겼건만.
이번에는 그런 것도 없었다.
레벨 50을 찍었지만, 2차 전직은커녕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꼴랑 레벨을 찍고 얻은 스킬이 전부다.
그렇다 한들 현성은 불만을 가지진 않았다.
초반부터 이런 오밸급 스킬들을 얻었는데.
여기에 불만을 가지면 나가 죽어야 한다.
무엇보다 변화가 없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어떤 직업보다도 변화가 컸다.
콰────앙!
강렬히 울리는 충돌음.
4m에 달하는 거대한 육체를 가진 흰 털북숭이의 거인이 내려찍은 주먹을 그대로 방패로 막아냈다.
원래라면 찌부러지든가, 짜부가 되든가 해야 할 모습이었으나 견뎌내는 모습.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에 흰 털북숭이 거인조차 눈을 끔뻑거렸다.
현실이 인지되지 않은 모양.
현성은 그런 거인에게 땅을 박차고 간격을 좁혔다.
파앗!
흰 눈발이 날리며 주변에 폭풍이 휘날린다.
고작 거리를 좁히기 위해 달려든 것에 불과했건만.
엄청난 속력.
가뜩이나 그리 멀지도 않은 거리였기에 거인은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체구의 차이는 여전히 막대하다.
그럼에도 현성은 그대로 거리를 좁혀 녀석의 무릎을 향해 창을 내질렀다.
고작 한 손으로 내지르는 창의 위력이 얼마나 세겠는가.
거인조차 그렇게 생각하며 굳이 방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격을 위해 다른 손을 들어 올려 현성의 공격 후 그대로 주먹을 꽂으려 준비했다.
하지만.
푸슛!
처음 현성이 내지른 창에 무릎을 그대로 꿰뚫렸다.
고작해야 한 손으로 내지른 창이건만.
이만한 위력이 나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대로 무릎을 관통당할 줄이야.
하지만 아직 괜찮다.
관통당하긴 했지만, 압도적인 데미지는 아니다.
조금만 참고 반격을 넣는다면 우위를 점할 수 있으리라.
거인은 그 판단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현성이 땅을 구르며 창을 그대로 회전시키기 전까진.
콰득!
“크아아아아아악!”
그렇게 창대와 창날이 맹렬히 회전하며 그대로 거인의 무릎에 거대한 구멍을 만들었다.
순간적으로 회전시키며 녀석의 무릎을 그대로 갈아버린 거다.
압도적인 무력.
이게 어찌 나약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무력이던가.
거인은 혼란스러웠다.
이 고통은 무엇이고, 자신의 앞에 있는 현성이 거짓처럼 두려워졌다.
고작해야 자신의 몸의 절반도 되지 않는 난쟁이이건만.
그 순간 녀석은 악몽에 빠지듯 두 눈의 초점이 사라졌다.
[타나노스의 악몽이 발동했습니다.]
[설인이 상태이상 악몽에 걸렸습니다. 5초간 환각과 고통을 느낍니다.]
쿠웅.
거대한 구멍이 뚫린 무릎뿐만이 아닌 다른 쪽 무릎까지 그대로 땅에 꿇리고 말았다.
낮아진 녀석의 시점.
하지만 그럼에도 높은 건 매한가지였다.
현성은 그런 녀석의 모습을 보며 방패를 앞세우고 창을 살짝 뒤로 젖혔다.
그러곤 그대로 녀석의 머리를 향해 박차 올랐다.
파앗!
현성이 서 있던 자리에 풍압으로 인한 눈발들이 흩날리며 폭풍을 일으켰다.
세차게 뛰어오른 현성은 그대로 외쳤다.
“신성 돌진.”
신성한 빛이 깃들며 날아가던 속력에 더해 더 빠르게 녀석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하나의 유성처럼 날아든 현성의 모습.
그리고 그대로 창을 맹렬하게 회전시킨 그대로 숨을 들이마셨다.
“스읍!”
숨을 내뱉기 직전!
그대로 창을 내지른다.
현재로서 낼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 내지르는 창격.
맹렬히 회전하는 창날이 그대로 허공을 갈랐다.
휘────────잉!
현성과 창이 녀석의 머리에 도달하기 직전.
녀석이 정신을 차린 듯 두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바로 눈앞에 놓인 창과 그 창을 내지르고 있는 현성.
그걸 보며 거인, 아니, 설인은 생각했다.
저자는 인간이 아니라고.
신이라고.
콰────득!
머리가 터져 녀석의 몸이 재로 변해 눈 위로 흩날렸다.
흰 눈 사이로 흩날리는 재의 모습이란 썩 나쁘진 않았다.
“휘우. 생각보다 힘드네?”
“오우! 그럼에도 엄청나게 멋있습니다요!”
“고맙다.”
잘 싸우긴 했지만, 아직도 어딘가 아쉽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현성.
그리고 그런 현성에게 여전히 칭찬을 날리는 리베우스였다.
하지만 리베우스의 말이 맞긴 했다.
당장의 현성의 모습을 보고 부족하다 생각하는 이는 적을 거다.
물론 당사자의 생각은 좀 다르긴 했지만.
풀플레이트 갑옷을 착용해서 그런가.
갑갑한 느낌이 강하긴 했다.
무엇보다 스타일 변화가 매우 컸다.
“원래 날뛰듯이 싸우는 거보다는 확실히 갑갑하긴 하다.”
“자유분방하신 주인님의 스타일과는 확실히 다르기는 합니다요. 이전에는 정말 자유 그 자체라 한다면 지금은 그 어떤 성기사보다도 고결한 성기사의 모습입니다요!”
“흐음,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남들도 완전 다르다고 생각하긴 하겠다.”
“오우! 도움이 되어 좋다는 것입니다요!”
리베우스의 말에 현성은 피식 웃었다.
현재로선 그 누구보다 뛰어난 눈을 가진 게 리베우스니까.
적어도 이런 걸로는 아첨이나 과장되게 말하진 않는다.
그러니 리베우스의 말이 맞을 거다.
당장은 누가 보더라도 고결한 성기사의 모습이긴 할 거다.
그러면 좀 안심이긴 하지만.
현성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조금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더 발전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니. 더 생각해 보자.’
아무래도 이런 성기사 역할이 좀 어색해서 그런가.
창 자체는 익숙하지만, 창을 쓰는 쓰임새 자체가 다르고 방패를 쥐고 싸우는 건 또 많지 않아 어색한 탓이 컸다.
적응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아직은 적응하는 데 좀 걸릴 거 같다.
‘당분간 빡세게 사냥이나 해야겠네.’
그래서 이곳으로 온 거기도 했다.
현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에 보이는 거라고는 새하얀 눈밭과 눈 덮인 산, 그리고 침엽수들이 가득한 숲들.
그야말로 설산이라 할 수 있는 지형이었다.
이곳은 다름 아닌 룬 제국의 최북단 쪽에 위치한 곳이었다.
처음 온 곳의 도시 이름이 뭐라고 했었는지도 기억 안 나는 곳.
사람들을 피해 최대한 이쪽으로 온 거라 굳이 기억하진 않았다.
거기다.
‘도시에서도 엄청 멀어졌네.’
분명 처음만 해도 도시의 성벽이 보이긴 했었으나.
지금은 아무리 멀리 보려고 해도 보이지도 않았다.
하긴 현성의 능력치로 무려 5시간이나 사냥을 하며 돌아다니지 않았나.
그러니 보일 리가 있겠나.
돌아가기는 위치도 어딘지도 모르니.
이렇게 된 거 쭉 사냥해야 하나.
라고 현성이 생각하던 순간.
“허어어어억!”
어디선가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도 잔뜩 놀랐다는 사람의 목소리가.
유저인가?
현성은 그렇게 생각하고 그쪽으로 몸을 돌리자.
누가 봐도 심마니처럼 생긴 중년 아저씨 하나가 현성을 보며 부르르 몸을 떨고 있었다.
NPC다.
어떻게 봐도 NPC였다.
오히려 잘된 건가.
근처에 있는 마을로 갈 수 있을 테니.
현성이 그렇게 잘되었다고 생각하자.
심마니 NPC는 현성을 보며 부르르 떨며 말했다.
“서, 설인을 그, 그렇게 쉽게 죽이다니!?”
“……?”
“오우?”
현성도 리베우스도 의문이 들어 아저씨를 보자.
아저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젓는다.
잡으면 안 되는 몬스터기라도 했나?
아니, 그런 반응이기에는 너무나도 동경? 선망? 그런 눈빛이 강하다.
“저, 정말이지 영웅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이, 이 팔락! 감복했습니다!”
그러면서 대뜸 절을 하는 아저씨.
리베우스는 그런 아저씨를 흘깃 보곤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우! 뭘 아는 불신자군요.”
겉으로 보기엔 새가 고개를 까딱거리는 것만 볼 수 있었을 거다.
펫 장비가 두꺼워 목소리도 현성만 들을 수 있었고.
아무튼 현성은 그런 아저씨를 보며 뭐라 해야 할까 하다.
먼저 아저씨가 선수를 쳤다.
“아이고! 어느 교단의 높으신 성기사님이신진 모르겠지만, 정말 영웅의 면모가 풍겨오는 걸 보니. 이 팔락이 인사를 드리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별거 아니오.”
그래도 성기사의 컨셉이니.
조금은 고압적인 말투를 선택해 조용히 말했다.
하여튼 이런 컨셉에는 나름 진심인 현성이었다.
어쨌거나.
그런 현성의 말을 듣고는 팔락이라는 아저씨는 오오! 하면서 정말 신나했다.
“오오오! 역시 영웅다운 면모입니다!”
과장된 억양까지는 아니다.
진심으로 저렇게 생각해서 나오는 느낌이다.
하지만 저렇게까지 반가워할 이유가 있나?
잠시 생각하던 현성은 피식 웃었다.
굳이 저렇게까지 하는 덴 이유가 있을 게 분명하다.
게임에서 그런 이유가 있으면 뭐가 있겠나.
이유는 몰라도 그 결론은 하나다.
‘퀘스트다!’
퀘스트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대충 이곳에서 이틀 정도 사냥하고 파이튼으로 돌아가 시장 퀘스트를 하려 했다.
한데 여기서 그냥 사냥만 하는 것보단 확실히 퀘스트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현성이 어떻게 말을 꺼낼까 고민하고 있을 때.
팔락이 일사천리로 진행해 주었다.
“방금 그 설인 녀석 때문에 이 주변의 약초들을 채취하기 힘들었었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이거 그냥 보내드리기보다는 저희 마을로 가서 보답을 드리고 싶은데…….”
말끝을 흐리며 괜찮으냐는 듯 눈치를 보는 팔락.
오히려 현성이 부탁하고 싶을 정도였는데 너무 좋았다.
“좋소. 가도록 하지.”
“오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신이 나 먼저 안내를 하겠다며 나서는 팔락.
그리고 그런 그를 뒤따르는 현성과 리베우스.
리베우스도 느낀 건지 조용히 현성에게만 들리게 말했다.
“오우, 뭔가 있어 보입니다요.”
“…….”
현성은 굳이 답하지 않고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근엄한 컨셉이니 말수를 최대한 줄인 거다.
리베우스는 그런 현성을 보며 대신해서 조용히 말을 전했다.
“악인으로 보이지는 않으나 주인님을 보고 간절한 무언가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요. 필히 마을에 관련된 무엇이겠지요.”
현성 역시 그리 생각했다.
그리고 이어진 리베우스의 말에 현성은 자기도 모르게 아찔해지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그 마을의 곤란함을 처리해 준다면 주인님의 신도 역시 늘겠군요! 제가 분장을 하긴 했어도 주인님의 위대함은 잘 전파되리라 믿습니다요! 오우!”
벌써부터 어지러워지는 현성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새 분장을 해서 얌전히 있는 리베우스라는 거였다.
이래서는 사고를 치고 싶어도 못치겠지.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