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2부 120화
39장. 구원(2)
끄으으윽.
어디서 트름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폭식의 마왕은 그 느낌에 상당히 당혹스러워하며 현성을 바라봤다.
자신의 힘을 먹었다고?
고작해야 인간이!?
『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우, 과식한 거 같네.”
분명 경계를 넘어 여신을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이었건만!
그걸 다 처먹, 아니, 먹었다는 게 말이 되는가!
하물며 한낱 인간이 말이다.
믿기지 않는 일에 폭식의 마왕은 그저 입을 벌렸다.
그리고 그런 폭식의 마왕을 향해 현성은 미소를 지었다.
눈가까지 웃음으로 휘어진 모습.
너무나도 장난기 가득한 그 미소에서 악의마저 느껴지자, 폭식의 마왕은 섬뜩함을 느꼈다.
아, 안 돼.
하지만 폭식의 마왕이 그걸 느꼈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 순간 폭식의 마왕이 만들어낸 아바타를 향해 현성이 신성력을 뿜어냈다.
스킬이 아니다.
자신의 순수한 신성력을 그대로 쏟아 넣은 것.
폭식의 마왕은 섬뜩함을 느낌과 동시에 입에 담긴 신성력을 자기도 모르게 꿀꺽 삼켰다.
폭식이란 이름에 걸맞은 모습.
여기에 나름의 판단도 있었다.
어차피 신성력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에게 영향은 없으리라.
경계를 넘은 것도 아닌 그저 아바타로 자신의 형체를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이 아바타는 고작해야 자신의 분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한데 이걸로 어떻게 영향을 받을 수 있겠는가.
그런 판단으로 삼키게 된 거다.
한데.
꿀꺽.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공간이 떨리게 만드는 어마어마한 포효.
아니, 포효라기보다 고통에 젖은 신음에 가까웠다.
현성은 그것을 보며 피식 웃고는 자신의 메시지를 읽었다.
[폭식으로 폭식의 마왕의 기운을 흡수했습니다.]
[일시적으로 폭식의 마왕에게 간섭할 수 있습니다.]
폭식의 마왕이 힘을 내뿜는 거?
어떻게 모르나.
이미 진작에 현성은 알고 있었다.
다만 모른 척을 하고 입을 벌리고 있었을 뿐.
그리고 그걸 삼키자 폭식의 마왕에게 간섭할 수 있게 되었다.
이걸 어떻게 이용할까 고민하다 아주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폭식의 마왕은 엄연한 마족이다.
마족들의 왕.
그리고 그 마족들의 왕이니 당연히 신성력에 약하다.
하물며 그 어떤 신보다도 정순한 신성력을 가진 자신의 신성력이라면?
두말하면 잔소리지.
현성은 그렇게 생각해 자신의 신성력을 먹인 거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저것이었다.
아바타가 지지직거리면서 점차 옅어지고 있다.
지금 신성력으로 아바타에 타격을 입은 거냐고?
아니, 그럴 리가.
[폭식의 마왕이 영혼에 극심한 타격을 입습니다.]
[더 이상 형체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폭식의 마왕이 만든 아바타가 사라집니다.]
그렇게 형체를 잃으며 점차 사라져 가는 폭식의 마왕.
하지만 그러면서도 현성을 또렷이 쳐다보며 외쳤다.
『기필코! 네 녀석을 찾아 죽이리라! 영혼마저도 어찌하지 못하게 내 기필….』
모든 말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지는 마왕을 보며 현성은 고개를 저었다.
왜 악역들은 다 비슷비슷한 말을 하는지.
하물며 저러고 진짜 죽이면 모르겠는데.
대부분 그 근처도 못 온다.
하여튼 허세는.
현성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시 동굴 끝에 처량히 앉아 있는 여인을 바라봤다.
아까까지만 해도 초점이 흐릿했던 눈.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초점도 돌아오고 생기도 점차 생기기 시작했다.
얼마나 폭식의 마왕에게 시달렸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 이게 어떻게?】
마치 자신이 어떻게 살아 있느냐는 듯한 반응.
거기에 현성은 쓴 미소를 지었다.
저런 반응도 당연하다.
정신이 거의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으니까.
현성은 그런 여인을 보며 딱함을 느끼곤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했다.
다행히 지금 현성은 사제에 가까운 몸이다.
압도적인 회복스킬은 없었지만.
그래도 회복할 수 있는 스킬은 많지 않은가.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효과가 좋은 스킬을 사용했다.
“헤븐즈 링.”
천국의 종이 울려 퍼지며 따스한 빛이 내렸다.
주변의 모든 이를 축복하듯 울리는 청아한 종소리.
동시에 여인에게도 금빛의 반지가 생겨났다.
하지만 이내 금빛 반지는 깨지고 여인의 모든 상태를 회복했다.
‘역시.’
거의 죽기 일보 직전이었기에 그럴까.
헤븐즈 링으로 인해 다시 부활하며 모든 상태를 회복한 여인.
그걸 보며 현성은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는 걸 깨닫고 미소를 지었다.
여인은 그 순간 모든 게 회복되는 걸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여인은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이가 자신을 구원했다는 것을.
헤븐즈 링 때문이 아니다.
그가 가진 압도적인 신성력.
아니, 압도적이라는 말도 무색하다.
세상의 모든 신성이 그를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은 느낌.
여인은 그런 현성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자신을 구원해서?
아니다.
알고 있는 거다, 여인은.
【오셨군요.】
처음 듣는다면 저 말의 뜻이 무엇인지 모를 거다.
하지만 현성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저 의미가 무엇인지.
많은 신들은 이곳을 버린 게 아니다.
저 여인만 보더라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어쩔 수 없이 물러났지만.
타나노스에게 빌고 빌었다.
부디 이곳을 지켜달라고.
일단 현성의 스토리가 바로 그것 아니겠는가.
현성은 그렇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여인의 간절함은 잘 알고 있었기에.
“예,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어떠한 말보다도 듬직한 말.
여인은 그에 눈물을 흘렸다.
현성은 그런 여인을 보며 고민했다.
어떻게든 여기서 해방시켜 주고 싶으나.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하냐는 거다.
이럴 때 치트키와도 같은 아주 뛰어난 놈이 있지 않은가.
현성은 듬직한 리베우스를 바라봤다.
“오우! 이곳의 결계라면 주인님과도 상성이 아주 잘 맞겠습니다요! 주인님의 영역선포로 결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요!”
“오오!”
역시 리베우스다.
현성의 리라에몽!
현성은 리베우스의 말을 듣고 경계에 직접 손을 댔다.
그러자.
여인이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닙니다! 가, 감히 저를 위해 그러지 마시옵소서.】
“으음?”
현성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면 이 결계는 어떻게 하라는 말이지?
의문이 가득한 표정인 현성의 모습에 여인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두려운 것이었다.
지금 그녀의 몸으로는 현성의 신성력을 온전히 두 눈으로 바라볼 수 없었으니까.
한때 신이었기에 더 잘 알 수 있었다.
현성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 말이다.
그렇게 두려움에 떠는 여인을 보며 리베우스가 그럴 만도 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리베우스에게 위대한 타나노스 앞에 모두가 고개를 조아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폭식의 마왕의 손에 벗어났기에. 제가 다시 버틸 수 있나이다. 부디 저 말고 이 대륙을 구원해 주시옵소서.】
여인의 말에 현성은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 저 여인은 다시 희생하려 하는 거다.
어쩜 저리 숭고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어쩜 저리.
“어리석을 수 있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현성이 말하자.
여인이 흠칫 떨었다.
리베우스 역시 현성의 목소리에 서린 분노를 느끼고 몸을 떨었다.
현성의 입장으로서는 화가 날 수밖에.
자신의 몸도 돌보지 않고 하는 희생이야말로 어리석은 일임을 아주 잘 알고 있었으니.
현성 역시 자신의 꿈도 포기해 가며 희생하지 않았던가.
때문에 현아도 얼마나 미안해했는지.
아주 잘 알기에.
현성은 여인의 뜻에 동조할 수 없었다.
“희생은 자기를 돌보면서 해야 의미가 있는 겁니다. 당신은 지금 그저 희생하려는 것이 아닌 자신의 마음만 편하자고 이기적이게 나오는 겁니다. 당신의 신도들은요? 당신을 잃고 비통에 빠져 있을 당신의 신도들을 결과적으로 버린 거나 다름없습니다. 당신은.”
【아, 아아.】
현성의 말에 여인 역시 무언가 깨달았는지 바닥에 주저앉았다.
자신이 하는 행동이 옳았다고 믿었거늘.
현성의 말을 듣고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위해 희생한 어미가 사라지면 아이는 어미 없이 홀로 자라게 된다.
과연 그게 아이를 위하는 일일까?
그건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하나는 확실하다.
아이는 외로울 것이라는 것.
현성의 말에 거기까지 이해한 여인은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달라지면 됩니다.”
【예?】
“지금부터라도 다시 신도들을 보살피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아!】
환희에 찬 목소리에 현성은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여기서 현성이 결계를 더 굳건하게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여인이 희생하는 건 옳지 못하다.
그렇기에 이런 제의를 한 것.
현성의 말에 여인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저 사도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당신께서는 제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때 이 대륙에서 삼주신이라 불리던 이들을 합한 것보다도 더한 힘을 가지고 계십니다.】
“크흠.”
갑작스러운 칭찬에 현성은 자기도 모르게 볽을 긁었다.
아직은 그 정도로 성장을 못 했거늘.
저렇게 말하니 부끄러웠다.
현성의 반응에도 여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저는 고작해야 중위 신에 불과했습니다만, 분명히 느낄 수 있습니다. 제가 가진 잠의 힘을 월등히 초월하는 힘을 지니신 분이라는 것을요.】
“크흠, 아닙니다.”
“오우! 주인님이 위대하신 분인 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요!”
여인의 말에 리베우스도 흥분하며 외쳤다.
진짜 이렇게 칭찬을 받아도 되는 걸까 싶어 머쓱하게 있는 현성.
그리고 여인은 이어서 말했다.
【저 사도의 말씀처럼 결계에 손을 대시면 모든 것을 아실 수 있으리라 사료되옵니다.】
고개를 숙이며 아뢰는 여인의 말에 현성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저 결계에 손을 대면 퀘스트가 완료된다는 거지?
간단한 이야기를 괜히 길게 하는 거 같긴 하지만.
어쨌든.
이제 끝난다는 것 아니겠는가.
현성은 그렇게 결계에 다가가 손을 얹었다.
그러자.
[거의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결계입니다.]
[타나노스인 당신과 상성이 잘 맞는 결계입니다.]
[당신의 권능으로 보수할 수 있습니다.]
[보수 가능한 권능]
-영역선포『죽음』
“오.”
리베우스와 여인의 말대로였다.
결계를 보수할 수 있다니.
그런데 그때.
[기존 결계의 상위 개념의 권능입니다.]
[상성이 너무 잘 맞습니다.]
[결계 보수가 아닌 새로운 결계로 초월합니다.]
[영역선포『죽음』이 결계로 펼쳐집니다.]
[영역선포『죽음』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주의, 영역선포『죽음』을 사용하시면 페널티를 그대로 적용받습니다.]
[그래도 사용하시겠습니까?]
‘있으나 마나 한 페널티지.’
영역선포『죽음』의 페널티는 다름 아닌 사망 페널티 4배 적용이다.
결국 안 죽으면 그만이라는 이야기지.
지금도 강해져서 움직임에 방해를 하는 영역선포『중력』보다는 훨씬 나았다.
바로 사용한다.
현성이 그렇게 생각하자.
세찬 빛과 함께 결계가 뒤바뀌기 시작했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죽음의 결계로.
결계가 뒤바뀌는 모습에 현성의 뒤로 리베우스가 외쳤다.
“아아! 우리 주인이신 타나노스 님을 경배하라는 겁니다요!”
그리고 그런 리베우스 옆에 리베우스의 눈치를 보는 여인도 외쳤다.
【타, 타나노스시여!】
왠지 모르게 일이 꼬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현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