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2부 118화
38장. 영역선포『중력』(2)
유민정은 눈앞에 있는 모니터 화면을 보며 입을 떡하니 벌렸다.
자기가 도대체 뭘 본 건지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의 모습.
갑자기 우주가 펼쳐지고 행성이 파괴가 되면서 블랙홀이 나타나는 모습은 장관이라고 표현하기엔 너무나도 대단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것보다.
저건 대체 뭘까.
아니, 유민정도 알고는 있다.
다름 아닌 영역선포.
신 등급 직업을 지닌 유저들이 최종 단계로 나아가면 얻을 수 있는 권능 중 하나이지 않던가.
한데 왜 저게 불과 한 달 조금 넘게 플레이한 비슈누 유저에게 있느냔 말이다.
유민정은 어린 나이에 빠르게 과장까지 올랐지만 그럼에도 많은 유저들을 봐왔다.
한데 권능을 지닌 신 등급 유저?
지금 몇이나 있었던가.
생각해 본다면 얼마 없었다.
고작해야 셋?
모두가 최상위 하이 랭커였다.
랭킹 10위 안에 들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고작해야 레벨 200도 안 된 비슈누가 최상위 권능을 가지고 있다고?
‘말도 안 돼.’
권능을 소지하고 있는 유저들 중 최상위 권능인 영역선포를 지닌 이는 없었다.
다시 말해 비슈누가 최초라는 건데.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시스템적으로 가능하기는 하다.
하지만.
‘어려울수록 보상이 강해지는 ‘로이’에서 최상위 권능을 얻었다는 건…….’
도대체 어떤 걸 해내야 얻을 수 있는 걸까?
무엇보다.
이번 퀘스트에서도 권능을 얻기로 되어 있었을 텐데.
비슈누?
대단한 건 알고 있었다.
유민정은 팬클럽까지 가입했으니.
모를 리가 없지 않는가.
한데 이 정도일 줄이야.
존경심과 팬심이 더 무럭무럭 자라는 중이었다.
무엇보다.
‘레벨도 이제 150을 넘겼어.’
이제 고수라 할 수 있는 레벨이었다.
대륙을 좀 더 원활하게 다닐 수 있는 레벨.
그리고….
‘대형 길드에게 견제를 당할 확률이 높아지는 레벨이기도 하지.’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괜한 걱정이라는 건 이미 잘 알고 있다.
저만한 힘을 가진 두 유저이지 않는가.
퍼시벌의 정보도 보이진 않았지만.
유민정은 보고 확신할 수 있었다.
퍼시벌 역시 신 등급 직업이라고.
그렇기에 걱정은 딱히 들지 않았다.
‘신 등급 유저들은 공식적으로나 비공식적으로나 엄청난 활약을 하고 있으니까.’
공식 랭커만이 아닌 비공식 랭커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재 공개된 신 등급 공식 랭커는 고작 셋.
1위 데우스와 2위 블랙, 마지막으로 8위의 비네샤였다.
그리고 비공식에는 그보다 많은 다섯이나 더 되는 신 등급 직업이 있었다.
개발자들 역시 너무 많이 풀린 거 아니냐면서 걱정을 많이 하긴 했다.
하지만 유민정은 반대로 생각했다.
‘퍼시벌 님하고, 비슈누 님까지 포함하면 열인데 아직 적지.’
몇억 명 이상이 하는 게임이다.
플레이어 숫자가 10억이 넘어간다고도 할 수 있는 게임이건만.
신 등급이 고작 10명?
적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점차 늘어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뭐, 아직은 두고 봐야겠지만.
아무튼 중요한 건 그거다.
신 등급들 중에서도 당연하지만 계급이 존재한다.
신들 중에서도 계급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유민정은 확신할 수 있었다.
‘퍼시벌 님은 몰라도, 비슈누 님은 최상위 등급이 틀림없어.’
신 등급 직업 중에서도 최상위 직업.
확신하는 이유는 많았다.
저만한 우주를 소환하는 어마어마한 영역을 펼칠 수 있다는 거부터가 말이 안 된다.
최소가 상위이고, 유민정이 생각할 적에는 최상위가 맞았다.
참 감이 좋은 여자였다.
확실히 비슈누, 그러니까 현성이 펼친 스킬은 유리아가 준 【영역선포 『중력』】이지 않은가.
그리고 유리아는 최상위 신이었다.
만일 유민정이 【영역선포 『죽음』】을 봤다면 뭐라 했을까.
궁금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현성은 더 영역선포를 쓸 생각은 없어 보였다.
흥미진진한 전투를 마무리하는 게 너무 아쉬웠기에.
정말 위급하면 또 쓰겠지만.
글쎄?
현성에게 그럴 일이 있을까?
그건 아직까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쨌건 거기까지는 알 수 없는 유민정은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화면을 응시했다.
이런 건 방송에 올리진 않을 거 같았다.
다름 아닌 비슈누도 갑옷을 갑자기 입고 싸우지 않았던가.
여태까지 보여주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영상으로 나오지 않을 거 같았다.
한데 자신은 이렇게 볼 수 있을 줄이야.
“후우, 진짜 엄청나다. 엄청나.”
유민정은 감격이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나 살폈다.
더 이상 방해할 수 있는 요소가 없으니.
아무리 마왕이라도 이제는 물러날 수밖에 없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비슈누의 퀘스트가 어떻게 될까 바라보던 중.
마왕이 무언가를 시도하는 걸 볼 수 있었다.
또 되도 않는 여인을 무너뜨리려는 수인가?
그래봐야 소용없다는 걸 유민정은 잘 안다.
애초에 두 달이 더 넘어야 무너질 여신이다.
한데 고작해야 몇 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무너뜨릴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비슈누의 승리다.
유민정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때 갑자기 창백해진 얼굴로 화면을 응시했다.
마왕이 하는 걸 보며 고개를 저었다.
‘이, 이러면 퀘스트를 깰 수가 있나?’
불가능하지 않나?
아니, 어떻게 저런 방법을 떠올릴 수가 있는 거지?
‘아, 안 돼.’
유민정은 서둘러 마왕의 계략을 막으려 했으나 소용없었다.
마왕이 세외 세력을 데려와 쓴 것이 아니라, 자신의 힘을 이용한 것이었기에.
그녀가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유저의 일에 개입할 수 없는 것처럼, 정당한 마왕의 힘이었기에 개입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저, 절대 못 깨는 거 아닌가?’
최상위 신 등급 직업?
그렇다 한들 상대는 마왕이다.
무엇보다.
저 계략이라면….
‘아아, 어쩌지?’
비슈누가 실패하는 걸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왜일까?
다시 비슈누의 화면으로 돌아가자.
왜인지.
왜인지 모르게 그라면 해낼 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스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머릿속으로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을 아무리 해도.
비슈누는 그동안 그런 일들을 깨지 않았던가.
이번에도 혹시 그러지 않을까?
그런 기대감을 품고 유민정은 비슈누의 화면을 응시했다.
바로 그게 비슈누의 영상의 매력 아니겠는가.
안 될 거 같은 걸 도전하고 해내는 것이 비슈누, 퍼시벌 형제의 강점 아니던가.
그렇기에 지켜봤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흘러갈지.
* * *
똑.
또옥.
멀리서 들려오는 물방울 소리에 여인은 느낄 수 있었다.
악이 다가온다는 것을.
그리고 무언가 자신에게 어떤 일을 저지르는 걸 느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분별할 이지는 없었다.
그녀는 너무나도 오랜 시간에 걸쳐 쇠약해져 그걸 구별할 힘이 없었기에.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여기서 그저 수면에 취해 눈을 감고 있는 일 말곤 없다.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며 말이다.
그렇기에 다짐했다.
【기필코 버텨내리라….】
여지없이 다짐을 외치는 그녀이지만.
힘이 많이 빠졌다.
이 일을 얼마나 많이 반복해야만 하는 걸까?
마계가 준동하지 않게 고독하고 외롭게 이곳에서 막아야 한다.
그 어떤 동료도, 그 어떤 존재도 없이 오롯이 홀로.
끊임없이 유혹해 오는 저 마왕의 목소리에 흔들린 적도 많았다.
자신을 비웃으며 늘 찾아오는 마왕의 목소리.
하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들리지 않는다.
몇 년이나 지난 걸까?
그 무엇도 느껴지지 않은 지 얼마나 지난 걸까?
아무리 이곳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느리다 하더라도 너무 고독했다.
하물며 자신을 유혹하려던 마왕의 소리도 없었기에.
도대체 이걸 언제까지 버텨낼 수 있을까.
감도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여인은 떠올렸다.
【이 대륙에 있는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
확신이 담긴 목소리.
이제는 신위를 버려 더 이상 기억도 나지 않는 아이들이다.
하지만 추억은 계속해서 남아 있지 않던가.
자신을 모시며 항상 웃으며 행복해하던 아이들.
오직 그것만으로 힘을 내고 있었다.
그 아이들은 아마 죽었을 수도 있다.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내었기에.
하지만 그럼에도 굴하지 않았다.
【그 아이들의 아이들도 있다. 또 그 아이들의 후손도 있겠지. 그러니 나는 결코 굴복하지 않으리라.】
이 얼마나 자애로운 생각이란 말인가.
하지만 왜일까.
그 말과 목소리가 너무나도 떨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소리를 내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았기에 그러는 것일까.
결코 자신은 구원받지 못하리라.
알고도 신위를 버리고 이곳에 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너무나도 고독하고 너무나도 외롭다.
마왕에게는 고독은 자신의 벗이며, 자매라고 말했지만.
너무나도 나약해졌다.
신위를 버려서일까.
이제 버티는 나날도 왜인지 얼마 남지 않았을 거 같은 그런 불안감에 여인은 다짐했다.
【기필코, 무너지지 않으리라…….】
하지만 언제까지 버텨야 하고,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할까?
무한의 굴레에 무너질 것 같은 정신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그때.
『아아, 불쌍한 여인아. 곧 내가 찾아가마.』
【네놈은 이곳으로 오지 못한다.】
『하하! 나는 그렇지! 하지만 버려진 여신이여. 내 부하는 네년에게 갈 수 있지!』
【……설마?】
『그렇다. 곧 찾아가마. 너의 끝이 도래하리라.』
그렇게 마왕의 소리는 사라졌다.
자신의 부하가 다가온다는 말을 남기고 말이다.
하지만 말도 안 된다.
고작해야 마족 따위가 자신에게 다가올 순 없으리라.
결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왜일까?
이 한없이 불안해지는 마음은.
불안하고 두렵다.
다가올 수 없음을 잘 안다.
아는데도 불안하다.
아무래도 마왕의 힘으로 여인이 그렇게 느끼게 해놓은 것이리라.
갈증에 목이 말라 물소리를 낸 것처럼 말이다.
그녀는 갈증을 느낄 수도 없는 몸이니.
불안감을 심어준 것일 터.
그렇기에 그녀는 이겨내려 했다.
어떻게든 마왕의 계략에 속지 않으려고.
한데 왜일까?
터벅, 터벅, 터벅.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말도 안 된다.
아니, 불가능하다.
마족 따위가 이곳에 올 수 없다.
하지만 격이 높은 마족이라면?
그런 존재가 넘어온 것이라면?
자신이 타락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아, 안 된다.】
그녀는 불안해졌다.
정말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으니.
허상에 불과한 물소리 따위가 아니다.
정말 가까이에서 소리가 들린다.
자신의 머릿속이 아닌 육체적인 귀로 듣는 소리.
터벅, 터벅, 터벅.
터벅, 터벅.
그것도 하나가 아니다.
둘?
아니, 느껴지는 기운으로는 셋인데.
걸어오는 소리는 둘이다.
이게 대체…….
유민정이 봤던 마왕의 계략이 이것이었다.
바로 자신의 부하가 다가올 것이라며 그녀를 무너뜨리려는 계략.
성공하고도 남았다.
이미 무너질 대로 무너진 그녀의 마음에 실제로 다가오는 이들이 느껴졌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지를 잃어 또렷이 생각할 수 없는 거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앞에 선 이들.
그녀는 두려움에 떨었다.
자신이 이제 무너지는 것일까?
두려움에 모든 게 무너질 것 같은 느낌.
하지만 왜일까?
왜 저 마족들에게서 너무나도 따스한 빛이 느껴지는 걸까?
알 수 없었다.
그러던 그때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오우! 저희가 왔으니 안심하시라는 겁니다요!”
“야! 그게 뭐냐! 구해주는 건데!”
기괴할 정도로 유쾌한 목소리와 그를 질책하는 목소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