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8화 (8/145)

# 8

밤 9시를 몇 분 지나고 있었다.

크르렁… 캬악… 크아악… 그리고 벽을 쿵쿵 두드리는 소리는 의심할 나위 없이 좀비였다.

“뭐 이런 개 같은… 이 쪼끄만 고시원에 나 말고 또 변해가는 인간이 있었어? 그것도 나보다 빨리?”

남을 위해 자기가 변하면 스스로 방안에 가둘 생각도 하던 이진성은 헛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어느 방이냐…….”

이 고시원은 총 3개 층을 쓰고 한 층에 13~14개의 방이 있었다. 이진성의 방 포함하여 우측으로 여덟 개가 남북으로 네 개씩 마주 보고 있었고, 좌측으로 현관을 넘어 여섯 개가 세 개씩 마주 보고 있는 구조였다.

소리는 이진성이 있는 5층에서 나고 있었다. 문을 열고 확인해 볼까 생각도 들었지만 무서웠다. 갑자기 놈이 또는 년이 튀어나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나가볼 엄두가 안 났다.

다른 사람들이 나와 보거나 다른 층에서 와 보거나 하지는 않을까 싶어 문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듣고 있었다.

한 30분 지나자 좀비가 내는 소리는 잦아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동안 다른 사람의 기척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간헐적으로 한 번씩 쿵쿵거리는 것으로 봐서 아직 방에서 나오지는 못한 것으로 보였다.

문득 고시원 벽이 엄청 약한데 뚫고 나오는 거 아닌가 생각도 들었지만, 다행히 점점 소리는 작아졌다.

“아으… 살 떨려.”

문고리를 꽉 잡고 문을 아주 살짝 열고 소리에 귀 기울였다. 나와보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고개를 살며시 빼고 봤지만 모든 방문은 닫혀 있고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몇 개 방 앞에 슬리퍼가 있는 거 보니 아마도 저들도 방 안에서 눈치를 보고 있겠구나 생각됐다.

쿵 쿵 소리는 오른쪽에서 나고 있었다.

‘가볼까… 말까…….’

어느 방인지 알아야 할 것 같았다. 알아서 뭘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발이 슬쩍 움직였다. 용기 그런 건 아니었다. 왠지 모를 이끌림 같은 것이었다. 오른쪽 첫 번째는 아니다. 소리가 더 멀다.

쿵… 쿵 쿵…쿠웅~

아까보다는 작지만, 다시 들리는 소리. 복도 건너편 제일 끝방 같다. 소리가 날까 봐 맨발로 최대한 천천히 다가갔다. 혹시 몰라 끝에서 두 번째 방 앞에서 잠시 서서 소리를 기다렸고 결국 끝방에서 그르렁거리는 소리로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풍겨오는 시큼한 냄새.

‘뭔 냄새야 이건… 이 새끼 그동안 안 씻고 방 안에 있었던 건가? 아닌데… 안 씻은 냄새랑은 다른데… 좀비가 되면 냄새가 나나? 여태 인터넷이랑 방송에서 그런 말은 없었는데… 요즘 내가 후각이 예민해진 거 같은데 그래서 그런가?’

못 맡던 냄새에 의아해하며 조심조심 뒷걸음질로 방으로 돌아와 문을 최대한 살며시 닫고 잠갔다. 쌀쌀맞다 해도 과언이 아닌 3월의 밤인데도 그 잠깐 사이에 흘린 땀으로 등이 축축했다.

‘저놈이 방 안에서 못 나오고 있기만 하면 문제는 없지만 나온다면? 그리고 건물 밖으로 안 나가고 여기 계속 있다면?

나도 방에서 못 나간다. 화장실도 못 가고 부엌도 못 가고 지금부터 비축해 놓은 식량을 까먹어야 하고 용변을 방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이건 안돼… 어떻게든 저놈을 밖으로 내보내거나 방에서 못 나오게 만들어야 해.

저놈이 문 여는 법을 알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지. 그랬다면 벌써 열고 나왔겠지. 근데 문이 잠겨 있을까? 지랄하다가 문손잡이가 우연히라도 내려가면 문이 열릴 수 있는데…….’

이진성의 침대 위는 식량과 생수가 점령한 지 이미 오래였다. 침대 옆의 사람 하나 겨우 누일 좁은 바닥에 쪼그려 앉아 긴장 속에서 바깥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중에 5층에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저 사람에게 말해야 하나 어쩌나 망설이던 그 짧은 순간에 그 사람은 복도를 걸어 오른쪽으로 가고 있었다. 안된다는 생각에 문을 열고 가지 말라고, 가면 안 된다고 말하려는 그 순간, 문 열리는 소리와 바로 이어지는 문 닫히는 소리, 그리고 철컥하고 문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끝방 좀비는 다시 벽을 치며 목 긁는 소리를 냈다. 여기까지는 아직 문제가 아니었지만 조금 전 들어온 사람이 바로 그 좀비 놈의 옆방이란 것이 문제였다. 아마도 그 사람은 참을성이 많지는 않은 타입이었나 보다.

계속도 아니고 몇 분에 한 번씩 쿵 쿵 대는 소리, 그리고 마치 개가 위협할 때 내는 소리 같은 그르르르 소리에 참지 못하고 그 사람은 옆방과 자기 방을 나누고 있는 벽을 쾅쾅 두드렸다.

고시원에서 일반적으로 옆방에서 벽을 두드린다는 것은, 당신이 내는 소음을 참다 참다 더 못 참겠으니 제발 조용히 해 달라는 강력한 의사 표시였다. 간혹 이것 때문에 싸움이 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조용히 했다.

하지만 그건 사람 사이에나 해당하는 얘기였고 끝방 좀비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벽을 두드리는 소리에 오히려 더욱 크게 반응했다. 개가 그러렁 대던 것 같던 소리가 곰이 크엉 내지르는 소리 같아졌다. 쿵 쿵 대던 소리는 쾅쾅쾅으로 변했다.

사람이 뭐라고 고함치는 소리가 이진성에게 들렸지만, 좀비 놈의 소리에 묻혀 선명하지 않았다.

결국 콰쾅 우지직 소리와 함께 벽이 깨지는 소리, 거기에 따라 오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좀비 놈이 벽을 뚫은 것이었다.

동시에 5층의 방문이 일제히 열리며 아까부터 숨죽이고 상황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튀어나왔다. 한 사람이 죽어가며 내는 비명과 도망치는 사람들의 비명이 뒤섞였고 조용하던 고시원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이런 큰 소란은 끝방 좀비를 더욱 날뛰게 했고 도망치는 사람들이 막 1층으로 내려서던 그 시점에 결국 고시원의 허술한 석고보드를 뚫고 복도로 나와 버렸다.

이진성은 방 안에서 이 모든 소리를 듣고 있었다. 도망칠 용기도 없었고 애초에 도망갈 생각도 없었다. 끝방 좀비가 복도로 나오는 순간 어서 사람들을 쫓아가 주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저놈이 나가야 내가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끝방 놈은 이진성의 기도를 들어줄 친절한 놈이 아니었는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자기가 뚫고 나왔던 벽을 통해 들어가 하던 식사를 계속했다.

흘러나온 피는 좁은 방에 흥건했다. 그리고 허술한 고시원 방문의 틈은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막지 못해 복도로 스멀스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전화를 들어 112를 눌렀다. 이제는 신고해서 경찰이든 군인이든 와서 저놈을 처리해 줘야 했다. 전화 속의 그 목소리 좋은 아가씨가 통화량이 많아 연결이 되지 않고 있다고 친절하게 말해 주고 전화를 뚝 끊어 버렸다. 당연하게도 오늘 종일 이동통신사는 트래픽 과부하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아까 낮에 몇 번의 시도 끝에 엄마에게 겨우 전화했던 것도 다행이었다.

전화는 포기했다. 경찰이나 군인이 올 때까지 조용히 방에서 나가지만 않으면 된다고 애써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도망간 누군가가 신고했겠기를 바랐다. 그리고 문에 귀를 붙이고 바깥소리에 집중했다.

방 안에 있는데도 신경을 집중해서 그런지 좀비 놈의 시큼한 냄새가 풍겨왔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시간이 지났다. 문에 귀를 붙이고 있어서 목이 아팠다, 처음 한 시간 동안 6층에서 사람들이 내려가는 소리도 간간이 들렸다. 아마도 누군가 5층 상황을 염탐하고 6층에 전했고, 도망친 것 같았다. 4층 사람들도 도망쳤을 확률이 높았다.

이진성은 이제 이 고시원에 좀비와 자신만 남은 것 같았다.

‘저놈만 처리되면 이 건물이 내껀데….’

철없는 생각을 하며 군경을 기다렸지만, 길거리에 지나가는 경찰의 사이렌 소리만 가끔 날 뿐, 결국 날이 새도록 아무도 오지 않았다.

찢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비명에 이진성은 화들짝 놀라 부르르 떨며 잠에서 깼다. 어느새 문에 붙어 쪼그려 앉은 채로 간밤에 까무룩 잠이 들어 버렸던 것이다.

이미 날은 밝았고 밖은 비명에 자동차 경적으로 시끄러웠다. 급히 핸드폰을 보니 이미 오후 2시가 넘었다. 문에 귀를 기울여도 끝방 좀비의 기척은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놈이 아직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냄새가 어제보다 심했다.

“통화량이 많아…….”

이진성이 어머니에게 전화했지만 역시 똑같은 멘트만 나올 뿐이었고 112도 역시나였다.

놈은 바깥 소음에도 불구하고 조용했다. 잠을 자고 있는 걸까? 아니면 아직 먹을 게 남아 있나? 하긴 성인 남성 하나를 하루에 다 먹기는 힘들 것이다.

몸을 일으키니 온몸이 삐걱댔다. 밤새 쪼그려 있었으니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창밖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조금 전의 비명으로 보아 근처 어디서 누군가 물어 뜯겼을 것이다. 대로가 바로 보이는 덕에 그나마 상황파악 하기에 편해서 다행이었다.

책상에 앉아 TV를 켰다. 어느덧 간밤에 계엄령이 다시 내렸다고 나오고 있었다. 군과 경찰이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는 긴급 특별방송의 앵커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군과 경찰의 통제에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현재 각 관공서에는 군과 경찰이 비상출동대기 중이며 상황 발생 지역에 긴급 출동할 것입니다.

…·

계속 방송에 귀 기울여 주시길 바라며…….

…….

주위에 잠들어 있는 사람이 있으면 절대 가까이 가지 마시고 안전한 장소에서 지켜 보고 계시다가…….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깨어 있는 사람들끼리는 안심하셔도 됩니다. 갑자기 잠든 사람이 있다면 가능한 한 신속히 그 사람은 격리하고 관공서에 신고…….”

주위에 잠든 사람만 피하면 된다는 방송을 믿은 사람들이 용감한 것인지, 사명감이 투철한 것인지, 아니면 무식한 건지 알 수 없지만 저마다 어떤 이유로 출근을 했다. 특히 방송사는 군의 집중 보호 대상이라는 것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이 출근해서 방송을 이어가고 있었다.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아직은 방송이 되고 있었고, 방송에서는 이 상황이 조만간 진정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늘어놓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새로운 변이체의 발생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날이 저물 때까지 전국의 집계된 변이체만 1만을 넘겼다. 집계 안 된 변이체는 최소한 5만을 넘을 것으로 정부는 추정했다.

“후… 어차피 군경이 모든 상황에 대처하는 건 불가능해.

언제 어디서 어떻게 갑자기 튀어나올지도 모르고 통신도 안되는 이 마당에 상황 발생 후 다 죽고 나서 출동이라도 하면 다행이지.

방송은 언제까지 되려나? 방송국 놈들도 결국은 도망가고 말텐데.

일단은 저 옆방 놈이 나갈 때까지는 방안에서 버티자. 식량은 내가 더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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