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소장은 연구원과 함께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을 헤치고 뛰듯이 걷고 있었다.
“확실한 건가요?”
“세 번 재확인했습니다.”
속으로 빌어먹을 빌어먹을 되뇌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의 변이가 시작된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동안 ITL은 모든 연구원과 소위 힘 좀 쓴다는 한국의 권력층을 포함하여 약 1,000명의 유전자를 매일매일 확인해 왔다. ITL에 개발한 기술로 아무리 미세하더라도 그 전날과 다른 변화만을 확인하는 것은 매일매일 가능했다. 물론 그 바탕이 되는 최초 유전자 분석에 상당한 시간을 소요한 결과가 바탕이 된 것이었다.
언젠가는 인간의 유전자 변화가 시작될 것임을 확신하고 있던 소장이지만 막상 눈앞에 현실도 다가오자 몸이 떨리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변이된 저들은 인간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실험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며 소리쳤다.
“데이터.”
모니터를 보고 있던 한 연구원이 출력된 서류를 소장에게 건넸다. 서류를 받아든 소장은 선 채로 눈이 빠지라 들여다봤다. 서류를 던지고 모니터 앞에 앉아 일일이 데이터를 확인하고 다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대략 5% 정도의 유전자가 변이를 보인다는 결과였다. 다른 한 사람의 것도 비슷했다. 그동안 동물 실험에서 본 것과 비슷한 결과였다. 동종 내에서 같은 시기에 유전자 변화를 시작한 개체는 그 변화의 차이가 크지 않았고 사람도 역시 사람도 같은 패턴을 보일 것으로 예상하였다.
“지금 이 연구원들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처음 계획대로 마취상태로 독방에 격리 수용 중입니다.”
“휴… 순순히 마취제를 맞던가요?”
“그게… 마이클은 반항하고 탈출을 시도해서… 어쩔 수 없이 보안요원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 과정에 약간의 부상이 있었습니다.”
“보안요원들의 도움을 받았다는 거 보니 꽤 심하게 반항했나 봅니다. 약간의 부상 정도가 아니겠네요. 뭐 그게 지금 중요한 건 아니고……. 변이 완성까지 어느 정도 예상합니까?
“지켜봐야 알겠지만 비비 원숭이의 경우를 참조하려 합니다. 첫 변이 발견 시 약 8%의 변이가 측정되었고 변이 완료까지 거의 4주의 기간이 걸렸습니다. 인간이 비슷한 속도로 간다고 가정하면…….”
모두는 생각에 잠긴 소장의 말을 기다렸다.
“6주에서 7주라는 말이 되겠군요… 알겠습니다. 일들 보세요.”
실험실에 나온 소장은 천천히 걸었다. 지금 두 명의 케이스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단지 사람의 변이를 확인했다는 것 하나였다. 지금 전 세계에 알려야 하느냐, 아니면 뭔가 더 데이터가 나온 뒤에 해야 하느냐를 고민하던 소장은 그 결정을 행정가에게 맡기기로 하고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 내의 사람들은 소장이 돌아오자마자 무슨 일인지 따져 묻기 시작했다. 그들을 말없이 쳐다보던 소장은 자신의 자리에 가서 앉아 이마를 짚고 생각을 정리하다 서서히 말을 꺼냈다.
“여러분은 각국의 대표로 이 자리에 참석하셨습니다. 맞습니까?”
소장의 뜬금없는 질문에 갑자기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나 싶어, 모두 입을 닫고 소장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여러분이 어느 정도의 권한을 가진 분들인지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최고 권력자의 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분들이기를 바랍니다.”
분위기는 가라앉다 못해 심각해 지고 있었다.
“방금 우리 연구원 중 두 명의 유전자 변이가 확인되었습니다. 인간 변이가 시작되었다는 말입니다. 저희는 이곳에 있는 연구원 237명, 보조 인원 85명과 한국의 유력인사 포함 전부 약 1,000명의 유전자를 매일 검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최초 유전자 변형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단 2명이라는 숫자가 많지는 않아 보이지만 이건 시작입니다. 이제 인간도 다른 동물들과 같이 변이를 진행해 나가겠죠.”
잠깐 물을 마시고 모니터 속의 심각한 얼굴들을 돌아보았다.
“지금도 지구상 어딘가에서, 많든 적든 인간의 유전자 변형이 진행 중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아마도 이 자리에 앉아 계신 여러분 중에서도 누군가는 진행 중일 수도 있고요.”
사람들이 질문하려고 하자 소장은 손을 들어 제지하고 말을 이어 갔다.
“우리가 동물에서 보아 왔듯이 어디의 누가 변이체가 될지 모릅니다. 그냥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주위의 누가 빨간눈을 뜨고 옆의 사람을 잡아먹을 겁니다.”
웅성거림 속에서 몇몇은 질문을 하고 있지만, 소장은 모두 무시하고 자기 할 말만 계속했다.
“인간 변이는 약 6~7주 예상합니다. 3월 중순이면 인간 변이체들이 완성되어 쏟아져 나올 겁니다. 지켜봐야 알겠지만 큰 차이는 없을 겁니다. 여러분은 각자의 나라에서 이에 대해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모니터 속에서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둘러보고 침통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사실 어떤 대책이 있을지 저로서는 알 수가 없네요. 어떤 대책을 세우든 그것은 여러분 같은 행정가 또는 정치가들이 알아서 할 일이고, 저는 단지 과학자로서 현상만을 정확하게 알려 드리는 것입니다.”
소장은 변이체라고 지칭하면서 이미 인간이 아닌 존재로 인식하는 듯 말했다. 소장의 목소리가 점점 잠기자 사람들은 분위기에 압도되어 다시 침묵하기 시작했다. 가라앉은 분위기에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침묵의 시간이 10여 분 정도 지난 후, 어느 한 나라의 대표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여기서 했듯이 모든 사람의 유전자를 매일 검사할 수는 없습니까?”
소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여긴 매일 3만의 동물과 1,000명 정도의 유전자를 검사해서 완벽하게 미세한 변이라도 확인할 수 있긴 합니다. 하지만 지구의 인구가 몇인가요? 얼마나 방대한 시설이 필요할까요? 그리고 저희가 매일 검사할 수 있었던 것은 초기에 많은 시간을 들여 모든 샘플의 게놈분석을 완전하게 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다음 부터는 변이가 발생하면 특정 반응을 일으키게 하는 방법을 통해 변이를 확인하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 시킨거죠. 아직 이 기술은 이곳 연구소만 가지고 있습니다. 기술을 나눈다 해도 시간과 시설이 부족합니다.”
사람들을 둘러본 소장이 한 가지를 요청했다.
“지금 당장 이것만 결정해 주세요. 인간 변이가 시작되었음을 발표할 것인가? 말 것인가?”
지루한 말다툼 끝에 인간 변이는 좀 더 시간을 가지고 발표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 결정을 듣고 자리에서 힘없이 일어난 소장은 조용히 말했다
“어서 종말을 준비하세요. 진짜 종말은 이제 다시 시작하는 겁니다.”
* * *
3월이 되었다. 은둔형외톨이 백수 이진성은 오늘도 인터넷을 뒤지고 있었다.
지난 기간 동안 거의 방안에서 나가지도 않고 인터넷만 해온 이진성의 눈은 퀭했고 배는 볼록 나와 있었다. 매일매일의 루틴은 우툽의 원시생활방법 영상보기, ITL의 새로운 정보 확인, 재난극복 카페 순방, 그리고 국내외 뉴스와 해외사이트 검색이었다.
소행성 위협 때 보기 시작한 우툽의 원시생활방법 영상은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뇌리에 박혔다. ITL의 발표 내용은 거의 외우고 있었다. 과거 인터넷 커뮤니티의 유머를 보며 키득거리고 보내던 시간을 지금은 재난극복 카페의 팁들을 보면서 보내고 있었다.
직접 몸으로 해 본 것은 단 하나도 없지만, 이론만큼은 차곡차곡 머릿속에 넣어 놓고 보는 것이었다.
또한 변이 동물에 대한 소식도 빠지지 않고 찾아봤다. 인터넷에는 믿거나 말거나 소식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온종일 그 짓만 하고 있으니 거의 준전문가 수준이라 할 수 있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영어로 된 외국 사이트까지 뒤져가며 외국의 변이체 정보에서 뭐라도 새로운 것이 있나 종일 찾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동물들이 잠이 많아지고 육식이 늘어나며 배변량이 줄어드는 것을 거친 후 변이체가 된다는 내용을 ITL이 확인해 준 것은 이미 한참 전의 일이다.
ITL이 인간변이에 대해 발표를 안 하고 있지만, 이진성은 결국 자신도 변하고 있다고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자도 자도 피곤하고 잠은 점점 늘어났다. 백수 주제에 여섯 시간 정도밖에 자지 않던 그가 요즘은 일곱 여덟시간을 자고 있었다. 점점 육류 반찬의 비중이 늘고 있었고, 배변은 확실히 줄었다. 요즘은 2~3일에 한 번 대변을 봐도 불편하지 않았다. 한 번 볼 때의 양도 줄었다.
변이체와 상관없이 그럴 수도 있다. 과거에도 간혹 이유 없이 피곤하기도 했다. 입맛은 변하기도 하는 거고 변비가 온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진성은 불안했다. 자신의 몸의 변화가 유전자 변형에 의한 것인지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 자신이 변한다면 70% 이내에서 멈추고 변이하지 않는 쪽이 될 것인지, 빨간눈이 될지, 그것도 아니면 검붉눈의 후보가 되었다가 어느 날 놈들에게 물려 저들의 하나가 되어 사람들을 잡아먹게 될지가 궁금했다.
“아… 씨… 인간은 변한다는 거야 아니란 거야? 왜 인간에 대한 연구발표는 하나도 없는 거야? 이것들이 혹시 인간이 변한다고 하면 난리 날까 일부러 발표 안 하는 거 아니야?”
밀려오는 의심을 떨쳐 버릴 수는 없었지만, 고시원 골방에서 오로지 인터넷만 보고 있는 이진성이 알 방법은 없었다.
“씨발… 내가 혹시라도 최초의 인간변이체가 되는 거 아냐? 막 사람들 잡아먹고 그러면 좆되는 건데… 그럼 울 엄마 기절하는 거 아닌지 몰라. 아닌가? 워낙 씩씩한 분이라 그러거나 말거나 하려나?”
자기 자신이 변이체가 되는 것에 대한 공포보다는 그렇게 됐을 때, 안산에 혼자 사시는 어머니는 어쩌나 하는 걱정이 더 큰 이진성이었다.
인터넷에 자신과 같은 변화를 겪는 사람들이 있는지 매일 뒤지고 또 뒤졌다. 비슷한 증상을 올리는 사람들이 간혹 있기는 있었다. 주로 다이어트 또는 피트니스 관련된 곳의 글이었다. 그곳의 글에서는 그들이 정상상태인지 아닌지 알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이진성은 ITL에서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는 발표를 하기만을 희망하며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이진성은 점점 잠이 늘어 이제는 하루 10시간은 자야 했다. 채소 반찬은 먹어도 먹은 것 같지도 않았다. 최소한 소시지라도 먹어야 했다. 없는 돈에 치킨도 많이도 시켜 먹었다. 달걀로 해결해보려 했지만 별 도움이 안 됐다. 참치통조림도 별 도움이 안 됐다.
그렇게 불안한 나날을 보내던 그에게 드디어 인간변이체로 보이는 한 포스트가 발견되었다.
한국의 여의도에서 발생한 사건이었다. 대방동에서 버스로 세 정거장밖에 되지 않는 곳이었다.
그 제목은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었어요>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