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2부 64화
20장. 파이튼의 지하 수로(1)
퀘스트를 나가기 전 탐문은 보통 기본 중의 기본이다.
막가파로 무작정 퀘스트에 응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현성이 그 막가파 중 하나긴 했지만.
이번만큼은 좀 달랐다.
느낌이 좀 이상했다.
그저 현성의 촉이긴 하지만 그 촉이 맞은 적이 생각보다 상당히 많지 않나.
괜한 우려면 좋겠지만.
아무런 대비도 없이 갔다가 들이닥치는 건 적어도 사양하고 싶다.
현성은 그런 느낌으로 먼저 퀘스트 창을 열었다.
【자유도시 파이튼의 지하 수로】
-등급: B
-설명: 자유도시 파이튼의 시장 파론 자작은 요즘 골머리를 앓는다고 한다.
다름 아닌 지하 수로에 대한 시민들의 원성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예전처럼 영주민이 아니라 이제는 자유를 지닌 신분이었으므로, 파론 자작은 그걸 해결할 의무가 있었다.
한데, 이상하게도 자신의 병사들을 보내 조사를 시켰더니, 어째서인가 돌아오지 않는다.
기사단을 쓰자 하니 혹시 몰라 그전에 뛰어난 이방인들을 고용해 수로를 탐사시키려 한다.
-제한: 파론 자작에게 인정받은 길드의 인원이거나 혹은 길드에게 자리를 양도받은 유저만 가능하다.(레벨 80 이하)
-보상: 랜덤 스킬북(유일), 랜덤 아이템 박스(유일), 10,000골드.
-실패 시 사망, 파론 자작의 신임 하락, 자유도시 파이튼에서의 불이익.
‘다시 봐도 보상이 짱이네.’
상당히 높은 등급의 퀘스트.
그렇다는 건 그만한 난이도라는 이야기다.
참고로 솔로 레이드 퀘스트가 A+지 않았던가.
그것보다 2단계는 낮다고는 하지만.
B도 만만치 않은 난이도임에는 틀림없었다.
분명 구린내가 난다.
하지만 어디서 나는지 알 수 없으니.
‘저번에 흑마법사처럼 흑막이 있는게 틀림없다.’
보통 이런 도시에서는 그런 경우가 상당했으니까.
게다가 그 흑마법사가 있었던 곳 마룬 마을이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았으니.
어쩌면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
그거야 이제 차차 알아보면 되는 일이고.
우선 지하 수로에 대해 알아보는 게 좋을 거 같았다.
현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테라 교단의 사제복으로 환복했다.
비슈누일 때는 문양이 없는 사제복을 입었지만.
그러면 너무 눈에 띄니까.
테라 교단의 사제복으로 옷을 갈아입은 뒤 후드를 깊게 쓰고는 거리에 나섰다.
“오우! 표교하는 것입니다요!”
“포교가 아니라 탐문이야. 그리고 테라 교단 사제복을 입고 포교하면 테라 교단 포교 같잖아.”
“오우! 생각이 짧았습니다요! 절대 테라 따위를 믿는 게 아닙니다요!”
“알아 알아.”
혹시라도 현성이 리베우스의 신앙을 의심할까 봐 안절부절못하는 리베우스를 뒤로하고 현성은 길을 나서며 보이는 NPC들에게 다가갔다.
거절당하면 어쩌나 싶었건만 다행히 그러진 않았다.
사제복을 입어서 그럴까.
“안녕하십니까?”
“아이고! 테라 교단의 사제님이시군요. 무슨 일이신가요?”
“아 별것은 아니고, 최근 지하 수로에 대해 무언가 소문을 듣는 게 있으신지요?”
“흐음, 지하 수로요? 요즘 오물들을 처리하는 데 영 시원치 않다고는 들었네요. 우리 남편이 그렇게 시원하게 일 처리를 하는 게 아니거든요, 오홍홍홍.”
“아, 감사합니다.”
아주머니의 TMI를 듣고도 물러서지 않고 다른 NPC들에게 묻고 다녔다.
다만 다들 비슷한 소리를 하긴 했다.
배관이 가끔 막히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 시장에게 민원을 넣는 일이 허다하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퀘스트 창에서도 볼 수 있는 내용이다.
딱히 뾰족한 일은 없나 싶어 더 돌아다녔을 때 즈음 한 NPC를 만날 수 있었다.
“오호, 테라 교단 사제님이시구만. 끌끌.”
대낯부터 술에 찌들어 있는 노인네.
행색을 보아하니 노숙자로 보였다.
현성은 그런 노인을 보며 굳이 눈살을 찌푸리진 않았다.
오히려 다른 NPC와 똑같이 대해주었다.
“저기, 어르신 혹시….”
그러자.
노인은 끌끌거리며 웃더니 현성의 말을 끊고 말했다.
“거, 내 기억력이 좋지 못해서 말이오! 뭐라도 있다면 또 모를까…….”
말 끝을 흐리며 입맛을 다시는 노인.
뻔하다.
돈을 달라는 거였다.
이런 걸 눈치채지 못할 사람은 없으리라.
현성은 잠시 고민했다.
돈을 주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정말 쓸 만한 정보가 있을까?
하지만 여기서 그냥 넙죽 주는 것은 현성답지 않은 일이지.
저런 식으로 나오는 건 그리 유쾌하진 않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리베우스도 현성에게 소곤거렸다.
“오우, 무뢰배가 따로 없군요.”
현성은 리베우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순간 눈가에 스쳐 지나간 노인의 무언가를 발견하곤 싱긋 웃으며 말했다.
“예, 당연히 보답을 드려야지요.”
현성은 그렇게 말하며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현성이 무어라 읊조리자 하늘에서 떨어지는 성스러운 빛.
아기 천사들이 천상의 나팔을 불며 천사의 깃털이 사방으로 내렸다.
그리고 그 성스러운 빛이 오롯이 노인만을 위하여 존재하듯 노인을 따스하게 비춰주었고, 노인은 그 빛을 보고 두 눈을 부릅떴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는 게 틀림이 없다.
노인이 그렇게 판단하고 기겁하자.
현성은 그런 노인을 보며 조용히 스킬을 읊었다.
“블래싱.”
노인은 스킬에 문외한이었지만, 이런 스킬을 일반 사제가 쓸 수 없다는 건 아주 잘 알았다.
현성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노인이 침을 꿀꺽 삼키곤 부르르 떨며 고개를 조아렸다.
“모, 몰라뵈었습니다.”
그저 힘을 보여주기 위함으로 스킬을 쓴 건 아니었다.
단지 쓸 만한 정보가 있나 확인하기 위한 차원.
하지만 이렇게 노인이 사죄를 하니 불쾌하던 기분은 다 사라졌다.
오히려.
유치하게 군 거 아닌가 싶어 좀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현성이 노인을 일으키자 노인이 재빨리 다시 말했다.
“제, 제가 아무리 무지렁이라지만, 존귀한 분을 알아뵙지 못하고 괜한 말을 지껄였습니다.”
“아아,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혹시 지하 수로에 대해 무언가 아시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예, 예! 있읍지요!”
“오!”
“이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봤읍니다! 얼마 전에 지하 수로에 대대적으로 병사를 보내기 전 도시에 수로가 조금씩 막혔을 때였을 겁니다.”
노인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이 본 걸 똑똑히 알려주었다.
그리 거창하거나 뭔가 특별히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노인이 지하 수로 근처에서 소피를 보기 위해 하수구를 향해 바지춤을 건들고 있었을 때 하수구에서 붉은 눈을 한 무언가를 봤다고 했다.
너무 어둡고 밤인지라 보이지 않아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무언가 있었다는 건 확실하다고 말하는 노인의 모습에 현성은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건 감사의 표시로….”
“하, 하이고! 아, 아닙니다! 괘, 괜찮습니다.”
괜찮다는 사람 손이 벌벌 떨렸지만.
현성은 그러거나 말거나 노인의 손에 금화 하나를 쥐여주었다.
정보가 있으면 그 값을 치르는 게 맞다.
현성은 그렇게 금화를 하나 쥐여주고는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뒤에서 연신 감사하다며 절을 하는 노인을 뒤로하고.
그때 마침 반가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지하 수로에 대한 미약한 단서를 얻으셨습니다.]
‘이거지.’
반가운 메시지에 기분이 좋아진 현성의 눈앞에 또 다른 메시지도 떠올랐다.
[부랑자에게 선행을 배풀어 당신에게 미약한 신앙을 느낍니다.]
[신성력이 1 상승합니다.]
“오우! 부랑자면서 꽤 지혜를 가지고 있는 모양입니다요.”
“그러게.”
뜻밖의 일이라 좀 놀라긴 했지만.
이런 건 언제든 환영이지.
어쨌든 현성은 노인에게 들은 그 하수구를 향해 가는 길이었다.
무언가 단서를 얻었으니 그곳을 직접 가보는 게 좋지 않은가.
어떻게 얻은 단서인데.
더 탐문을 할까 싶었지만.
‘아직은 아니지.’
일단 거기서 뭔가 단서라도 있나 싶어 살피는 게 좋겠다 싶어 무작정 그곳으로 찾아갔다.
현성이 하수구에 도착하자, 당연하지만 둘러봐도 딱히 특별한 건 없었다.
그저 여느 하수구와 똑같은 모습.
다른 단서는 딱히 보이지 않았다.
이럴 거라 예상하긴 했지만.
뭐 어쩌겠나.
이렇게 하나하나 찾아가는 게 탐문의 기초니까.
‘역시 글렀나?’
현성이 그렇게 생각하고 돌아가려고 할 때.
문득 하수구 바닥에 적혀 있는 숫자를 볼 수 있었다.
‘으음?’
[1-6]
1-6이라고 적혀 있는 숫자.
혹시나 싶어서 다른 곳의 하수구도 살폈다.
하수구의 번호일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게 웬걸?
다른 하수구에는 적혀 있는 게 없었다.
상당히 수상하다.
부랑자 노인이 무언가를 발견한 하수구에만 묘한 숫자가 표기가 되어있다라.
이게 과연 우연일까?
그럴 리가.
현성은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씨익 웃었다.
아무래도 단서를 찾아낸 모양이다.
“숫자가 있다면 다른 곳에도 적힌 곳이 있겠습니다요.”
“물론이지.”
게다가 1-6이다.
그렇다는 건 적어도 1-1부터 1-5까지도 있다는 이야기 아니겠나.
현성은 무언가 단서를 얻었다는 생각에 빠르게 파이튼의 지도를 꺼냈다.
그리고 하수구, 혹은 하수도가 표기되어 있는 부분들을 살폈다.
우선 1-6이라고 적힌 부분을 체크하곤 다른 곳을 찾았다.
분명 패턴이 있을 거다.
그리고 이곳 저곳 살펴본 결과.
다른 곳을 찾을 수 있었다.
[1-3]
4나 5는 찾지 못하고 3.
현성은 그걸 다시 지도에 표기하고는 피식 웃었다.
3과 6.
이만하면 충분하다.
대충 패턴을 예상해서 이곳저곳 돌아다니자.
아니나 다를까 다른 곳도 찾아낼 수 있었다.
‘어? 이거?’
1-1부터 1-8까지.
모두 찾아내자.
도시 곳곳에 있는 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1부터 숫자대로 선을 긋자.
어디서 본 문양을 볼 수 있었다.
분명 어디서 본 문양인데 이게 뭐지 싶던 그 순간.
리베우스가 현성을 보며 말했다.
“오우!? 이거 그거 아닙니까요? 그 몬스터를 조종하는 흑마법사에게서 얻은 증표 말입니다요!”
“어, 어?”
리베우스의 말에 현성은 자기도 모르게 인벤토리에 있는 증표를 꺼냈다.
그리고 맞춰서 그걸 보자.
【결사대의 증표】
《퀘스트 아이템》
-설명: 현재로서는 알 수 없는 아이템이다. 어느 결사대의 증표로 보인다. 사용법을 알게 되면 어떠한 비밀에 빠져들지도 모른다.
‘딱 맞는다.’
설마 탐문이 성공할 줄이야.
솔직히 그냥 내일까지 할 거 없고, 레벨 올리기도 애매해서 시작한 탐문이었거늘!
진짜 무언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게다가 결사대와 연관이 있다니!
소름 돋는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현성이 그렇게 모든 단서를 알아내자.
그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뛰어난 안목으로 단서를 조합해 비밀 결사대와의 접점을 알아냈습니다.]
[엄청난 업적을 이뤘습니다.]
[칭호, 『명탐정』을 획득합니다.]
[비밀 결사대에 대해 알아내셨습니다.]
[파룬 시장에게 찾아가 이를 알리십시오.]
“어우.”
“오우!”
생각보다 판이 커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