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2부 110화
35장. 신이 잠든 동굴(3)
현성은 홀로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던 한 남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상당히 사무적인 모습으로 보이는 남성.
오면서 이미 숙지를 받았기에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저 남자가 발할라 길드의 부길드장, 판소만이었다.
그를 본 첫인상은 상당히 깐깐하고 예민해 보이는 모습이라는 것.
물론 그만큼 일 처리에 대해선 상당히 잘할 것 같은 사무적인 모습이긴 했다.
상대로서는 조금 부담스러울 수 있었으나.
뭐 현성이 언제 그런 걸 따졌던가.
그냥 그런대로 납득하는 중이었다.
웬만하면 비네샤가 나왔으련만.
너무 바쁜 나머지 어쩔 수 없이 부길마가 나온다는 말을 들었기에.
불가피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으니까.
“반갑습니다, 판소만이라고 합니다. 비네샤 님께 들은 게 아니더라도 워낙 유명하셔서 잘 알고 있습니다, 비슈누 님.”
“아닙니다. 저야말로 판소만 님에 대해 워낙 많이 들어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솔직히 저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없었는데,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첫인상과는 다르게 상당히 부드러운 대화였다.
하기야 저리 사무적인 모습인데 사회성도 좋을 수도 있지.
현성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면서 판소만을 바라봤다.
흔히 대형 길드, 특히 12길드쯤 되는 길드의 부길마들은 대부분 사무적인 일을 도맡는 역할을 한다.
판소만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다른 길드들과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다름 아닌 그 역시 랭커라는 것.
물론 그리 높은 순위의 랭커는 아니었다.
전체 랭킹 38위이자, 마법사 랭킹 9위.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만해도 상당한 랭커이긴 했다.
성기사 랭킹 1위이자 전체 랭킹 8위인 비네샤에 비한다면 낮지만.
충분히 하이랭커라 불릴 자격이 있는 랭커였다.
전체 랭킹 100위 안에만 들어도 하이랭커라 불리니.
“그럼, 자세한 사항을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 경청하겠습니다.”
심지어 일 처리도 깔끔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임무에 대해 알려주는 판소만.
누구는 정이 없다며 싫어할 만도 했지만.
적어도 현성은 아니었다.
오히려 깔끔해서 마음에 든다고 해야 할까?
물론 그보다도 더 중요한 건 내용이지만.
내용 자체도 잘 설명해 주고 있었다.
“우선 공유할 수 있는 퀘스트는 없습니다. 퀘스트 자체가 수집형 임무이기에 신이 잠든 동굴, 여기에서 나온 마정석을 채취만 하면 저희의 퀘스트는 클리어합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저희 길드에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군요.”
임무 자체는 간단했다.
게다가.
“그 외에 모든 것은 비슈누 님과 퍼시벌 님의 소유입니다. 저희의 임무는 마정석 하나면 충분하니까요.”
현성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비슈누의 모습으로 홀로 왔지만, 그걸 판소만은 뭐라 하지 않았다.
어차피 보스는 비슈누라는 걸 알기에.
그만 오면 상관없다는 입장이긴 했다.
다만 무언가 궁금했는지 판소만은 안경을 고쳐 쓰며 현성을 바라봤다.
현성 역시 그런 판소만을 보며 무슨 일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흐음, 임무에 대해서는 혹여 질문이 있으십니까?”
“아니요, 딱히 없습니다만,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현성이 혹시나 싶어 물어보자.
판소만은 그런 현성을 보며 슬며시 웃었다.
여태 마주 보고 앉아서 처음 보는 미소였다.
“아닙니다. 솔직히 비슈누 님의 등장이 저희로서는 너무 달갑기 때문에 이렇게 만나 뵙게 된다면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렇군요.”
“곧 올라갈 영상이 기대가 될 정도입니다.”
곧 올라갈 영상?
순간 현성은 무슨 소린가 했다가 금방 떠올릴 수 있었다.
다름 아닌 어스 드레이크 영상을 말하는 거였다.
발할라 길드의 첫 용병 의뢰.
영상을 찍은 지는 꽤 오래되긴 했지만.
아직까지 올리지 못한 이유?
현성 쪽에서 영상이 늦어져서 그랬다.
늦어지는 이유는 간단했다.
현성이 시도 때도 없이 라이브를 하니 재환의 시간을 빼앗았기 때문에.
‘좀 미안하네.’
아직도 불철주야 일하고 있는 재환을 생각하면 미안하긴 했지만.
그것들을 어떻게 라이브를 안 하겠나.
재환도 허락했으니.
아무튼 그게 떠올라서 현성도 반응을 했다.
“아아, 저희 쪽에서 완성이 되면 같은 날 올리기로 했지요?”
“예, 그 영상이 올라가면 아무래도 파급력이 대단하긴 할 겁니다.”
“그렇긴 하죠, 기대가 크긴 합니다.”
“저희 측도 상당히 기대 중입니다. 그러면 이번 일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물론이지요.”
현성이 그렇게 자신 있게 대답을 하자 판소만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보다 신뢰한다는 표정으로 말이다.
그렇게 판소만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그때.
순간 까먹었다는 듯 다시 고개를 돌려 현성을 바라봤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아참, 말하는 걸 깜빡할 뻔했군요.”
“예?”
“이번 일이 마무리된다면, 미리 지급한 스킬 외에 추가로 스킬북 하나를 공수해 드리겠습니다.”
“흐음.”
“그만큼 이번 일이 중요하기에 저나 길드장님 둘 모두 생각한 방안입니다.”
스킬북?
갑자기?
용병비를 이미 받고 일하는 건데 여기서 추가 보수를 준다라.
현성은 그걸 생각하며 속으로 웃었다.
그만큼 이 일이 발할라 길드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으니.
금세 깨달은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판소만을 보며 손을 내밀었다.
“감사히 받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말해 아무 탈 없이 성공해 오겠다는 말이었다.
그 말의 뜻을 이해한 판소만 역시 슬며시 웃더니, 악수를 받아들이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면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둘의 만남이 끝나고 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회사 미팅을 한 거 같은 분위기이긴 했지만.
오히려 괜찮았다.
비네샤 외에 다른 하이랭커도 만났으니.
상당히 유의미한 일이었다.
현성은 자신의 어깨 위에 리베우스를 봤다.
리베우스 역시 현성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표정.
그러곤 현성이 물었다.
“리베우스, 어떤 거 같아?”
“오우! 전의 그 여자 성기사는 몰라도 저 정도 되는 인물하고는 해볼 만한 거 같습니다요!”
다시 말해 하이랭커 중 마법사 랭킹 9위이자, 전체 랭킹 38위와 겨뤄볼 만하다는 판단을 내린 거였다.
무려 리베우스의 말이다.
그저 아첨이나 아부가 아닌 객관적인 평가.
아무리 리베우스라고 해도 거짓을 고하진 않는다.
아니, 결코 그러는 일이 없다.
특히 현성의 질문이라면 그게 설령 현성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 있는 대답이라도 서슴지 않게 말하는 게 리베우스였으니까.
그런데 그런 리베우스가 해볼 만하다 했다.
즉 현성이 벌써 하이랭커의 수준에 비빌 만하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건 현성 역시 잘 알고 있었다.
판소만과 헤어지기 전, 괜히 악수를 한 게 아니었다. 상대의 힘을 가늠해 보기 위함이었던 것.
“역시 그렇지?”
“물론입니다요! 역시 주인님이십니다요!”
현성은 그렇게 말하는 리베우스를 보다 자신의 화면에 떠오른 창 하나를 바라봤다.
다름 아닌 상태창이었다.
【상태창】
『현성』
-Lv137
-직업:『타나노스《신》』
-칭호:『넌 전설이냐? 난 신인데. 《신》』외 5.
「근력: 195(+90)」「순발력: 195(+90)」
「체력: 195(+90)」「마력: 198(+90)」
「신성력: 515(+35)」
-잔여 능력치: 0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능력치였다.
추가 능력치까지 합한다면 벌써 어느 하나 280을 넘기지 않는 능력치가 없었다.
단순환산으로만 한다면 신성력을 제외하고도 레벨 224는 되어야 얻을 수 있는 능력치다.
전체 랭킹 100위가 딱 200에 겨우 들어 있었으니.
하이랭커 수준의 능력치라 할 수 있었다.
하이랭커들도 추가 능력치가 분명 있을 거라 할 수 있지만.
현성의 신성력을 봐라.
그야말로 압도적인 신성력.
추가 능력치?
그런 건 현성의 신성력의 앞에서 무색할 뿐이다.
고작해야 레벨 137이건만.
최상위 랭커들과 견줄 수 있는 수준이라니.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성장이 빠를 거라 생각하긴 했지.’
신의 권위가 있는 이상 사실 이럴 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이번에 상당히 컸다.
유리아 덕분에 얻은 게 상당히 컸으니까.
거기다 스킬들까지 한다면 비네샤 역시 어느 정도 싸울 만할 거다.
그들 역시 전설 등급 전직 혹은 신 등급 전직일 테니.
현성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임무를 수행하러 가야겠지.
추가 소득도 있는 임무이니.
그만큼 더 신경 써야겠다.
“리베우스, 가자.”
“오우!”
현성이 그렇게 일어나 신이 잠든 동굴로 향하는 지도를 꺼내 가고 있었을 때.
길드 본부로 돌아가는 판소만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왜인지 모르게 아직도 저릿한 손을 내려다보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대단하신 분이군.’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능력이다.
하기야 지금 최상위 하이랭커, 아니, 왕이라고 불리는 랭킹 10위권 이들 역시 저랬다.
레벨 100 중반 때 200대 몬스터들도 잡고 했으니.
지금은 거의 레벨 300에 가까운 몬스터를 잡으려 시도 중이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그들을 떠올리고도 비슈누가 밀린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정말이지 엄청난 존재였다.
물론 아직은 랭킹 10위권은 비슈누가 넘보긴 힘들 터.
하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나 정도의 랭커들은 충분히 찜쪄먹겠군.’
그걸 느끼곤 판소만은 고개를 저었다.
앞으로 더 분발해야겠다.
고작해야 레벨 100 초중반에게 이렇게 밀릴 순 없으니.
그래도 랭커의 자존심이 있지 않겠나.
그것도 하이랭커라 불리는 자신이니.
판소만은 그렇게 생각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앞으로 루키 녀석들을 더 굴려야겠어.’
루키들이 들었다면 소름이 돋았을 그런 말을 말이다.
* * *
신이 잠든 동굴.
드디어 그 앞에 도착한 현성은 확실히 고개를 끄덕였다.
음산해 보이는 동굴.
하지만 현성에게만 느껴지는지 주변에 보이는 것들은 모두 평온하고 평화로웠다.
오히려 너무 특색이 없어서 보고도 이곳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외형이었다.
하지만 현성은 그걸 보며 확신했다.
이곳이 확실하다고.
“벌써부터 역겨운 냄새가 진동을 하는군요.”
리베우스 역시 진지한 표정을 하며 말하는 모습.
현성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신의 권위로 압도적인 신성력을 얻은 현성에게도 보였다.
저 동굴에서 불길한 검붉은 색에 보랏빛으로 생긴 안개가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것이.
그리고 현성은 그런 동굴을 보며 말했다.
“가자.”
“오우. 알겠습니다요.”
현성이 외치자 이곳에 오기 전부터 미리 만들어놨던 퍼시벌과 현성, 그리고 리베우스이 셋이 동굴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