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2부 137화
45장. 추방자의 평원(3)
검은 붓을 휘두르며 먹을 허공에 칠하는 사내가 절벽 위로 그림자처럼 생긴 먹이 돌아오는 걸 보며 싱긋 웃어 보였다.
마치 기다리던 게 왔다는 듯이 말이다.
허공에 붓을 휘두르는 걸 멈춘 사내가 그림자처럼 생긴 먹을 바라보자, 그림자처럼 생긴 먹은 사내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듯 제스처를 취했다.
그림자처럼 보이는 외견과 똑같이 말은 할 수 없었으나, 사내는 무언가를 들은 것처럼 반응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신과 관련된 무언가가 오는구나?”
끄덕끄덕.
그림자 먹이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무언가 또 이야기를 했다.
전해 듣는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하! 신과 관련된 이들이 오는데 그중에서도 유독 신의 냄새가 강한 이들이 있단 말이지?”
끄덕끄덕!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먹을 보며 사내는 흡족하게 웃곤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사내에게로 흡수되는 먹.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먹은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절벽 위에 앉아 풍경을 감상했다.
그리고 혼자 중얼거렸다.
“신의 사도가 오는구나.”
얼마나 기다렸던가.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제 됐다.
신이 온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선계에서 쫓겨나듯 추방당한 자신이 드디어 밖으로 나갈 수 있겠구나.
그리 생각하면서 사내는 웃었다.
걱정되지는 않느냐고?
너무나도 뻔한 이야기고 너무나도 허접한 이야기다.
고작해야 신의 사도다.
“신의 사도 정도의 신성력도 강하긴 하지만 나를 정화할 수준은 아니지.”
하지만 그에 비해 자신은 신선이다.
이곳에 있는 다른 추방자들과 격이 다른 인물.
비록 지금은 추방당하여 타천하였지만, 신의 사도 따위가 범접할 격이 아니란 말이다.
사내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붓을 어깨에 짊어지고 목을 풀었다.
“그러면 미리 술법을 준비해야겠구나.”
술법을 미리 깔아둔다면 보다 더 쉽게 이길 수 있을 테니.
고작해야 신의 사도라고 해도 결코 방심 따윈 하지 않았다.
선계에서 추방당한 후로 누구에게도 방심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했으니까.
술법을 사용하며 각종 함정들을 만들고 있었을 때.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흐음.”
유난히 격한 그림자 먹의 반응.
뭔가 다른 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순간 스쳐 지나갔다.
혹시 신의 사도가 아닌 진짜 신 본인이라면?
하다못해 신의 화신이라면?
후예라든가 말이다.
순간 그런 생각을 했지만,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지. 애초에 신들은 이 대륙에서 모두 추방됐으니. 신이 올 리가 없지. 같은 이유로 화신들도 다 쫓겨났으니까. 기껏해야 사도야. 성녀나 성자는 사도보다도 아래이니 신경 쓸 필요도 없고 말이야.”
철저하게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일리가 있는 걸 넘어서 확실한 말이었으니까.
현재 이 대륙에서 신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은 모두 추방되었다.
심지어 화신체들도 말이다.
그런데 어찌 이곳에 신이 올 수 있으랴.
결코 그럴 일은 없으리라.
혹여나라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같은 어이없는 가정조차 하지 않았다.
일어날 리가 없는 불가능한 일이니까.
“후후후, 나는 그러면 준비나 해야겠다. 벌써 언덕까지 왔으면 상당히 강하다는 거니까. 뭐, 신의 사도가 강할 수밖에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