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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만 자도 랭커 2부 136화 (462/472)

잠만 자도 랭커 2부 136화

45장. 추방자의 평원(2)

비슈누와 데우스의 파티는 파죽지세로 첫 번째 단계인 정원을 넘어, 두 번째 들판, 세 번째 언덕마저 끝내버렸다.

쉬지도 않고 달려왔으니 지칠 법도 하지만.

놀랍게도 파티원들은 모조리 멀쩡했다.

숨을 헐떡이지도, 정신적으로 피로하지도 않았다.

믿기지 않는 일.

이렇게나 가쁘게 레이스를 하듯 보스를 사냥했건만.

지치지 않았다고?

그것도 어중간한 난이도나 쉬운 난이도도 아닌 현존하는 최고 난이도인 SSS급 던전을?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해월은 이걸 직접 겪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거라 생각했다.

‘미쳤다, 진짜.’

데우스의 덕이냐고?

그럴 리가.

해월 역시 데우스의 파티였다.

데우스의 파티가 늘 이렇느냐?

절대 아니었다.

레벨이 차이가 나긴 하지만 끝자락이라도 하이랭커에 무려 신등급 직업이다.

파티에 들어가지 않을 이유는 단 하나도 없다.

그때마다 해월이 느낀 점은 딱 하나였다.

‘불협화음에 가까웠지.’

데우스의 파티라고 한다면 최정상의 파티라 할 수 있다.

전원이 하이랭커인 파티.

당연히 컨트롤이 최정상 파티답게 뛰어난 소유자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손발이 잘 맞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각자 실력을 믿고 자신이 활약하기 위해서 아등바등거리며 서로를 맞춰주지 못해 불협이 나는 경우가 매우 많았다.

데우스 역시 그 점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이미 최정상 파티였기에 바꿀 수도 없는 노릇.

때문에 최대한 자중하라는 말만 남기고 이어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바뀌었느냐?

‘그럴 리가.’

자신의 플레이대로 해서 하이랭커까지 도달한 이들이 하루아침에 플레이를 바꿀 수 있을까?

그럴 리가.

세계적인 골프 선수 역시 자신의 습관을 고치기 위해 몇 년이나 소비했을 지인데.

고작 1년 차 게임인 로스트 이데아에서 하이랭커들의 습관이 쉽게 고쳐질 리가 없다.

데우스도 감안하고 그대로 이어져왔건만.

이건 무어란 말인가.

적재적소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공격을 하고 나온 틈을 타 탱커가 방어를 하고, 짧은 틈을 마련한다.

마치 하나의 정밀 기계처럼 움직이는 에인헤랴르 용병단.

‘말도 안 된다.’

해월도 최대한 맞추려고는 했지만, 생각 이상의 효과를 냈다.

그리고 그걸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다름 아닌 데우스였다.

‘……이 정도일 줄이야.’

데우스는 사실 비슈누를 제외하고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한데 이게 웬걸.

‘하나같이 대단하다.’

퍼시벌, 발키리.

둘 다 얕잡아볼 이들이 아니었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저 둘 중 해월보다 못한 이가 누구도 없었다.

그 증거로.

[공헌도 순위]

[1위 데우스-10,302P]

[2위 비슈누-9,955P]

[3위 퍼시벌-7,680P]

[4위 해월-5,867P]

[5위 발키리-5,620P]

1위인 자신과 비슈누와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것은 이미 예상했지만.

3위가 퍼시벌일 거라고 생각도 못 했다.

기껏 해봐야 아직 하이랭커 권에도 도달하지 못한 이이지 않는가.

아무리 뛰어난다 한들 해월이랑 비슷하거나 높아도 조금 더 높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게 웬걸.

무려 약 2천이나 차이가 났다.

하물며 발키리와도 고작 200 정도의 차이.

탱커인 발키리의 공헌도가 낮은 건 어떻게 본다면 당연한 일이니.

사실상 발키리조차 해월보다 높다고 보는 게 옳았다.

해월 역시 그 점을 인정하기라도 한 듯 많은 것을 깨달은 표정이다.

무엇보다.

‘우리 파티보다도 뛰어나다.’

고작해야 셋이라고 무시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상상 이상의 실력자들이다.

모두가 하나같이 뛰어난 모습에 합이 너무나도 기깔나게 맞춰진다.

퍼시벌이 나설 때는 발키리가 양보하면서 물러난다.

반대의 상황에서도 마찬가지.

원래라면 근접 딜러라 할 수 있는 퍼시벌 같은 위치가 양보?

할 리가 없다.

최정상에 가깝게 도달한 이이지 않은가.

자신의 고집이나, 프라이드가 있을 게 분명하건만.

그런 건 전혀 없다는 듯 자신보다 팀을 위한다.

만일 퍼시벌이 그러지 않고 점수에 욕심을 냈다면?

어쩌면 비슈누와 비슷한 점수였으리라.

그랬다면 데우스가 이만한 점수로 1위를 하는 일도 없었으리라.

‘둘이라면 아수라도 잡는다는 게 과장된 말이 아니었군.’

비록 시청자들이야 보고 있는 말이고 없는 말이고 지어내는 걸 잘 안다.

하지만 그걸 부정하는 이가 없다는 건.

웬만한 분석가들도 암묵적으로 동의한다는 이야기다.

데우스는 그걸 인지하고 속이 쓰리기 시작했다.

둘이서 아수라를 잡는다.

솔직히 말한다면 데우스는 그것에 자존심이 상할 이가 아니다.

오히려 고작 둘이서 아수라를 잡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영광이리라.

반대로 자신의 파티로 아수라를 잡을 수 있을까?

‘아니, 불가능하다.’

하나하나가 강력한 모두가 하이랭커인 파티다.

하지만 하나로 뭉치지 않은 파티는 합쳐졌다고 할 수가 없다.

1+1이라면 2가 당연해야 할 텐데.

그보다도 못한 모습을 보이는 파티였으니.

반면 저들을 봐라.

언제든 자신들이 희생하고 몰아줄 때 몰아주고, 반대로 양보를 할 땐 양보한다.

언뜻 기계와 같이 보일 수 있지만, 아니다.

‘저건 하나의 생명체다.’

마치 한 명이 모두 움직이는 것 같은 그런 느낌.

발키리만 좀 살짝 엉키는 느낌이 있었지만, 퍼시벌과 비슈누가 워낙 훌륭하기에 그래 보이는 거지 발키리만 하더라도 어마어마한 슈퍼플레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정말 하나의 생명체 같은 모습.

뭐 비슈누가 퍼시벌을 사실상 조종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긴 했다.

은연중에 정답을 말했지만, 결코 알 수 없는 데우스였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뜻으로 막강한 강자가 되기 위해 지은 닉네임이건만.’

늘 자랑스러워하며 아수라를 뛰어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오늘만큼 낯이 뜨거워지는 날은 처음이었다.

강해지겠다고 다짐했다.

아수라를 넘보겠다며 말이다.

하지만 한 가지 인정하지 못한 게 있었다.

그걸 오늘 비슈누를 보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아수라가 아니다.’

애초에 당연한 이야기고 모를 수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아수라처럼 행동하고 있었지.’

아수라는 신이었다.

왕이니, 황제이니 그런 시답지 않은 자가 아니었다.

신 그 자체.

그를 가까이에서 본 이들이 모두가 그랬다.

아수라를 향한 길드원들의 생각은 모두 비슷했다고.

그를 신처럼 여기고, 그런 신처럼 여기는 게 당연하듯 행동했다 한다.

하지만 자신은 어떤가?

‘나는 신인가?’

질문했으나 답은 당연히 하나였다.

NO.

결코 아니었다.

왕? 황제?

그런 것은 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은 신은 결코 될 수 없다.

아주 간단한 사실이었거늘.

이제 와서 깨닫고 만 거다.

아수라를 능가한다고?

그러기 위해 길드를 만들고 최정상의 파티랍시고 파티를 만든다?

웃기지도 않는 일이다.

과연 아수라가 그랬을까?

아니, 추종자들이 알아서 길드를 세워 그에게 바쳤고, 추종자들이 모여 최강의 파티가 탄생하고 했다.

그럼에도 아수라는 홀로 고고히 다녔다.

영상에서도 그를 보는 모두에게도 그랬다고 알려졌다.

‘간혹 파티플레이를 하긴 했지만, 팬서비스와 같은 느낌이라 했지.’

아수라의 길드는 그걸 ‘파티 하사’라는 표현을 썼다고 한다.

그도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고 한다.

아수라는 고고하게 홀로 사냥하는 것을 즐겼다고 했으니.

후에 판시아에서는 파티플레이를 꽤 즐기긴 했다고는 하지만, 그마저도 맞춰주는 느낌이라 했으니.

그런데 봐라.

데우스는 아수라를 잡겠다고 하곤 길드를 만들고 파티를 만들어 사냥을 하곤 했다.

정말 아수라를 잡고 싶었다면 이래선 안 된다.

아수라처럼 홀로 고고하게 사냥하고 오롯이 홀로 서야 했거늘.

그러나 데우스 역시 잘 안다.

‘나는 할 수 없다.’

아무리 자신이라도 로스트 이데아에서 홀로 사냥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

간혹 보스 하나를 솔로 레이드를 하는 건 충분히 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장기간으로 레벨링을 위해 사냥을 해야 할 때?

데우스 역시 파티가 없다면 상당히 곤욕을 치를 수밖에 없다.

효율도 나지 않고 말이다.

이러면서 무슨 아수라를 잡겠단 말인가.

무엇보다 그러면서도 아수라를 따라 하겠다 치고 파티원들이 스스로 자신을 섬기게끔 하려 했다.

결과는?

당연한 실패 아니겠는가.

너무나 자유분방해진 파티는 거슬리기 짝이 없게 되었다.

우선 인정부터 해야 한다.

‘나는 아수라가 아니다.’

결코 그처럼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지치진 않았지만, 쉬는 게 어떨까요? 세 번째 단계까지는 쉽게 왔지만 네 번째부터는 쉽지 않을 수 있으니 휴식을 취한 후 가는 게….”

해월의 조심스러운 의견.

데우스는 해월의 말에 빠져 있던 생각 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도 멀쩡하지만,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지.”

“좋습니다. 우선 쉬며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니 말이죠. 쿨타임도 채우면 좋으니까요.”

“맞습니다!”

비슈누의 말에 발키리가 적극 동의했고, 퍼시벌도 그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데우스는 마찬가지로 그 광경을 봤다.

존경과 배려가 바탕으로 깔려 있는 파티.

그걸 보며 게임에서 처음으로 부럽다는 감정을 느꼈다.

자신 역시 저런 파티를 만들고 싶노라고.

하지만 저들을 잡을 순 없다.

이미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나는 저들을 품을 그릇이 못 된다.’

그래.

저들, 아니, 적어도 비슈누는 누가 품을 수 있는 그릇이 아니다.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데우스는 자신이 품을 수 없노라고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생각했다.

‘라이벌이라 해야 하겠군.’

자신의 턱 밑까지 쫓아온 블랙?

미안하지만, 단 한 번도 라이벌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오직 아수라만을 바라보는 데우스에겐 블랙은 너무나도 아쉬운 상대였으니.

하지만 비슈누는 다르다.

자신만의 파티를 꾸려 분명히 아수라를 능가할 잠재력을 지닌 이.

비슈누, 꺾는다고 아수라를 꺾는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그에 근접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데우스는 그런 생각을 하고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해월은 데우스가 웃는 것을 보고 놀랐고, 비슈누는 살짝 무언가를 느꼈는지 데우스를 바라봤다.

그리고 데우스는 그런 비슈누를 마찬가지로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나에게 파티를 꾸리는 법을 알려줄 수 있나? 이건 의뢰와 별개로 개인적인 질문이다.”

“흐음.”

너무 뜬금없는 대답을 들었기에 그럴까?

비슈누는 다소 난감하다는 듯 쩝 소리를 내며 입맛을 다셨다.

알려줘야 할지 말지 고민하는 걸까?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걸까?

괜히 곤란하게 했다.

데우스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사과하려고 했던 때였다.

“파티라는 건 결국 꾸려도 사람은 사람이죠. 그들을 존중한다면 그들 역시 존중하게 마련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존중하지 않는 이들은 파티원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거죠.”

“……아.”

“더 중요한 건 그들을 존중하되 우스워지지는 마십시오. 언제나 여럿을 존중하는 마음이 있다면 누구든 존경하며 따라올 겁니다.”

“그렇군. 고맙다.”

순수하게 감사를 표하는 데우스를 보며 비슈누는 피식 웃고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저 그걸 꺼내드렸을 뿐입니다.”

정중하게 말하는 비슈누.

그리고 그런 비슈누를 보고는 데우스가 말했다.

“존중이라. 앞으로 그렇게 하도록 하지. 아니, 하도록 하죠.”

하대에서 존대로 바꾸며 데우스가 고개를 숙였다.

존경을 표시하는 모습으로 충분했다.

그걸 보며 눈이 찢어질 듯 커진 커진 해월.

“그러면 휴식 후 넘어가도록 하십시다.”

“그러죠.”

데우스는 그렇게 말하곤 근처에 있던 바위에 걸터 앉아 휴식을 취했고, 해월은 어떻게 된 일이냐며 데우스에게 다가가 꼬치꼬치 캐묻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비슈누는 눈을 가늘게 뜨며 둘을 바라봤다.

이거야 원.

“그나마 있던 빈틈도 사라지고 있네.”

“상대하기 더 어려워지는 상대입니다요.”

“그러게 말이다.”

곤란하다는 듯 말하고는 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재미있다는 듯 웃고 있는 현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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