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인간변이체 KR-Seoul-0001
2월 중순 서울 여의도의 한 사무실. 점심 후 커피 한잔을 하며 직원들은 잡담 중이었다.
“동수 씨 몸이 계속 안 좋아?”
“그냥저냥 그렇습니다. 과장님. 계속 피곤하고 졸리고 그래서 그렇지 딱히 이상은 없습니다.”
요즘 계속 피곤한 김동수는 과장의 걱정에 괜찮다고 했지만 사실 괜찮지 않았다. 병원에 가 봐도 특별한 이상은 나오지 않았는데 날이 갈수록 점점 더 피곤해지고, 자도 자도 계속 졸렸다.
의사가 운동하라고 권해서 시작한 피트니스를 하면서 그나마 피곤함이 좀 덜한 것 같지만 역시나 정상은 아니었다.
며칠이 지났다. 과장은 계속 힘들어 보이는 김동수를 휴게실로 불렀다.
“동수 씨, 어째 몸이 더 안 좋아 보여?”
“아니예요 과장님. 저 요즘 피트니스에서 드는 웨이트가 팍팍 늘어나고 있어요. 거기 트레이너도 놀랄 정도예요.”
“그래? 그럼 너무 운동 많이 해서 그러나? 얼굴이 영 말이 아니야.”
“저도 거울 보면 그렇긴 한데… 졸린 거 말고는 딱히 이상한 거 없어요. 몸도 가벼워졌고요. 근데 왜 이렇게 졸린 지 모르겠네요.”
“점심 먹고 저쪽에 수면 카페 가 보자. 출근길에 맨날 전단 돌리더라. 별게 다 생겼다 싶었는데, 나도 어제 술 좀 마셔서 좀 피곤하네. 같이 가자.”
안 그래도 오가며 눈에 들어오던 수면 카페였는데 과장이 먼저 가자고 하는데 안 갈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한번 가본 그들은 거의 매일 점심에 수면 카페에 가서 한 시간씩 자고 오기 시작했다.
그런 며칠이 지나 2월 28일이 되었다.
오늘도 김동수는 과장과 함께 점심 먹고 수면 카페에 왔다. 제일 구석진 두 자리를 받아서 자리에 들자마자 잠이 들었다가 이제 막 깨는데 머리가 너무 아팠다.
누군가 몸을 흔들며 일어나라고 하는 것 같은데 정확하게 잘 안 들렸다.
억지로 눈을 뜨니 세상이 빨갛게 보였다.
코로는 고소한 향기가 훅 들어왔다. 갑자기 입에 침이 고이고 몸에 힘이 들어갔다.
빨라지는 심장 박동과 함께 얼굴이 달아오르고 근육이 탄탄해지는 느낌이었다.
앞을 보았다. 사람이 보였다. 식욕을 자극하는 고소한 냄새가 더욱 강해졌다.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앞의 사람에게 달려들어 두 팔로 몸통을 조이고 목을 한입 크게 물어뜯었다.
목이 뜯긴 사람이 소리 지르고 버둥대는 것 같아서 팔에 더욱 힘을 줬다.
입안에 가득한 고기를 씹지도 않고 삼키고서 한 입 더 뜯었다.
뿜어져 나오는 피가 얼굴을 적셨다. 안 그래도 붉은 세상이 더욱 붉게 보였다.
주위에서 사람 소리가 많이 났다. 잡혀있던 사람은 경련을 시작했다. 팔을 풀고 앞으로 밀어 넘어뜨렸다. 넘어진 몸뚱이 위에 올라 거추장스러운 천 조각을 잡아 뜯어 버렸다. 쉽게 찢어졌다. 천 조각 안에서 나온 살덩어리가 더욱 맛있어 보였다.
배에 손을 꽂아 넣었다. 퍽 소리와 함께 가죽이 찢어졌다. 손으로 헤쳐 벌리자 쭉 찢어져 나갔다. 눈앞에 따끈따끈한 내장이 보인다. 내장을 꺼내자 간도 보였다.
본능적으로 어느 부위가 맛있는지 알 수 있었다. 간과 위장, 그리고 소장까지 먹고 나니 먹이의 경련은 완전히 멈춰 있었다.
허벅지에 두툼한 살이 보였다.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살덩이를 씹으며 주위를 보니 다른 인간은 보이지 않았다. 방해 없이 혼자 조용히 포식할 수 있게 됐다.
다리를 다 뜯어 먹고 팔의 살을 뜯어 먹는 중 갑자기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먹던 고기 위에 엎어져 버렸다.
* * *
2월 28일 서울 13:38, 112 관제센터
장난 전화로 추정되는 신고가 하나 왔다. 굉장히 다급한 목소리. 사람이 사람을 뜯어 먹고 있다고 했다.
관제 요원은 항상 하듯 침착한 목소리로 신고자 인적사항을 묻는데, 이 장난 전화는 너무나 패닉에 빠진 연기를 잘했다.
짜증이 나려 했지만 짜증 낼 수는 없다. 다시 질문했지만 계속해서 사람이 사람을 뜯어 먹는다. 여의도 여의도만 외치고 있었다.
다른 관제 요원도 비슷한 전화를 받기 시작했다. 입으로 살인을 했다는 둥, 갑자기 싸우다 한 사람의 목이 찢어져서 죽었다는 둥.
관제센터는 인근 파출소에 출동 명령을 내리고, 살인사건 접수로 처리한 후, 걸려오는 동일신고에는 출동 중이라고 안내했다.
* * *
2월 28일 서울 13:47, 여의도 지구대
나는 첫 근무지로 이곳에 배속받은 지 채 1년도 안 되는 순경으로 이제 겨우 업무에 익숙해 지고 있는 참이었다.
출동명령이 내려왔다. 살인사건이란다. 한 명의 순경과 한 명의 경장과 함께 셋이 출동했다.
수면 카페에 도착한 우리 셋은 테이저건을 뽑아 들고 도망쳐 나온 사람들을 뚫고 들어갔다.
가게 알바라는 사람이 문을 붙잡고서 벌벌 떨고 있었다. 범인은 들어가서 제일 안쪽의 오른쪽 구석에 있다고 알려줬다.
현장은 처참했다. 흥건한 피 위에 다 찢어지고 뭉텅뭉텅 살이 파인 시체가 보였다.
범인은 그 시체 위에 엎어져 미동도 안 하고 있었다.
지원 요청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강력반이 와야 할 거 같았다. 하얗게 질린 경장님에게 ‘지원’이라고 뻐끔거렸다.
경장님도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떡이더니 후방으로 손짓을 했다. 나가자는 말이었다.
조심조심 뒷걸음쳤다. 다리가 떨렸다. 들어올 때도 긴장하고 들어왔지만, 나가는 지금의 긴장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행히 문을 열고 나올 때까지 미친놈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와 선임 순경은 가게 알바와 함께 문을 잡고 버텼고 경장님은 무전으로 지원요청을 했다.
1분이 한 시간 같다. 10여 분 만에 지원이 도착했는데 그 시간이 10년 같았다.
여덟 명이 내려왔다. 그중 네 명은 강력반 형사였다. 그들에게 상황설명을 하고 전부 테이저건이나 3단봉을 들고 다시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11명의 인원이 도주 가능한 모든 곳을 막았다. 강력반 형사 한 명이 삼단봉으로 조심스럽게 범인을 슬쩍 찔러보고 반응이 없자 또 한 번 찔러보려 했다.
가만히 기절한 듯 엎어져 있는 놈, 그냥 수갑 채우면 좋겠는데 왜 깨우려고 저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테이저건 한 방 쏘자. 규정은 개나 주라고 해라. 저런 흉악한 미친놈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데 규정은 개뿔.’
강력반 형사가 다시 한번 슬쩍 찔러보고 뒤로 살짝 물러났을 때, 테이저건 한 방을 쏴 버렸다. 열 명의 눈이 전부 나한테 쏠렸다.
‘아, 어쩌라고… 확실한 게 좋잖아.’
미친놈을 쳐다보면서 조심스럽게 수갑을 꺼냈다.
테이저건을 맞은 미친놈이 약간의 경련을 하더니 오히려 서서히 몸을 일으키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미친… 저렇게 움직이면 안 되는 거 아냐? 저럼 안 되는 거잖아.’
누군가 드디어 침묵을 깨고 한마디 했다.
“씨발… 저 시키 눈깔이 우리 집 개처럼 새빨갛게 변했네…….”
* * *
‘머리가 깨질 거 같아.’
다시 의식이 돌아온 김동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귀는 윙윙거리고 눈은 천근만근이었다. 몸의 감각도 없고 힘이 들어가지도 않았다. 몽롱한 채로 생각이 잘 이어지지도 않았다.
세상은 온통 붉은색이었다. 머리도 너무 아팠다.
뭔가 주위에서 계속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고 사람들이 소리치고 있는 것 같지만 그저 멍할 뿐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조금씩 소리가 선명해지고, 붉은색 세상은 그대로지만 시야가 맑아졌다.
움직임이 마음대로 되는 것 같고 촉감도 느껴지기 시작했다. 머리도 좀 맑아지는 것 같았다
앞을 보니 경찰 복장의 사람들이 둘러싸고 뭐라고 계속 소리를 지르며 손에는 뭔가를 들고 날 겨누고 있었다.
“으어어어~”
‘뭐지? 왜 입이 굳은 거 같지?’
“으어어어~”
소리가 이상하게 나오자 김동수는 당황했다. 그 소리를 들은 경찰은 더 부산하게 움직였다.
‘뭐야? 무슨 일인 거야?’
손을 들어 말리려 했다. 눈앞으로 들려진 손에는 뭔가가 잔뜩 묻어 있었다. 진한 붉은 색의 액체였다.
세상이 온통 붉은색으로 보이는 중에도 손에 묻은 것은 선명한 붉은 색으로 보였다.
순간 강하게 코로 들어오는 피 냄새. 그리고 갑자기 솟구치는 강한 식욕과 흥분.
옆에서도 강한 피 냄새가 났다. 고개를 돌려 봤다. 김동수가 정신을 잃기 전 잡아먹었던 과장이 보였지만, 김동수는 그게 과장인지 기억이 안 났다.
‘고깃덩이인가?’
목이 뜯겨있고 배는 갈라져서 내장이 튀어나왔고, 팔다리는 뼈가 보일 정도로 살이 뜯겨 나갔다. 난생처음 보는 시체다. 그런데도 놀랍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아무 감정 자체가 없었다. 오히려 드는 것은 강한 식욕.
김동수가 다시 앞을 보고 한 발 앞으로 내디뎠다. 경찰들이 뭐라고 소리치며 일제히 한발 뒤로 물러났다.
몸을 움직이니 이미 한 번 테이저건을 맞았는지 전선들이 거치적거렸다.
다시 한 발 내딛자 3명이 테이저건을 발사했다. 좀 저릿저릿할 뿐이었다. 몸은 마비되는 듯했지만 저릿한 느낌은 견딜 만했다.
앞에서는 뭐라고 계속 소리를 질러댔다.
‘그만 좀 조용히 해라.’
짜증이 솟구쳐 올랐다. 다 죽여야겠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슬슬 몸이 다시 움직였다. 몸을 가만히 움츠렸다. 경찰들이 안심하는 표정이 됐다. 쪼그려 앉았다. 확실히 경찰들의 긴장이 풀어지는 게 느껴졌다.
오른쪽에 있던 한 사람이 한발 앞으로 나오며 수갑을 앞으로 꺼내는 김동수의 눈에 들어왔다.
‘그래… 니 목을 물어뜯어 주마.’
경찰은 세 걸음 거리로 다가왔다. 한발을 더 내딛는 순간이 공격할 순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몸을 바짝 긴장시키고 기다렸다.
마침내 경찰의 발이 들리고 중심이 움직이는 바로 그때를 맞춰 김동수는 웅크렸던 몸을 쏘아냈다.
김동수가 목을 한번 뜯어내고 다른 경찰들을 돌아보는 순간, 갑자기 그의 의식이 마치 깊고 어두운 물에 빠져들듯 흐려지며 다시 기절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