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2부 102화
32장. 비밀 결사 최후의 결전(2)
홀리 바인드에서 벗어났다?
아니, 벗어났다고 보기보다 깼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었다.
스킬 발현 시 나타나는 칼들을 파괴하였으니.
무엇보다도 그 순간의 움직임을 놓쳤다.
칼을 파괴하는 그 순간의 움직임을.
다시 말해 이제 퍼시벌보다 압도적으로 빨라졌다는 이야기가 된다.
전운이 감도는 현장.
퍼시벌은 거기서 긴장은커녕 미소를 지었다.
언제는 자신보다 능력치가 낮아서 혹은 비슷해서 싸웠던가.
자신보다도 높은 능력치의 보스는 늘 많아왔다.
레벨만 높고 자신과 비슷한 능력치를 잡는 건 당연한 일.
자신보다 강자를 잡는 것?
이미 적응한 지 오래다.
아니, 적응하고 말고가 없다.
애초에 늘 그래왔으니.
팟!
빠르게 뛰어드는 퍼시벌의 형상.
분명 더 받아낸 버프는 없었다.
한데도 아까보다 빠른 속도.
그러나 반전은 없었다.
극한으로 근육을 압축하고 겉에 뼈를 두른 백색의 인간이 된 교주 리움은 그것에 곧장 반응했다.
압도적인 육체를 얻었으니 당연한 일.
교주 리움은 퍼시벌의 움직임을 읽었다.
자신에게 달려들면서 뻗어내는 창.
슬로우 모션처럼 느리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피하기 어려울 정도의 속도는 아니다.
가볍게 고개를 까딱거려 피하려는 심산으로 움직이는 순간.
날아드는 창끝이 순간 흔들렸다.
그 결과.
핏!
창끝이 마치 갈라질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리움은 고개를 살짝 까딱해 피하려 했으나.
창은 그대로 교주 리움의 볼을 찢었다.
분명 교주 리움의 방어력이나 내구도는 훨씬 증가했건만.
이런 위력을 낼 수 있다니.
솔직히 보지 않았다면 믿기지 않았으리라.
전투를 하는 와중에 더 강해진다?
아니, 정확히는 아까가 전력이 아니었다는 게 더 옳았다.
이런 인물이 존재할 줄이야.
그 극한의 순간에서도 강약조절을 하여 공격을 욱여넣다니.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대단하군.”
교주 리움은 그렇게 순수히 감탄했다.
그리고 싸늘한 표정으로 뒤로 물러나며 퍼시벌을 바라본다.
뒤로 물러나는 자신의 모습을 살짝 놓쳤는지 반응이 조금 늦었다.
바로 이거다.
자신을 쫓을 수 없다.
만일 이 모습으로 변하지 않았다면?
등골이 서늘해졌다.
상상하기도 싫었다.
패배는 당연지사에 의식까지 저지되었을 확률이 크다.
자신의 수명을 대다수 바쳐 얻은 이 힘.
이걸로 겨우 퍼시벌을 압도할 수 있다니.
하지만 방심하지 않았다.
‘아직 사제가 남아 있지.’
교주 리움의 생각처럼 그 순간 버프를 걸며 퍼시벌의 능력치를 더 올려주었다.
그래봐야 교주 리움의 능력치에 비하면 아직도 약하다.
하지만 대응할 수 있는 무기를 얻은 것이나 다름없다.
교주 리움은 그걸 보고 생각했다.
사제, 비슈누가 있는 한 전투는 더 어려워지겠노라고.
그래서 움직였다.
바로 비슈누를 먼저 처치하기 위해.
하지만 이게 웬걸.
슛!
날렵하게 날아가는 퍼시벌의 신형.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모습의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다름 아닌 교주 리움 바로 앞이었다.
“……!”
갑작스럽게 나타날 줄 몰랐기에 당황한 교주 리움의 모습에 퍼시벌은 틈을 파고들어 스킬을 발동했다.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스킬.
빛이 창끝에 모이더니 퍼시벌이 창을 내지르며 스킬을 사용했다.
“성스러운 섬광.”
발동과 함께 순간 세상의 모든 빛이 창끝에 집중되는 듯했다.
모든 세상이 몰려드는 듯한 착각마저 드는 현상.
경건하다 못해 압도적인 그 위용에 교주 리움 역시 순간 몸을 떨었다.
그리고 쏘아지는 빛.
모든 세상을 정화하기라도 하는 듯한 강렬한 섬광.
한줄기의 섬광이 창기처럼 뿜어져 나가는 모습에 교주 리움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건 피할 수 없다.
제아무리 빠르더라도 이건 피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순간적으로 나온 퍼시벌의 모습에 당황만 하지 않았더라도 피할 수 있었을 영역.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렇다면 막아야 하나.
아니, 막는다고 해도 저 데미지를 온전히 흘려넘길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파괴력이 상당히 강해 보이는 모습의 저 섬광.
막는다면 큰 피해를 면치 못하리라.
교주 리움은 그렇기에 생각했다.
자신의 공격으로 상쇄해야겠노라고.
“혼돈의 창.”
파즈즈즈!
마법을 사용함과 동시에 나타나는 검은 아지랑이의 창.
허공에 스파크를 튀기며 무시무시하게 튀어나온 창을 섬광을 향해 던졌다.
이거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으리라.
하지만 예상과 조금 다른 부분이 있었다.
섬광과 혼돈의 창이 충돌하는 그 순간.
방금까지만 해도 서로를 잡아먹어 쌍방을 소멸시키려던 둘.
하지만 그 양상은 현저히 달랐다.
콰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
‘혼돈의 창이 잡아 먹힌다?’
분명 아무리 신성력이 담긴 빛이라도 혼돈의 상성을 타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된 일일까.
아니면 혼돈마저도 상성을 불리하게 만드는 고결한 신성력이란 말인가.
교주 리움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 현상에 인상을 찡그리며 두 팔을 들어 올렸다.
그와 동시에 혼돈의 창을 잡아먹은 섬광이 교주 리움을 덮쳤다.
쿠──────웅!
거대한 울림과 함께 교주 리움이 섬광과 날아갔다.
지하 1층의 벽면을 파괴하고 뒤로 날아가는 모습.
성스러운 섬광에 원래는 이런 위력은 없었다.
이펙트 역시 마찬가지.
당연한 이야기지만, MP를 소모하는 대신 신성력을 소모하고 발동한 스킬이었다.
덕분에 위력이 훨씬 증가한 것.
하지만 퍼시벌은 그걸 보면서도 안심하지 않았다.
고작 저걸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으니까.
다만 그 짧은 순간에 비슈누가 할 수 있는 모든 버프를 넣어줬다.
그리고 비슈누 역시 전투 준비를 한다.
퍼시벌은 그걸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미쳤군, 진짜.’
2페이즈?
좋다.
하지만 이 정도로 강해졌을 줄이야.
이 정도라면….
최소 레벨 200대 초반은 되어야 하는 능력 아니겠는가.
적어도 퍼시벌은 그런 느낌을 받았다.
하기야 퍼시벌, 아니, 현성 역시 능력치와 스킬들만 따지고 보면 레벨 200대라고 봐도 무방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봐도 무방한 것과.
그런 능력을 손에 거머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이기려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현성이 그렇게 생각한 순간.
어디선가 들려왔다.
무언가 빠르게 다가오는 소리가.
그리고.
“퍼시버어어어어어얼!”
고통과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가.
투웅!
벽을 모조리 파괴하며 날아드는 교주 리움의 모습에 가장 먼저 움직인 건 현성, 아니, 퍼시벌이 아니었다.
다름 아닌 비슈누.
신성 마법을 발동하기 위한 모션.
그걸 본 교주 리움은 반응하려 했다.
또 홀리 바인드인가.
퍼시벌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면서도 비슈누를 경계하는 모습이라니.
도무지 말도 안 되는 괴물이다.
하지만 그건 퍼시벌과 비슈누 역시 마찬가지.
이때 비슈누가 발동하려 하는 건 홀리 바인드가 아니었다.
다름 아닌.
“하늘의 분노.”
전설 스킬.
하늘의 분노.
그게 발동하자 곧바로 반응이 왔다.
지하에 갑자기 나타난 하늘.
그리고 그 하늘에서 빛이 내렸다.
누군가가 본다면 따스한 빛을 떠올릴 것이고.
다른 누군가가 봤다면 너무나도 뜨거운 빛을 떠올릴 것이다.
선한 이는 품으며.
악인은 처단한다.
하늘이 진노해 허공에 산산이 흩어지며 지상에 내린다.
쿠───────────웅!
말 그대로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모습.
교주 리움은 피할 수 있으리란 생각을 도무지 할 수 없었다.
범위 역시 그랬고, 피할 수 있는 타이밍 역시 아니다.
견뎌야 한다.
교주 리움은 그 생각으로 부릅 눈을 뜨며 충격에 대비했다.
하늘이 무너지더라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 이야기를 떠올리며 모든 힘을 방어에 쏟아 넣었다.
저 무너지는 하늘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면 어떻게든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죽는다.’
그만한 위력이 담긴 스킬이었다.
모든 힘을 방어에 쏟으며 스킬을 막아내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교주 리움은.
순간 이상한 걸 느낄 수 있었다.
무너지는 하늘을 바라보는데 이상하게 바람이 느껴졌다.
이게 무슨 일일까.
하늘이 무너져 내리면서 나는 바람일까?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지금 저 하늘의 형상을 하면서 추락하는 것은 빛이다.
신성력이 가득 담긴 빛.
한데 그런 자신에게 느껴지는 바람은 그와 다른 종류였다.
마치 봄바람의 살랑거리는 그런 간질거리는 바람이랄까?
교주 리움은 그 생각에 자신에게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조차 잊고 바람이 느껴지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
퍼시벌이 점차 바람을 휘감는 창을 쥐고 자신을 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방어에 더 힘을 써야 한다.
무너지는 하늘만 대비해서는 안 된다.
조금만 방어가 무너진다면 저 창에 꿰뚫리고 마리라.
온 힘을 방어에 몰두한 그 순간.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
무너지는 하늘은 적아를 가릴 것 없이 건물 전체를 뒤흔들었고.
건물의 지하 1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지하 1층뿐이랴.
지하 2층 역시 소멸하다시피 사라졌고, 지하 3층으로 떨어져 내렸다.
압도적인 데미지.
교주 리움은 그러면서도 모든 신경을 곤두세웠다.
건물 2층이 소멸하면서 녀석들의 지지 기반도 사라졌다고 좋아할 게 아니다.
녀석들은 분명 자신을 노리고 공격해 오리라.
필히 그럴 거다.
교주 리움이 그렇게 생각하면서 밑으로 추락하고 있을 때.
볼 수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느낄 수 있었다.
살얼음이 껴 있는 차가운 바람.
살을 에는 것 같은 겨울의 바람이 휘몰아치는 느낌을.
그곳을 바라보자 아니나 다를까.
태풍과 폭풍을 동시에 담은 창을 쥐고 있는 퍼시벌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깨달을 수 있었다.
방어에 모든 집중?
어리석은 선택이다.
방어에 집중하더라도 저 공격을 막아낼 재간이 없다.
아니, 원래라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방금처럼 무너지는 하늘을 막 막고 난 지금으로써는 불가능하다.
이대로 있다가는 꿰뚫려 죽을 판이다.
그렇기에 교주 리움은 판단을 바꿨다.
이미 모은 온 힘을 이동시켰다.
두 팔에.
그리고 발동했다.
“혼돈의 숨결.”
용들의 전유물이라 할 수 있는 브레스.
그걸 혼돈의 힘을 모아 퍼시벌에게 쏘아냈다.
이거라면 저 창을 막을 수 있으리라.
기필코 그리되리라.
그런 기대감을 품고 거대한 혼돈의 숨결이 날아드는 순간.
퍼시벌이 투창했다.
폭풍과 태풍이 한곳에 모여 쏘아지는 창.
모든 것을 소멸시킬 그 창이 세상에 재림했다.
창을 보며 두려움에 몸을 떠는 교주 리움이 외쳤다.
“가라!”
“…….”
반면 고요한 퍼시벌의 모습.
그리고 혼돈의 숨결과 모든 것을 휩쓸어버릴 창이 충돌했다.
──────────────────!
그 순간 빛이 세상을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