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2부 67화
20장 파이튼의 지하 수로(4)
현성은 자기가 움직여서 퀘스트의 등급이 올랐다 생각하고 있었으나.
실상은 많이 달랐다.
이연희 부장이 한문석 팀장에게 지원을 요청해 어떻게든 등급을 올려놓은 것.
그렇다.
원래라면 시궁쥐 여왕이 정보원을 잡아먹고 강화되는 일은 없었어야 할 일.
하지만 그걸 한문석 팀장의 힘으로 다소 무리해서 강화를 해낸 거다.
다르게 말한다면.
‘이번 일이 실패하면 타격이 너무 크다.’
다소 무리하게 해놓은 거기 때문에 한문석이 들킬 수도 있는 노릇.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게 이연희 부장이 잘 커버를 쳐놓기는 했다.
그래도 빌미를 준 것은 틀림없다.
얼마 전에 한문석 팀장이 해놓은 마족 건도 있지 않던가.
자칫 잘못한다면 그거까지 드러날 수도 있지만, 그렇게까지 걱정하진 않았다.
적어도 이연희는 말이다.
‘민유라, 그 여자가 얼마나 바쁜데 고작 레벨 80 이하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은 관심도 없을 거야.’
우선 그렇게 생각했다.
이데아가 관리를 한다고 해도 이정도 개입은 당연히 허용해 준다.
무엇보다 한 이벤트가 망할 수도 있는 일이기에.
용인해 주는 코드이기에 해낸 것 아닌가.
물론 다소 무리한 만큼 의심을 살 수는 있지만, 절대 산업 스파이라는 것은 들키지 않으리라.
다만 이걸로 현성을 막을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거 아니겠나.
보통이라면 이 정도까지 했다면 막을 수 있노라고 생각할 거다.
하지만 이연희의 관점은 조금 달랐다.
‘못 막는다.’
현성을 막을 수 없을 거다.
거의 확신한다.
‘현성, 저 유저가 비슈누와 퍼시벌을 동시에 사용하지 않는 이상에 말이지.’
퍼시벌의 전투 컨트롤과 비슈누의 버프 컨트롤까지.
원래라면 동시에 둘 다 가능하지 않나.
둘이 형제가 아닌 스킬로 만들어낸 아바타라는 건 이미 이연희는 알고 있지 않나.
하지만 과연 그가 저걸 드러낼까?
이연희가 생각할 때 아니올시다였다.
밝힐 거였다면 이미 밝혔을 터.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한문석은 저 현성이라는 유저가 민유라나 조민우가 고용한 용병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믿지 않는다면 말이 되지 않으니까.
아무리 신등급이라고 한들 아바타를 만들어내 시스템을 속이고 둘로 인정을 받는다?
개발자인 민유라의 허용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적어도 이연희의 상식선에서는 그랬다.
‘후우.’
그러나 현성은 무슨 목적이 있어 퍼시벌과 비슈누를 나눠놨으니.
지금은 비슈누 상태여서 막지 못할 거다.
이연희는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시궁쥐 여왕은 한문석이 공들여서 만든 몬스터이지 않나.
예측을 불허하는 움직임이나 행동 패턴들은 공략을 한 번으로 결코 성공할 수 없으리라.
그리고 그 한 번의 실패로 파이튼은 그대로 결사대의 제물로 떨어지게 될 거다.
결사대가 본격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빌미.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막힌다면 타격이 아무래도 너무 컸다.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한다.’
처음에는 시궁쥐 여왕을 도망치게 하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현성이 미리 알려 파룬 시장이 모든 통로를 틀어막고 있었다.
이제는 도망치기도 어려운 상황.
여기서 승부수를 놓아야 했기에 이런 수를 두었다.
원래 이연희였다면 결코 두지 않았을 수였으나.
어쩔 수 없었다.
방도가 없는 걸.
‘제발 이 시작을 성공할 수 있길 바라야겠어.’
뛰어난 스킬들, 그리고 뛰어난 컨트롤.
그 둘이 합쳐져서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하는 현성이었으나 지금 그걸 나눠놓은 상태이지 않나.
전투와 버프를.
그렇다면 가능성은 충분하다.
문제는.
‘펫인데…….’
저 작은 펫이 뛰어난 업적을 만들어낸 걸 보긴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현성과 비교되는 게 사실이었다.
아무리 그래봐야 펫과 유저를 비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비슈누가 퍼시벌을 꺼내지 않는 이상 이기겠어.’
이연희가 그렇게 변수들을 모두 찾고는 성공하리라 확신하며 화면을 응시했다.
과연 어떻게 흘러갈지.
* * *
많은 유저들이 모여 있는 파이튼 시장, 파룬의 저택 앞.
모두가 갑작스러운 상황에 웅성거리고 있었다.
퀘스트 등급이 갑자기 너무 상향하는 바람에 다들 당황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쉽지 않겠어.”
“원래도 우리 최정예를 데려왔었는데, 전멸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보니까 A++는 초대형 길드에서도 쉽게 얻을 수 있는 퀘스트는 아니더군.”
“12 길드나 7대 길드도 마찬가지지.”
“S급 바로 밑의 등급이니 아무래도 그렇지.”
다들 웅성거리며 긴장한 모습이 다분했다.
모두가 파이튼에서 이름을 알아주는 길드장들과 그 길드의 정예들이었건만 쉽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사기가 떨어져 있던 그때.
멀리서 문양이 없는 사제복을 입고 나타난 한 유저를 볼 수 있었다.
천천히 다가오는 것만 본다면 아무도 반응하지 않을 법했지만 모두가 그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서, 설마 비슈누?”
“비슈누인가!?”
“허어! 진짜인가?”
그저 멀리서 보인 것만으로도 모두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점차 가까워졌을 때 비슈누가 착용하던 장비들이 슬그머니 보이자 모두가 환호하기 시작했다.
“비슈누다!”
“지, 진짜야!”
“비슈누도 지하 수로 원정대 중 하나였다니!?”
“미치겠군!”
“맞아! 수호천사 길드의 자리로 온다고 들었던 거 같아!”
“아! 데빌 길드와 길드전 때 이후로 말이지!?”
“오이오이! 믿고 있었다고!”
“쥐에에엔자아앙!”
아주 난리가 난 상황.
그런 상황에서 수호천사 길드가 먼저 움직여 비슈누, 그러니까 현성에게 먼저 다가갔다.
다른 길드원들이 혹여 거슬리게 할까 걱정이 되어 말이다.
그런 일은 단언컨대 없었다.
모두가 비슈누를 알고 있었는데 그런 무례한 짓을 하는 길드가 어디 있겠나.
다들 그저 비슈누인 현성의 등장에 주목을 할 뿐이었다.
그런 와중에 티미가 현성을 보며 침을 꿀꺽 삼키더니 물었다.
“괜찮으신가요?”
“예?”
티미의 질문에 현성은 무슨 말이냐는 듯 되물었다.
그러자 티미가 말을 이었다.
“방금까지 던전 레이드 하고 오신 거 아닙니까? 그것도 그런 엄청난 기록을 형제분과 같이 세우신 건데…….”
말끝을 흐리며 말하는 티미.
현성은 그 말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방금까지 레이드를 하고 왔는데 피곤하지 않느냐는 거였다.
현성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
하기야 다른 유저였다면 긴장이나 피곤에 절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긴 했다.
던전 하나의 기록을 최소 인원으로 갈아치운 거 아닌가.
피곤할 게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가 누구인가.
현성이지 않나.
고작 이 정도로 피곤하다면 그건 현성이 아니지.
현성은 오히려 그런 티미를 보며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마치 괜찮다는 듯 위로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 그러시다면 다행입니다.”
티미는 저도 모르게 그 말에 안도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무언가 압도되는 느낌이 있었다.
솔직히 마음까지 편안하게 만들어주다니.
이게 진정한 사제지 않을까.
티미가 그렇게 실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저택에서 시장인 파룬이 걸어나오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무려 기사단을 대동한 상태.
그걸 보며 유저들은 당황했다.
분명 유저들끼리의 퀘스트 아니었던가?
“원래라면 이방인들만 용병으로 보낼 생각이었으나 지하에서 불길한 기운을 감지하여 이렇게 여러분들을 소집하게 되었소.”
꿀꺽.
누군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파룬 시장의 말.
“따라서 나는 내 휘하의 2개의 기사단, 붉은갈기 기사단과 검은갈기 기사단을 보내기로 결정하였소. 비록 제국에서 직접 육성한 기사단이 아닌지라 레벨이 높은 기사단은 아니지만, 현재 내가 운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전력이오.”
“우와아아아아아아아!”
“기사단이 둘이나?”
“A++도 문제 없다!”
다들 그 말에 소리를 질렀다.
모두가 깼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
하지만 현성만은 이상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보통 갑작스럽게 이렇게 추가 병력이 지원이 된다면?
아까 등급이 올랐던 거처럼 내려가야 정상이다.
하지만 그런 기미가 보이는가?
아니, 전혀 보이지 않는다.
현성은 혹시나 하고 퀘스트 창을 열었지만, 여전히 등급은 그대로였다.
그렇다는 건 이게 뜻하는 바는 딱 하나.
‘기사단 두 개가 대동되어도 난이도가 A++라는 거네.’
다르게 말한다면 엄청나게 어렵다는 뜻이다.
물론 레벨 80대의 지역의 기사단이다보니 대략 평균 레벨은 90대에서 100 사이는 될 터.
시스템으로 보통 그렇게 만드는 게 정상이었으니까.
그런 기사단 두 개를 대동했는데도 A++등급이다.
무언가 분명히 범상치 않다는 거다.
적어도 평균 레벨 80, 아니, 기사단까지 포함한다면 낮은 유저들과 평균을 잡으면 어림잡아 90정도.
인원은 보아하니 기사단까지 포함하면 족히 200은 되어 보인다.
이만한 인원에 이만한 레벨에서 A++.
현성은 그걸 순식간에 계산하고 눈을 빛냈다.
‘퍼시벌을 꺼내야 하나?’
하지만 갑자기 등장해서 퀘스트까지 내놓으라?
당연하지만 시장과 연이 있었으니 가능은 하다.
유저들도 나빠하진 않으리라.
그러나 무언가 찝찝했다.
여기서도 퍼시벌에 너무 의존하는 거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는 해도 현성은 자존심이 상하는 걸 느꼈다.
그럴 바에 차라리 퍼시벌이 아닌.
현성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신의 어깨에 올라온 리베우스를 봤다.
오우? 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리베우스.
‘그래, 이번에 전투 모드인 악마의 형상도 얻었으니까.’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현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지하 수로에 도대체 뭐가 있기에 이렇게까지 등급이 올랐는지.
진입하기 전까지 모르겠지만.
200에 가까운 전력이라면.
‘적어도 도망은 못 치겠네.’
치더라도 어떻게든 걸릴 거다.
그러면 그때는 현성이 직접 나서면 되는 일이니.
현성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가볍게 몸을 풀었다.
그리고 리베우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리베우스, 이번에는 네가 활약할 때인 거 같다.”
현성의 그 말에 리베우스는 싱긋 웃었다.
안 그래도 몸이 근질근질하던 찰나였거늘!
참 좋은 기회가 왔다.
“결코, 주인님을 실망시키는 일은 없을겁니다요.”
진중하게 말하는 리베우스의 모습이 사뭇 달라 보였지만.
오히려 좋았다.
과연 악마의 형상은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