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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만 자도 랭커 2부-86화 (412/472)

잠만 자도 랭커 2부 86화

26장. 테라의 성기사 리안(3)

당혹스러운 질문에 현성은 순간 멍하니 있었다.

질문이 아니더라도 시스템 메시지 때문에 더 그랬다.

순간 당황해 대답을 못 했지만 질문 자체도 까다로웠다.

신이 왜 지상에 있느냐는 물음에 현성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사실 답은 간단했다.

게임 하려고 왔지, 왜 왔겠는가.

하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나.

현성은 그러기에 생각했다.

무어라 말해야 할지.

그나마 다행인 건 퀘스트가 다 클리어되었다는 거.

그 말인즉슨.

‘나를 적대하지 않는다는 거다.’

다시 말해 신이라 생각하는 거다.

아무리 테라 교단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신을 믿고 따르는 거지 다른 신을 죽이려는 그런 단체가 아니니.

때로는 협력을 하기도 한다.

사이가 나쁜 교단이 아니라면 말이다.

한데 지금 현성을 보며 신이라 부르는 리안.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 할까.

그냥 착각하게 둬야 할까?

가만 생각해 보면 그냥 착각도 아니긴 하다.

‘내가 타나노스니까, 신이긴 하지.’

착각이 아니라 더 곤란하다는 것.

하지만 그렇게 현성이 입을 다물고 있자.

리안이 조금은 답답하고 조급해진 것인지 현성을 보며 다시 물었다.

“혹 신계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그래서 테라께서도…….”

불경한 말과 생각이기에 더 말을 잇진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뜻은 잘 전달될 수 있었다.

고위 성기사 리안.

이 마을 주변, 아니, 이 일대를 둘러보더라도 리안보다 강자는 찾기 힘들 거다.

그럼에도 너무나도 여리고 연약하다.

신을 잃은 신의 성기사란 그랬다.

현성은 그런 리안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측은함을 느꼈다.

‘흐음.’

과거 타나노스의 교단이 그러지 않았던가.

신에게 응답이 없어 안타까웠던 이들.

하지만 그들에게는 무너지지 않는 불굴의 신앙이 있었다.

연약함을 인정하고 오직 타나노스만을 기다린다.

자신의 생이 다하기 전까지.

연약함을 인정하는 순간 그들은 그 누구보다도 강해졌다.

좀 또라이 같긴 했어도.

그들의 신앙은 너무나도 순수했다.

하지만 리안은?

‘여리다.’

신앙심이 얕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런 폄하의 의미로 하는 말이 아니라, 비유하자면 어린양과도 같다.

수만 년이 흘러도 건재하던 타나노스의 교단.

신이 사라지고도 그리 건재하게 남아 있을 수 있던 이유는 리베우스의 영향도 강했다.

그 누구보다도 충직한 신앙심.

그러기에 그들은 강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리안은?

그럴 수 없다.

그들을 지지해 줄 수 있는 교황 역시 흔들리고 있었기에.

현성은 그 생각에 살며시 눈을 감았다.

‘이야기를 해주자.’

현성은 다시 눈을 뜨며 리안을 보고 말했다.

“저는 이곳의 신이 아닙니다.”

“예, 예? 그, 그게 무슨.”

다시 말해 신이라는 건 인정하는 발언이다.

확신을 하고 있던 리안도 그 말을 듣자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너무도 감당하기 힘든 이야기였기에.

거기다 이곳의 신이 아니라니.

리안이 한 번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들.

하지만 리안은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그, 그렇다는 말씀은 이미 테라께서는…….”

희망이 점차 죽어가는 눈.

리안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테라의 기운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기에.

죽었다. 사라졌다. 버려졌다.

그런 생각이 무수히 많이 생겼다 사라진다.

굳건하던 신앙도 점차 빛을 잃어갈 시기.

한데 그때 만난 다른 신이 다른 곳에서 왔다고 말한다.

여기서 희망이 과연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아아. 테라시여.’

왜 우리를 버리셨나이까.

왜 사라져 버리신 거나이까.

부디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기도를 올리지만 허공에 메아리치지도 못하고 사라져 버리는 음성.

칠흑과도 같은 어둠 속에 허우적거렸다.

리안은 그런 심정이었다.

비록 다른 신을 만났다고는 하지만.

그는 테라가 아니다.

자신이 믿고 모시는 테라가 아니다.

테라는 어쩌면…….

정말 우리를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리안이 그 생각을 굳혀가고 있었을 때.

빛이.

빛이 들렸다.

“저는 신들의 부탁을 받고 이곳으로 왔습니다.”

“예?”

“이곳을 구원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왔습니다.”

“그, 그게 무슨?”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

이 정도도 이해하지 못할 리안이 아니다.

하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확인하고 싶다.

느끼고 싶다.

방금 보았던 빛을.

다시 듣고 싶었다.

리안의 그 간절한 기도가 닿은 것일까.

그 순간 빛이 내려왔다.

“당신들은 아직 버림받지 않았습니다.”

희망이라는 빛이.

그 순간 현성의 신성력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따스한 빛을 내리는 거대한 신성력.

자칫 잘못하면 실명할 수도 있을 빛의 세기였음에도, 그걸 보는 이들은 모두 멀쩡히 그 빛을 응시할 수 있었다.

단순히 빛이 아니다.

기적이다.

그걸 보던 리안은 그제야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 주먹을 자신의 가슴에 가져간다.

성기사는 오직 자신의 신에게만 충성을 맹세할 수 있다.

최고의 예 역시 오직 자신의 신에게만 바칠 수 있다.

하지만 예외가 있었다.

“저의 신을 구원해 주시옵소서.”

오직 자신의 신을 위해서라면.

누구에게도 이 예를 바치리라.

리안 자신이 스스로 지옥 불구덩이에 빠지더라도.

자신의 신을 위해.

스스로의 충성을 현성에게 바쳤다.

“부디 저희….”

현성은 리안의 모습에 그를 일으키며 말했다.

“그러려고 이곳에 왔습니다.”

모든 신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곳을 구원하기 위해 왔다.

리안은 현성의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리안의 감사 표현에 신앙심이 무려 30이나 올랐다는 메시지를 볼 수 있었으나.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보다.

“오우.”

리베우스는 그런 리안을 보며 나직하게 말했고, 현성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 세계는 이상하다.

신들이 갑자기 사라지다니.

이상해도 한참 이상하다.

리베우스도 그걸 느낀 모양.

신을 믿는 다른 여린 신도를 보고 생각이 깊어졌나 보다.

그러더니 리베우스가 말했다.

“오직 주인님의 뜻대로.”

“물론이다.”

현성은 다시 한번 스토리를 획득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고개를 끄덕였다.

게임을 해야 할 이유가 더 늘었다.

* * *

현성이 그렇게 리안을 진정시키고 마을에 다시 한번 축복을 내렸을 때는 이미 신전의 완공이 끝난 후였다.

리안 역시 그 광경을 끝까지 지켜보고는 현성을 보며 말했다.

“이곳은 제가 책임지고 테라 교단에서 보호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이미 그쪽으로는 다니엘 주교님이 나서고 있습니다.”

“다니엘 주교님께서? 그분 역시 현성 님을 알고 계시는 거군요.”

리안은 다소 놀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 이곳에 오면서 몇몇 교단 사람에게 방해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게 다니엘 주교의 소행인 거 같았다.

사실 이러면 편하게 된다.

다니엘 주교는 주교의 신분이긴 하지만, 대주교에 필적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으니.

무엇보다 따르는 이들이 많았다.

그걸 생각한다면 리안이 나서는 것보다 훨씬 나을 거다.

“저 역시 다니엘 주교님처럼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현성은 괜찮다며 미소를 짓고 대답했다.

사실 이 마을을 도와준다면 고맙긴 하지만.

레벨 300을 넘기는 강자가 도와주면 게임이 뭐가 재미있겠나.

그건 사양하고 싶다.

현성이 그런 생각으로 거절하자.

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 모습.

무조건 현성에게 무슨 뜻이 있노라고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저러니 좀 미안해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한편 그러던 중 리안이 나직하게 말했다.

“얼마 전 비밀 결사대라는 단체가 기승을 부리다 보니 다소 곤란해져 다른 교단에서는 나서진 못할 것입니다.”

“비…밀 결사대요?”

이 이름을 설마 리안에게서 들을 줄이야.

놀라서 현성이 묻자 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테라 교단에서도 은밀히 잡고는 있습니다만, 기승을 부리는 거치고 너무 은밀하고 조용합니다. 잡기 힘든 녀석들이지요.”

“허어. 혹시 이런 문장을 쓰는 자들인가요?”

“아아! 맞습니다. 역시…….”

현성이 혹시나 해서 결사대의 증표를 보여주니 리안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그나저나 리안은 이것조차 현성이 알았다는 것에 감탄하는 모습이었다.

정확히는 신앙심이 더 깊어지는 모양.

이미 NPC 한 명으로 신성력을 30이나 올렸으니.

지금 리안의 신앙심이 얼만한지 잘 알 수 있었다.

어쨌건.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혹시 녀석들이 어디서 활동하는지 아십니까?”

현성은 그들을 쫓을 의무가 있었다.

일단 타나노스 직업 스토리와 연관이 있었으니.

다시 말해 신이 사라진 이유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고 판단했다.

녀석들을 찾으면 다시 말해 신들이 돌아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

리안에게 그 이야기까진 하지 않았다.

아직 확신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었으니.

현성의 물음에 리안은 잠시 턱을 쓸며 생각했다.

“흐음. 그러고 보니 테루아에 그들의 흔적이 살짝 보였다고는 들었는데, 정확하진 않습니다. 얼마 전 있던 파이튼 수로에서 묘한 녀석들이 발견된 이후에 자취를 감췄다고 합니다.”

파이튼 수로!

현성은 그 단서를 듣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놈들이다!

틀림없다고.

그리고 현성은 그런 리안을 보며 말했다.

“그 녀석들의 흔적이 보인다면 저에게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

현성의 다소 다급한 듯한 말에 리안은 무게감 있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대답했다.

“모든 것은 현성 님 뜻대로.”

그러면서 주먹을 가슴에 두드린 후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리베우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오우! 충직한 분이시군요.”

다른 신을 모시는 성기사.

원래라면 리베우스가 별로 좋아하지 않을 인물이지만 리안만큼은 달랐다.

어느 누가 자신의 신을 위해 다른 신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신자를 싫어하겠는가.

리베우스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누군가 기도를 했다면 당연히 들어주는 것이 신의 의무.

권위를 얻었다면.

그 신위를 보여주는 게 정당하다.

“리베우스 가볼까?”

“오우!”

아무래도 다음 목적지가 정해졌다.

테루아.

마침 레벨 120 이상 활동하는 지역이지 않았던가.

그곳에 결사대가 있다.

이번엔 뭐를 줄지.

그렇게 이동하는 중.

현성은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 퀘스트 보상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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