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2부 114화
36장. 추락한 신위와 떠오르는 신성(3)
누군가 동굴 내부로 들어왔다.
이게 가능한가?
전설을 소유한 자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
하지만 하나도 아닌 둘, 아니, 셋이나 되다니.
그걸 느낀 무언가는 인상을 썼다.
이대로라면 조만간 여신을 무너뜨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거늘.
방해꾼이 나타나다니.
참으로 짜증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계를 방해하려 하다니.』
결코 그냥 둘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은 아직 경계 밖에 존재한다.
저 경계를 넘기 위해서는 여신을 무너뜨려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자신이 나선다 한들 침입자가 이곳까지 도달하기 전에는 여신을 무너뜨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목소리는 경계를 넘어선 자신의 수하들을 바라봤다.
하나같이 머저리들밖에 없다.
『안타깝구나. 저 빌어먹을 여신 때문에 강력한 녀석들은 모조리 막혀 머저리 같은 녀석들만 넘을 수 있다니.』
기껏해야 중급인 녀석들이 한계였다.
목소리의 말에 상처 입은 녀석들이 몸을 떨었다.
쓸모가 없는 자신들만 넘어오게 되어 몸 둘 바를 모르는 터.
하지만 그중 하나가 몸을 떨면서도 목소리를 향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로 외쳤다.
“저에게 허락하신다면!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호기롭게 외친 말과 다르게 상당히 빈약해 보이는 육체.
인간의 모습과 완전히 흡사한 녀석이었지만, 다른 게 있다면 온몸에 입이 하나씩 더 붙어 있다는 것이었다.
목소리는 기억해 냈다.
녀석이 누구인지.
『네 녀석이 있구나.』
목소리에 입이 많은 마족이 몸을 떨었다.
기껏해야 중급의 힘이다.
하지만 목소리는 잘 알았다.
녀석이 중급이 아니라는 것을.
강력한 마족은 그 강대한 힘 때문에 경계를 넘어올 수 없다.
하지만 달리 말해 그 힘을 포기한다면 강한 마족 역시 넘어올 수 있다.
입이 많은 마족 역시 그런 방법으로 넘어왔다.
『그래, 폭식을 다루는 자작, 네 녀석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겠구나.』
폭식의 권능.
그리 높은 권위를 지닌 폭식은 아니었지만.
녀석이 귀족이라는 건 달라지지 않는다.
비록 중급으로 추락하긴 했지만.
그래도 괜찮다.
원래 자작이었던 자는 영혼에 그 힘이 새겨져 있으니.
미약하게나마 충분한 힘을 낼 수 있을 터.
목소리는 뜻밖의 일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자작이라 불린 마족이 외쳤다.
“마왕님의 충직한 종, 발락 자작이 마왕님의 명을 수행하겠나이다!”
『좋다. 먹어라.』
“예!”
목소리, 아니, 마왕의 명이 떨어지자 주변에 있던 마족들이 모조리 도망치려 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감히 마족 따위들이 종의 왕인 마왕의 명을 거부할 수 있을까.
모두가 몸을 떨며 눈을 감을 뿐.
그러자 끔찍한 소리들이 울려왔다.
콰직! 콰직! 콰직!
하나하나씩 삼켜지는 소리.
콰득거리며 뼈마디들을 모조리 삼키는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 남은 건 발락 자작.
그 단 하나뿐이었다.
마왕은 그런 발락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직도 귀족의 위를 얻기에는 한참이나 부족하다.
하지만.
이만하면 괜찮으리라.
『좋구나. 상급 마족이라면 능히 해낼 수 있으리라. 침입자를 죽여 이곳까지 도달하지 못하게 하라.』
“분부대로!”
이곳까지 침입자가 도달한다면.
저 빌어먹을 여신이 다시 힘을 얻으리라.
그렇게 된다면 너무나도 치명적이다.
대계의 첫 단계부터 모두 어그러지는 것이니.
하지만 괜찮다.
충직한 종 발락 자작이 나섰으니.
상급 마족이라면 능히 가능하리라.
적어도 도시는 우습게 무너뜨릴 힘을 지닌 게 상급 마족이다.
그러나 그 상급 마족이 원래 귀족이었다면?
더 강할 수밖에 없을 터.
침입자가 어떤 자인진 몰라도 죽을 게 분명하다.
그렇게 대계가 시작되리라.
* * *
현성이 동굴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있던 찰나.
이상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흐음. 이게 뭐지?’
마정석을 채취하려 보는데 마정석이 아닌 다른 게 있었다.
도무지 읽을 수 없는 문구.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 중요해 보이는 글이었다.
사실 이런 어려운 동굴에는 대부분 이런 글귀가 있게 마련이었다.
플레이어들은 흔히 이런 것들을 보고 공략을 하곤 했으니까.
그래서 보려고 하는데, 읽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현성이 그렇게 지나치려는 순간.
메시지가 떠올랐다.
[신의 문자를 발견하셨습니다.]
[신성력이 1 상승합니다.]
[신의 권위로 해석합니다.]
“오.”
신의 권위에 이런 효과가 있을 줄은 몰랐다.
하긴, 스킬 이름이 신의 권위인데.
신의 글을 읽을 수 없는 건 좀 이상하긴 하다.
“어디 보자.”
현성이 그렇게 문구들을 모조리 읽기 위해서 살폈다.
그 내용은 다름 아닌 이곳에 봉인된 신의 일기와 같은 글이었다.
[모두가 쫓겨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 대륙 전체에 혼돈의 힘이 가득할 터.]
[대륙은 그렇게 멸망하리라.]
[마계도 이곳을 노리고 있으니.]
[어떻게든 막아야 하지만, 신들이 쫓겨나게 된다면 불가능하다.]
[혼돈은 타 차원의 신을 거부할 테니까.]
[그렇다면 신위를 버린다.]
[어떻게든 마계의 준동만은 막아야 한다.]
[가여운 아이들을 지켜야 하니.]
그렇게 끝나는 글귀였다.
딱히 공략에는 도움이 될 거 같은 글은 아니긴 했다.
하지만 스토리는 알 수 있는 글.
현성은 그걸 보고 생각에 잠겼다.
이미 이곳의 배경 지식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신위를 버리고 이곳에 신이 남았다?
‘엄청나네.’
거룩하다?
희생적이다?
고작 그런 말들로 표현하기도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뚫리고 있다는 것 아닌가.
현성은 그 생각에 다소 심각해졌다.
어떻게든 이 던전을 깨야겠는데?
문제는.
‘아무리 신위를 버렸다 한들 신은 신인데, 어떻게 그걸 깨는 거지?’
솔직히 좀 이해가 되지 않고 있다.
신위를 버리면서까지 이곳에 모든 마계의 준동을 막고 있는 것 아닌가.
한데 그걸 지금 뚫고 있다?
오히려 말이 안 된다.
무려 신위를 버리고 희생의 힘으로 발동한 것 아닌가.
신성력의 경우 그런 식으로 발동할 때 더 강력하다는 설정을 본 적이 있었다.
보기만 한 게 아니라 레이나에게도 들은 적도 있었다.
무언갈 희생하고, 지키려고 할 때, 신성력은 더 강해진다고.
하물며 신의 신성력이다.
그걸 깰 수 있다?
아직 깨진 건 아니긴 하지만 일보 직전 아니었던가.
현성의 퀘스트를 봐라.
【마계의 준동】
-등급: 타나노스 직업 메인 퀘스트.
-설명: 당신은 신들의 부탁으로 이곳에 왔습니다.
하지만 왜 이곳에 왔는지는 영문을 알 수 없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마계의 준동을 막기 위해 이곳에 왔다는 것.
혼돈의 힘을 먹고 사는 마족들이 이곳에 오게 되면 이곳은 마계가 되고 말 겁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의 멸망과도 같은 일.
신이 잠든 어딘가에서 마계는 준동을 시작하려 하고 있습니다.
부디 이것을 막으십시오.
-제한: 타나노스.
-보상: ?????
-실패 시 마계 준동.
-제한 시간 : 64일.
이제 고작 64일 남았을 뿐이다.
다시 말해 64일 안에 희생한 저 신이 무너진다는 소리인데.
그게 가능하려면 가능성은 딱 하나다.
‘마왕이겠네.’
마계에 있어서 신과 같은 힘을 가졌다고 알려진 마왕.
그런 마왕이 관여된 게 분명하다.
하기야 마계의 준동이다.
마왕 정도가 관여하지 않으면 말이 안 되긴 하지.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 봤을 때, 그 말은 마왕이 이 대륙에 쳐들어온다는 것 아닌가.
현성의 생각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심각해졌다.
‘이거 생각 이상으로 심각한 퀘스트인 거 아니야?’
알기는 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스케일이 커졌다.
사실상 유리아가 소환되었던 때랑 비슷한 스케일인 거 같은데.
현성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때.
그 생각이 맞다고 보태주려 나타난 메시지 하나.
[직업 메인 스토리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하셨습니다.]
[마계가 대륙을 침공할 경우 로스트 이데아 에피소드-마계준동이 시작됩니다.]
[로스트 이데아 에피소드-마계준동은 전 대륙이 겪을 에피소드입니다.]
[신 등급 직업 타나노스의 메인 스토리는 대륙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명시하시기 바랍니다.]
‘미쳤네.’
부담을 가지라고 메시지를 보낸 것일까?
아니, 그럴 리가.
현성을 잘 아는 이데아라면 알고 있을 거다.
오히려 이런 메시지에 불타오르는 게 현성이라는 걸.
아니나 다를까 미소를 지으며 현성이 생각했다.
이거 왠지 다크 히어로가 된 기분인데?
누구도 모르게 세상을 구하다니.
사실 유리아 스승님 때는 별로 체감이 되진 않았다.
그냥 서 있다가 끝난 게 다였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현성이 제대로 하지 않으면 대륙이 위기에 빠지는 거다.
‘그렇다곤 해도, 망한 게임 만들려는 게 아닌 이상 대륙이 한 방에 망하진 않겠지.’
대략적인 대형 이벤트 형식으로 이뤄지리라.
물론 그 과정에서 엄청난 스토리들이 이어지고 할 테지만.
그걸 혼자 막아낸다?
오히려 좋다.
짜릿해진 현성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거 불타오르네.”
현성이 그렇게 말하곤 동굴 더 깊은 곳으로 이동했다.
혹시나 더 글귀가 있나 싶어서 벽면을 샅샅이 훑었다.
안타깝게도 더 없었지만, 한 가지 수확은 있긴 했다.
터벅. 터벅. 터벅.
멀리서 울리는 걸음 소리.
고작해야 하급 마족 하나랑 중급 마족 하나만 잡은 상태라 심심했는데 잘됐다.
현성이 그렇게 생각하며 가볍게 생각하던 중.
그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지독한 악취다.
아니, 악취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다.
피부가 끈적거리는 습기로 가득 찬 것 같은 불쾌함.
심지어 그 습기가 구역질 나는 악취로 가득한 습기다.
너무나도 불쾌하고 불길한 그 기운을 느끼고 있으려니.
리베우스 역시 그를 느꼈는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주인님,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놈인 것 같습니다요.”
“응, 그런 거 같네.”
기운만 느낀다면 상급 마족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불쾌감을 지닌 녀석.
현성은 그런 녀석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퍼시벌 역시 그렇게 긴장한 모습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온몸에 날카로운 이빨과 입이 수없이 나 있는 마족 하나.
상당한 기운을 지닌 녀석.
그리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주의! 주의!]
[현재 레벨을 한참 벗어난 몬스터와 조우했습니다!]
[레벨 250 레이드 보스, 약화된 마족의 자작 발락과 조우하셨습니다.]
[승률이 매우 낮습니다.]
메시지를 보던 현성은 피식 웃으면서 물었다.
“야, 너 좀 치냐?”
“……?”
결코 기죽은 모습이 아닌 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