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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2화 (2/145)

# 2

전조

유성우가 쏟아지고 한 달여가 지났다. 11월의 하늘에 유성 먼지는 더는 없었다. 다만 항상 있었던 공해에 의한 미세먼지만 가득할 뿐이었다.

스산한 회색 구름이 짙게 깔린 채, 제법 차가운 칼바람이 부는 어느 날이었다.

서울 대방동의 한 고시원에서 느지막이 눈을 뜬 이진성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컴퓨터부터 켜고 우툽에 들어갔다. 원시생활을 소재로 한 동영상들을 보기 위해서 였다. 남아도는 시간에 종말에 대해 생각을 하면서 한두 번 보기 시작한 게 어느덧 습관이 되어 마치 공부하듯 매일 찾아보고 있었다.

“물을 걸러도 그다지 깨끗해 보이지 않네. 좀 더 좋은 방법은 없나? 저런 거 먹고 배탈 안 나나?”

“불피워서 숯 만들어서 정수시설(?)에 쓰려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겠다.”

어느덧 한 시가 가까웠다.

“라면이나 끓여 먹을까? 아… 어제저녁도 라면 먹었구나. 두 끼 연속 라면은 그런데…….”

고시원 주방에 가보니 밥은 한솥 가득 있었지만 먹을만한 반찬이 없었다.

“에구… 반찬가게나 가야겠다.”

대충 옷을 걸치고 세수도 하지 않은 채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바람에 절로 움츠러드는 몸을 이끌고 구부정한 모습으로 걷기 시작했다. 반찬가게는 대방역 조금 못 미쳐 반찬가게가 있었다. 버스 두 정거장이지만 돈이 아까워 항상 걸어 다녔다.

터덜터덜 지극히 백수다운 걸음걸이로 가다 보니 사람들이 길을 막고 뭔가를 보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로 비집고 머리를 들이밀었더니 바닥에 죽은 까치와 그 옆에서 날개를 퍼덕이며 사람들을 경계하고 있는 까치가 있었다. 죽은 까치는 뭔가가 파먹었는지 목 밑으로 가슴 부위가 없어진 상태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아… 뭐 재미있는 거라도 있나 했는데 밥맛만 떨어지게 생겼네.”

다시 가던 길 가려고 몸을 빼려는데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저걸 왜 보고 있어. 가자.”

“아니… 저기 퍼덕거리고 있는 까치가 아까 죽은 까치를 파먹고 있었거든. 이상하잖아.”

“아저씨도 봤어요? 저도 봤어요. 까치가 까치 잡아먹고 있더라고요.”

“어… 저도 그런 거 같아서 보고 있는데… 원래 까치가 까치도 먹어요?”

“까치가 육식도 하고 사냥도 한다고 듣긴 했는데 동족을 사냥한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요.”

이진성은 사람들의 말을 듣고 퍼뜩거리고 있는 까치를 자세히 봤다.

“부리에 피 같은 게 묻어 있네요? 눈알이 빨간색이네요? 까치 눈이 빨간색이예요? 아닌 거 같은데…….”

이진성의 말을 들은 사람들도 그러네 하며 웅성댔다. 그러던 중 눈 빨간 까치가 푸드덕 도망갔고 사람들은 구경거리가 사라지자 저마다 자기 갈 길로 흩어져 갔다.

반찬을 산 후, 고시원으로 돌아와 주방에서 떠온 밥에 대충 넣고 비벼서 컴퓨터 앞에 앉은 이진성은 까치에 대해 검색했다.

“어라… 눈은 까만색인데? 아까 그건 뭐냐. 눈병인가? 식성은 잡식성으로 작은 물고기, 곤충, 곡식, 쥐 등 사냥을 하고, 과일도 먹는다… 근데 까치끼리 잡아먹는다는 말은 없는데?”

혹시나 해 <까치 동족 사냥>을 검색해 보니 몇 개의 결과가 나왔다. 이런저런 커뮤니티의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신빙성 낮은 내용이었지만 공통적으로 까치가 까치를 잡아먹는 것을 봤다는 내용이었다. 게시일은 최근 1주일 이내였다.

거기에 달린 댓글 대부분은 말도 안된다며 작성자를 공격하거나 조롱하는 것들이었지만 그중 몇 개의 흥미로운 댓글이 보였다.

“저는 쥐가 쥐 잡아먹는 거 봤어요. 하수구 입구에서 쥐가 쥐를 막 쫓더니 목을 물어 죽이는 거예요. 주변에 이미 죽은 쥐가 서너 마리 더 있었고요.”

“저는 황조롱이가 자기 새끼 잡아먹는 거 봤어요.”

“헐… 저는 참새가 참새 먹고 있는 거 봤는데.”

“에이… 그건 아니다. 참새가 원래 육식하나?”

“참새도 벌레 먹으니까 육식 아님??”

댓글들을 보며 인터넷의 허언 같은 것으로 가볍게 생각했지만, 진짜로 동물들은 미쳐 가고 있었다.

11월의 마지막 주 어느 날. 8시 저녁 뉴스에서는 동물들의 동족 포식 기사가 나오고 있었다. 새, 쥐의 이야기가 아닌 애완 개, 고양이의 이야기였다.

“제가 고양이를 다섯 마리 기르고 있는데요, 퇴근하고 와서 보니까 살찐이가 다른 4마리를 다 죽이고 뜯어 먹고 있지 뭐예요. 얼마나 놀라고 무서웠는지 바로 도망쳐서 아직 집에 못 들어가고 본가에서 지내고 있어요.”

“우리 집에 진돗개와 시츄, 믹스견 총 3마리가 있습니다. 마당에서 살고 있고 자기들끼리 싸운 적도 없이 잘 지내던 애들이에요. 그런데 며칠 전에 너무 조용해서 애들 집에 가 봤더니 사료가 그대로 있는 거예요. 그리고 집 앞에 피가 보이길래 놀라서 집 안을 들여다봤더니 믹스견이 나머지 두 마리를 뜯어 먹고 있어서…….”

이런 식의 인터뷰가 몇 개 더 이어지고, 패널인 동물병원 의사와 생물학자의 인터뷰가 나왔다.

“아…제가 의사 생활 17년 만에 저도 이런 일은 처음 봅니다. 우리 병원에도 다른 고양이를 잡아먹었다는 고양이를 데리고 오신 분이 있었어요. 특별한 이상은 없었습니다. 아주 건강하고 활발한 상태였습니다. 특이점은 눈이 빨간색이라는 것. 유난히 공격성이 강한 편이라는 것이었는데, 주인의 말로는 원래 그러지 않았다고 해요. 그런데 사건이 난 그날 평소보다 좀 길게 자고 일어나더니 눈이 빨갛게 변해 있었고 갑자기 다른 고양이를 공격했다고… 그래서 바로 잡아서 병원으로 데려왔다는 겁니다.”

“야생에서라면 먹이가 극도로 부족하고 오래 굶은 상태에서 동족의 시체를 먹을 수는 있습니다. 또한 쥐들은 그런 상황에서 실제로 다른 쥐들을 잡아 죽이고요. 하지만 그렇지도 않은 상태에서 동족을 사냥한다는 것은 정상적 생태로 볼 수 없어요. 더군다나 개, 고양이의 안구가 갑자기 빨간색으로 변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현재 주인의 동의 하에 그런 샘플을 확보하여 임상시험 중인데 아직은 알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동물들의 동족 포식에 대해 의사와 생물학자의 인터뷰를 마치며 뉴스는 다른 기사로 넘어갔다. 그리고 다시 1주일이 지나면서 동물들의 동족 포식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미국 등에서도 보고되기 시작했고 점점 더 많아졌다. 집에서 애완동물을 기르는 게 불가능한 수준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런 며칠이 지나 오늘의 뉴스에서는 좀 다른 내용이 나왔다.

“동물들의 동족포식은 거의 모든 육식성 동물에서 일어나며, 일부 잡식성 포유류와 조류에서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즉 파충류나 다른 동물류, 곤충에게서는 이런 현상이 아직 보고되지 않고 있으며, 이런 현상은 현재 야생동물에게서 동일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원인이 뭔지 밝혀졌습니까?

“아직입니다. 단지 이런 개체들은 다른 개체에 비해 에너지대사가 월등하게 높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훨씬 힘이 세고 공격성도 증가했습니다.”

“그렇다는 말은… 사람에게도 위험할 수 있다는 말이 되나요?”

“그건 아닙니다. 아직 이런 동물이 사람을 공격한 사례는 없습니다. 또 하나 특이점은 변한 이후로는 오로지 동족만 먹는다는 것입니다. 다만 아직은 연구가 더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럼 앞으로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애완동물이 갑자기 눈이 빨갛게 변하면 즉시 인근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거나, 지자체에 신고 하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동물병원과 지자체에서는 이런 개체를 전부 안락사시키기로 하였습니다.”

그러고 다시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인터넷에서 발견한 어느 유기견 관리소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포스트는 좀 더 자세한 내용을 보여 주고 있었다.

“ 저희 유기견 관리소에 50여 마리 강아지들이 있는데요… 오늘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요.

한 아이가 갑자기 다른 아이를 공격하는데 역시 눈이 빨간색이었어요.

워낙 빨라 잡지도 못하고 다른 아이들을 계속 물어뜯는데 미치겠는 거에요.

그런데 그 난리 통에도 자는 아이들이 한 10마리 있고 신기하게도 그 아이들은 안 물었어요.

나중에 그렇게 자고 있던 아이들이 하나씩 일어났는데 전부 눈이 빨갛더라고요. 그렇게 일어난 아이들이 처음 녀석과 같이 나머지를 뜯어 먹는데 너무 무서워서 도망쳐 나왔어요.

읍사무소에 신고했더니 마취총으로 마취시키고 데리고 가던데 제가 그 사람들 말을 얼핏 들었거든요.

마취약을 소 마취시킬 정도로 써야 개 한 마리 마취 시킬 수 있대요. 그리고 보통개 10마리 안락사시킬 분량을 주사해야 겨우 죽는대요. 이거 뭐죠??”

이진성이 이런 내용을 보고 있을 때 관악산의 숲속에는 뉴스에 나온 적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빨간 눈의 길고양이 10여 마리가 다른 고양이들을 사냥해 뜯어 먹고 있었다. 이미 몇 마리가 먹혀 뼈만 남아 있는데, 그 옆에는 살점만 조금 뜯긴 채 누워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덩치 큰 고양이가 있었다.

놈은 약 한 시간 동안을 경련하더니 돌연 부스스 일어났다. 신기하게도 일어난 놈의 상처는 흉터만 남기고 아물어 있었다. 그리고 그놈의 눈은 검붉은 색으로 변해 있었다.

다른 빨간 눈의 고양이들은 놈이 일어나자 놈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놈은 빨간 눈의 고양이들을 한번 훑어보더니 숲속으로 들어갔고, 빨간 눈의 고양이들은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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