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2부 70화
21장 시궁쥐의 여왕, 줄리아(3)
현성의 스킬, ‘타나노스의 몽유병’은 인공지능이 저절로 현성의 컨트롤을 구사하는 식으로 발동되는 스킬이다.
잠을 자고 있는 동안 공격을 받거나 적대 행위가 인정되면 발동되는 스킬.
하지만 여기서 작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인공지능, 이데아가 관리하는 컨트롤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고 새로운 일들이 많은 이데아에겐 현성의 스킬인 타나노스의 몽유병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때문에 새로운 인공지능을 부여했다.
현성의 컨트롤을 바탕으로 말이다.
“…….”
그 때문일까.
현성의 몽유병은 작금의 상황을 살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떠한 상황인가.
지금 자신은 어떠한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이 맞을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자아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
그리 큰 자아는 아니었다.
단순히 지금의 상황을 판단하고 행동하는 아주 자그마한 자아.
거기서 시작된 자아는 우선 자신의 차림을 살폈다.
사제복을 입고 있는 자신, 아니, 현성을 바라보곤 생각했다.
이것은 비슈누라는 것을.
“…….”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으나 현성, 아니, 몽유병은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여기까지 고작해 봐야 0.1초가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발동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현성의 아바타를 향해 날아드는 파멸의 사안을 바라보고 스킬을 발동했다.
평소 비슈누의 컨셉이 사용하던 스킬 중 하나.
신성 방패를 사용했다.
물론 그것만으로 부족했기에 신성력을 사용해 신성 방패와 함께 홀리 웨이브를 거기에 섞었다.
신성한 파동이 거대해진 신성 방패를 밀어냈다.
퍼시벌이 사용하던 홀리 웨이브나 신성 방패와는 궤를 달리하는 모습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같은 스킬이라 판단할 수 없으리라.
두 가지의 스킬이 합쳐져 파멸의 사안과 공멸한다.
<……뭐…지?>
순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줄리아의 모습.
거기에 몽유병, 아니, 비슈누는 그대로 이전까지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선 리베우스를 향해 힐을 날리곤, 후속으로 움직일 줄리아를 대비하여 홀리 바인드를 사용했다.
솨르르르르!
무수히 많은 빛이 하늘에서 떨어져 그대로 줄리아를 묶어놓는다.
바인드에 걸려 움직이지조차 못하는 줄리아를 향해 비슈누는 두 개의 화살을 사용했다.
둘 다 엄청난 신성력이 담긴 화살로.
푹! 푹!
정말 물 흐르듯 이어진 동작에 모든 사람들이 멍하니 그걸 바라봤다.
어떻게 저렇게 할 수가 있는가.
“뭐, 뭐지?”
“아, 아니, 뭐야.”
“저렇게도 할 수 있는 거야?”
“꿀꺽.”
마치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을 보는 것처럼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비슈누가 대단하다는 걸 모르는 이가 여기에 있을까.
그렇지 않다.
한데도 직접 보니 그 실감이 났다.
현재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유저가 어떤 위력을 지녔는지 말이다.
쓰러져 있던 비슈누가 일어나자마자 압도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당연히 그리 생각할 만도 했다.
“펫만으로도 압도하긴 했었는데, 갑자기 밀리기 시작하더니 일어나서 다시 반격한다고?”
“미친, 영화 시나리오라고 해도 믿겠다.”
“미쳤다.”
“우, 우리도 도와야 하나?”
“그, 그…… 우리가 필요할까?”
“그니까 말이야…….”
모두가 넋이 나가 그저 감탄만 하기 바빴다.
당장 저기에 끼어들까도 생각했지만.
방금 어떤 상황이 일어났는지를 생각하면 섣불리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넋이 나가지 않고 움직이는 이가 있었으니.
“오우!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셨다는 겁니다요!”
리베우스가 힐을 받고 다시 되살아났다.
물론 그뿐만이 아니었다.
각종 힐과 더불어 버프들까지 받은 리베우스.
자잘한 버프이긴 했지만, MP가 아닌 신성력을 사용해서 그럴까.
평소보다도 훨씬 증가 폭이 늘어났다.
리베우스는 그걸 느끼며 저도 모르게 싱긋 웃었다.
주인인 현성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길 원했지만, 여태 미미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다르다.
리베우스는 그대로 버프를 다 받은 후 줄리아를 향해 연타를 날렸다.
쾅! 쾅쾅! 쾅! 쾅쾅쾅쾅쾅!
하나하나가 묵직한 일격.
연달아 이어지는 폭격과도 같은 무수히 많은 주먹에 줄리아의 체력이 빠르게 닳아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홀리 바인드에서 풀려난 줄리아가 괴성을 내질렀다.
<크야아아아! 죽여버리겠다!>
이미 한쪽 눈을 잃고 상처도 극심해졌다.
지금 상황에서 해야 할 일은 딱 하나다.
회복!
어떻게든 말이다!
줄리아는 기민한 몸놀림으로 리베우스를 따돌리고 다른 길드원들이 몰린 곳을 향해 달리려 했다.
어떻게든 회복해야 하니.
눈이라도 회복해야 상대할 수 있다.
리베우스를 따돌리기 위해 괴성을 내질렀다.
<캬아아아아!>
거대한 포효가 울리자 갑자기 나타나기 시작한 시궁쥐 녀석들.
리베우스는 그걸 보며 인상을 쓰곤 빠르게 주먹을 휘둘러 녀석들을 터뜨려 버렸다.
주먹질 한 방에 두셋이 터져 나가는 오염된 시궁쥐.
하지만 그럼에도 수가 너무 많았다.
당장 줄리아의 속도를 이길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조금 막힌 리베우스를 보며 줄리아가 회복하기 위해 가장 가까운 길드원들이 몰린 곳으로 달리려던 그때.
♪♬~ ♪♬♪♪♬~
어디선가 피아노 선율 소리가 들려왔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 소리.
하지만 왜일까.
줄리아는 그 피아노 선율을 듣고 온몸의 털이 섬찟하게 곤두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게 무슨 감각일까.
갑자기 나타난 피아노 선율과 온몸에 돋은 소름.
무슨 일일까 파악하기도 전에 줄리아는 발견할 수 있었다.
하늘 위에서 번쩍거리는 빛을.
그렇게 올려다보자 하늘에서 환하게 빛나고 있는 하얀 벼락들이 땅으로 낙뢰하고 있었다.
세상에 모든 소음을 집어삼킨 저 하얀 벼락을 보며 줄리아는 생각했다.
견딜 수 있을까?
아니! 견뎌야만 한다!
줄리아가 그리 다짐한 순간.
온몸을 꿰뚫는 격통이 내리쳤다.
─────────────!
<……!>
고통에 아무런 비명을 지를 수 없었으나 어떻게든 견뎌냈다.
머리가 모두 새하얗게 질릴 만한 데미지였으나.
아직 살아 있다.
아직.
여기서 인간을 섭취만 한다면.
살아날 수 있으리라.
어떻게든 저 녀석들을 이길 수 있으리라.
그리 생각하고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움직여지지 않는다.
손을 뻗으려 해도, 다리를 움직이려 해도, 모든 게 움직여지지 않는다.
빨리, 조금만 더 빨리 충격에서 벗어나 움직여야 한다.
그렇게 독한 의지로 가득 찼을 때.
까딱.
손이 움직였다.
이대로 나아가기만 한다면 된다.
희망이 생긴 순간.
자신을 향해 싱긋 웃고 있는 금발의 미남자가 천천히 다가왔다.
줄리아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아…ㄱ…마……!>
“오우, 맞는 말이긴 하지요.”
리베우스는 그런 줄리아를 향해 싱긋 웃으며 대답하곤 자신의 주먹에 온 힘을 담았다.
MP와 신성력, 그리고 스킬 성자의 빛까지 조금 담으며 주먹을 뻗었다.
정직하게 뻗어지는 정권.
하지만 왜일까.
줄리아는 그 정권을 보고 자신이 멀쩡한 상태였다고 한들 피할 수 없었으리라 생각했다.
애초에 승리는 정해져 있었던 것일까.
자신의 머리를 향해 날아드는 리베우스의 정권을 바라보며 쓰게 웃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콰직!
마침내 줄리아의 머리가 수박처럼 터져 버렸다.
A++등급의 퀘스트 보스답지 않은 허무한 결말이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러지 않았던 모양.
“우와아아아아아아아!”
“이겼다!”
“진짜 이겼어!?”
“아니! 비슈누 님과 비슈누 님 펫이 다 했다고!?”
“말이 되나!?”
다들 얼떨떨한 마음에 떠들긴 했지만, 어찌 보면 민망한 상황이긴 했다.
돕기는커녕 오히려 상대를 회복하게 만들지 않았던가.
그런 주제에 지금은 소리치면서 퀘스트를 깼다고 좋아하다니.
조금 면목이 없긴 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기뻐하는 건 또 별개 아니겠나.
“비슈누!”
“비슈누!”
“비슈누!”
모두가 비슈누를 외치며 환호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유저들을 돕고 이 레이드를 성공으로 이끈 건 분명 비슈누였으니까.
“진짜 비슈누 님 아니었으면 실패했을 겁니다!”
“진짜 대단하십니다!”
“이런 현장에 있었다는 것만으로 대박이다!”
그러던 상황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퀘스트를 클리어했다는 메시지 말이다.
[공적치에 따라 보상이 주어집니다.]
[특정 유저의 공적치가 전체 공적치의 대부분을 소유했습니다.]
[특정 유저를 제외한 모든 유저의 퀘스트 보상이 하향됩니다.]
“아!”
“아쉽네.”
“하지만 인정이지.”
“보스가 진짜배기였는데 그걸 혼자 잡으셨으니까.”
“사실 시궁쥐는 별것도 아니긴 했어.”
다들 그렇게 말하면서 공지가 떠오르는 걸 계속해서 봤다.
과연 그러면 비슈누, 그러니까 현성에게는 어떤 보상이 돌아갈지.
누구도 질투나 열등감이 아닌 인정하고 있는 와중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보상의 등급이 상향됩니다.]
[추가적인 보상이 지급됩니다.]
[개인 스토리 시나리오에 대한 단서가 주어집니다.]
자세한 내용은 나오지 않았지만 간략하게 나온 것만 봐도 심상치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모두가 그걸 보고 순수히 축하해 주었다.
“진짜 축하합니다!”
“비슈누 님은 자격이 있습니다!”
“축하합니다!”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모두가 입을 모아 축하를 하고 있는 와중에 리베우스가 그런 그들을 보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이 방해를 하기도 했다지만.
리베우스는 그런 건 상관없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오히려 잘되었다.
지금 저들이 모두가 주인님께 신앙심을 품지 않았던가.
그거면 된 거다.
리베우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현성의 캐릭터 근처로 갔다.
여전히 몽유병의 인공지능이 움직이고 있었으나 그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리베우스도 그걸 알고 있었기에.
다른 유저들을 향해 외쳤다.
“오우! 주인님께서 모두에게 감사하신다고 하십니다요!”
““우와아아아아아아아!””
리베우스가 그렇게 마무리를 짓고 있었을 때.
예상대로 비슈누, 아니, 정확히는 현성의 캐릭터를 담당하고 있던 인공지능이 힘을 잃고 있었다.
임무를 완수했으니 이제 사라져야 할 시간.
하지만 무언가 아쉬웠는지 돌아가기 전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그러곤 무언가 알 수 없는 희미한 미소를 짓더니 자신을 부르는 저들을 향해 손을 가볍게 흔들어주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인공지능은 그러고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갔다.
털썩.
현성의 캐릭터가 힘이 빠져 쓰러지는 걸 리베우스가 잡고 묘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느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전과 좀 다르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