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2부 45화
14장. 첫 레이드(2)
“자, 성기사님. 여기가 저희 마을 다온입니다.”
“…….”
현성은 팔락의 소개에 들어온 마을을 봤다.
사실 마을이라고 하기도 다소 초라한 느낌의 규모이긴 했다.
흔히 마을이라 함은 최소 50가구 이상이 있어야 한다.
50가구도 좀 적은 느낌.
한데 이곳은 그보다도 못했다.
얼핏 보더라도 20가구가 채 되지 않을 거 같은 작은 규모의 마을.
이런 마을이라면 확실히 성기사라는 전력이 상시 거주해도 부족할 수준일 터.
‘연계 퀘스트려나?’
오히려 좋다고 생각하며 현성은 투구 속에서 슬며시 웃었다.
연계 퀘스트면 경험치도 좋고 보상도 나쁘지 않으니까.
이런 작은 마을에서 얻을 수 있는 보상이 뭐가 있겠느냐만.
그럴수록 시스템이 더 챙겨줘서 경험치라든가 더 좋은 걸 얻을 수 있게 마련이니.
보상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현성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온 마을을 살폈다.
작기는 해도 상당히 아름다운 마을.
사방이 눈에 휩싸여 척박한 곳이라는 느낌은 강하긴 했지만.
그만큼 자연의 아름다움과 잘 공존하는 마을이었다.
다만, 마을 사람들의 표정이 그리 밝지 못했다.
‘환경 때문은 아닌 거 같은데.’
행색을 보아하니 최근에 무슨 일이 벌어진 모양이다.
리베우스도 그걸 느낀 건지 슬며시 현성에게 입을 열었다.
“오우, 주인님. 어쩐지 마을에 큰일이 있는 모양입니다요. 아무래도 몬스터의 영향인 듯합니다요.”
“…….”
현성도 그 말에 동의를 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흔히 저런 식의 행색이라면 먹을거리를 구하지 못한 것이니.
척박하긴 해도 이곳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들이다.
원래도 먹거리를 구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갑작스럽게 무언가가 바뀐 거다.
나름대로 현성이 추측을 하고 있을 때.
팔락이 큰소리로 마을 사람들을 보며 외쳤다.
“여! 나와보소! 여! 이 성기사님께서 설인을 아주 그냥 묵사발로 만들어버렸다니까!? 다들 나와봐! 촌장님도 나와보세요!”
“뭐? 그 설인을?”
“설인을 묵사발로?”
“허어, 엄청난 성기사인 모양이군.”
팔락의 큰 외침에 마을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몰리기 시작했다.
점차 모였지만, 그럼에도 인원은 그리 많지 않았다.
고작해야 서른 명쯤 되어 보이나.
20가구보다도 적은 모양이다.
어쨌든 그렇게 모인 사람들 중 가장 나이가 있어 보이는 노인 하나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연배는 있어 보이지만, 몸 자체는 상당히 튼튼한 노인.
액면가로는 예순은 되어 보였지만, 저런 몸이라면 더 될 수도 있겠다.
“당신이 설인을 잡으신 성기사십니까?”
“…맞소.”
촌장으로 보이는 노인의 물음에 현성이 대답했다.
그래도 과묵한 컨셉은 유지하되 무례하지는 않게 딱 그 정도의 선을 유지했다.
촌장은 그런 현성을 보며 눈에 띄게 화색을 보였다.
아무래도 그간 힘들긴 했던 모양.
현성이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저렇게 화색을 보일 줄이야.
하긴 설인을 잡았다면 상당한 실력자임은 틀림없을 테니.
저리 좋아하는 거겠지.
‘생각해 보니 설인이 레벨 70쯤 되는 몬스터였지?’
정확히는 70 중반대의 몬스터였다.
아무리 높게 쳐준다 해도 레벨 50이 쉽게 잡을 만한 몬스터는 아니었다.
모두 현성의 압도적인 능력치 덕에 가능하게 한 일.
거기에 컨트롤은 필수 조건이고.
현성을 보고 촌장이 기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만한 마을에 레벨 70대 몬스터를 가볍게 쓰러뜨리는 성기사가 온다?
축제를 열어도 과언이 아닌 일이다.
보통 이런 곳에는 사제나 성기사가 파견되긴 쉽지 않았으니.
현성이 그렇게 대답하자 팔락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거 뭐라고 했냐며 사람들에게 으스대기 시작했다.
“험험! 우선 이런 척박한 마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고맙소.”
“이리 찾아온 것도 감사한데, 혹 어느 교단에서 오셨습니까?”
대놓고 직구였다.
현성은 그 물음에 잠시 고민했다.
없다고 하는 건 사실상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칭하는 것도 좀 그렇긴 하고.
거기다 갑옷에 문양도 없지 않았나.
여기서 뭐라 둘러댈까 고민하다.
마침 떠오르는 곳이 한 곳 있었다.
“테라 교단이오.”
“오오! 테라 신이시여!”
“우리를 구원하시옵소서.”
“아아! 테라시여!”
“드디어!”
모두가 희망이 가득 찬 표정으로 하늘을 향해 기도를 올리는 모습에 현성은 조금 당혹스러워했지만, 이해는 됐다.
최북부라고 해도 이곳도 엄연한 룬 제국.
그리고 룬 제국의 국교는 테라 교단이었다.
저런 반응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섬기던 신의 성기사가 찾아왔건만.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현성도 그걸 생각하고 미소를 지었다.
투구에 가려져 누구도 볼 순 없었지만.
한데 그때.
촌장이 조심스러운 눈으로 현성의 두 손을 꼭 붙잡고 간절한 눈으로 말했다.
“부디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무슨 일이오?”
너무 간절해 보여 뭐라 거절할 수도 없었다.
애초에 도와주러 온 거기도 하고.
그렇게 촌장의 말을 듣자.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것도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를.
“다름이 아닌 두 달 쯤 전, 저기 보이는 산 쪽에 몬스터 하나가 자리를 잡고 말았습니다.”
“몬스터?”
“예, 그것이 아주 독하고 아주 강력한 몬스터입니다. 일대를 자신의 영역으로 만들자 영역에서 밀려난 설인들이 저희 마을 근처까지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아아.”
현성은 그제야 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된 거였군.
다 알 수 있었다.
원래 강력한 몬스터가 일대에 자리를 잡으면 몬스터들의 영역에 크게 지각변동이 생기고 만다.
애매했던 애들이 점점 밀려나고, 그러면서 원래 산을 다스리던 몬스터가 산 아래로 내려오기도 하지 않던가.
보통의 퀘스트들의 패턴이기도 했다.
생각보다 클리셰적인 패턴에 살짝 김이 빠지긴 했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퀘스트긴 하지.
‘이 마을을 구하면 또 신성력을 얻겠네.’
새로운 스킬에 굶주려 있던 터라 더 끌렸다.
이제 그럼 퀘스트를 받을 차례인가.
현성이 그렇게 기대하고 있던 찰나.
촌장이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허허허! 이렇게 성기사님이 오셔서 참 다행입니다. 혹시 교구의 추가적인 지원도 있는 것입니까?”
“……그게 무슨 소리요?”
“예? 그, 그것이…….”
무슨 소리냐는 듯 되묻는 현성의 말에 오히려 촌장이 당황했다.
왜 자신에게 되묻느냐는 듯이.
얼마 지나지 않고서 자신이 채 다 설명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초조해서 그랬던 모양이다.
“성기사님의 실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옵니다만, 아무리 설인을 가볍게 묵사발 내셨다고 해도 이 녀석은 힘드십니다.”
“허어.”
“기분이 나쁘셨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 녀석의 정체를 듣는다면 성기사님께서도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차리실 겁니다.”
도대체 무슨 몬스터길래 저러는 걸까.
현성은 궁금해서 촌장의 말에 집중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촌장의 말.
“레서 드레이크입니다.”
“레…서 드레이크?”
그 이름을 듣고 현성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레서 드레이크라면 저런 반응도 이해가 된다.
현성도 로스트 이데아를 잘 아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몇몇 보스들을 익히 들어 아는 녀석들이 있긴 하다.
드래곤의 아류 종인 드레이크, 그리고 그런 드레이크의 아류 종인 레서 드레이크.
듣기만 한다면 아류의 아류가 뭐가 무섭느냐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레벨 80대의 레이드 보스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금의 현성으로서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그런 몬스터.
그러기에 현성은 더 웃었다.
정말 감당할 수 없을까?
그런 호기심이 들었기에.
“레서 드레이크라면 아무리 성기사님이라고 한들 힘드실 겁니다. 그래서 교단의 지원을 여쭈었던 것입니다.”
“……확실히.”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하자.
촌장의 표정도 그제야 좀 편해졌다.
감히 성기사의 분을 샀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이니.
철저한 계급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는 눈치였다.
현성이 그럴 리가 없긴 하지만.
NPC인 그들이 그걸 알 리가 없지 않나.
심지어 꽤 단호한 말투를 고사하고 있는 현성이었기에.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현성이 동의를 해주니 그제야 촌장도 편해졌다는 듯 다시 말했다.
“그러니 교단에….”
하지만 촌장의 기대와 달리.
촌장의 말을 끊고 현성이 고개를 저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그렇게 잘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
갑자기 고개를 젓는다니.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것일까?
그런 생각에 촌장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현성은 그런 촌장을 보며 괜찮다는 듯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시오. 교단의 지원은 필요 없소. 나 혼자면 충분하니.”
강직하다 못해 확신에 가까운 어조다.
그 무엇도 흔들 수 없다는 신념까지 느껴지는 목소리.
촌장과 마을 사람들 모두가 그 목소리에 순간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너무나도 강직하고 너무나도 올곧은 신념에 놀라서.
하지만 신념과 현실은 다른 법.
“하오나 성기사님이 그러시다 혹여나 실수라도 하신다면…….”
최대한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노력하는 촌장.
그렇게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분노한 녀석이 이곳으로 오기라도 한다면 저희는 다 죽는 몸입니다. 부디.”
촌장의 말에도 상당히 일리가 있다.
아니, 일리를 떠나 저게 맞는 말이다 사실은.
레이드 보스가 괜히 레이드 보스겠는가.
현성도 잘 알고 있다.
지금은 좀 무모하게 나가는 것이라고.
하지만 여기서도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그러기에 그런 촌장을 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나를 시험해 보시오.”
“예, 예? 그, 그게 무슨?”
“나를 시험해 보라 했소. 레서 드레이크를 잡을 수 있는지 시험해 보라는 말이오.”
그 말에 조금은 분위기가 바뀌긴 했다.
완전히 고집을 부리는 게 아닌 자신이 실력이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겠다 하는 거 아닌가.
마냥 고집을 부리는 것보다 실력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하는 게 훨씬 믿음직스럽지 않은가.
지금 현성도 그랬다.
다들 그 말에 웅성거리더니 무언가 의논을 한다는 듯 촌장을 포함해 여럿이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현성 앞에 선 촌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그렇다면 레서 드레이크에게 패배하고 물러난 설인 전사를 사냥해 오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조심스럽게 묻는 촌장을 보며 현성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주 쉬운 일이군.”
마치 그런 건 하나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
그런 현성을 보며 리베우스도 외쳤다.
“오우!”
역시 불신자들이 뭘 모른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퀘스트가 떠올랐다.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워럭입니다.
외전과 2부 포함해서 잠만 자도 랭커가 벌써 400화가 되었네요.
독자님들 덕분에 저 역시 잘 올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뭔가 뜻깊네요 이런 날 연참이라도 해야 하는데 비축을 남겨야 하기 때문에 그러지 못한 게 죄송합니다 ㅠ
앞으로 500화 600화가 넘도록 더 재미있고, 더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PS-그리고 혹시 자신의 닉네임을 캐릭터나 지역명으로 써주길 바라시면 댓글 남겨주십쇼! 이름 짤 때가 제일 어렵더라고용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