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2부 103화
32장. 비밀 결사 최후의 결전(3)
교주 리움이 가진 혼돈의 힘.
본래라면 가질 수 없는 힘이었다.
인간이어서가 아니다.
생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의 힘이었으니.
그러나 교주 리움은 그 힘을 사용하고 있었다.
미숙하나 혼돈의 힘은 혼돈의 힘.
그런 강력한 힘이었음에도 세상이 빛에 휘감겼을 때.
교주 리움은 느낄 수 있었다.
‘……졌다.’
모든 것을 관통하기 위해 날아드는 창.
혼돈의 숨결은 저기에 찢어 발겨지리라.
처음 충돌하는 순간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 일일까.
신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그가 정말 신일까.
아니, 그럴 리가 없다.
교주 리움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이 세계가 어떻게 이뤄져 있는지 말이다.
세상에 빛이 만연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
교주 리움은 과거를 회상했다.
한때 자신이 인간, 아니,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한 교단의 교주였을 때를.
‘…그런 때가 있었지.’
그리 오래된 때도 아니었다.
세상에 교단들이 만연했을 때.
여러 종교들이 서로 화합을 다지며 각자의 신을 존중하던 때였다.
교주 리움 역시 그랬다.
짙은 재의 신을 모시던 리움은 교단을 관리하며 짙은 재의 신에게 기도를 항상 올리곤 했다.
신도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짙은 재의 신은 자신들을 굽어살폈다.
하지만 그러던 어느 날.
많은 교단들이 말하는 그때가 찾아왔다.
소실의 날.
신들이 사라진 바로 그 날.
이유를 알 수 없는 원인 불명의 날.
그날 많은 교단들이 사라지고 말았다.
강하지 못한 교단들은 사라질 수밖에 없었으니.
리움의 교단 역시 그런 교단이었다.
하지만 리움은 포기할 수 없었다.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신들은 자신들을 버렸을 리가 없다.
분명 그리 믿었다.
그리하여 고대 문서들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원래도 제국의 귀족이었던 그였기에.
꽤나 권력이 닿는 대로 고문서들을 모을 수 있었다.
특히 신과 관련된 고문서들을.
한데 그렇게 알아보았음에도 처음에는 진척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러던 그때.
혼돈의 힘을 찾고 말았다.
혼돈.
말 그대로 질서가 없는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의 힘.
한데 세상에는 아직도 혼돈의 힘이 만연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이럴 수가.
교주 리움은 그걸 깨닫고 절망에 빠지고 말았다.
혼돈의 힘이 만연해 있다는 뜻은 이 땅에 정말 신이 없다는 것이었으니.
그렇게 고문서를 더 찾아보았다. 그리고 깨달을 수 있었다.
신들은 자신들을 버렸노라고.
그리고 또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원래 그들은 이곳의 신이 아니다.
애초에 이곳에 신은 태어나지 않았노라고.
이곳에 있었던 신들은 모두 이 세상의 토속신이 아닌, 다른 세계의 신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그러니 악신이라는 개념도 없었던 것.
교주 리움은 그에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고문서나 다른 곳에서 그렇게 쓰여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명백하지 않은가.
신들은 자신들을 굽어살폈지만, 결국 끝에 가서는 자신들을 버렸단 사실이.
원래의 자신들의 세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완전한 교주 리움의 착각이었으나.
그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할 정도로 교주 리움은 여유가 있진 않았다.
-아아, 우리를 구원해 줄 이는 이제 정말 없는 것인가.
애초에 이 세상은 잘못되었다.
신이 태어나지 않은 세계.
다른 세계의 신들 역시 버린 세계.
이곳에 남은 건 마계의 침공 말고 없다.
마족에게 있어서 이곳보다 맛있는 곳은 없을 테니 말이다.
혼돈의 힘이 이리도 만연해 있는데 그들이 노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렇게 된다면 세계는 절망과 파괴로 물들 거다.
교주 리움은 차마 그걸 볼 수 없었다.
그 순간.
한 고문서가 눈에 들어왔다.
다름 아닌 다른 차원의 신을 소환하는 의식.
그걸 보고 교주 리움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 신들이 우리를 버렸다면! 이 세계가 잘못되었다면! 바로잡고 말 것이다!
이 세상은 잘못 만들어졌다.
그러니.
새로 만들면 그만이다.
새로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의 것을 허물어야 한다.
그렇기에 교주 리움은 깨닫고 외쳤다.
-세상을 멸절시키리라!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비밀 결사대였다.
꽤 오랜 기간 유지해올 수 있었던 비밀 결사대.
하지만 그 비밀 결사대가 단 한 순간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고작 두 명의 인물들로 인해서 말이다.
이게 가능한 일일까.
재앙신을 소환해 자신의 소망, 아니, 이 세계의 소망을 이뤄야 하건만.
저들이 방해한다.
어떻게든 일어나 저들을 저지해야 한다.
하지만.
‘……힘이, 안 나는군.’
이미 창에 꿰뚫린 상태다.
심장이 위치했던 가슴과 복부에 거대한 구멍이 뚫리고 말았다.
혼돈의 힘으로 변한 자신의 힘으로도 복구가 안 되는 심각한 상처.
그나마 괴물로 변했기에 아직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다.
하지만 아직 여력이 아주 조금은 남아 있다.
이걸로 저항한다면.
발목은 잡을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아직까지도 세상을 덮은 빛 속에서 움직이려 했다.
누구도 이 빛 속에서는 자신을 볼 수 없으리라.
교주 리움은 그리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기에 움직이려 했다.
한데.
자신을 바라보는 퍼시벌의 모습에 멍하니 그를 응시하고 말았다.
투구 뒤에서 느껴지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너무나도 올곧고 깨끗한 시선.
얼마나 올곧은지 순간 그 눈빛을 바라본 교주 리움조차 흠칫 몸을 떨 정도였다.
순간적으로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을 받는 기분.
하지만 이제 와서 멈출 수 없노라.
여기까지 와서 자신의 의지를 꺾을 순 없다.
그런 아둔함과 고집으로 이곳까지 온 게 바로 교주 리움이지 않은가.
“크아아아아아!”
괴성을 지르며 퍼시벌을 향해 날아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남아 있는 힘 자체가 너무나도 미약하다.
고작해야 퍼시벌에게 겨우 다가설 수 있을 정도의 힘.
그럼에도 달려들어야 한다.
어떻게든 포기해선 안 된다.
“으어어어어어어어어!”
짐승의 울부짖음 같았다.
마치 절규하는 듯한.
부모를 잃은 어린 짐승이 외치는 절규와 같은 그 처절한 울부짖음이 세상을 감싼 빛 위에 포개졌다.
절규가 가득한 그 소리에는 마치 이리 외치는 거 같았다.
왜!
도대체 왜!
신들이 버린 이 세계를 어떻게 막을 수 있다고!
곧 이곳으로 쳐들어올 마족들은 어찌 막아낼 수 있느냐고!
이곳에 넘실거리는 이 혼돈을 어찌 잠재울 수 있냐고!
그리 외치는 듯했다.
퍼시벌은 그런 교주 리움을 보며 그저 두 팔을 벌렸다.
마치 모두 괜찮다는 듯이.
“…….”
순간 교주, 아니, 리움은 멈춰 섰다.
자신을 향해 두 팔을 벌린 퍼시벌을 보고 말이다.
리움은 그런 퍼시벌을 멍하니 바라봤다.
왜일까.
분명 불가능하다고 느꼈다.
자신은 도무지 해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여겼다.
이 대륙에 있는 모든 교황 모든 성기사들은 할 수 없다.
심지어 대륙 10강이라 불리는 초월자들 역시 불가능하리라.
그리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한데 이게 왜일까.
왜!
저자라면 해낼 것만 같을까.
리움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퍼시벌이 올곧은 그 두 눈을 감고는 말했다.
“수고했다. 이제 편히 쉬어라.”
담담하고 담백한 그 말.
왜일까.
그 말에 위로가 되는 걸까.
그 말에 리움은 자신의 머리 위를 올려다봤다.
세상이 고요해졌다.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피아노 선율 소리.
잔잔하게 깔리는 그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은 너무나도 듣기 좋았다.
찬란하고, 아름다운.
그리고 지친 영혼을 치유해 주는 그런 피아노 소리였다.
리움은 그럴 리가 없음을 알고 있었지만, 왜인지 저 피아노 소리가 자신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동안 애썼다.
수고했다.
너는 최선을 다한 것이다.
비록 그 길이 삐뚤어지었을 지언정.
너의 마음은 틀리지 않았노라고.
모든 영혼이 씻겨지는 감정에 리움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고생했다, 나의 아이야.】
과거에 듣곤 했던 짙은 재의 신.
아비움의 목소리를 듣곤 리움은 교주로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세상을 뒤삼키는 빛 속에서.
시리도록 찬란하고, 뜨거우리만큼 슬픈 하얀 벼락이 내리쳤다.
───────────────!
그게 교주 리움의 마지막이었다.
퍼시벌, 아니, 현성은 그 마지막 모습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미약한 신의 목소리를.
고작 말 한마디 전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신력을 포기하고 말을 전달한 신의 목소리.
교주 리움이 모셨던 신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리움이 과거를 회상하는 순간 현성도 그걸 같이 볼 수 있었으니.
하나의 직업 이벤트 같은 거였다.
덕분에 깨달을 수 있었다.
혼돈의 힘에 대해서와 이곳의 사정에 대해서.
‘이곳의 토속신들이 아니었기에 쫓겨난 것이로군.’
아직까지 왜 쫓겨났는지는 몰랐지만.
그래도 이곳의 토속신들이 아니라는 건 알아내지 않았던가.
무엇보다 혼돈의 힘에 대해 깨달았으니까.
현성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어디선가 신의 힘이 느껴졌다.
그리고 자신에게 감사를 전한다는 것 역시 느낄 수 있었다.
현성은 그에 피식 웃고 말았다.
더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기에.
현성이 그렇게 웃고 있을 때.
메시지가 떠올랐다.
[홀로 ‘혼돈에 잠식된 교주 리움’ 레이드에 성공하셨습니다!]
[극심한 레벨 차이를 이겨내고 레이드에 성공합니다!]
[‘혼돈에 잠식된 교주 리움’을 격파하면서 직업 시나리오에 대한 강력한 단서를 획득하셨습니다.]
[앞으로 실마리를 찾을 확률이 높아집니다.]
[신들조차 믿을 수 없는 업적을 이뤘습니다.]
[칭호가 부여됩니다.]
[칭호, 『이단 심판관』을 획득합니다.]
[경의로운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28
[스킬, ‘신의 권위’로 ‘혼돈에 잠식된 교주 리움’을 처치하고 혼돈의 힘을 흡수합니다.]
[혼돈의 파편을 손에 넣었습니다.]
[혼돈 스킬을 하나 획득하실 수 있습니다.]
[혼돈 스킬은 신의 권위에 속하게 됩니다.]
교주 리움을 죽였다는 확실한 메시지들.
그걸 보며 현성은 다소 씁쓸하다는 듯 인상을 썼다.
참 시나리오 하나는 잘 짰단 말이야.
그런 생각을 하며 떠올렸다.
‘기분이 나빠질 정도로 말이지.’
너무 몰입해서일까.
확실히 현성의 눈매가 달라졌다.
기필코 해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건 다른 이도 마찬가지였다.
빛이 사라지고 건물이 모조리 사라진 장소에 현성에게 다가오는 비슈누.
정확히는 현성의 아바타와 리베우스였다.
“대단하셨습니다요, 주인님. 이제 하나 남았군요.”
“그래.”
이제 어떻게든 막겠노라.
그렇게 믿고 움직이려고 했던 그 순간.
또 다른 메시지가 떠올랐다.
무슨 메시지일까?
현성이 바로 메시지를 봤을 때.
표정이 구겨질 수밖에 없었다.
[의식 저지에 실패했습니다.]
[긴급 직업 전용 퀘스트, ‘비밀 결사대와 수상한 의식’을 실패했습니다.]
[이제부터 재앙신이 강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