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2부 58화
18장. 지각변동의 전조(3)
파이튼에 상주하고 있던 스카우터들은 현성의 예상대로 많이들 빠졌다.
퍼시벌과 비슈누.
둘 중 한 명을 고르라면 각 길드에 따라 상황이 달라지긴 하겠지만, 웬만하면 퍼시벌과 같은 딜러를 원하긴 했으니까.
그렇다고 사제가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다.
오히려 중요하면 중요했지, 비중이 적은 건 아니다.
그러나 스타성을 생각해 봐라.
로스트 이데아가 열광을 받으며 스타 플레이어들이 무수히 많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시대.
그런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눈에 띄어야 한다.
사제는 그런 부분에서 약하긴 했으니까.
둘의 실력을 비교하고 누가 더 떨어진다 할 수 없지만.
스타성 자체는 퍼시벌이 확실했으니까.
현성도 그걸 생각해서 퍼시벌로 시선이 몰린 틈을 타 다시 파이튼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물론 그걸로 부족하다 생각해 최대한 눈에 안 띄게 사제복이 아닌 로브로 바꿔입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오우, 사람들이 그래도 많이 빠졌습니다요.”
“그러게, 다행이다.”
리베우스의 말에 현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아직도 많긴 했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훨씬 줄었으니.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이러다 걸리기라도 하면 인파에 파묻히는 건 순식간이니까.
현성은 이미 아수라를 거치면서 겪어보지 않았던가.
그때는 그래도 친위대가 막아주기라도 했지.
지금은 그럴 친위대도 없었다.
아무튼 이곳으로 돌아온 이유는 둘이다.
하나는 내일 있을 비네샤와의 만남.
그리고 다른 하나는 길드전 때 얻은 퀘스트 때문이었다.
【자유도시 파이튼의 지하 수로】
-등급: B
-설명: 자유도시 파이튼의 시장 파론 자작은 요즘 골머리를 썩인다고 한다.
다름 아닌 지하 수로에 대한 시민들의 원성이 만만치 않게 빗발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영주민들이 아닌 시민들인 그들 역시 자유를 지닌 신분이기에 파론 자작은 그걸 해결할 의무가 있었다.
한데, 이상하게도 자신의 병사들을 보내 조사를 시켰더니, 어째서인가 돌아오지 않는다.
기사단을 쓰기엔 혹시 몰라 뛰어난 이방인들을 고용해 수로를 탐사시키려 한다.
-제한: 파론 자작에게 인정받은 길드의 인원이거나 혹은 길드에게 자리를 양도받은 유저만 가능하다.
-보상: 랜덤 스킬북(유일), 랜덤 아이템 박스(유일), 10,000골드.
-실패 시 사망, 파론 자작의 신임 하락, 자유도시 파이튼에서의 불이익.
오랜만에 보는 퀘스트 창.
확실히 좋은 퀘스트긴 했다.
도중에 좀 더 좋은 솔로 레이드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온 현성이긴 했지만.
다다익선 아니겠나.
좋은 게 많다고 나쁠 리가.
현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퀘스트를 꼼꼼하게 읽었다.
지하 수로에 무언가 일이 일어났고 그걸 탐사를 보낸다, 라.
현성은 그걸 읽고는 턱을 쓸었다.
‘이런 경우에는 보통 흑마법사들하고 연관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개척 마을 마룬에서도 있었던 일이다.
흑마법사들이 음지에 숨어 실험을 하고 있거나, 무언가 얻기 위해 잠입하는 경우.
둘 다거나 둘 중 하나일 터.
현성은 그걸 생각하며 마룬 마을 때 얻었던 아이템을 떠올렸다.
결사대의 증표.
【결사대의 증표】
《퀘스트 아이템》
-설명: 현재로서는 알 수 없는 아이템이다. 어느 결사대의 증표로 보인다. 사용법을 알게 되면 어떠한 비밀에 빠져들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게 이번에 사용될 수도 있겠다.
그러면 상당히 재미있을 거 같다.
물론 현성이 앞서 나설 일은 없겠지만.
이번에 참여하는 건 퍼시벌이 아닌 비슈누지 않나.
직접적인 전투는 없을 거다.
사제가 나설 정도라면 애초에 전멸할 파티라는 거니.
현성이 나서는 일까진 없을 거다.
아마도.
‘일단 파이튼에서 로그아웃을 할까?’
최북단까지 텔레포트 게이트를 사용한다고 돈 좀 쓰긴 했지만.
저번 길드전 때 번 돈으로 충분히 충당할 수 있었다.
사냥이라도 더 할까 생각했지만 현성은 고개를 저었다.
생각 이상으로 많은 일이 있었으니.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다.
현성은 그렇게 로그아웃을 하기 위해 여관으로 들어갔다.
그러곤 리베우스에게 인사했다.
“리베우스 내일 보자.”
“오우! 푹 쉬고 오시라는 것입니다요!”
“오냐.”
현성은 그렇게 리베우스에게 인사를 받고는 로그아웃을 했다.
여관방에서 사라진 현성.
그곳에 홀로 남은 리베우스는 속상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현성이 사라져서 우울한 게 아니다.
이유는 따로 있었다.
“오우…… 오늘도 큰 힘이 되어드리지 못했습니다요.”
비네샤가 왔을 때도 무력하지 않았나.
너무 속상한 마음에 리베우스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현성에게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었으나.
퍼시벌과 비슈누가 동일인물이 아니려면 펫도 달라야 하므로 버프를 금했던 현성이었기에.
리베우스는 속상함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렇기에 단련하기 위해 두 눈을 부릅떴다.
“이럴수록 힘을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요!”
리베우스는 그렇게 말하며 현성이 자신에게 주었던 아이템을 꺼냈다.
무려 2개의 아이템.
희귀등급 랜덤 스킬북, 이젠 때가 되고야 말았다.
“오우! 주인님! 부디 제가 주인님을 도울 수 있는 스킬을 주시기 바라겠습니다요! 오오오오우우우우우우!”
거의 악에 받쳐서 외치며 여느 때와 같이 여관 바닥에 마법진을 그렸다.
그 후 미친 듯이 절을 하며 바닥에 머리를 찍었다.
리베우스는 그걸로도 모자란다는 듯 무어라 엄청나게 기도를 한 후 두 눈을 떴다.
표정이 딱 그랬다.
지금이 바로 기회라고!
리베우스가 그 순간 스킬북을 사용하자.
천상의 아리아가 들려왔다.
분명 여관방이었건만.
주변에 구름과 천상의 아리아가 울려오며 빛이 가득한 천계와 같은 모습을 자아냈다.
그걸 보며 리베우스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 순간.
번───────쩍!
리베우스의 머리가 순간 금발로 변했다.
천사들과 악마들이 가득한 그 천계의 모습에 리베우스는 고향에 돌아오기라도 한 듯 기쁨에 울부짖었다.
그러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당신의 펫, 리베우스가 희귀등급 랜덤 스킬북에서 리베우스 전용 스킬, ‘마(魔)’을 습득했습니다.]
[당신의 펫, 리베우스가 전용 스킬, ‘마(魔)’를 습득하여 본연의 힘 악마의 힘을 개화합니다.]
[이제부터 리베우스는 언제든 천사의 형상과 악마의 형상으로 변환이 가능합니다.]
[기본 형상은 천사의 형상으로 7대 주선 스킬을 사용합니다.]
[악마의 형상으로 변환 시 7대 주선 스킬이 7대 죄악 스킬로 변환합니다.]
물론 리베우스는 그 메시지를 보지 못했지만.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은 달라졌다는 것을.
그리고 과거의 그 힘을 조금은 얻었다.
리베우스는 그걸 느끼곤 눈을 감고 감사드렸다.
“모든 것은 주인님의 뜻대로입니다요! 오우!”
물론 현성이 들었으면 자기가 뭘 했느냐고 말했겠지만.
적어도 지금 리베우스에겐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저 이젠 짐짝 취급 당하지 않을 수 있다.
리베우스는 그게 기쁠 뿐이었다.
* * *
한편 내일 현성과 만나기로 한 비네샤는 상당히 고민 중이었다.
자신과 같은 컨셉충.
이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하지만 그 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흠! 역시 설득하기 쉽지 않겠군!”
다시 컨셉을 되찾고 혼잣말을 하는 비네샤.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현성을 영입하긴 쉽지 않다고.
주도권은 자신이 쥐고 있지만 애매하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당장 내일 만나기로 했지만.
“흠!”
흠만 절로 나오는 상황.
협박은 통하지 않는다.
그리고 길드에도 들어오지 않을 거다.
비네샤는 잘 알고 있었다.
현성 같은 부류를.
자신 역시 그러지 않았던가.
누군가의 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 길드를 직접 만들었다.
간혹 그런 이들이 있다.
누군가의 밑에 들어가지 않고 싶어 하는 그런 자들이.
“흠! 하지만 역시 영입하고 싶군!”
갑자기 그렇게 비네샤가 외치자.
주변에 있던 모두가 깜짝 놀랐다.
원래 저랬지만, 이번에는 진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걸 굳이 입 밖으로 말하진 않았다.
그냥 저마다 일을 할 뿐.
비네샤는 잠시 고민을 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 방법 말고 없겠어!”
뾰족한 수가 떠올랐느냐고?
어느 정도 떠오르긴 했다.
다만 이걸로 현성을 온전히 설득할 수 있을까?
다소 힘들 수도 있다고는 생각했다.
거절한다면 어쩔 수 없다고는 생각하지만.
왜인지.
‘거절하진 않을 거 같단 말이지?’
비네샤는 그렇게 생각하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이렇게 나서는 걸 이미 눈치챈 몇몇 길드들이 있긴 했지만.
이미 늦었다.
비네샤가 이미 손을 써놔서 어떻게든 정보를 은닉하고 있었으니.
다만 내일 현성을 만나러 가는 게 좀 문제긴 했다.
아무래도 비네샤는 길드의 수장.
대부분의 길드들이 발할라의 모든 걸 살피진 않더라도 비네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필 게 분명하니까.
그러려면 최대한 위장을 하고 가는 게 좋을 거다.
‘화려하게 입으면 눈에 띄니까. 아무래도 조용히 입고 가야겠다.’
비네샤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파이튼에 있는 길드원들에게 철수하라 명령을 내렸다.
사제인 비슈누를 영입하기 위해 보낸 길드원들.
그들도 빠진다면 웬만한 길드들은 빠질 거다.
퍼시벌을 찾기 위해서 비네샤를 감시하는 중이었을 테니.
파이튼을 뺀다면 자기들도 웬만하면 빼려 할 거다.
물론 일부는 남기겠지만.
“흠! 그럼 준비해야겠군!”
태양처럼 밝은 미소를 짓고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난 비네샤는 할 일을 위해 움직였다.
내일 그래도 일정을 비우려면 지금 열심히 사냥해야 랭킹이 떨어지지 않을 테니까.
* * *
비네샤가 그렇게 현성에 대해 전략을 세우고 있었을 때, 현성 역시 그러고 있었다.
당장 비네샤가 어떻게 할지 예상해야 하니까.
그래서 캡슐 밖으로 나와 샤워를 하곤 인터넷을 검색해 봤다.
먼저 퍼시벌의 글들이 눈에 띄긴 했다.
하기야 지금 가장 뜨거운 감자 아니던가.
몇 가지 찾아보니 라이브 영상 이후에 설인 사냥 영상도 올라간 걸 볼 수 있었다.
-와 미친, 저기서 저렇게 움직이네.
-드레이크 잡을 때도 알아봤지만, 진짜 컨트롤 깔끔하다.
-압도적인 거지! 지금 랭커들 과거를 보는 느낌인데?
-진짜 판단력이나 이런건 랭커들을 웃돌고 컨트롤 자체는 조금 떨어지는 느낌임.
-와 진짜 빨리 강해지는 거 보고 싶다.
-이런 루키가 둘이나 나타나네 요즘 볼거 없었는데 완전 신나네.
-ㅋㅋㅋㅋㅋㄹㅇ
“흐음.”
아닌 척하려 했지만, 기분 좋아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현성은 그렇게 자기 글은 그만 보고 비네샤에 대해 찾아봤다.
아까도 간단하게 보긴 했지만.
유튜브만 볼 수 있는 것과 여러 글들을 보는 건 또 달랐으니.
여러 개를 보니 상당한 컨셉충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해서 그 캐릭터를 많이 따라한다고.
현성은 그걸 보며 자신과 비슷한 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길드에 가입할 순 없지.
그리고 그건 비네샤도 잘 알 거다.
그렇다면.
‘길드 영입이 아닌 다른 조건을 들고 오겠네.’
현성은 여러 정보를 찾은 후 비네샤의 스타일을 보곤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조건은 들어봐야겠지만.
그 정도는 할 수 있으리라.
과연 어떤 조건일지 기대되는 현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