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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만 자도 랭커 2부-55화 (381/472)

잠만 자도 랭커 2부 55화

17장. 대공(大空)의 성기사 비네샤(3)

새하얀 설원.

사방이 눈으로 뒤덮인 땅.

눈으로 새하얗고 예쁜 풍경이긴 하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다.

두 다리는 푹푹 빠지며 사람의 체력을 앗아간다.

주변의 한기는 그대로 체온을 빼앗아 가며 사람을 점차 죽음에 이르게 한다.

그럼에도 멀쩡하게 그곳을 돌아다니는 세 사람이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면서 한쪽 방향을 향해 걸어가는 세 사람.

“흠! 저곳으로 가면 드디어 다온 마을인가.”

“예, 길드장님.”

“찾느라 고생했군.”

“아닙니다.”

다름 아닌 비네샤와 그녀의 길드원들이었다.

두 길드원은 아직까지 컨셉으로 말하는 비네샤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저런 게 아니시면 진짜 괜찮으신 분인데.’

‘어쩌겠어, 저래도 귀여우시니까.’

근엄한 말투를 쓰려는 비네샤였으나.

외형은 그러지 않으니.

참 어울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귀여워서 어울린다 해야 하나.

답답하긴 했지만.

이 정도는 이미 적응한 지 오래였다.

다만 이곳까지 이렇게 오긴 했지만.

과연 퍼시벌이 아직까지 이곳에 있을까?

사실 그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하다못해 다온 마을로 돌아가 퀘스트라든가, 다른 걸 받을 일이 있어서 머무를 수도 있는 일이니.

하지만 두 길드원은 좀 회의적이었다.

‘그 실력을 보면 용의주도할 거 같은데 이미 없을 거 같지?’

‘원래 라이브 하는 사람들은 그런 거 장소 안 들키려고 라이브 끝나고 자리를 옮기니까.’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비네샤의 명령이지 않나.

당연하지만 비네샤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도 시도조차 안 하는 거보다 낫지 않나.

빠르게 비네샤가 명령을 내린 덕에 장소도 빠르게 찾을 수 있었다.

누구보다 빠르다는 걸 증명하듯 인적이 드문 산길이지 않나.

소문이 이미 퍼졌다면 스카우터들로 가득했어야 할 곳이니.

지금은 비네샤 일행밖에 없다는 게 확실했다.

여기에 퍼시벌까지 있었으면 너무 좋았으련만.

두 길드원은 어느정도 포기했다.

한데 그때 비네샤가 먼 산등선을 가리키며 말했다.

“흠, 확실히 이곳에 오니 영상에서 본 지형과 흡사하군!”

비네샤의 말에 길드원들은 살짝 아리송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봐도 평범한 설원 아닌가?

공통점이 있었나.

비네샤를 모르는 이들이라면 컨셉에 잡아먹혀 그냥 내뱉는 소리라 생각할 수 있었지만.

길드원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녀가 저리 말한다면 정말 그런 거다.

외모로 전체 랭킹 8위를 따낸 것이 아니다.

비네샤 역시 세계급 실력자 중 하나라는 이야기.

그녀가 이야기를 꺼냈으면 정말 그렇다는 거다.

“주변에 나무 종류나 잎사귀들이 상당히 유사하군. 게다가 먼 산등선을 보고 있으면 비슷한 그림이 상당하군.”

통찰력과 확신이 가득한 목소리에 길드원들은 뒤에서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저렇게 듣는다 해도 분간이 잘 안되긴 했지만 잘 본다면 그런 느낌이 들기도 했다.

살짝 본 거 같은 느낌의 풍경이랄까.

말해주고 나서 간신히 느낀 걸 어떻게 한 번에 보고 알아차린 건지.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철 없는 모습만 없으면 정말 완벽할 텐데 말이다.

저 컨셉 때문에 사고가 난 적은 없긴 했지만.

그래도 없으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늘 있었다.

두 길드원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때.

저 멀리서 비네샤가 가르킨 산등선에서 먼지구름이 피어오르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꽤 가까이에서 들리는 충격음.

쿠궁.

그걸 들은 비네샤의 눈빛이 달라졌다.

두 길드원들도 마찬가지.

설마 진짜 아직까지 있었을 줄이야.

빠르게 두 길드원이 준비하려던 그때.

비네샤가 먼저 움직였다.

퉁!

가볍게 바닥을 민 것 같건만 순식간에 하늘로 치솟는 비네샤의 신형.

그러면서 비네샤가 외쳤다.

“먼저 가 있도록 하지! 흠!”

“기, 길드장님!”

“가, 같이 가요!”

같이 가자고 두 길드원이 외쳤지만, 확실히 비네샤의 판단이 맞긴 했다.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 비네샤가 먼저 움직이고 퍼시벌을 어떻게든 먼저 만나는 게 중요하지 않나.

길드원들의 속도에 맞춰서 느리게 갔다가 이미 놓치면 무슨 소용이랴.

순식간에 그런 판단을 하곤 비네샤는 떠오른 몸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빠르게 파악하는 주변 지형.

그리고 자신이 발견한 산등선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는 곳에 한 사람이 서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이대로 착지한다면 좀 멀리 착지하긴 할 거 같다.

그래서 순간 다시 도약을 할까 생각하던 비네샤가 고개를 저었다.

‘등장은 강렬할 수 있지만, 약간 렌쿠는 그런 캐릭터가 아니지!’

급한 상황에서도 컨셉을 유지하다니.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미련하다고 해야 할지.

물론 비네샤는 자신이 있긴 했다.

이만큼 떨어져서 착지하더라도 금방 따라잡을 자신이.

모든 상황을 고려해서 판단을 내린 거다.

그게 아니었다면 컨셉이 조금은 풀리더라도 강행했을 터.

‘레벨 210인 나보다 빠를 수는 없으니까.’

아무리 레벨에 비해 능력치가 강하다 한들 100을 넘는 레벨 차이는 넘어설 순 없다.

무엇보다 비네샤 역시 레벨에 비해 능력치가 높은 편이었고.

퍼시벌이 자신에게 벗어날 구석은 없으리라.

비네샤는 확신하고 그대로 좀 떨어진 곳에 착지했다.

그러곤 빠르게 발을 놀려 달리기 시작했다.

‘그래 이런 느낌으로 달렸지?’

태양 같은 풀플레이트를 입고 사무라이 같은 보법을 사용하는 게 상당히 어울리진 않았지만, 상상 이상으로 잘했다.

누가 보더라도 재능이 뛰어나다는 걸 알 수 있는 모습.

그렇게 빠르게 달리며 하늘에서 본 장소로 뛰어갔다.

상당히 빠르지만 가볍다.

그러기에 큰 소음 없이 거리를 주파하자.

주변과 달리 눈이 사라져 있는 넓은 공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처벅, 처벅.

조금 더 걷자.

사람의 형상을 볼 수 있었다.

드디어!

만나는구나!

제자를 들이면 딱 좋을 거 같다고 생각해서 찾아오기까지 했지만.

진짜 만날 줄이야!

‘히히! 바로 제자가 되어달라고 해야지.’

악멸의 칼날에서도 그런 장면이 나오지 않았던가.

주인공에게 제자가 되라고 말하는 캐릭터의 모습.

그 모습도 상당히 멋있어서 해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좋은 기회가 오다니.

게다가 묵묵한 성기사의 모습을 보여준 퍼시벌.

분명 자신과 비슷한 냄새가 나지 않았던가!

지독한 컨셉충의 냄새!

‘잘 맞을 거야! 분명!’

사실 길드에 실력 있는 이들은 많긴 했지만, 실력이 있으면서 자신처럼 컨셉으로 잘 노는 사람은 발견하지 못했다.

한데 이게 웬걸.

퍼시벌을 보자마자 느낄 수 있었다.

컨트롤이 보여주는 것 이상의 실력이 있다는 걸.

몇몇 부분에서 더 빠르고 더 반응할 수 있는 걸 스타일 때문에 포기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아마 비네샤 정도 되는 이가 아니라면 눈치채기 힘들었을 거다.

하지만 비네샤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숨기고 있는 실력이 있다고.

그리고 그걸 감안한다면?

‘나보다 컨트롤이 훨씬 좋아.’

그렇다는 게 무슨 의미이겠나.

컨셉을 지키기 위해 컨트롤을 어느 정도 포기하는 모습이라는 거 아니겠는가!

실력이 깎이는 걸 포기하고 고결한 성기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의 모습에 감복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자신과 똑같은 사람이지 않던가!

그런 사람을 영입해서 같이 컨셉질을 하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비네샤가 퍼시벌을 영입하려는 가장 큰 이유였다.

물론 실력이 엄청나다는 게 가장 중요했다.

‘영입하면 7대 길드가 될 수도 있어!’

당장은 힘들겠지만, 퍼시벌이 점차 성장하면서 1군까지 오른다면?

이야기는 현저하게 달라진다.

솔직히 말해 얼마전에 비슈누라고 나타난 사제보다도 퍼시벌이 훨씬 탐났다.

한데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그것도 누구보다 빠르게.

비네샤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퍼시벌이 누워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응?”

순간 컨셉이 풀려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 비네샤가 그대로 퍼시벌.

아니, 현성을 바라봤다.

갑옷을 보아하니 분명 퍼시벌이 맞았다.

한데.

‘투구를 벗었네?’

분명 영상에서는 투구를 쓰고 있었 건만.

지금은 투구를 벗은 맨 얼굴이었다.

멀리서 보기에도 상당히 잘생긴 모습의 귀공자 같은 외모.

비네샤는 그걸 보고 순간 당황했다.

“아, 아앗.”

정체를 숨긴 사람의 맨 얼굴을 보게 되다니.

같은 컨셉충으로서 지켜주고 싶었으나.

너무 적나라하게 보고 말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어, 어어?”

어디서 본 얼굴이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자 컨셉충끼리의 의리를 까먹곤 제대로 현성의 얼굴을 보고 말았다.

분명 어디서 본 얼굴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을 수 있었다.

“헐, 대박.”

현성의 얼굴이 비슈누의 얼굴과 완전히 똑같다는 걸.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일류 사제이면서 일류 성기사일 수 있다고?

둘 다 최소 전설 등급 이상 직업으로 판단하는 중이다.

한데 두 직업 다 그만한 실력을 보여준 걸 생각하면?

“시, 신?”

비네샤는 그렇게 말하자 현성의 곁을 지키고 있던 올빼미의 모습으로 분장하고 있던 리베우스가 나타났다.

원래라면 경계를 하려 했건만.

갑자기 나타나 현성을 보며 신이라 외치는 성기사.

리베우스는 그런 비네샤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오우, 뭘 좀 아는 성기사시군요.’

하지만 현성의 당부가 있어서 굳이 다 말하진 않았다.

그저.

“오우.”

오우만 외쳤다.

사실 이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리베우스는 생각했다.

처음 겉으로만 봐도 강해보이는 비네샤를 보고 경계도 했지만.

갑자기 현성을 보며 신이라 하는 게 크게 작용한 모양이다.

무엇보다 공격 의사가 없었으니까.

만일 적이라고 판단했으면 리베우는 현성의 당부는 어떻게든 무시하고 현성을 데리고 도주를 택했을 거다.

하지만 그게 아니니까.

한편 오우거리는 리베우스를 보며 비네샤는 두손을 들어 올렸다.

“아! 미, 미안. 나는 적이 아니야.”

너무 당황한 나머지 컨셉이 아예 풀려 버린 비네샤는 리베우스를 보며 말하자.

리베우스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며 안심했다.

‘귀여운 펫한테 위협을 가할 순 없지.’

귀여운 걸 또 좋아하는 비네샤는 다행이라 생각하며 귀여운 올빼미의 모습을 한 리베우스를 봤다.

그러다 다시 현성을 바라봤다.

설마 비슈누와 퍼시벌이 동일인물이었다니.

이걸 어쩐다.

가만 보고 있으니 피곤해서 잠이 든 거 같았다.

‘으음.’

영입을 하고 싶긴 하지만, 여기서 깨우는 것도 무례하지 않은가.

그래도 진짜인지 확인하고 싶어 비네샤는 한참 고민했다.

한데 알 수 있는 방법이 있겠는가.

“아!”

생각해 보니 있었다.

다름 아닌 올빼미 모습을 하고 있는 리베우스를 바라봤다.

비슈누의 영상에서는 사람의 모습을 하던 펫이지 않은가.

그러면 말도 알아듣지 않을까?

답에 가까운 결론을 내린 비네샤는 그대로 리베우스를 보며 어떻게 질문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래도 펫이니 NPC 같은 존재 아닌가.

어떻게 하면 알아들을 수 있을까 하다가 좋은 생각이 났다.

“얘, 혹시 네 주인님 신 아니니?”

최대한 알아들을 수 있게 물어보자.

두 눈이 찢어질 듯 커지며 당혹스러운 날개짓을 하는 리베우스.

그리고.

“오, 오우! 오우! 오우우우!”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그걸 보며 비네샤는 슬며시 웃고는 인벤토리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 무언가를 적곤 리베우스를 보며 말했다.

“그러면 네 주인이 일어나면 이 쪽지를 전해줄 수 있니?”

“오우!”

그러면서 리베우스가 쪽지를 받아 들자.

비네샤는 미소를 짓고는 그곳을 떠났다.

쪽지를 보고도 연락이 오지 않으면 어쩔 수 없지만.

비네샤는 올 거라고 확신했다.

‘히히! 그렇게 적으면 분명 연락 오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신나서 자리를 떠난 비네샤.

리베우스는 그런 그녀를 보며 땀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실로 무서운 통찰력을 가지신 성기사분이십니다요. 오우, 주인님을 단번에 신이라 알아보시다니요! 역시 주인님은 위대하십니다요! 위대함이 흘러나와 알아본 것이겠군요!”

상당히 흥분해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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