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잠만 자도 랭커 2부-119화 (445/472)

잠만 자도 랭커 2부 119화

39장. 구원(1)

동굴 끝에 다다르자 현성은 여러 신성력을 느낄 수 있었다.

정확히는 느끼는 게 아닌 볼 수 있었다.

처참하게 찢긴 신의 신성력을.

동굴 곳곳에 신성력이 담긴 마정석이 피어나 있었고, 동굴 끝으로 갈수록 마정석은 붉은빛을 띠었다.

원래라면 푸르러야 할 마정석이 붉은빛을 띠다니.

신의 피를 표현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나 다를까.

‘신의 기운이 담겼다는 설명이 사라지고, 성혈이 담겨 있다고 하네.’

참으로 참혹한 광경이었다.

신은 저렇게까지 희생해서라도 사람들을 구하고 싶었던 걸까.

게임이라는 걸 아는 현성으로서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렴풋이 공감할 수 있었다.

현성 역시 예전에는 그렇게 살지 않았던가.

무수히 많은 모욕 속에서도.

아픈 동생, 현아를 위해 회사를 어떻게든 다녔다.

그거야말로 희생이 아니면 무엇이랴.

정말 자신이 없다시피 살았다.

현아 역시 그런 현성을 어떻게든 도우려 하지 않았던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요.”

“맞지.”

자신의 일을 떠올리고 나니.

왜 저렇게까지 해야만 했는지 이해는 되긴 했다.

사람들을 지키려고 자신의 고통을 뒤로하는 희생.

현성 역시 현아를 위해 희생하지 않았던가.

현성은 처참한 흔적으로부터 숭고한 희생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뿐이다.

아무리 숭고하더라도 자신의 안위를 저렇게까지 신경 쓰지 않다니.

현성은 그러지 않았다.

그렇게 한다면 현아도 슬퍼할 걸 알았기에.

현성의 기분이 가라앉자.

옆에 있던 리베우스가 슬며시 눈치를 봤다.

그러곤.

“오우! 하지만 괜찮습니다요! 이제 주인님이 저자를 구원하지 않겠습니까요!”

“…….”

피식.

리베우스의 말에 현성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 하는 말이다.

현성도 그걸 알고 있었기에 웃은 거다.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물론 현성은 이곳에 잠의 신을 구원하기 위해 온 게 아니다.

퀘스트의 내용은 마계의 준동을 막으라는 거지, 신위를 잃은 신을 구원하라는 것이 아니었으니.

하지만!

‘퀘스트는 언제나 그 이상의 일을 한 만큼 보상을 주지.’

게다가 이런 걸 어떻게 그냥 넘어가겠는가.

모르면 몰랐지.

알게 된 이상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공감을 못 하는 것도 아니었으니.

다만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느냐는 건데.

뭐 그거야 가봐야 알 수 있는 거 아니겠는가.

그런데 느낌상 왜인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런 느낌이 들었을 때 안 되던 게 없긴 했지만.

혹시 또 모르는 거니까.

현성이 혹시 모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을 때.

순간 멀리서 어마어마한 악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리베우스조차 순간 움츠러들 만한 악의 기운.

결코 신의 아래라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최상위 신과 견줄 수 있는 기운은 아니다.

그러나 상위 신에는 버금가는 기운이 담겨 있었다.

“역겨움을 넘어서 소름이 돋을 정도입니다요.”

리베우스의 말대로였다.

현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퍼시벌과 함께 전투 준비에 나섰다.

저만한 힘이라면.

어쩌면 강림을 사용해야 할지도 모른다.

차라리 잘되었다.

아직 남아 있는 영역선포도 있었고, 강림도 있었으니.

오히려 좋다고 생각하고 동굴 끝을 향해 다가서자.

그제야 분간할 수 있었다.

‘아직 넘어온 건 아니구나.’

악의 기운을 가진 무언가가 결코 결계를 넘은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곧이다.

그걸 느끼고 있자.

악의 기운 근처에서, 찢긴 참혹한 흔적이 남겨진 신성력에서 느껴진 기운과 흡사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자가 누구인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현성 역시 저 기운을 알고 있었으니까.

다름 아닌 잠의 기운.

반가운 건 현성만이 아니었다.

“오우! 저희가 왔으니 안심하시라는 겁니다요!”

원래라면 자신의 신도가 아니면 불신자나 흔히 불경한 자라고 하는 리베우스가 저리도 반기다니.

다른 차원에서의 잠의 기운을 가진 신을 느껴서일까?

아니, 잠의 신이었던 자를 느껴서일까.

너무나도 반가워하는 모습이었다.

현성도 이해는 하지만, 좀 과했다.

그런 리베우스를 보며 현성이 나무랐다.

“야! 그게 뭐냐! 구해주는 건데!”

그 목소리에 기운을 가진 자가 고개를 들었다.

의식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졌는지 초점이 없는 눈.

얼마나 이곳에 있었던 걸까?

알 수도 없었지만, 너무나도 길게 자란 은발의 머리가 주변을 넘실거리며 넘쳐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머리카락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젊음을 유지하고 있는 여인.

그 여인을 보자 현성은 느낄 수 있었다.

저 여인이 잠의 신이었던 여인이라고.

혹시 타나노스와 관련이 있는 건 아닐까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건 아닌 모양이다.

‘엘리시움일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네.’

하기야 엘리시움은 잠의 사도가 아닌 꿈의 사도이지 않는가.

사실 잠의 신이라 해서 타르타로스를 생각했건만.

그도 아닌 여인이었다.

이걸로 타나노스와는 연관이 전혀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공교로운 우연이라 해야 할까.

어쨌든.

현성은 이미 마음을 먹었다.

‘어떻게든 구한다.’

결계만 유지할 수 있다면 여인을 구할 수 있으리라.

현성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악의 기운을 바라봤다.

신성력과는 완전히 다른 힘.

혼돈의 힘을 사용하던 교주 리움이 그랬을까?

아니, 그보다도 더 더러운 느낌이 가득했다.

어둡고, 불길한 기운.

혼돈의 힘과는 다른 악의 힘.

검보랏빛 기운을 보고 있으려니 메시지가 떠올랐다.

[악의 종주, 마왕을 목격했습니다.]

[폭식의 마왕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주의하십시오. 마왕이 어떤 수단으로 당신을 현혹할지 모릅니다.]

세 개의 메시지에 현성은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였다.

저런 기운을 가진 자가 몇이나 있겠나.

게다가 마계가 준동하면 당연히 나와야지.

역시 예상대로 마왕이었나?

현성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신에게 기운이 다가오는 걸 느꼈다.

아무래도 무언가를 할 모양.

하지만 어림 반푼 어치도 없지.

‘어디 와보라 그래.’

* * *

마왕, 폭식의 마왕은 자신의 앞에 나타난 인간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녕 인간이 맞단 말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믿기지 않는구나.’』

지금 자신을 희생한 잠의 여신이 바로 중위 신이었다.

한데 그런 잠의 여신보다도 더 강한 신성력을 가졌다고?

그것도 인간이?

이를 어찌 믿을 수 있으랴.

폭식의 마왕은 자신이 본 것조차 의심했지만,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중위 격의 신보다도 강력한 신성력?

아니, 강력하기만 한 게 아니다.

『‘정순하기로도 놀랍기 그지없구나.’』

만일 저 정순함과 강력함이 양이 더 많았더라면?

7대 마왕이라 불리는 자신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아직은 그런 경지는 아니었다.

지금은 벌레마냥 짓이길 수 있을 만한 수준.

그러나 왜일까?

자신이 도무지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해가 되지 않는구나.’』

자신이 결계 밖으로 나간다면 한 줌의 재도 남기지 못하고 소멸할 놈이다.

한데 왜인지 모르게 본능이 그를 거부하고 있었다.

자신의 권능인 폭식조차 두려움에 떨고 있다.

이게 말이 되는가?

자신의 권능이 어떠한가.

감히 신들조차 넘보지 못하는 강력한 권능이다.

무려 7대 죄 중 하나, 폭식.

한데 그런 권능이 두려움에 떤다고?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하기야 저래야 자신의 자작이 죽은 것도 납득이 되었다.

무수히 많은 자작 중 하나가 죽은 거에 불과하긴 하지만.

영리한 녀석이 죽었으니.

속이 쓰렸건만.

저런 녀석에게 죽었다면 이해할 수 있었다.

상식 밖의 존재.

알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났을 때.

대부분의 존재들은 두려움에 떨곤 한다.

하지만 폭식의 마왕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크흐흐, 녀석만 내가 어떻게 한다면 방해꾼은 없겠구나.’』

녀석만 꼬드긴다면 일이 훨씬 수월해지리라.

한데.

『‘이상하군.’』

이상한 건 녀석만이 아니다.

녀석과 비슷한 모습을 한 기사.

단순히 인형으로 보였으나.

무언가 다르다.

녀석에게서도 신의 힘이 느껴지는 것을 보라.

왜일까.

분명 옆에 있는 현성보다는 못하다.

그건 확실하다.

한데, 그럼에도 충분히 최상위 신에 버금갈 만한 신성력의 순도와 강력함을 지녔다.

신이 힘을 내린 느낌이 아니다.

자신의 힘으로 신위를 거머쥔 신들과 비슷한 냄새가 났다.

하물며 저 인형에게만 느껴지는 게 아니다.

『‘저 펫에게서도 느껴지는구나.’』

신기한 것은 셋 모두 다르지만 비슷한 종류라는 것이었다.

가운데에 선 현성이 둘을 합친 느낌이었고, 둘은 현성에게서 떨어져 나온 느낌.

아주 정확한 느낌이었지만.

마왕은 그거까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게 그리 중요하진 않다.

그저 녀석들을 꼬드기면 그만이니.

어떻게든 회유하여 여신을 공격하게 하리라.

물론 짙은 순도의 신성력이라 자신의 말이 먹히지 않을 수 있지만.

괜찮다.

『‘여신을 무너뜨리려던 모든 힘을 담는다면 어찌어찌 되겠구나.’』

여신조차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이다.

아무리 신과 비슷한 힘을 가졌다 한들, 그 본질은 인간이다.

아니, 인간에 가까웠다.

그러니.

녀석들도 무너뜨릴 수 있으리라.

마왕은 그렇게 생각하며 현성에게 다가갔다.

어떻게 회유할지는 이미 느끼고 있었다.

마음속에 어둠을 가지지 않은 이는 그 누구도 없다.

숭고한 마음을 지닌 저 여신조차 마음속 어둠을 가지고 있어 무너지고 있지 않았던가.

하물며.

『‘녀석은 혼돈의 힘을 품었다.’』

신성력을 지닌 동시에 혼돈의 힘을 품다니.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도 어두워진다고 하지 않던가.

그와 같은 이치라 할 수 있었다.

역시 인간은 인간.

마왕은 그 점을 노리기 위해 인간, 현성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저 여인을 보아라.』

“……?”

『저리도 추레하게 무너진 꼴을 말이다.』

폭식의 마왕은 그리 말하면서 비웃음을 섞었다.

마치 저게 잘못되기라도 한 듯 말이다.

그 말을 들은 인간은 그저 입을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작게 벌린 입.

왜 입을 벌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놀라서 그런 거 아니겠는가.

『인간들을 위해 자신의 신위마저 버리고 희생했건만, 지금은 이미 잊혀져 누구도 찾지 않는 신이 되었지. 아니, 신조차 아니게 되었다.』

“…….”

현성은 아무 말도 없이 그 말을 듣고 있었다.

먹히는 걸까?

폭식의 마왕은 비릿하게 웃으며 그렇게 되고 있노라고 생각했다.

다만.

아직은 부족한 거 같으니.

박차를 가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너 역시 저리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어디에 있는가. 네가 모시는, 혹은 네가 믿는 신념의 끝이 바로 저것이다. 저런 말로를 겪고 싶은 건 아니겠지?』

“…….”

여전히 대답이 없는 인간.

폭식의 마왕은 그런 인간을 향해 거듭 말했다.

『자, 하지만 나를 보아라. 나를 돕기만 한다면 네게 무소불위의 힘을 주겠다. 어떠한가? 고작해야 신으로 신앙을 구걸하지 말거라! 나에게 오라! 그리하면 네 녀석 역시 힘으로 지배할 수 있게 되리라!』

열연을 펼친 폭식의 마왕은 득의양양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걸로 되었다.

녀석은 넘어오리라.

자신의 남은 모든 힘을 사용하지 않았던가.

폭식이 권능이다 보니 현혹이 장기는 아니었지만, 마왕은 마왕이다.

이조차 못한다면 마왕이라 할 수 없노라.

이제 저 여신도 끝이다.

마계가 준동하고 이곳은 자신의 영역이 되리라.

이 탐스러운 혼돈은 오직 자신만 독차지해 먹어 삼키리라.

그렇게 믿고 있었던 폭식의 마왕이었다.

하지만 그때 들리는 소리.

꿀꺽.

무언가 가득 삼키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곤 마왕을 향해 인간, 현성이 말했다.

“어우, 거북할 정도로 많이 줘서 배가 엄청 부르네.”

『어, 어어?』

그제야 폭식의 마왕은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힘을 담아 한 말을 저 인간이 모조리 삼켰다는 것을.

어떻게 자신의 힘을 먹는단 말인가.

그것도 폭식의 힘이 담긴 자신의 힘을 말이다.

믿기지 않는 상황.

그때 현성이 폭식의 마왕을 보며 비웃고는 말했다.

“잘 먹었다. 마왕 힘도 먹을 만하네.”

『내, 내 힘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