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2부 71화
22장 거대한 파도(1)
이번에도 실패다.
이연희 부장은 입술을 깨물며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한문석 팀장의 권한까지 사용해서 막으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설마 저 리베우스라는 펫이 저 정도로 강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자기가 무슨 초사이X이라도 되는 줄 아나.
금발이 되니 강해지게?
이연희는 그런 생각을 하곤 한숨을 쉬었다.
“후우.”
이번에도 현성이다.
현성.
어쩜 사사건건 모두 방해를 하는 것인지.
안 될 거라 생각한 일들도 능히 해내지 않는가.
사실 이쯤 되면 치트 플레이어가 아닌가 싶었지만.
이연희가 보기에 그러진 않았다.
정보를 열람해 보진 않았지만 그녀 역시 개발자이지 않나.
척하니 보면 알 수 있다.
‘컨트롤 자체가 엄청나긴 해.’
물론 직업이 사기인 것도 있는 거 같긴 하다.
보정도 받고 있었고.
마지막에 현성이 직접 움직인 건지 아니면 보정을 받았는진 모르겠지만.
마찬가지로 엄청나지 않았던가.
컨트롤 보조 장치를 받아서 첩자로 활동하는 거일 수 있지 않느냐, 할 수 있지만.
정말 모르는 소리이다.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 않나.
이데아가 다스리는 이곳에서 이데아의 시선을 벗어날 수는 없으니.
그걸 허용한다 하더라도 그런 시스템은 존재할 수가 없다.
다시 말해 현성의 컨트롤은 본인의 힘이라는 거.
그리고 이연희는 그걸 보고 하나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수라다.’
확신했다.
그가 은퇴를 했을 때 이연희 역시 아쉬워하지 않았던가.
한데 이걸 보니 왜 그랬는지 알 수 있었다.
민유라나 조민우가 연락을 넣어서 아수라를 영입했다.
그거 말고는 말이 되지 않는다.
영입된 아수라는 당연히 은퇴를 하고 다른 방송을 시작했다.
너무나도 타당하고 딱 들어맞는 추리였다.
이연희는 그걸 확신했다.
저만한 컨트롤이 한 시대에 둘이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걸 알면 뭐하겠나.
‘막을 방도가 없는데.’
아수라.
역사적으로 가장 위대한 게이머.
그리고 세계 최고의 컨트롤로 유명한 이 아니겠나.
하기야 그러니까 저만한 일들을 해내는 거지.
이제 좀 현성의 힘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저런 자가 적이라.
‘무섭네.’
이연희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 이길 수 없는 싸움일까?
아니, 그러진 않다.
분명히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한다.
하지만 지금은 골치가 너무 아플 뿐.
하아.
절로 한숨이 나오는 이연희는 현재 상황을 먼저 파악했다.
꼬여도 단단히 꼬였다.
이렇게 되면 상당히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무려 1년 몇 개월이나 지속해온 일이건만.
이게 실패하면 몇 개월이나 더 늦어지는 거지?
원래도 이게 성공했다 한들 몇 개월 후에 성공할 예정이었건만.
이제 정말 1년이라도 더 밀릴 생각인가.
아니, 그것마저도 현성이 있는 한 힘들다.
한문석 팀장의 말대로다.
이건 민유라, 조민우가 방해하는 게 아니고서야 말이 안 된다.
‘여전히 의문인 건 이만한 증거를 얻었으면 나나 한문석 팀장을 자를 수도 있을 텐데.’
직접적인 행동에 나서진 않았다는 거.
그게 가장 의문이긴 했지만.
처리해야 하는 업무가 많아 아직 현성이 보고를 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나.
여러 상황이 있으니.
일단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한문석 팀장에게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이 계획이 어그러지면 앞으로 큰 틀이 많이 망가진다.
무엇보다.
‘결사대는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
결사대가 직접 나설 명분도 정보도 지금 부족하다는 거다.
이 일들이 모두 현성이라는 존재 하나 때문에 어그러지고 있다는 걸 모른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당연하지만 이연희 부장은 그걸 떠올리고 좋은 아이디어를 얻긴 했다.
결사대가 자연스럽게 현성을 알게 되는 방향.
이게 있다면 현성을 직접적으로 막을 수 있으니.
아무리 아수라라고 해도 단체가 없이 홀로 움직이는 현성이지 않나.
비네샤와 묘한 대화를 나눈 거 같지만.
사생활로 인해 음성까지 들을 수는 없었다.
게임에 문제가 되는 키워드였다면 들렸을 수도 있지만.
그런 게 아니었기에 뭐라 하는진 듣지 못했다.
아무튼 그때 비네샤와 이야기를 나누긴 했지만.
대강 생각해 봐도, 길드 영입을 거절한 거 아니겠나.
‘천만다행이지.’
이연희는 현성보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눈엣가시인 비네샤를 떠올리고 이를 갈았다.
그 여자 때문에 손해를 본 걸 생각하면 아직도 이가 갈릴 지경이었으니.
룬 제국을 위주로 활동하는 발할라 길드.
그리고 비밀 결사대 역시 룬 제국에서 활동 중이다.
원래라면 다른 유저들은 발견하기도 쉽지 않을 비밀 결사대를 발할라 길드는 약간의 실마리를 얻어 수사하는 중이었다.
때문에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었다.
만약 둘이 힘을 합쳤다면?
오싹.
상상만으로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이건 아니다.
‘그런 일은 없어야지.’
끔찍한 상상을 덮었다.
아무튼 지금 현성은 단체적인 힘이 없는 상태.
그런 상태에서 결사대가 현성에 대해 안다면?
척살까지는 몰라도 더 조심하거나 그런 쪽으로 방향을 튼다면.
문제가 다소 해결이 된다.
무엇보다 비밀 결사대 자체가 현성을 알아차리면 대비하기 편하니.
앞으로 그쪽으로 생각해서 방향성을 짜야겠다.
물론 그러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한문석 팀장에게 보고를 하는 것.
‘하아.’
이런 실패는 또 처음이었다.
한문석의 힘까지 사용했는데 말이다.
면목이 없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이연희는 그렇게 생각하며 수화기를 들었다.
잔소리를 들을 차례였다.
* * *
현성은 지금 유령인 상태로 자신의 캐릭터가 활약한 걸 모두 보며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었다.
컨트롤이 좋다는 건 알고 있었다.
현성의 컨트롤을 그대로 이용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사실 걱정하긴 했다.
퍼시벌 컨셉도 튀어나올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왜일까.
인공지능이 갑자기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면서 현성이 평소 하던 사제 컨셉과 동일하게 플레이 해주었다.
정말이지 천만다행.
한데, 왜일까.
‘뭔가 평소랑은 많이 달라 보이긴 하네.’
몽유병이 뭐가 다를 게 있냐고 할 수도 있었지만.
현성은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당장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중요한 건 바로 이거다.
보상!
어마어마한 보상이었다.
[공적치에 따라 보상이 주어집니다.]
[당신의 공적치가 전체 공적치의 대부분을 소유했습니다.]
[당신을 제외한 모든 유저의 퀘스트 보상이 하향됩니다.]
[보상의 등급이 상향됩니다.]
[추가적인 보상이 지급됩니다.]
[보상의 등급이 상향되어 스킬북과 아이템 상자가 전설 등급으로 상향됩니다.]
‘미친.’
여기까지만 보더라도 엄청난 보상이다.
등급이 무려 전설이라니.
기본이 전설 등급 스킬이라는 거 아닌가.
아이템도 마찬가지로 말이다.
진짜 이게 무슨 일인가.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막대한 경험치를 획득하셨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8
[개인 스토리 시나리오에 대한 단서가 주어집니다.]
무려 8단계의 레벨 업과 개인 시나리오에 대한 단서까지.
진짜 알짜배기도 이런 알짜배기가 없었다.
그리고 마무리는 당연히 이거지.
현성은 그러고 이어진 메시지를 봤다.
[공격대에 속한 모든 유저가 당신을 칭송합니다.]
[유저를 신도로 만들었습니다.]
[스킬, ‘신의 권위’로 신성력이 상승합니다.]
[신성력 능력치가 최대치인 50만큼 상승합니다.]
[스킬 선택에 추가 보정이 들어갑니다.]
[총 다섯 가지 스킬 목록이 생성됩니다.]
[한 번에 한 가지를 고를 수 있습니다.]
‘와.’
진짜 고작 퀘스트 하나 깼다고 얻은 보상치고 너무 크긴 했지만.
등급이 A++등급이었으니까.
충분히 납득이 되긴 했다.
하기야 이 정도 받지 못했으면 서운할 뻔했다.
당장에라도 보상을 뜯어보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리베우스는 현성의 성격을 잘 알아서인가.
유저들에게 인사를 하곤 마지막에 현성을 안고 평소 가던 여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별일 없이 1시간이 흐를 터.
시간도 아직 한참이나 남아 있으니.
‘나가서 기다렸다 들어오자.’
현성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캡슐 밖으로 나갔다.
보고 있으면 오히려 더 시간이 안 가는 법.
군대 시계도 그러지 않았는가.
으득, 지금 생각해도 군대 얘기만 하면 화가 나긴 했지만.
현성은 애써 뒤로하며 밖으로 나왔다.
캡슐 밖으로 나오자 그래도 좀 오래 있었다고 몸이 찌뿌드드한 게 느껴지긴 했다.
하긴 오래하긴 했지.
오늘은 이만 쉬어야겠다.
보상이 기대되긴 했지만.
어차피 사라지는 게 아니지 않나.
‘건강이 우선이지.’
현성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가볍게 스트레칭을 해주었다.
장기간 게임을 하면 이게 문제라니까.
그나마 스트레칭을 하니 좀 나아졌다.
현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숨을 내쉬었다.
“후우.”
요 며칠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긴 했다.
퍼시벌이라는 존재와 비슈누가 동일인물이라는 걸 알아낸 비네샤.
그리고 그걸 아니라고 해명하고 난 뒤 퍼시벌과 합방까지.
한 거에 비해 시간이 너무 안 간 걸 생각하면 좀 아찔하긴 했다.
이다음에는 뭘 할까?
이제 레벨 80도 채웠으니까.
100 이상 지역으로 가는 게 현성에겐 편하긴 했다.
다만 어디로 가야 할지 알아보기가 좀 귀찮았다.
그러다가 문득 비네샤가 생각났다.
마침 그녀와 계약한 것도 떠올랐고 말이다.
‘흐음, 용병으로 써달라 할까?’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그들이 확보하고 있는 노하우나 던전들이 있을 테니.
그대로 성장하면 나쁘지 않을 거다.
레벨을 까야 하겠지만.
그거야 뭐 아무것도 아니다.
레벨이 알려져서 나쁠 건 없으니까.
조금 놀라는 수준이겠지만.
아무튼 현성은 내일은 비네샤에게 연락을 해야겠다 생각하곤.
휴대폰을 바라봤다.
‘연락이…… 오, 예린이다.’
게임 하는 동안 예린이에게 연락이 온 걸 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바쁘다고 서로 데이트도 잘 못 하긴 했으니.
오늘 만나자는 걸까?
현성은 그런 생각으로 휴대폰을 열어봤다.
그리고 연락 온 메시지.
[오빠 아버지가 보자고 하셔요…… 오늘 저녁 시간 괜찮으세요?]
꿀꺽.
현성은 그걸 보고 순간 생각했다.
예린이의 아버지이자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의 회장.
오늘 시간이 괜찮으냐고?
현성은 웃으며 중얼거렸다.
“큰일났네.”
이거 아무래도 거대한 파도가 몰아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