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2부 85화
26장. 테라의 성기사 리안(2)
개척 마을 마룬은 이전과 확실히 달라졌다.
규모도 그랬고, 사람들의 모습도 그랬다.
이전과 달리 희망이 가득한 사람들의 모습이 그러했고, 이제는 개척 마을이라 부르기에 민망할 정도로 규모도 상당히 커져 있었다.
상행들도 오갈 정도였으니.
말하지 않아도 그 규모가 얼마나 커졌는지 알 수 있었다.
곧 신전도 지어진다는 소식에 이주를 원하는 주민들 역시 많았다.
그런 와중에 거의 다 완공이 끝나가는 신전 앞에 두 성기사가 대립하고 있었다.
아니, 대립이라기엔 다소 애매한 말다툼이었다.
“레이나. 돌아가자.”
“리안 오빠나 가.”
“흐음, 테라 신께서 네가 이러는 걸 아시면 슬퍼하실 게다.”
“아니, 있어야 뭘 슬퍼하든가 말든가 하지! 안 계신데 어떻게 슬퍼해!”
“흐으음.”
상당히 곤란하다는 듯 여자 성기사의 앞에서 서 있는 남자 성기사.
리안이라 불린 성기사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테라 교단의 성녀인 레이나가 어째서 저렇게 되어버린 건지.
리안은 진심으로 한탄스럽다는 듯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레이나가 말하는 걸 리안 역시 느끼긴 했다.
그 역시 어려서부터 유망하다는 소리를 듣던 천재 성기사이지 않은가.
천재인 그가 테라의 기운이 사라진 것을 느끼지 못할 리가 없다.
그러기에 레이나도 저러는 걸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성기사인 자신이 어찌 테라 신을 저버릴 수 있겠는가.
묵묵히 믿고 기다릴 뿐이다.
언젠가 다시금 자신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시리라 믿었다.
“그럴수록 우리가 믿고 기다려야 한다.”
“아니! 우리를 구원하실 분은 한 분이셔!”
“흐음.”
곤란하다.
레이나를 이렇게 만든 원인은 모두 그 이단 때문.
그렇다고 처단하기에는 그 또한 곤란하다.
‘레이나가 이 정도로 나온다는 건 그만한 근거가 있을 터.’
리안은 그저 레이나가 고집을 부리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 성녀로서 무언가를 느꼈기에 저러는 것일 터.
때문에 리안은 멋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레이나가 이단을 두둔하는 이유가 있으리라.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원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이 반항은 끝이 나지 않을 테니.
그리고 듣자 하니.
“그분이라는 자가 곧 올 거 같구나.”
“흥! 오빠도 보면 말이 달라질걸?”
“흐음, 알았다. 그때까지 기다리마.”
고위 성기사라는 이야기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적어도 리안은 어떻게 해서든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레이나와는 어려서부터 알고 지낸 이이지 않던가.
어릴 적 오빠, 오빠거리며 따르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그런 레이나를 저버릴 순 없는 노릇.
리안은 그러기에 이곳의 주인을 직접 보기 위해 기다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교단에는 이미 말을 해둔 터다.
물론 이곳에 이단이 있노라고 말하진 않았다.
개인적인 볼일이 있으니 당분간 시간을 가지겠노라고.
얻은 시간 역시 그리 길진 않았지만, 느낌이 이만하면 충분할 것 같다.
신전이 완공되기 전이니.
이곳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내리라.
‘어떤 인물인지 내가 직접 봐야겠다.’
직접 보고 판단하리라.
만일 별거 아닌 이단이라면.
기필코 처단하기 위해.
오늘도 여전한 레이나를 보며 리안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그럼 다음에 또 오마. 혹시라도 마음이 바뀐다면 나를 찾아오거라.”
“그럴 일은 없으니까 기대도 마.”
앙칼지게 말하는 레이나의 말에 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디 레이나를 위해서라도.
그는 검을 휘두르리라.
성기사는 신을 모시고, 그 신의 아이인 성녀 역시 보살필 의무가 있으니.
길을 잘못 든 신의 아이를 올바르게 선도하리라.
* * *
현성은 모든 스킬을 확인하곤 일반 로브를 착용 후 마룬 마을로 향했다.
얼마 있지 않아 도착한 마룬 마을.
규모도 커지고 사람들 역시 많아졌다.
무엇보다.
“오우! 예전하고 분위기가 완전 다릅니다요!”
“그러게?”
이전과 분위기가 완전 달라졌다.
리베우스의 영향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신전의 영향이 큰 거 같았다.
상당히 좋아진 모습에 현성 역시 미소를 지었다.
시한폭탄과도 같은 이가 하나 있다는 것만 뺀다면 말이다.
성기사는 어디에 있나 살피면서 마을에 들어오자.
누군가 외쳤다.
“성자님이시다!”
“아아! 성자님이 돌아오셨다!”
“신전이 완공되기 전 돌아오셨구나!”
“아아! 성자님!”
“뭐!? 정말이야!? 성자님이라고?”
그 말에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기존 주민들이 많이 몰려들었지만, 새로운 주민들 역시 호기심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하기야 그럴 수밖에.
이 마을 사람들에게 귀에 딱지가 안도록 듣지 않았던가.
마룬의 성자라는 이름으로도 유명한 그 이야기를 어떻게 모를 수가 있을까.
모두가 성자인 현성을 보기 위해 달려들었고 현성은 그런 이들을 보며 다소 곤란해했다.
‘이러다 그 성기사가 들이닥치기라도 하면?’
마을 사람들도 다치는 거다.
곤란해하니 사람들이 외쳤다.
“모두! 거리를 둡시다! 성자님이 불편해하신다고!”
“아! 다들 예의를 지키세!”
“모두 뒤로 물러나!”
“아아! 성자님!”
또 웃긴 건 사람들이 다들 현성을 보며 성자라 말하는 한편 질서는 다 지키고 있다는 거다.
보통 이러면 흥분해서 질서고 뭐고 없게 마련인데.
재미있었다.
아무튼 현성이 그런 사람들을 보며 뭐라 말하려던 순간.
한 성기사가 찾아왔다.
리안은 아니었다.
다름 아닌.
“아아! 현성 님! 오셨군요!”
현성을 발견하자마자 한쪽 무릎을 꿇고 기사의 예를 취하는 여자 성기사.
다름 아닌 테라의 성녀 레이나였다.
그 모습을 본 현성은 참 곤란하다 생각하면서 일어나게 하려 했으나.
리베우스가 먼저 나섰다.
“오우! 이곳에서 잘 모시고 있었던 모양이군요. 불신 성기사에서 이제는 신앙을 가진 모습이 보기가 좋습니다요!”
“아아, 리베우스 님. 감사합니다. 그저 현성 님의 말씀을 전할 뿐이지요.”
“아하하하! 오우! 그것이야말로 복된 일입니다요.”
“물론입니다!”
“오우!”
“오우!”
아무래도 정상이 아무도 없었다.
어쨌든 빠르게 레이나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가야 하나.
아직 계획은 없었기에.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고 있던 찰나.
멀리서 갑주 소리가 들렸다.
처억. 처억.
무거운 갑주를 입고 걸어오는 소리.
현성은 그걸 듣고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이 마을이 아무리 커졌다 한들 갑주를 입은 사람이 있을까?
유저도 없어 보였는데 말이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현성이 고개를 돌리자 볼 수 있었다.
거대한 노란 갑옷을 입은 채 테라 교단의 상징인 심볼을 가슴에 달고 당당히 걷고 있는 한 성기사를.
누가 보더라도 강해 보이는 그 모습에 현성은 자기도 모르게 작게 숨을 내쉬었다.
피부로 느껴지는 느낌으로 무조건이다.
‘못 이긴다.’
새로운 스킬들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저 NPC 하나 이길 수 없다.
주교급이라 해서 랭커급 정도를 생각했는데, 아니다.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한다면…….
‘최소 레벨 300대.’
확신할 수 없지만, 현성의 판단이 그랬다.
아마 맞을 거다.
비네샤를 봤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레벨 200 후반에서 300이라 판단이 들었다.
충분히 강자라고 불릴 만한 레벨.
로스트 이데아에서 NPC 레벨이 300이 넘으면 강자라고 인정받는다고 한다.
그렇다는 말은.
‘주교급 이상이라는 거네.’
최소가 대주교급이라는 이야기인데.
젊어 보이는 걸 보니 아직 그래서 승급하지 못한 모양이다.
저런 기사가 갑자기 나타나다니.
현성의 입장에선 상당히 난처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건 하나.
‘적대적이진 않아.’
이단이라는 걸 알면서도 아직 두었다는 것도 그렇고, 현성이 등장했음에도 얌전히 걸어오는 걸 보아하니.
신사적인 이라고 판단했다.
그런 판단을 내렸지만 현성은 그래도 놀랐다.
대부분의 종교인들은 상당히 극단적인 경우가 많았거늘.
다니엘 주교도 그러지 않았나.
만일 현성을 직접 보지 않았다면 처단했을 거라고.
한데 저 기사는 뭔가 달라 보였다.
‘일단 지켜보자.’
현성이 그런 판단을 내리고 있었을 때 마찬가지로 리안도 현성을 보며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리안은 기겁하는 중이었다.
‘이, 이게 가능한 일이던가.’
온몸에 전율이 돋았다.
솔직하게 생각한다면 당장 저자에게 무릎을 꿇고 예우를 갖추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하마터면 자신도 모르게 레이나처럼 예우를 갖출 뻔했다.
실로 놀라운 기운이었다.
분명 느껴지는 신성력의 총량은 자신보다도 미약하다.
아니, 자신과 비교할 것도 못 된다.
하지만 순도는 차원이 달랐다.
‘허어.’
과거 테라의 기운이 느껴졌을 때 느꼈던 신의 기운보다도 더욱 순수하고 아름다운 기운.
감히 비교도 못 할 기운이다.
자신이 모시는 테라와 비교도 못 할 기운이라.
다르게 말한다면 그게 무엇이겠나.
뻔하지 않은가.
신보다도 순수하고 아름다운 신성력?
단 하나밖에 없다.
‘신이시다.’
리안은 그런 판단을 내렸다.
아니, 내릴 수밖에 없었다.
만일 리안이 아닌 다른 이였다면 신이라는 확신을 할 수 없었을 거다.
하지만 리안은 다르다.
어려서부터 천재라 불린 신의 성기사.
성녀와 같이 성자는 아니지만, 테라의 축복을 받은 어린 기사이지 않은가.
때문에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고, 신의 성기사라 불리는 거다.
리안은 그러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테라의 기운보다도 고결한 기운이 바로 현성의 기운이라는 것을.
지금 자신이 보는 신성력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다.
하지만 어떻게?
신이 이곳에 있을 수 있는 것일까?
‘모르겠다.’
알 수 없었다.
무엇보다 신이 저리도 미약하다니.
어떻게 된 일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
하지만 거기에 해답을 들을 순 없었다.
그리고 해답을 듣기 위해서는 방법은 단 하나.
“저와 이야기를 나누시죠.”
현성에게 직접적으로 묻는 방법밖에 없다.
리안이 그렇게 말하자 현성은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물론 티를 내진 않았다.
겁먹은 걸 표 낼 정도로 어리석은 현성이 아니지 않나.
마찬가지로 리안도 표하지 않았기에 현성은 판단을 내리기 힘들었다.
지금 저 말이 싸우자는 건지, 아니면 진짜 이야기를 하자는 건지.
우선 신사적으로 나오니.
“좋습니다. 이야기를 나누지요.”
“오빠!”
“걱정하는 일은 없을 거다.”
리안이 그렇게 말하자 레이나가 아닌 현성이 안심했다.
‘다행이네.’
적어도 죽을 일은 없을 거 같다.
다만.
‘이제 어떻게 설득하느냐가 관건이겠군.’
설득에 실패하면?
퀘스트도 실패고 사망할 수도 있다.
어떻게든 설득해야겠다.
현성이 그렇게 생각하며 홀로 리안을 따라가자 아무도 없는 들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제 시작인가?
현성이 좀 긴장하고 있었을 때.
리안이 현성을 보며 물었다.
“어째서 신이 지상에 있으신 겁니까?”
순수한 그 물음에 현성은 볼 수 있었다.
[퀘스트, 【첫 신전 완공】을 클리어하셨습니다.]
[퀘스트, 【테라의 성녀】를 클리어하셨습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
영문을 알지 못한 상태로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