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2부 115화
37장. 마계 자작 발락(1)
유민정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고 있었다.
여기서 마계 자작이라고?
지금 벌써 나와야 할 영역이 절대 아니다.
“미친! 저게 뭐야!”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 정도로 놀랐다.
순간 소리를 내버린 그녀는, 주변의 눈치를 보다가 헤헤 웃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다른 사람들이 흘깃 보기는 했지만.
뭐, 흔한 일이니.
다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 다행이다.
어쨌든 유민정은 저 상황을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왜 그러냐고?
마계 자작의 힘을 아주 잘 알기 때문에 그렇다.
마계에서 귀족이라 함은 최상위 마족을 넘어선 자들에게만 부여되는 특권 중 하나이다.
다시 말해 지금 단계에서는 등장하기엔 너무 이르단 것이다.
‘어떻게 저기에 마계 자작이 있는 거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미 유민정은 알고 있었다.
발락이 자신의 힘을 버리고 중급으로 격하하여 경계를 속이고 넘었다는 것을.
그나마 폭식의 권능을 지닌 발락이었기에 가능한 일.
유민정은 그런 발락을 보면서 불안에 떨었다.
비슈누와 퍼시벌이 이길 수 있을까?
잠시 떠올린 후 고개를 저었다.
절대 이기지 못할 거다.
지금 표기되어 있는 레벨로는 250대의 레이드 보스라 적혀 있다.
다시 말해 랭커들이 모여야 레이드 할 수 있는 보스라는 뜻이다.
아니, 그것도 과연 될까?
‘지금 랭킹 1위인 데우스가 232지. 실질적인 파워는 200대 후반이라고는 하지만 발락은 못 이겨.’
지금의 발락은 표기대로의 힘이 아닌 레벨 300대 레이드 보스와도 견줄 수 있다.
그게 유민정의 판단이었다.
현재 레벨 250대 레이드 보스라 표기된 것도 한참이나 부족하다.
하지만 이곳은 게임.
부당한 일만 일어나는 곳은 아니었다.
유민정은 빠르게 발락의 정보를 살폈다.
그리고 보이는 약점들.
여러 공략법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공략법을 알기 전에 깰 수 있을까?’
아니, 불가능하다.
발락을 원트라이에 깬다?
아무리 그녀가 팬인 비슈누와 퍼시벌이라 한들 그러기란 힘들 터.
두 번째 트라이는 몰라도 첫트에 성공은 불가능이다.
유민정이 보기에는 최소 세 번 이상은 트라이해야 성공하지 않을까?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겠다.
다시 말해.
‘처음은 죽을 수밖에 없겠는데……?’
그게 유민정이 내린 결론이었다.
다만 첫 트라이에 얼마나 많은 공략법을 얻어갈지.
유민정의 머릿속엔 현성이 첫 트라이에 성공할 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 * *
마계 자작 발락은 지금 상황을 모두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침입자라며 들어온 두 인간.
그리고 두 인간 중 불쾌한 냄새가 너무나도 강한 인간 사제가 한 말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좀 치냐고?
감히 자신에게 누가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품위도 격도 떨어지는 말이다.
귀족이 들을 수 없는 모욕적인 말.
하지만 발락은 그럼에도 흥분하거나 이성을 잃지 않았다.
지그시 상황을 살필 뿐.
그러자 보이는 게 있었다.
‘흥미롭군.’
성기사로 보이는 기사와 사제.
콤비로 보이는 둘과 사제의 어깨 위에 서 있는 인간형 펫 하나까지.
총 셋의 기운을 느끼건대 결코 만만한 녀석들은 아니다.
신의 기운이 느껴지는 걸 떠나 본인들이 지닌 힘 자체도 강렬하다.
주변 오라가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꼴을 봐라.
당장에라도 폭발시킬 것 같은 저 기운.
하지만 그 속에 잠들어 있는 힘을 발락은 느꼈다.
선과 악이 뒤섞여 있는 그야말로 혼란스러운 힘.
발락은 그 힘을 느끼며 친숙한 향을 느낄 수 있었다.
역겨움 속에 숨은 친숙한 향이라.
어찌 모를 수가 있으랴.
‘혼돈의 힘이구나.’
어째서 신을 모시는 사제에게 혼돈의 힘이 느껴지는진 알 수 없다.
하지만 오히려 좋지 아니한가.
녀석을 먹는다면 아주 좋은 영양분을 얻을 수 있으리라.
무엇보다 저 역겹기 짝이 없는 신성력 역시 타락시킨다면 실로 감미롭지 않을까.
발락은 그렇게 미소를 지었다.
온몸에 있는 입가가 뒤틀리며 웃는 그 모양새란 그리 유쾌하진 않았다.
오히려 불쾌하기 짝이 없는 모습.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걸 보지 못하는 이라면 고개를 돌릴 법한 모습이었다.
비슈누도 발락을 보곤 인상을 찡그리더니, 이내 헛구역질하는 척을 하며 말했다.
“웩, 징그러워라.”
“역시, 인간은 천박하구나.”
“마족이라 그런가 미적 감각도 뒤틀려 있네.”
“하하! 마족에게는 그보다 더한 찬사가 없지.”
발락의 말에 비슈누는 잠시 고민했다.
원래 이런 기 싸움에서는 질 수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마땅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네 엄마 마족.”
“…….”
왜일까.
참으로 맞는 말이었지만.
발락은 묘한 불쾌감을 느꼈다.
아니, 묘한 불쾌감 정도가 아니다.
몹시 기분이 나빴다.
당장에라도 저 천박한 인간 녀석을 때려 눕혀주고 싶은 충동으로 가득 찼다.
발락에게 던진 도발이 효과적으로 먹히자.
비슈누, 아니, 현성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거 꽤 큰일이라고.
상황이 절대 좋지 않았다.
레벨 250대의 레이드 보스.
하지만 현성의 눈에도 똑똑히 보인다.
‘레벨이 다가 아니야.’
그건 현성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무엇보다 마계 귀족이다.
느껴지는 기운은 고작해야 겨우 상급에 들어갈까 말까 하는 느낌이지만, 그 정체가 마계 귀족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상급에서도 최상위인 마족보다도 상대하기 까다로울 터.
그렇기에 애써 도발을 한 것도 있었다.
어떻게든 평정심을 흩뜨리기 위해.
혹시나 해서 해봤거늘.
역시 만국, 아니, 이 경우에는 만차원이라 해야 하나?
아무튼 만차원 공통 도발의 성능이란 확실했다.
당장에라도 대치할 것 같은 상황에 현성은 비슈누 컨셉을 풀었다.
“후우우우.”
원래라면 성경책을 쥐고 사제복을 입었어야 하건만.
그러지 않았다.
성혈의 무구로 갑옷을 만들었다.
그리고 무기로는 퍼시벌과 달리 장검 한 자루를 쥐었다.
발락은 그걸 보며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제가 아닌 성기사였나?”
“아니. 팔라딘이라고 해두자.”
“흐음, 뭐 좋다. 어쨌든 네 녀석들이 죽는 건 달라지지 않으니.”
발락이 그렇게 말한 순간.
발락의 신형이 흩어졌다.
바람에 흔들린 촛불처럼 흐트러지더니 사라지는 모습.
너무나도 빨라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진 거다.
신형이 흐트러지는 순간 현성이 검을 들었다.
반응했느냐고?
아니, 반응조차 못 했다.
눈으로 따라가기는 너무 힘든 속도였기에.
하지만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채애애애앵!
갑자기 나타난 발락의 모습에 검을 들어 막아냈다.
하지만.
콰지직!
검에 생기는 균열.
점차 그 균열이 퍼져가는 걸 볼 수 있었다.
찰나의 순간.
현성은 거기서 빠르게 몸을 틀어 바닥을 박찼다.
허공을 떠오른 그 순간.
검으로 막아낸 발락의 주먹이 순간 회전하려 한다.
현성은 그걸 보며 두 가지 스킬을 사용했다.
‘신성 방패, 홀리 바인드.’
신성한 빛이 방패를 만들어내고, 순간 발락의 몸이 움찔거리며 멈췄으나 그것으론 역부족이었다.
발락의 주먹이 회전하자.
뒤이어 충격이 온몸을 뒤덮었다.
투콰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이라도 일어난 듯 거대한 충격이 터져 나갔다.
허공에서 터져 나가는 현성은 찰나의 순간 튕겨 벽면에 처박혔다.
콰아아아아앙!
한순간 허공에 떠오른 채로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크.”
절로 나온 탄성을 내지르며 현성이 벽면에서 나왔다.
발락 역시 그런 현성을 보며 감탄하듯 말했다.
“대단하긴 하군.”
자신의 공격을 저런 방식으로 막아내리란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했으니까.
무엇보다.
자신의 속도에 반응하다니.
보잘것없다고 생각했거늘.
마냥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지금도 봐라, 또 다른 성기사가 자신에게 덤벼드는 것을.
창을 쥐고 기운을 모아 쏘아내는 공격.
성스러운 섬광이 발락을 향해 쏘아졌다.
하지만 발락은 그런 것쯤이야 우습다는 듯 손을 뻗었다.
막을 심산인가?
현성은 그 순간 빠르게 벽면을 박차고 발락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리고 분신인 퍼시벌이 사용한 것처럼 자신 역시 성스러운 섬광을 발동시켰다.
그래도 자신은 조금 다르게 마력이 아닌 신성력을 사용한 훨씬 강화된 버전을.
순간 세상의 모든 빛이 현성의 검 끝에 모이는 듯 한 점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찰나의 순간.
빛이 한곳에 모이고 입자들이 쪼개지고 다시 뭉쳐진다.
어떠한 빛보다도 성스러운 빛이 모여 쏘아진다.
───────────!
이것 역시 막을 수 있지만, 간단히 막아내진 못하리라.
현성은 그렇게 판단하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크하하! 맛있겠구나!”
발락이 크게 웃어재끼며 퍼시벌이 쏘아낸 성스러운 섬광을 손바닥에 있던 입을 벌려 먹어치웠다.
아무런 피해도 없이 말이다.
현성은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싶어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고만 있었고, 그 순간 리베우스가 외쳤다.
“주인님!”
리베우스의 말에 현성은 정신을 차리고 허공밟기를 사용해 허공을 박차 옆으로 피했다.
현성이 그렇게 몸을 날린 순간, 현성이 날린 성스러운 섬광을 향해 발락이 다른 손을 펼치고 입을 벌렸다.
그러자 그 입에서 나온 것은 퍼시벌의 성스러운 섬광이 아니었다.
어떠한 어둠보다도 어두운 광선.
아니, 저걸 광선이라 해야 할까?
그저 어둠이었다.
빛 한 점 없는 어둠의 에너지.
그 칠흑의 힘이 그 자리를 뒤덮었다.
콰가가가가가가가가!
현성이 쏘아낸 신성력을 이용해 발사한 성스러운 섬광도 아무런 소용 없이 소멸하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것을 가루로 만들어냈다.
어둠이 뒤삼킨 곳은 그 무엇 하나 남지 않고 사라졌다.
퍼시벌이 쏘아낸 성스러운 섬광 역시 강력하지만, 저 정도까지는 아니다.
현성이 쏘아낸 신성력을 담은 성스러운 섬광을 무력화시키고도 위력이 남아 다른 지형까지 소멸시키다니.
무엇보다 공격 반사라고?
‘미치겠네.’
저 입들에 기믹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공격을 먹고 공격을 뱉을 수 있다니.
어느 정도 예상은 하긴 했지만, 그 위력이 상상 이상이다.
갈수록 난해해지는 모습에 현성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까딱거리며 몸을 풀었다.
처음은 그래도 몸풀기로 하려 했건만.
상대가 상상 이상이다.
그렇다면 거기에 맞게 싸워줘야 인지상정이지.
모든 버프를 사용했다.
자신에게, 그리고 퍼시벌 역시 모든 버프를 스스로에게 사용하게 했다.
마지막으로.
“에인헤랴르.”
“에인헤랴르.”
퍼시벌과 현성이 둘 다 그 스킬을 사용하곤 발락을 쳐다봤다.
“좀 치네. 2차전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