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2부 51화
16장. 퍼시벌 데뷔(3)
까득, 까드드득, 까득, 까득, 까득.
얼음끼리 부딪치며 나는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도마뱀들이 움직이면서 나는 소리.
다시 말해 녀석들이 지천에 깔렸다는 소리다.
현성은 고개를 돌려 주변을 훑었다.
사방을 가득 채운 도마뱀들의 모습.
신창의 업화로 사라진 눈들을 대신해 스멀스멀 나타난다.
그리고…….
이 사달의 원흉인 아이스 레서 드레이크는 그대로 몸을 둥글게 말아 넣고 있었다.
동시에 들려오는 얼어붙는 소리.
쩌쩍, 쩌저저적.
아이스 레서 드레이크의 패턴을 알지 못하는 현성은 자세히 알지 못했지만, 그걸 바라보던 시청자들은 모두 알 수 있었다.
-아 저거 진짜 까다롭지!
-잡몹 소환하고 회복패턴 진짜 킹받지;;
-와! 아시는 구나! 겁. 나. 어. 렵. 습. 니. 다.
-진짜 저거 때문에 실패하는 공대들도 많음.
-아이스 계열 레이드 몹들 종특이지 진짜 개빡치네.
-ㅇㅇ; 보기만 해도 빡침.
매우 난해한 패턴 중 하나.
수많은 몬스터를 소환하고 그사이에 자신은 회복을 하는 패턴이었다.
공략법 자체는 너무 간단했다.
잡몹들을 빠르게 처치하고 회복하는 녀석을 빠르게 저지하는 것.
그게 공략의 전부였다.
처음 보는 현성 역시 알 수 있을 법한 공략.
하지만 알기 쉽다고 난이도 자체가 쉬울 리가 있겠나.
‘까다롭네.’
패턴 자체는 단순하나 도마뱀의 수가 상당하다.
지금도 봐라.
현성은 슬쩍 둘러보기만 해도 주변에 깔린 도마뱀들이 너무 많았다.
다행이라고 할 만한 건 하나였다.
‘비선공 몬스터다.’
먼저 공격해 오지 않는다는 거.
지금 현성이 가만히 있는데 먼저 달려들지 않는다는 게 그 증거였다.
상황을 살피고 빠르게 파악했다.
아무래도 아이스 레서 드레이크를 잡으러 가면 덤벼드는 구조일 터.
아니면 원거리에서 공격하는 행위도 타깃이 될 게 분명하다.
참 난해한 상황.
‘수가 너무 많아.’
현성의 생각대로였다.
현성은 채팅창을 볼 수 없었으나 마침 채팅창에서도 같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근데 너무 많은 거 아니야?
-뭔 눈보다도 많은 거 같아.
-진짜 몇 마리임?
-전에 누가 세본 적 있는데 99마리라고 했음.
-미친 99마리? ㄷㄷ 사실 상 솔로레이드로 깨지 말라는 거 아님?
-그래서 레벨 100이하 레이드 중 레서 드레이크들이 가장 난이도 높자늠.
-아;;; 그랬구나;;;
-근데 이걸 도전하네 ㄷㄷ
현성은 볼 수 없었지만.
다들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긴 했다.
현성의 실력을 무시하는 건 결코 아니었다.
그건 오히려 모두 인정하지만.
상성상 맞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쪽수의 차이가 난다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한들 어려운 것은 사실이니.
애초에 공대를 만들어 깨라고 만든 레이드 보스이지 않나.
솔로로 깬다는 거 자체가 힘든 일이었다.
그걸 도전했다는 것부터 높게 살 일이다.
-저러고 피 회복하면 다시 1페이즈 복귀 아님.
-ㅇㅇ;
-진짜 퍼시벌 멋있고 대단한 거 알겠는데 이건 퍼시벌 아버지가 와도 무리다.
-어부왕?
-네다씹.
-아 퍼시벌은 오타쿠 아니라고!
다들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치고 있었을 때.
현성은 생각했다.
‘광역 스킬은 당장 타나노스의 오르골밖에 없다.’
하지만 타나노스의 스킬은 성기사와는 어울리지 않는 스킬.
광역 스킬은 없다고 보는 게 무방하다.
그나마 있는 신창의 업화는 쿨타임 중이다.
업화는 주변에 튀어 남아서 불타오르고 있지만, 도마뱀들이 그 주변으로 가지 않으면 말짱 꽝이다.
흔히 설치기 스킬은 그런 거였으니.
그나마 광역 스킬이라 할 수 있는 하늘의 은총 역시 언데드에게만 데미지가 들어간다.
사실 버프 스킬에 부수적으로 광역 범위 스킬이 들어간 거니.
기대할 수 없다.
지금 순간 가장 기대할 수 있는 스킬?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현성은 그 생각을 하며 피식 웃었다.
‘역시 믿을 건 하나지.’
그 순간이었다.
현성이 눈을 빛낸 것은.
창을 쥐고 강하게 땅을 박찬다.
펑!
뭐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폭격이 일어난 것마냥 터져 나갔고, 그 위력만큼 현성은 빠르게 쏘아졌다.
공기를 가르고 쏘아지는 현성을 발견하곤 도마뱀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믿을 구석이 있다?
물론이다.
세상의 그 무엇보다 믿을 수 있는 거.
‘바로 나!’
쏘아지는 와중에 현성은 그대로 방패를 버렸다.
그러곤 양손으로 창을 쥐자.
리베우스가 외쳤다.
“오우!”
마치 그게 맞다는 듯 호응하듯이 말이다.
현성은 거기에 미소를 짓곤 창을 양손으로 꼬나쥐는 동시에 창이 아까보다도 훨씬 길어졌다.
성혈의 무구 효과로 창을 임의대로 조정한 거다.
창대가 길어지고 창날 역시 길어지자.
현성은 웃으며 크게 창을 휘둘렀다.
채재재재재재재재재쟁!
무수히 많은 얼음들이 깨지며 허공에 반짝이는 빛을 수놓았다.
하나 다시 그 공간들을 얼음도마뱀들이 가득 채웠다.
오히려 좋다.
다시 한번 현성은 창을 쥐고 쏘아지는 상태 그대로 온몸을 비틀었다.
두 손으로 쥔 창을, 그리고 몸을 비틀고 쥐어짜 내며 회전시킨다.
허리를 틀고 어깨를 비틀고, 팔을 거세게 휘두른다.
그 모든 동작이 동시에 이뤄졌을 때.
반짝이는 얼음 결정이 허공에 수없이 펼쳐졌다.
눈이 사라진 곳을 시린 그 얼음 알갱이들이 가득 채우고 허공에 수를 놓는다.
어두운 먹구름 아래 그 순간 설원에는 은하수가 펼쳐졌다.
차가운 공기에 반짝이는 얼음 알갱이들.
그리고 그걸 돌파하며 다시 한번 은하수를 펼치는 창격.
채채채채채채챙!
-와.
-와.
-허.
-아.
모든 시청자들도 아무런 말을 남길 수 없었다.
그나마 정신을 차려 채팅을 치더라도 고작해야 ‘와’나 ‘아’ 같은 감탄뿐.
이런 압도적인 광경에 어떤 말을 할 수 있으리.
라이브 영상을 보는 모두가 느꼈다.
지금은 적어도 아무런 말도 하지 말자고.
얼음 알갱이가 흩날리며 모든 걸 얼어붙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러한 얼음들 역시 현성이 모조리 깨부쉈다.
채재재재재재쟁!
현성의 창 앞에 모든 도마뱀들은 별이 되어 스러지고, 바닥에 시린 알갱이만 남길 뿐이었다.
하나, 둘.
그런 단순한 수로 헤아릴 수 없는 수가 단숨에 갈려 나간다.
하지만 그런데도 현성의 돌파를 막을 수 없었다.
아니!
늦추지조차 못했다.
자신의 앞길을 막는 모든 도마뱀들을 처리하며 쏘아지던 현성이 다시 바닥에 발이 닿았을 때.
온몸을 응축시키기라도 하듯 웅크렸다가, 다시.
퍼어어어어엉!
아까보다도 더욱 강하게 터뜨렸다.
온몸의 힘을 이용해 터져 나가는 바닥.
주변에 있던 얼음 도마뱀들이 그 여파만으로 몸이 스러질 정도의 위력.
바닥에 분화구를 만들 위력만큼의 속도를 얻은 현성이 그대로 녀석에게 쏘아졌다.
도마뱀들은 그런 현성을 보며 자신들만으론 역부족이라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까득, 까드드드득! 쩌저저저저적!
서로 몸을 부수며 하나로 합쳐졌다.
얼어붙으며 점차 그 크기를 부풀려 나가는 녀석들.
순식간에 수십이 합쳐진 얼음 도마뱀의 모습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했다.
덩치만 놓고 봤을 때 아이스 레서 드레이크보다도 거대한 덩치.
시청자들은 그걸 보며 놀라 했다.
-?
-?
-저런 패턴도 있었어?
-저거 인원 초과하는 공대들만 보이는 패턴 아님?
-아니 정확히는 딜량을 초과한 대상에게만 보이는 패턴임.
-퍼시벌 지금 스킬 안쓰고 있는 거아님? 근데 어떻게 딜량을 초과함?
-?
-어케했누?
원인을 알 수 없는 게 아니었다.
모두가 믿기지 않을 뿐.
고작 혼자가 딜량을 초과할 수 있었던 건가?
심지어 당연하지만 레이드는 적정 레벨만 참여할 수 있게 설정이 되어있었다.
다시 말해 아이스 레서 드레이크의 레이드는 레벨 80 이상은 참여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시스템적으로 못 하게 막아놨다는 것.
한데 그걸 스킬도 쓰지 않은 채로 홀로 딜량을 초과해 버린다고?
이걸 어떻게 믿겠는가.
하지만 보는 모두가 믿을 수밖에 없었다.
현성이 그걸 직접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까드그그득!
거대한 얼음 도마뱀이 아이스 레서 드레이크를 향해 날아드는 현성을 막기 위해 거대한 몸을 일으킨다.
정확히 현성을 가로막는 형세의 모습.
소설 속 주인공들이 승리하리라 독자들은 모두 알고 있다.
그 기대감을 품고 보는 게 소설, 만화, 영화 같은 스토리가 정해진 매체들이다.
하지만 영상은 아니다.
짜여진 각본이 있는 영상도 존재하지만 로스트 이데아에서는 적어도 모두가 주인공이다.
하지만 모두가 소설 속 주인공처럼 해낼 수는 없다.
유튜브 영상의 주인공들은 다른 시청자와 마찬가지로 사람이니.
만화 속, 소설 속 주인공 같은 존재가 아니니까.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사람들이 영상을 보는 이유가 아니겠나.
승리하지 못할 수도 있다.
아니, 오히려 승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하지만 현성, 아니, 퍼시벌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은 조금 달랐다.
-아.
-제발.
-가라!
모두가 기대한다.
누구도 이루지 못하던 것을 이루려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주인공 아니겠나.
시청자들이 바라보는 현성이 그랬다.
누구보다도 주인공 같은 존재.
현실에 그런 존재가 있노라면 그들은 과감하게 외칠 거다.
퍼시벌을.
시청자들의 염원을 담아 현성은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몸을 틀었다.
허공에서 힘을 줄 수 있는 부분은 제약이 되어 있다.
아무리 몸을 비틀고 쥐어짜 낸다 한들 능력치의 한계가 있으니까.
하지만 이러면 어떨까?
“신성 돌진.”
현성은 그대로 신성 돌진을 사용한다.
녀석에게 쏘아지는 순간 몸에 부하가 걸리며 현 속도보다 빨라진다.
그와 동시에 순간의 틈이 생겨났다.
신성 돌진이 발동되며 살짝 걸리는 경직의 틈.
그 틈을 이용해 움직였다.
바로 그 순간만큼은 허공에 발판이 생긴 느낌.
정말 찰나에만 느낄 수 있는 현상이었다.
오직 현성밖에 느낄 수 없는 현상.
그 순간 현성은 다시 한번 허공을 박찰 수 있었다.
투콰아아아아아아아앙!
허공에서 터져 나간 폭격과도 같은 속도.
거기에 신성 돌진의 힘과 허공을 박차 도약한 속도까지 더해지자.
쏜살처럼, 아니, 그를 뛰어넘어 빛살처럼 나아가는 현성은 그대로 창을 쥐었다.
쏘아지는 속력만큼 어마어마한 압력이 느껴진다.
창을 온전히 쥐고 있는 거조차 힘들 지경.
하지만 현성은 두 손으로 강하게 꼬나쥐었다.
여기서 더 필요한 건 없다.
그저 강하게 쥐고 있을 뿐.
그러면 자연히 해결되리라.
퍼──────────석!
압력을 견뎌내어 거대 얼음 도마뱀의 머리를 관통했다.
빛살처럼 쏘아진 현성의 위력만큼 거대한 구멍.
얼음 도마뱀은 그대로 바스라져 얼음 알갱이가 되어 소멸했다.
모든 시청자가 경악을 금치 못하는 상황.
하지만 현성은 그걸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애초에 그의 목적은 저깟 얼음 도마뱀 따위가 아니었으니까.
녀석의 머리를 뚫고도 힘이 남아 빠르게 쏘아지는 현성은 하늘 위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아이스 레서 드레이크를 바라봤다.
천천히 회복하고 있는 녀석.
현성이 상처를 입혔던 부분들이 대부분 재생되고 있었다.
처음 파열시켰던 눈에다, 신창의 업화로 입힌 상처들 역시 점차 아물어가는 모습에 현성은 허공에 떠오른 상태로 생각했다.
‘일격에 끝내야 해.’
여기서 더 회복하게 뒀다가는 정말 골치 아플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스킬?
신창의 업화는 쿨타임이 아직 2분 이상 남아 있다.
그리고 현성의 가장 강력한 스킬인 타나노스의 야상곡은 사제 때 사용해서 사용해선 안 된다.
정체가 탄로 나면 안 되니까.
하지만 그러면 수가 없다.
수가…….
‘있다.’
현성은 눈을 빛내며 숨을 참았다.
순간 떠올린 방법.
사실상 도박에 가까웠지만, 현성은 눈을 감았다.
이 순간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집중을 해야 한다.
어떻게든 성공해야 한다.
그 생각에 순간 압박감이 온몸에 휘몰아쳤다.
하지만 그 순간.
“오우.”
담담하게 외치는 리베우스의 오우.
왜일까.
응원과도 같은 그 함성에 현성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언제 생각을 했던가.
되든 안 되든 해보는 거지.
늘 현성이 그러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현성이 말했다.
“가자.”
“오우!”
현성은 숨을 들이마시고 허공에 떠오른 상태로 허공에 창을 생성해 냈다.
한두 자루가 아니었다.
정확히 스무 자루의 창.
그에 따라 순식간에 HP가 바닥을 보였다.
이윽고 0에 도달했을 때!
챙그랑!
현성의 손에 은은하게 빛나던 반지가 사라졌다.
헤븐즈 링의 효과로 사망을 1회 막은 거다.
순식간에 차오르는 HP와 MP.
충만해진 게이지를 보곤 현성이 그대로 숨을 내뱉으며 눈을 빛냈다.
처억!
그러곤 허공에서 떨어지기 직전의 창 하나를 쥐고 눈앞의 녀석에게 투창했다.
맹렬히 회전을 시켜 쏘아진 투창.
고작 하나의 투창이 아니었다.
바로 이어서 양손으로 허공의 창을 쥐고 하나하나 녀석에게 투창했다.
필히 죽이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필살(必殺)의 의지를 가득 담아!
반드시 죽이겠다는 마음으로 스무 개의 창을 투창했다.
그리고 이윽고 아이스 레서 드레이크에게 창이 꽂히기 직전.
먹구름 사이로 하늘에서 벼락이 내리쳤다.
어떠한 빛보다도 성스러운 하얀 벼락.
그 하얀 벼락이 떨어지는 투창과 함께 아이스 레서 드레이크를 향해 작렬했다.
필살(必殺)의 의지를 담아.
고요한 벼락이 세상을 집어삼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