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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만 자도 랭커 2부-72화 (398/472)

잠만 자도 랭커 2부 72화

22장 거대한 파도(2)

서울의 전망이 대부분 보이는 엄청난 높이의 건물 꼭대기 층.

그곳에서 한 중년인이 예린을 보며 물었다.

“그래, 어떻게 되었느냐.”

“아, 그게. 아직 답장이 없네요.”

“흐음, 바쁜 모양이구나.”

예린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당혹스러움을 감추진 못했다.

만나기 전엔 언제나 미리 약속을 잡는 편이셨던 분이건만.

오늘은 왜 이리 갑작스러운지.

조금은 당혹스러워서 예린이 그런 중년인을 바라봤다.

아직도 정정해 흰머리 하나 없는 머리와 멀끔한 얼굴.

관리를 받은 게 아닌 원래부터 좋아 보이는 피부까지.

중년미가 참으로 어울리는 이라고 할 수 있는 느낌이었다.

연예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외모였으니.

그런 중년인을 바라보는 예린의 심경은 조금 복잡했다.

판시아를 창시한 기업, CJM의 총수이자 자신의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남자친구를 불렀으니.

당연하지만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무슨 생각이시지?’

하지만 예린이 본다고 해서 얼굴에 의도를 드러낼 아버지, 차정민이 아니었다.

한 기업의 총수의 속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겠는가.

알 수 있는 방법이라곤 하나다.

예린은 그렇게 생각하며 아버지를 보고 물었다.

“……오빠는 무슨 일로 부르시는 거예요?”

“흐음, 그건 이제 나와 현성 군이 알아서 이야기하도록 하마.”

“……네.”

“다만 뭐라 하려고 부르는 건 아니라는 것만 알려주마.”

차정민이 그렇게 말하자 그래도 예린은 좀 안심이 되었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예린을 보며 차정민 회장은 살짝 인상을 찌푸리곤 물었다.

“아비 앞에서 남자친구 편을 들기도 하다니,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는구나.”

“아, 죄송합니다.”

“아니, 탓하려는 건 아니었다. 딸내미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게 신기해서 말이다.”

“아.”

“게다가 딸이 거의 5년을 연애했다는 상대인데 한 번을 보지 못했으니. 한번 보고 싶어서 부른 거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아, 네 알겠어요.”

예린이 알겠다고 하자 그제야 차정민 회장이 업무를 봤다.

그러던 중.

예린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 순간 차정민 회장의 얼굴에 살짝 실금이 가며 휴대폰이 울린 쪽으로 눈이 향했다.

집중을 깨서가 아닌 기다리던 연락인가 싶어서.

예린도 순간 휴대폰을 보더니.

“오.”

표정이 밝아지는 걸 보고 차정민 회장은 확신했다.

분명 저 연락은 현성일 것이라고.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예린이 차정민 회장을 보며 말했다.

“오빠가 오늘 시간 괜찮으시다고 하네요.”

“그거 다행이구나.”

“그럼 저도 일 보러 가겠습니다.”

“그래, 알겠다.”

차정민 회장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예린은 그런 아버지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회장실에 홀로 남은 차정민 회장은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며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리고 무슨 버튼을 누르더니.

말했다.

“미리 준비하라는 거 모두 준비해 주십시오.”

-예, 회장님 대기해 놓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부하 직원에게도 존대를 하는 차정민 회장은 갑자기 심각한 표정으로 두 손을 모아 입가에 가져갔다.

그러곤.

“후우.”

짙은 한숨을 쉬며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과연 어떻게 될는지.

* * *

한편 예린에게 답장을 보낸 현성은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침대 위에서 난리를 치고 있었다.

“으어우아어아!”

결국 간다고 보냈다.

하지만 어쩌겠나.

안 간다고 어떻게 하느냔 말이다.

회장이자 예린의 아버지가 부르는데 안 간다?

그런 선택지는 현성에게 없었다.

간다와 빨리 간다.

이 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막상 보내놓고 나니 너무 긴장되었다.

미치겠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말끔하게 입고 가는 게 낫겠지?

현성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지금 이렇게 계속 흥분 상태면 이따 실수를 할 수도 있으니 일단 진정하자.

‘부르실 거 같다고 하긴 했으니까.’

대비를 하긴 했지만.

심장이 벌렁거리는 걸 좀 봐라.

하기야 그냥 여자친구 아버지를 뵈러 가는 것도 떨리는데.

그게 재벌가의 총수다?

이건 긴장을 넘어서 두려움으로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는다는 건 알지만, 괜히 드라마 같은 예가 떠오르지 않는가.

괜히 헤어지라고 하는 거 아닌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예린에게 듣기로는 그런 분은 아니라는 걸 알긴 했다.

다만 예전에 예은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처, 처제가 그랬지, 아버지가 한번 아니면 아니라는 거.’

뜻을 절대 굽히지 않는 분이라고 했었다.

반대로 생각해 보자.

과연 현성이 결혼을 해서 딸이 5년간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다고 한다.

그때 남자친구를 불러서 보자고 했다.

과연 현성은 그때 어떤 심정일까?

답은 간단했다.

“내 딸은 안 돼!”

순간 욱하고 튀어나온 마음.

현성은 그렇게 내뱉고 나서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자기가 이렇다는 건?

실제로 딸을 가진 이라면 더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 아니겠나.

꿀꺽.

하지만 뭐 이렇게 고민해 봐야 달라질 게 뭐가 있는가.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돈 봉투를 쥐여주고 헤어지라고 할 수도 있다.

그래봐야 현성은 헤어질 마음이 없다.

“누가 뭐라고 해도 말이야.”

예린과는 헤어질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말이다.

그 누구가 예린의 아버지라면 좀 곤란하긴 하겠지만.

그럼에도 현성은 의지를 꺾을 생각이 없었다.

자신과 예린의 연애이고, 서로 사랑하지 않는가.

그 누구도 끼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말이다.

현성은 그렇게 다짐하자 좀 마음이 편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설마 예린의 아버지가 그렇게 나오리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혹시 모르니.

대비를 하는 건 언제나 현명한 법이다.

‘그럼 슬슬 준비하자.’

대망의 거대한 파도를 맞이할 때가 찾아오고야 말았다.

* * *

저녁 약속이다 보니 시간은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었다.

7시.

딱 적당하다 할 수 있는 저녁 시간.

현성은 그때 미리 도착해 높은 건물을 바라봤다.

설마 회사에서 보자고 하실 줄이야.

여기도 식당이 있다고 듣긴 했는데.

듣자 하니 회장 전용 식당이 꼭대기 층에 있다고 했지.

지금 현성이 그곳으로 가는 거다.

설마 이런 곳에 올 줄은 몰랐는데 말이다.

그렇게 들어가기 직전.

현성은 다시 한번 자신의 차림을 살폈다.

‘괜찮지?’

멀끔하게 보인답시고 세미 정장을 입고 오긴 했다.

현성이 보더라도 탄탄한 몸매에 딱 정장에 어울리는 모습이긴 했다.

넥타이까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깔끔하다는 인상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대기업을 다니던 때의 느낌도 있긴 했지만.

훨씬 나았다.

스타일링을 확실히 받던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는 매우 컸으니까.

무엇보다 원래도 멋있는 현성이지 않았나.

꾸미니 훨씬 나아졌다.

“후우, 들어가자.”

심호흡을 하며 그렇게 회사로 들어가려던 그때.

입구에서 익숙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어? 오빠?”

“으이? 진짜네?”

“뭐야? 여기 다 오고요?”

“어?”

다름 아닌 영웅 길드원들이었다.

아이와 스티, 써니와 마지막으로 현아까지.

“진짜네!?”

“우리 회사까지 무슨 일?!”

“오오! 멀끔하게 입었는데?”

“아하하! 설마 회장님 만나러 가는 거야?”

마지막에 현아가 농담을 던지자.

현성은 저도 모르게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아.”

“아.”

“아, 저런.”

“크흠.”

다들 분위기가 좀 이상해진다.

하나같이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변하는 이들.

왜 저러는 거지.

현성이 뭐라 물어보려고 하자.

현아가 다른 이들을 이끌면서 현성을 보며 말했다.

“아, 아하하. 그 우리는 회식 있어서 먼저 가볼게! 이, 이따 집에서 봐! 조심하고!”

“현성 님! 조심하세요!”

“정신만 차리면 삽니다!”

“부디!”

저마다 한마디씩 하는데 저러니까 더 불안해졌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

어떻게든 긴장을 풀려고 했는데.

오히려 더 긴장하게 되었다.

이걸 어쩌면 좋단 말인가.

하지만 이제 와 내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현성은 다시 한번 각오를 다지고 회사 내부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현성 님 되십니까?”

“예, 제가 현성입니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네, 감사합니다.”

현성은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비서로 보이는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는 따라갔다.

그러자 비서가 아무나 탈 수 없을 거 같은 엘리베이터로 가더니.

무슨 카드를 찍자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그리고 비서와 함께 들어가자.

그가 다시 카드를 찍고 최상층을 눌렀다.

‘우리 집 엘리베이터보다도 빠르네.’

현성의 집도 나름 상당한 고가의 아파트의 펜트하우스지 않은가.

한데도 그런 현성의 집보다도 훨씬 빠른 엘리베이터였다.

하기야 이 정도 높이인데 그럴 만도 하다.

그렇게 얼마 있지 않자.

최상층에 도착할 수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인테리어는 정말 웅장하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화려하다기보다는 웅장하다는 표현에 가까웠다.

하나하나 무슨 신전처럼 꾸며놓은 모습에 현성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이런 곳에서 일하면 어떤 느낌일까?’

현성은 쓰잘데기없는 생각을 하며 그대로 비서를 쫓아갔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식당으로 보이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으로 들어가자.

연예인 차승X을 보는 듯한 날카롭고 차가운 인상의 중년인을 볼 수 있었다.

그냥 보기만 해도 포스가 넘쳐 흐르는 모습의 중년인.

현성은 알고 있었다.

저 사람이 바로 예린의 아버지이자 CJM의 총수인 차정민 회장이라는 걸.

현성이 오자마자 차정민 회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현성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어서 오시지요, 현성 군. 예린의 아버지 차정민이라 합니다.”

“아, 바, 반갑습니다. 아버님. 이현성이라고 합니다.”

어색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차정민 회장이 내민 손을 잡고 악수를 했다.

그러자 차정민 회장은 슬며시 표정을 굳히더니 다시 자리로 향하며 말했다.

“이곳에 앉으시지요.”

“아, 네.”

현성은 침을 꿀꺽 삼키며 일단 괜찮은 건가 싶었다.

왜냐.

아버님이라 했는데 별로 반응이 없으셨기에.

물론 표정이 굳어지는 걸 보긴 했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화를 내지 않아서 다행이라 해야 할까?

다만 역시 예린이 없는 걸 보고 좀 불안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스윽.

갑자기 무언가 내미는 차정민 회장.

그리고 현성은 저도 모르게 그 내미는 걸 볼 수 있었다.

흰색의 종이.

백지 수표인가?

저걸 주고 이제 우리 예린이와 헤어져 주게.

그런 말이 나오는 건가?

현성은 순간 그런 생각을 하며 뭐라 말해야 할지 미리 대비하길 잘했다 생각했다.

현성 역시 표정을 굳히고 있었을 때.

차정민 회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싸인 좀 해줄 수 있을까요?”

“…어? 예?”

“크흠, 제가 현성 군 팬인지라.”

“……예?”

정말 예상외의 일이 일어나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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