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2부 98화
30장. 비밀 결사대(3)
거대한 신전이라 해야 할까?
어두운 공간에 제단이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니긴 했다.
하지만 흔히 아는 그런 밝은 종교의 신전은 아니었다.
음침한, 무엇을 모시는지 알 수 없는.
검은 사제복을 입은 이들이 깊게 후드를 눌러쓴 채 제단을 향해 마력을 쏟아붓고 있었다.
그런 사제들을 바라보면서 슬며시 미소를 짓고 있는 한 남자.
머리가 희끗하게 되어 있는 걸 보아 나이가 꽤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주름은 없는 모습.
상당한 괴리감을 보일 법한 모습이었지만.
모두가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두려워하고 있었다.
검은 사제복을 입은 자들이 하나같이 두려워 떠는 존재.
그런 존재의 뒤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교주님, 일이 생겼습니다.”
남자인지 여성인지 알 수 없는 중성적인 목소리.
옷조차 그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게끔 했다.
착 달라붙는 검은 타이즈를 입었으나 몸매만큼은 묘했다.
곡선을 보아 하면 여성인 거 같다가도, 곳곳에 보이는 굵은 근육들은 남자를 보는 듯했다.
그야말로 괴상망측한 존재.
남자는 뒤에 있는 그 존재의 말을 듣고 물었다.
“암괴, 무슨 일인가?”
무슨 일이냐고.
생각보다 별일 아니리라 생각했건만.
그렇지 않았다.
“마괴와 검괴가 당했습니다.”
“……흠.”
그저 침음을 삼킨 남자는 그대로 제단을 바라봤다.
이 신전이 지어진 지도 상당히 오래되었다.
제국에 곳곳에 뿌려서 모든 제물을 모았거늘.
간부가 무려 둘이나 당했다.
남은 간부는 고작 둘.
지금 자신의 뒤에 있는 암괴라 불린 자와 혈괴라 불리는 자.
하지만 상관없다.
“차질은 없을 것이다.”
“물론입니다.”
“의식까지 고작해야 3일이다. 3일.”
짧은 시간.
하지만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무언가 벌어지기엔 말이다.
그렇기에 남자는 몸을 돌려 암괴를 바라봤다.
여전히 중성적인 암괴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 예견이라도 하려는 걸까?
하지만 저 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세상을 멸하기 위해 의식을 준비하는 광기 어린 눈빛.
그 모습에 암괴는 고개를 숙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저 남자야말로 자신들이 목숨을 바친 위대한 존재.
심연과도 같은 눈에 보이는 광기를 보며 그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암괴가 그렇게 고개를 숙였을 즈음.
남자가 입을 열었다.
“모든 지부의 이들을 이곳으로 불러라.”
“예.”
반론은 없었다.
그의 말 한마디면 모든 결사대원들은 따라야 하니.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긴 했다.
남자는 불과 며칠 전의 일을 떠올렸다.
분명 3개월 이상은 남아 있는 의식이었다.
제물이 모이기에 부족했고, 무엇보다 줄리아나 다른 놈들의 죽음이 뼈아팠다.
한데 갑자기 제단 근처에서 떨어진 필요하던 제물들.
그걸 보며 모두가 기적이라고, 재신은 존재한다고 떠들어댔다.
하지만 남자는 그걸 떠올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초월적인 존재가 관여했다.’
자신들이 모시는 존재는 아닐 터.
그저 느낌이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초월적인 어떠한 존재가 자신들을 돕는다.
상황만 본다면 참으로 좋은 일.
하지만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자신들의 계획을 돕는다는 건, 달리 말하자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뜻이었다.
아무런 일도 없었을 때 일어났다면 교주라 불린 남자 역시 기적이라 생각하고 기꺼이 의식을 진행했을 거다.
하지만 그게 아니지 않나.
차질이 계속 생겨 어쩌면 1년 이상 더 모아야 할 수도 있었거늘.
그게 갑자기 간격이 좁혀진 거니.
당연히 말하지만, 높으신 양반들이 자신들을 굽어살피는 거다.
방해꾼이 있으니 조심하라고.
그리고.
‘이만큼 도와준다는 건 방해꾼이 강력하다는 이야기가 되겠군.’
교주는 그리 생각하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안타까운 건 그 방해꾼의 정체를 아직까지 알아내지 못했다는 것.
하지만 괜찮다.
비밀 결사대.
무려 수십 년을 제국의 좀을 먹던 이들이 곧 모두 하나로 합쳐진다.
이 신전에 말이다.
그때가 된다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으리라.
의식은 그대로 진행되리라.
의식까지 3일.
“재앙의 신이시여! 파괴의 신이시여! 부디 이 세계를 파괴로!”
“파괴로!”
“재앙을!”
“모든 걸을 물들게 해주시옵소서!”
교주의 외침에 검은 사제복을 입은 이들이 따라 외쳤다.
광기가 가득한 신전.
그 제단 앞에 교주는 눈을 번뜩였다.
암괴가 나선 이상 제국에 있는 모든 결사대는 모일 터.
그렇다면 이제 일도 아니다.
“재앙과 파괴가 강림하리라!”
* * *
“으아아그갸각!”
기지개를 켜면서 자리에서 일어난 현성.
잠도 너무 푹 잔 건지 표정조차 개운한 모습이었다.
컨디션이 끝내주는 모양.
몸도 가벼웠다.
고작 기지개를 켰다고 이리도 가벼워지진 않을 텐데.
오늘따라 상쾌했다.
“좋은데?”
무엇보다 비밀 결사대의 본부를 발견하지 않았던가.
바로 쳐들어가려 했으나 아쉽게 기면증으로 그러지 못했다.
플레이 타임도 있어서 끄고 일찍 잤건만.
잘한 거 같았다.
확실히 일찍 자고 일어나니 컨디션도 끝내줬다.
가볍게 스트레칭을 해주곤 현성이 그대로 캡슐로 향했다.
오늘에야말로 비밀 결사대와의 악연을 끊을 차례.
현성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태백 길드 삼총사를 떠올렸다.
‘설마 그런 거일 줄은 몰랐으니까.’
게다가 이데아가 자신에게 해결해달라고 도움을 청하는지도 몰랐다.
어쩌다 보니 일어난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기면증 보상도 정말 좋으려나 기대하고 있었다.
되도 않는 생각을 하면서 현성이 그렇게 게임 속으로 들어가자.
이제는 너무 익숙한 리베우스가 현성을 반겨주었다.
“오우! 주인님이라는 것입니다요!”
“그래, 잘 있었냐?”
“오우!”
리베우스가 우렁차게 대답하면서 현성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바라봤다.
[타나노스의 기면증으로 세 가지 중 보상을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잔여 능력치+5][랜덤 스킬][랜덤 아이템]
현성은 그 메시지를 보며 고민했다.
사실 최근에 얻은 강림이라는 권능.
그걸 보며 떠올렸다.
진짜 이데아가 돕는 거라고밖에 생각이 안드는 스킬.
이데아 때의 능력치를 그대로 가져오는 말도 안 되는 스킬.
신격만을 상대할 때만 쓸 수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 정도는 단점도 아니었다.
그걸 생각한다면.
이번 보상에서도 쓸 만한 걸 주지 않을까?
‘바라진 않으려 했는데 말이야…….’
너무 날로 먹는 거 같아서 양심이 좀 찔려 바라진 않으려 했는데.
이게 사람의 심리가 어쩔 수 없었다.
부디 잘 막게 하고 싶다면 좋은 스킬을 다오.
척 봐도 사심 1000%가 담긴 기도를 올리곤 힐끗 위를 쳐다봤다.
그러자 리베우스가 뭐 하나 싶어서 물었다.
“주인님도 기도를 드리는 겁니까요?”
“크흠. 흠!”
“하기야! 우리 주인님은 위대하시니 주인님도 스스로에게 기도를 드리는 것이군요!”
“아니야, 인마!”
“오우!”
괜히 버럭 소리를 지른 현성이 민망하다는 듯 볼을 긁었다.
진짜 괜히 한 거 같다.
뭐 어쨌든 그냥 뽑아야지.
당장은 아이템은 필요 없다.
지금 필요한 건 강력한 스킬.
가뜩이나 컨셉을 둘로 나눠서 쓸 스킬이 부족했다.
그렇기에 현성의 선택은 너무나도 간단했다.
“스킬을 선택한다.”
“오우!”
리베우스도 외치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타나노스의 기면증 보상으로 [랜덤 스킬]을 선택하셨습니다.]
“오오! 위대하신 주인님의 스킬을!”
리베우스가 그렇게 외치자.
메시지가 사라졌다.
메시지가 허공에 녹듯이 사라지자.
정말 놀랍게도 허공에 신비로운 오로라의 빛깔이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청록빛의 아름답고 신비로운 빛의 커튼.
어디선가 많이 본 이펙트.
현성은 그걸 멍하니 바라봤다.
마지막으로 커튼 사이로 천상의 빛과 같은 찬란한 노란빛이 떨어졌을 때 현성은 메시지를 볼 수 있었다.
[타나노스의 기면증 보상으로 전설 등급 스킬, ‘사신의 사슬’을 습득했습니다.]
“오우!”
“미친!”
현성과 리베우스 둘 다 외쳤다.
게다가!
“사, 사신의 사슬!?”
이데아 때도 즐겨 쓰던 스킬이지 않던가.
다만.
광역기였잖아, 이거?
현성의 머릿속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하필 광역기?
광역기가 좀 적기는 하지만, 지금은 강력한 단일기가 필요한 시점.
아쉽다면 아쉬웠다.
그러던 중.
떠오를 수 있었다.
‘잠깐?’
여태까지 상황을 생각하면 이데아가 현성에게 필요한 걸 주곤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는 이야기는 사신의 사슬도 필요하다는 뜻인가?
아니면 혹시?
여태까지 다른 스킬들도 리메이크처럼 되었으니.
이것도 그럴까?
현성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스킬창을 열었다.
그리고 보이는 사신의 사슬의 스킬창.
【사신의 사슬】
《전설》
『액티브』
「Lv1」
-설명: 사신의 사슬은 산자의 영혼을 뽑아내고 죽은 자를 저승으로 인도 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한다.
-효과1: 사신의 사슬을 소환한다. 소환된 사슬은 시전자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고, 또한 공격할 수 있다.
-효과2: 사신의 사슬은 모든 방어를 무시하고 공격력의 300%만큼의 데미지를 입힌다.
-초당 MP 10 소모.
-쿨타임 5분.
*소환 해제부터 쿨타임이 줄어듭니다.
‘뭐라고?’
사신의 사슬을 소환하는 건 똑같았다.
하지만 너무 다른 스킬이다.
일단 광역기가 아니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구현계 스킬.
사신의 사슬을 소환해 그걸 다룰 수 있는 지속형 구현계 스킬이다.
무엇보다 사신의 사슬로 공격을 하면 방어를 무시하고 공격하는데 공격력의 300%?
예전에는 500%였던 걸 생각하면 줄어들긴 했지만, 지속이지 않은가.
게다가 초당 10씩만 소모하는 지속형 사슬을 소환하는 거다.
그것도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꿀꺽.
현성은 침을 삼키고 냉정하게 생각했다.
사슬을 다루고 그걸로 공격을 한다.
그것도 방어를 무시하고.
지금 현성의 마력은 차고도 넘친다.
무엇보다 MP가 다 떨어지면 신성력으로 대체까지 가능한 상황.
그야말로 끝내주는 스킬이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쿨타임을 또 봐라.
무려 5분!
예전에는 1시간이었던 걸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렸다.
‘진짜 좋은 스킬이 됐다.’
현성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이거라면 충분하다.
무엇보다 그동안 퍼시벌이 창으로 싸울 때 늘 뒤에서 신성 마법만 날리던 비슈누의 부족하던 딜과 견제를 챙길 수 있는 수단이 생긴 거다.
틈새를 더 메웠다는 이야기.
그걸 보며 현성은 미소를 지었다.
정말 거의 완벽해졌는걸?
현성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때였다.
메시지가 떠오른 것은.
[긴급 직업 퀘스트가 부여됩니다.]
[긴급 직업 전용 퀘스트, 【비밀 결사대와 수상한 의식】이 생성됩니다.]
현성은 그걸 보며 메시지가 아닌 이데아가 말하는 걸로 들렸다.
마치 지금 당장 의뢰를 해달라고 부탁하는 의뢰자의 목소리로.
아무래도 이제 진짜 끝낼 때가 온 거 같았다.
‘그럼 끝내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