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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만 자도 랭커 2부-47화 (373/472)

잠만 자도 랭커 2부 47화

15장. 고결한 성기사(2)

뻔하지만 그냥 싸우는 것보다 무언가를 지키면서 싸우는 게 배 이상 힘들다.

누구라도 공감할 거다.

하지만 현성은 그 반대였다.

‘오히려 할 만하네.’

현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앞에 있는 설인을 바라봤다.

최소 4m는 되어 보이는 거구.

흰 털북숭이의 모습에 지레 겁을 먹을 법도 하지만 현성은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앞으로 나아갔다.

이미 이곳까지 오면서 만나온 설인이 몇이던가.

질릴 대로 만나봤다.

물론 뒤에 있던 하르칸은 아닌 모양.

창을 쥔 두 손이 벌벌 떨리는 걸 보니 설인을 감당하긴 아직 이른 모양이다.

괜찮다.

애초에 현성은 하르칸을 전력으로 생각하고 데려온 게 아니었으니까.

“크워어어! 인간! 죽인다!”

약간의 지성이 있어 함성을 외치는 설인.

현성은 그런 설인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설인 역시 거대한 몸을 이끌고 점점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녀석이 노리는 건 현성이 아니었다.

오히려 강해 보이는 현성보다는 약한 하르칸을 노리고 달린다.

아까도 말했듯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곤란해했을 거다.

무언갈 지키면서 싸운다는 건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으니.

배 이상 힘들다는 것도 과언이 아니건만, 현성은 오히려 좋다는 듯 마찬가지로 설인에게 달렸다.

‘약한 녀석을 먼저 공격하려 하네.’

포악한 설인의 습성은 강자보다는 약자를 먼저 유린하기 위해 움직인다.

아무래도 이게 본능인 모양.

때문에 현성보다도 먼저 하르칸을 죽이려 달려드는 거다.

덕분에 유도하기는 훨씬 쉬웠다.

어그로를 끌어주는데 쉽지 않을 수가 있겠나.

현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녀석이 돌진하는 걸 그대로 방패를 들이밀고 뛰어올랐다.

그리고 스킬을 사용했다.

[신성 돌진]

현성에게 있는 거의 유일한 성기사 전용 스킬.

그대로 설인과 충돌한 현성.

하지만 오히려 밀리는 건 설인이었다.

힘이나 체구, 어디를 보나 설인이 아닌 현성이 밀려야 하건만.

오히려 밀려난 거다.

“크워억? 윽?”

꽤 큰 충격에 신음을 내뱉으며 자신이 뒤로 밀리는 걸 이해하지 못한 설인.

현성은 그런 설인을 보며 바닥에 착지함과 동시에 튀어 나갔다.

아직 설인 녀석이 채 자세를 잡기도 전.

녀석에게 돌진해 빠르게 창을 꼬나쥐었다.

그리고 달리는 속도와 함께 창을 잠시 뒤로 젖혔다 그대로 투창한다.

콰아아아──!

맹렬히 회전하는 창날이 그대로 설인의 복부를 향해 날아든다.

스킬도 아닌 일반 투창임에도 맹렬히 회전하는 창의 모습은 몹시 위협적으로 보였다.

설인조차 저것에 맞는다면 무사하진 못하리라.

순간적으로 그렇게 판단한 설인은 불안정한 자세로 빠르게 두 손을 모아 창을 향해 겹쳐냈다.

어떻게든 방어하기 위해 허연 기운으로 두 팔을 보호하는 설인.

설인의 스킬 빙결화였다.

몸의 일부를 얼음처럼 단단하게 빙결시켜 공격력과 방어력을 높이는 스킬.

어떻게든 현성의 창날을 막기 위해 두 팔을 겹치는 걸로 모자라 스킬을 사용했다.

그리고 그 판단이 옳았다.

까가가가가가가각──!

쿠웅!

“크억!”

빙결화를 걸었음에도 두 팔이 찢겨 나가는 고통이 느껴진다.

어떻게든 두 팔이 찢기는 건 막아냈으나 그대로 투창에 밀려 바닥을 구를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체구였으나 가뜩이나 강하던 투창을 불안정한 자세로 막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쿵! 쿠쿵! 쿵!

물수제비처럼 바닥에 튕기며 바닥을 굴렀다.

투창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

상당한 데미지를 입고 볼썽사납게 바닥을 굴렀으나, 그래도 괜찮다.

하나뿐인 창을 녀석이 버렸으니.

이만한 위력을 내는 투창이었다면 필히 강력한 무기였을 터.

그런 무기를 내던지다니.

어리석기도 짝이 없다!

혹시라도 회수할까 자신이 어떻게든 쥐고 바닥을 구르지 않았던가.

이로써 현성의 공격 수단은 사라졌다.

설인은 분명 그렇게 생각하며 고통에 젖은 몸을 힘겹게 일으켰다.

어떻게든 이 틈을 노려 현성을 공격하기 위해.

한데 어째서일까.

“그, 그워억? 무, 무슨!?”

“…….”

묵묵히 창과 방패를 쥐고 다시 달려드는 현성을 보며 설인의 두 눈이 미친 듯이 떨려왔다.

분명 창은 자신에게 던지지 않았던가.

동공이 떨려오는 설인을 향해 달려드는 현성.

그는 그대로 다시 한번 창을 꼬나쥐곤 녀석에게 돌진했다.

설인 역시 그걸 보고 어떻게든 자세를 취하려 했다.

하지만 다시 한번 그 투창이 날아오면?

막을 수 있을까?

설인은 자신의 두 손을 바라봤다.

찢겨 나가지 않았을 뿐이지 사시나무 떨리듯 떨려오는 두 손을 바라봤다.

“아, 아아.”

설인은 그리고 깨달을 수 있었다.

다시 한번 투창이 날아온다면 적어도 팔 하나는 날아갈 거다.

빙결화를 하더라도 말이다.

이리도 볼품없이 당할 수가 있단 말인가?

인간 따위에게!

분노에 온몸에서 열이 끓어오르는 걸 느꼈다.

이대로 있다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이 유린당하리라.

유린당하는 것은 약자의 역할.

자신은 절대 약자가 아니다!

설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두 눈을 부릅떴다.

부릅!

세차게 떨리던 동공도 거짓말처럼 멎어 들었다.

두 팔 역시 최대한 떨리는 걸 억제하며 설인은 생각했다.

현성의 저 투창 공격으로 팔 하나를 희생한다.

그리고 달려들어 녀석을 남은 주먹으로 짓뭉개 버리리라.

반드시!

필사의 각오를 다진 설인이 그대로 부글거리는 눈을 한 채로 달려드는 현성의 창을 막아내려 했다.

당연히 두 팔에 걸린 빙결화가 어떻게든 조금은 버텨줄 거다.

한 팔을 희생하기로 했지만 아무런 대비가 없다면 밀려날 테니.

“…….”

현성은 그런 설인을 보며 그대로 바닥을 미끄러지듯 달려든다.

다시 한번 빠르게 바닥을 박차자 현성이 박찬 곳의 눈이 모조리 뒤로 밀려난다.

눈 폭풍이 분 것 같은 착각이 이를 정도의 거대한 폭풍.

그리고 그 폭풍을 뚫고 나온 현성을 보며 설인은 주먹을 내질렀다.

첫 주먹은 왼쪽 주먹이었다.

이대로 투창이 날아오면 이 주먹을 희생시켜 녀석을 짓뭉개리라!

하지만 현성을 창을 투창하지 않았다.

“……!”

“흐읍.”

그저 숨을 들이마시곤 이젠 쿨타임이 찬 스킬을 사용했다.

[신성 돌진]

세찬 빛과 함께 가뜩이나 빠르던 속도에서 더 빠르게 쏘아지는 현성의 신형.

빛이 늘어지는 것처럼 빠르게 늘어진 현성의 신형이 그대로 설인과의 거리를 좁혔다.

순간이동을 하기라도 한 듯 빠른 속도.

설인은 그걸 보며 생각했다.

어떻게든 녀석을 저지해야 한다고.

그러지 않으면…

‘……죽, 죽는다.’

죽음의 위기를 느낀 설인은 이미 왼쪽 주먹을 피해 자신의 간격에 들어온 현성을 보며 그대로 오른쪽 주먹을 내려치려 했다.

하지만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현성에게 스킬이 신성 돌진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

현성은 그런 아둔한 설인에게 스킬을 걸었다.

녀석을 저지할 수 있는 스킬을.

[홀리 바인드]

하늘에서 내려온 빛이 그대로 설인의 온몸을 감쌌다.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상태.

그리고 그런 설인의 미간을 향해 창을 뻗었다.

현성이 쏘아지던 속도와 신성 돌진이 더한 그 위력.

설인은 맞기 직전 그 창을 보며 그저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마지막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에.

콰──────직!

그게 마지막이었다.

현성이 피가 묻은 창을 짧게 털어내자.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우와아아아아───!”

다름 아닌 하르칸이 지른 함성이었다.

하르칸이 얼마나 집중해서 본 건지 두 주먹이 희게 질릴 정도로 강하게 창을 쥔 모습을 봐라.

현성은 멀리서 그걸 보며 피식 웃었다.

역시 아직 애긴 애였다.

현성이 그런 하르칸을 향해 피식 웃으며 다가갔다.

그러자 잔뜩 흥분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대, 대단하십니다, 성기사님!”

“……별거 아니었다.”

“오우!”

진짜 별거 아니었다.

옆에서 리베우스도 동의한다는 듯이 함성을 내질렀지만.

하르칸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저, 정말입니다! 선을 관철하는 고결한 모습에 저도 모르게 손에 땀을 쥐면서 봤습니다!”

“…고맙다.”

이렇게 말해주니 좀 민망했는지 그냥 고맙다고 말하곤 현성이 몸을 돌렸다.

과묵한 성기사를 연기하고 있었으니.

쓸데없는 말은 안 하는 편이 좋겠지.

현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가던 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런 현성의 뒤를 쫓는 하르칸은 눈을 빛내며 현성을 바라봤다.

어마어마한 사람이라는 건 알았지만, 새삼 더 와닿을 수 있었다.

‘저 설인을 저렇게도 간단하게 쓰러뜨리시다니.’

진짜 신을 모시는 기사라 강한 것일까?

아니, 하르칸은 고개를 저었다.

저것은 오직 현성이기에 가능하다.

그렇게 믿었다.

확실히 신뢰할 수 있었다.

저런 존재라면 충분히 부모님의 원수를 갚아주실 수 있으리라고.

하르칸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게 눈을 반짝이며 따르는 하르칸을 보며 현성은 민망함을 느꼈다.

진짜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다시 떠오른 메시지를 보며 생각을 고쳐먹었다.

[다온의 주민 하르칸이 당신에게 신앙을 느낍니다.]

[신성력이 +1 상승합니다.]

‘존경하는 게 나쁜 건 아니니까.’

* * *

하르칸은 현성을 따르면서 무수히 많은 설인들이 죽어 나가는 걸 볼 수 있었다.

약자를 유린하는 걸 좋아하는 포악한 설인들.

그런 설인들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유린당한다.

마을에 쳐들어왔을 때 두려움의 존재였던 그들이.

신의 기사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여럿이서 뭉쳐 덤벼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현성은 오히려 굳건히 방패를 쥐고 그대로 녀석들을 오직 창 하나로 유린한다.

마을에서 사신 그 자체였던 녀석들이.

이제는 그저 약자가 되어 짓밟히고 처단당한다.

“아, 아아.”

악이 섬멸당하는 광경.

정의가 실현되는 그 모습에 하르칸은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전율했다.

그동안 무력했던 자신이 한심스러워졌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마음은 현성을 보며 사라졌다.

한심하지 않다.

이제부터라도 달라지면 된다.

드넓고 그 어떠한 것도 묻지 않은 새하얀 등.

현성의 등이 그리 말하는 거 같았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단연 설인들의 우두머리 설인 전사였다.

그 어떠한 설인보다도 강력하고.

그 어떠한 설인보다도 포악한.

두려움을 모르고, 이 일대의 왕으로 군림하던 설인.

“아…….”

하르칸도 분명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그자조차 신의 기사 앞에서는 미약한 악에 불과했다.

마지막에는 끝내 추악하게 자신의 백성들을 버리고 도망치려 했을 때는 추하다 못해 연민까지 느껴졌다.

부모의 원수에게 연민을 느끼다니.

하지만 그런 것도 잠시.

현성이 그런 녀석의 뒤통수에 창을 꽂았다.

어떤 설인과의 전투보다도 치열했다.

그 과정은 하르칸이 누구보다 잘 알지 않은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까.

이 일대가 폭풍을 맞은 거처럼 변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아니, 갑옷이 여기저기 찌그러져 있고, 상처를 입은 현성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어느 때보다도 지저분한 모습의 현성이었지만, 하르칸은 느낄 수 있었다.

‘저것이 신의 기사.’

하르칸은 그것을 보며 두 무릎을 꿇었다.

아무 때나 무릎을 꿇지 말라는 현성의 말을 잊은 게 아니었다.

오직 이때만이 무릎을 꿇을 가치가 있었으니까.

“부모님의 원수를 갚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심을 다해 절을 하며 감사를 표하는 하르칸.

그런 하르칸을 향해 현성은 딱 한 마디 말을 내뱉었다.

“가지.”

그 어떠한 성기사보다도 고결한 성기사.

하르칸은 현성을 보며 우렁차게 대답했다.

“예!”

“오우!”

다음은 레서 드레이크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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