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2부 94화
29장. 파르마 상단 전쟁(2)
1층에서 큰 소란이 일자.
몇몇 검은 로브를 쓴 자들이 표정을 와락 구겼다.
일이 잘못되어 가는 게 분명하다.
이곳을 어떻게 들켰는지도 알 수 없지만.
저렇게 대대적으로 왔다는 건 확실하니 왔다는 뜻.
그래서 자객들을 1층에 배치했건만.
오래는 버티지 못할 모양이다.
원래라면 그 사이에 숨거나 도망치는 게 우선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애초에 숨길 준비가 부족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본단에서는?”
“의식에 필요한 물품은 모두 구해 지원이 힘들다고 합니다.”
“크흐흐흐! 그렇군. 그래.”
그 말에 얄쌍한 덩치에 길쭉한 사내가 미친 듯 웃었다.
지원이 없다는 이야기에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앞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의식에 필요한 모든 것이 구해졌다.
이것만으로 이미 충분한 이야기이니.
그 얄쌍한 남자가 모두에게 말했다.
“여기서 다들 죽어도 여한이 없겠구만?”
“예! 그렇습니다!”
우렁차게 외치는 비밀 결사.
드디어 그들이 재앙신을 소환하기 직전에 이르다니.
이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아쉬움이 없진 않았다.
얄쌍한 남자 옆의 가냘픈 체구를 가진 여자가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그리고 말했다.
“그래도 아쉬워. 세계가 멸망하는 걸 보지 못하고 가다니.”
“크흐흐흐! 우리가 전력을 다하면 도망칠 수도 있지. 아직 녀석들의 전력도 가다듬어지지 않았다.”
“그건 그렇지. 게다가 다른 지부의 지원이 오기까지 아직 시간이 걸리니.”
둘은 서로 마주보며 히죽 웃었다.
어쩌면 살아남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무엇보다.
자신들이 살아남으면 멸망을 지켜볼 수 있다는 생각에.
둘은 기뻐했다.
지하에 있는 마법진을 가동하려면 남은 시간은 그리 짧지 않았다.
그동안 누군가 버텨야 하는데.
둘은 그런 생각으로 다른 결사대 대원들을 바라봤다.
1층에 배치한 자객들보다는 낫지만, 그들보다 훨씬 낫진 않다.
썩 마음에 드는 상황은 아니다.
그렇기에 둘은 동시에 말했다.
“우리가 올라가 상대하지.”
“마법진 기동이 되면 우리도 자연스레 이 건물에 있는 이상 빠져나가게 될 테니.”
“너희들은 여기서 기다리도록.”
둘이 합이 잘 맞아 그렇게 말하자.
다른 결사대원들이 큰소리로 외쳤다.
““마괴 님과! 검괴 님의 힘을 믿겠습니다!””
마괴라 불린 여자와 검괴라 불린 여자.
그 둘이 모두의 외침에 웃음을 흘리며 누군가 내려오는 걸 느꼈다.
수는 고작 둘.
다른 이들은 위로 올라간 모양이다.
이거 운이 좋은 거 같다.
의식에 대한 제물들도 모조리 챙겼고, 자신들 역시 살아서 멸망을 볼 수 있게 되다니.
이토록 기쁠 수야.
그둘은 그렇게 웃으면서 계단을 올랐다.
거대한 지하층에서 내려온 둘을 볼 수 있었다.
순백의 바탕에 붉은 선들이 포인트로 그려진 성스러워 보이는 갑옷을 입은 성기사.
그리고 그 뒤에 사제복과는 조금 다른 백색의 아무 문양도 없는 사제복을 입은 사제를 볼 수 있었다.
“오우!”
그리고 사제 어깨 위에 있는 자그마한 집사 하나도.
* * *
건물 내부에서 튀어나온 녀석들을 빠르게 제압하고 성기사들이 한 일은 다름 아닌 봉쇄였다.
앞문과 뒷문을 빠르게 봉쇄하고 나올 곳이 없게 만든다.
여기까지 일이 속전속결로 이졌다.
퍼시벌이 대부분의 적들을 처치한 덕분이었다.
적들을 빠르게 섬멸하고 모든 출구를 봉쇄했다.
건물 주변 역시 지키고 서 있었다.
그러나 비밀 통로가 없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법.
그 점을 모를 리가 없는 성기사 단장이 퍼시벌과 비슈누에게 다가와 부탁했다.
“아래층을 맡아주실 수 있으십니까?”
원래라면 가장 상급자인 그가 아래로 내려가는 게 맞다.
성기사들 중에서는 그야말로 최고 전력이었으니.
아래가 더 위험하다 보니 성기사 단장이라면 내려가는 게 옳았다.
한데, 퍼시벌과 비슈누에게 부탁한다.
다르게 말한다면 이런 뜻이었다.
-그만큼 퍼시벌과 비슈누를 믿고 맡길 수 있다는 거지.
-거기다 자기보다 강하다는 걸 인정하는 거나 다름없지!
-퍼시벌이랑 비슈누 기껏해야 100초반 아님?
-ㅇㅇ 근데 성기사 단장이 인정했다는 건 레벨 150대 이상이라는 뜻이지.
-성기사 단장 피셜 150 이상의 힘!
-역시 루키 1위, 2위를 한번에 차지하는 건 이유가 있다. 진짜로.
-ㅋㅋㅋㅋㅋㄹㅇ
다들 성기사 단장의 말에 놀라며 감탄했다.
그럴 수밖에.
로스트 이데아에서 가장 깐깐한 인물을 고르라면 귀족과 더불어 항상 1위를 하는 존재들이 바로 교단 사람들이니.
그중에서도 성기사는 더욱 그랬다.
사제야 그나마 신자들을 겪으면서 사회성이라도 길러진다.
하지만 성기사는 정말 다르다.
교단을 위해 칼과 창, 그리고 방패를 쥐는 그들이었기에 일반 신자와 마주칠 일이 없다.
그렇기에 사회성이 길러지는 일이 있겠는가.
때문에 이방인들인 유저들에게도 까칠하기로 유명했다.
심지어 같은 교단에 들어가도 유저들을 신경을 잘 쓰지 않는다.
한데 같은 교단도 아닌 것으로 보이는 퍼시벌과 비슈누를 저렇게 믿고 맡긴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일어난 거나 다름없었다.
-그만큼 대단하다는 거지.
-마즘!
-진짜 감탄만 나오는 실력이긴 하니까.
다들 채팅으로 치고 왈가왈부를 하는 중 퍼시벌, 그러니까 현성은 바로 답변을 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으니까.
대답은 물론 현성, 그러니까 퍼시벌이 아닌, 아바타인 비슈누를 통해 전달했다.
“물론입니다. 오히려 믿고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곳 지휘관으로서 부족한 모습을 보이는 거 같아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지당한 판단이라 생각했습니다. 마법진이 지상 위에 있을 확률도 있으니 기사단장님과 저희가 따로 나눠서 움직이는 게 옳은 판단이지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한시름을 놓겠군요. 감사합니다.”
“빨리 가죠.”
마지막 그 말에 성기사 단장도 고개를 끄덕이고 위로 향했다.
퍼시벌과 비슈누도 그걸 보고 1층을 살폈다.
1층에서 나온 자객들로 인해 1층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척 보아도 올 줄 알고 준비해 놓은 모양이다.
매복이 혹시라도 있을까 봤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그 정도의 시간은 없었던 모양.
이런 고민 할 시간에 빠르게 내려가자.
퍼시벌과 비슈누가 밑으로 향했다.
하나하나가 커다란 지하층들.
얼마나 내려갔을까.
“크하하하! 이거 꽝인가!? 성기사 단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웬 애송이들이 있군!”
“푸흐흐흐! 너무 그러지 마. 그래도 성기사와 사제 아닌가. 방심할 이유는 없지!”
기괴한 웃음을 터뜨리며 퍼시벌과 비슈누의 앞을 가로막는 두 사람.
기다란 몸인 얄쌍한 남자와 가냘픈 여자였다.
남자는 기다란 검을 쥐고 있었고, 여자는 마법사인지 스태프를 쥐고 있었다.
검사와 마법사 조합.
척 봐도 상당히 강해 보이는 조합이었는데.
퍼시벌과 비슈누는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간부로 보이는 모습이긴 했지만, 언제는 그런 걸 신경 쓰고 싸웠던가.
그런 적이 없었다.
오히려 좋지.
퍼시벌은 그렇게 생각하며 빠르게 달렸다.
“호오?”
얄쌍한 남자 검사는 그걸 보며 눈썹을 꿈틀거렸다.
생각 이상으로 빨랐던 탓.
그래서 대비를 하기 위해 검을 들어 올리려던 순간.
퍼시벌의 머리 위로 빛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기 천사들이 나팔을 불며 하늘에서 퍼시벌을 축복했고, 천사의 깃털들이 흩날렸다.
그와 동시에 훨씬 빨라진 속도.
아까의 속도가 10이라면 지금은 50 이상의 속도가 되었다.
최소 5배 이상.
그렇기에 처음 달려들었던 속도에 반응하던 얄쌍한 남자 검사가 두 눈을 부릅뜨고 뒤로 물러나며 검을 들어 올렸다.
동시에 퍼시벌의 창을 내지른다.
‘피할 수 없겠군.’
피하기는 이미 늦었다.
무엇보다 더 피했다간 녀석의 스킬이 뭐가 발동될지 모른다.
얄쌍한 남자 검사는 그렇게 생각하고 막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퍼시벌의 공격은 일반 공격.
스킬이 아니다.
차라리 지금 공격을 막거나 받아주고, 스킬을 막는 것이 이롭다.
그렇게 생각하며 최대한 검으로 막아보려 했다.
한데.
퍼엉!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현상이 일어났다.
분명 두 발 다 땅에서 떨어져 있는 상황.
그 찰나의 상황에서 공격을 해오는 걸 남자 검사가 막는 상황이었다.
더 이상 도약은 없는 상황에서 다시 한번 도약해 속도를 높인다.
때문에 막으려던 얄쌍한 남자 검사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검의 간격을 무시하고 그대로 들어오는 퍼시벌의 창.
푸욱!
“크흑.”
데미지는 그리 크지 않다.
아무래도 일반 공격이었으니까.
하지만 뒤이어 찔려 있는 창에 빛이 모여드는 걸 볼 수 있었다.
얄쌍한 남자는 그걸 보고 아득해지는 정신을 부여잡았다.
벗어나야 한다.
빛이 다 모이는 순간 상상 이상의 데미지가 들어올 수도 있다.
저 스킬.
심상치 않다.
그리 판단하고 이동하려던 순간.
“성스러운 섬광.”
───────!
퍼시벌이 읊조렸고, 그 순간 놈의 몸에 박혀 있던 창끝에서 기다란 섬광이 몸을 꿰뚫었다.
바닥에 기다란 두 개의 선을 그으며 물러난 얄쌍한 남자가 실핏줄이 터진 눈을 부라리며 퍼시벌을 바라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퍼시벌은 다시 한번 달려든다.
아까와 같은 속도.
이번에는 미리 준비할 수 있다.
시간이 있으니.
통증과 상당한 데미지로 인해 몸이 저릿했지만, 견뎠다.
견디지 않으면 진짜 죽을 수 있으니까.
얄쌍한 남자가 밀리는 걸 보고 뒤에 있던 가냘픈 여자가 남자에게 말했다.
“돕겠다.”
너무나도 진지하고 아까의 웃음기는 찾아볼 수조차 없는 목소리.
그 말과 함께 가냘픈 여자는 그대로 수인을 그었다.
그리고 허공에 나타나는 사람만 한 마법진.
보랏빛 불길한 마법진을 보고는 얄쌍한 남자가 미소를 지었다.
동시에 기다란 자신의 팔을 자랑하듯 빠르게 검을 쥐고 자신에게 달려드는 퍼시벌을 보며 마찬가지로 달려들었다.
뒤에서 올 견제를 믿고.
그렇게 달려드는 순간 가냘픈 여자의 마법이 완성되었다.
“마법 삼중화, 포이즌 스피어.”
도합 아홉 개의 보랏빛 창.
원래라면 세 개의 창만 나왔어야 하지만.
마법 삼중화로 인해 총 9개의 창이 나타난 거다.
막기도 피하기도 힘든 수.
척 보아도 극독을 담은 창에 맞기라도 한다면 독으로 고생할 게 뻔해보이는 모습.
하지만 그럼에도 퍼시벌은 미친 듯이 움직여 얄쌍한 남자 검사를 노리고 창을 내질렀다.
도무지 망설임이나, 흠칫거리는 당혹감은 찾아볼 수 없는 강건한 모습.
얄쌍한 남자는 그걸 보며 오히려 흠칫 당황했지만.
그럼에도 빠르게 대처했다.
검을 쥐고 그 창을 막기만 해도 된다.
그러기만 하면 뒤에 있는 포이즌 스피어가 해결해 주리라.
분명 그리 믿었다.
퍼시벌의 외침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홀리 웨이브.”
성스러운 파동이 퍼져 나가면서 퍼시벌에게 다가오던 모든 창들을 소멸시켜 버리는 것과 더불어 그대로 얄쌍한 남자조차 밀어냈다.
“커헉!”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그대로 다시 퍼시벌이 달려들어 남자 검사의 오른쪽 어깨를 향해 창을 내질렀다.
그야말로 뇌전과도 같은 속도.
번개처럼 뻗어 나가는 창에 얄쌍한 남자 검사는 속수무책으로 어깨를 내주는 수밖에 없었다.
“크아아아악!”
고통에 몸부림 치는 남자 검사.
그리고 그런 남자 검사를 보며 당혹스러워하는 가냘픈 여자 마법사.
그들을 보며 이제 비슈누가 참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미친, 퍼시벌 하나로 압도하네.
-보니까 레벨 150은 넘어 보이는 몹들인데?
-미쳤네 진짜.
-퍼시벌! 비슈누! 그들은 신이야! 그들은 신이야!
덩달아 시청자들 역시 열광하기 시작했다.
엄청난 전투가 올 거라고 믿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