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위험한 동거
3월 19일.
다시 날이 밝았다. 이진성이 끝방 좀비와 같은 공간에서 동거 아닌 동거를 시작한 지 3일째다.
지난밤은 6시간 정도밖에 자지 않았다. 한참 전부터 점점 잠이 늘어 얼마 전부터는 하루에 12시간가량을 자야 했었는데 갑자기 이전 상태로 돌아간 것 같다. 지금은 별다른 피로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저놈 때문에 긴장해서 피곤을 못 느끼는 건가?’
달라진 것은 수면과 피로 상태뿐만이 아니었다. 생라면과 생쌀만 먹고도 고기에 대한 갈증이 없었다. 어제만 해도 종일 고기 먹고 싶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는데, 오늘 일어나고서는 고기에 대한 갈증이 아직 없었다.
몸이 갑자기 다시 정상이 된 것 같지만 그럴 리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여전히 민감한 후각이 다시 정상이 된 것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이진성은 오늘도 저 끝방 놈의 시큼한 냄새를 지독하게 맡을 수 있었다.
“하… 왜 안 나가는 거야. 씨발. 저놈은 배 안 고픈가? 위험한 건 둘째 치고, 냄새 때문에 못 살겠네.”
뭔가 방법을 찾아야 했다. 식량과 배설은 당장 큰 문제가 아니었다. 이대로 여기에 감금 아닌 감금 상태로 있으면 바깥의 변화를 정확하게 알 수도 없고. 또 살 기회가 와도 잡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답답했다. 이 건물에서 당장 안 나간다 해도 최소한 복도는 자유롭게 다니고 싶었다.
조심스럽게 문손잡이를 내렸다.
끼리~리~릭
평소에 들리지도 않던 문손잡이 돌아가는 소리가 이렇게 크게 느껴질 것이라곤 생각 못 했다. 다시 손잡이를 올리지도 못하고 그대로 얼어버렸다. 진땀을 흘리며 몇 초인지 모를 시간을 침을 꿀떡 삼키며 보내는 동안 만감이 교체했다.
끝방 놈은 여전히 조용했다. 문을 살며시 밀었다. 약 5㎝의 틈으로 밖을 보았지만, 끝방까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놈의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았기에 조금 더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그놈의 먹이가 되어, 이제는 그놈의 뱃속에서 소화가 되고 있을지 모를 사람이 살던 방 앞에는 검게 굳어 버린 핏자국이 선명했다.
나머지 방문들은 다 열려 있었다. 5층 입구 철문도 활짝 열린 상태였다.
왼쪽으로는 현관문 너머 화장실이 보이고 그 너머는 구조상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쪽에서 특별한 냄새가 나지도 않았다. 아무도 없는 것으로 가정하기로 했다.
일단 복도 상황을 확인하고 다시 방문을 천천히 닫았다.
“하…. 씨발… 심장 터지는 줄 알았네.”
혼잣말을 한숨과 함께 뱉으며 생각했다.
‘나가서 인기척 내면 튀어나오긴 하겠지… 그다음에 어쩌지? 1층까지 어떻게든 유인해야 하는데….’
각 층의 비상 탈출구는 끝방 옆에 있다. 비상 탈출구 밖에는 완강기가 설치된 베란다 공간이 있다.
평소에는 빨래를 널어놓는 곳으로 주로 쓰인다. 비상 탈출구 역시 철문이니까 탈출구 밖으로 내보내고 문을 닫아버릴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1층까지 유인해서 건물 밖으로 내보내야 했다.
‘생각해라 생각해. 내가 1층에 내려가야 유인할 수 있다. 하지만 저놈이 얼마나 빠른지 모르는 상태에서 5층에서부터 유인할 수는 없다. 안전을 확보한 상태에서 1층으로 내려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4층 완강기를 이용해서 1층으로 내려갈까? 내가 여기서 나가서 인기척을 낸다. 저놈이 나온다. 4층으로 뛴다.
계단까지는 저놈에게 잡히지 않을 자신이 있다. 계단에서 잡히지만 않으면 4층으로 튀어 들어가 4층 문을 닫는다.
놈은 4층에서 서성인다. 4층 비상 탈출구로 가서 완강기를 타고 1층을 내려간다.
1층은 팔로티 구조의 주차장이다. 1층에서 계단으로 2층쯤 올라와 소리를 내서 놈을 유인한다.
놈이 오면 다시 완강기 줄을 타고 올라온다.’
여기까지 생각한 이진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신이 완강기 줄을 타고 올라올 수 있을 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확실한 계획을 짜도 실패할 수 있는데 이 계획은 100% 실패다.
‘아직 4층에 좀비가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 그리고 1층에도 좀비들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 없다 해도 1층에서 계단을 올라와 저놈을 다시 유인하고 내려가기도 쉽지 않다.’
‘불확실한 요소를 제거하자.
일단 1층 상황을 모르니 1층으로 내려가는 것 제외.
그럼… 4층까지 가서 저놈을 4층 문밖에 두고, 4층 비상 탈출구에서 5층으로 올라온다. 거기 난간에 올라서면 잘하면 5층으로 올라올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빨리 5층 출입문을 닫고 다시 6층으로 올라가서 6층 출입문을 닫는다. 그러면 나는 4, 5, 6층을 비상 탈출구를 통해 다니면 최소한 안전은 확보되고 다른 방의 물건을 챙길 수 있다.
그리고 혹시라도 사람이 남아 있다면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4층이나 6층이 안전한지 어떻게 알 수 있지?
아… 냄새! 4층에 가서 냄새가 나면 거기도 한 놈 이상 있다는 말이잖아.
6층도 마찬가지고… 이 고시원이 좀비 천국도 아니고 층마다 있진 않겠지만 그래도 확인은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나?’
엉성하고 허술한 계획을 계획이라고 짜고 나니 어느덧 훌쩍 시간이 지나 한낮을 지나고 있었다. 만약에 잘못되면 끝이라는 생각에 엄마에게 마지막일지도 모를 전화를 혹시나 하면서 걸어 봤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신호가 간다.? 왜지? 사람들이 그만큼 많이 죽었나? 아니면 전화 다 포기했나?’
몇 번의 신호 후에 연결이 되었다. 속에 있던 답답함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엄마… 엄마…….”
“아이고 이놈아… 별일 없냐?”
“난 아무 일 없어. 엄마는? 거기는 난리 안 났어? 밖에 나가지 마. 밖에 나가면 큰일 나.”
“내도 안다. 뉴스도 보고 다 안다.”
“하…씨… 내가 거기 있어야 했는데…….”
“니가 여 있다고 뭐가 달라지는데? 행여나 올 생각 말고 거서 기다리그라. 하나님이 다 해결해 주실기다.”
70이 넘은 나이에 교회는 정말 열심히 다니는 이진성의 어머니였다. 이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해결해 주리라 믿고 있었다.
앞으로 얼마나 상황이 안 좋아질지 전혀 걱정을 안 하는 것인지, 걱정하면서도 말만 저렇게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 엄니는 그렇게 믿고 집안에 꼼짝 말고 계셔… 먹을 건 있어?”
“먹을 거 많다. 니는 먹을 거 있나?”
“난 이런 일 벌어질 거 같아서 미리 챙겨 놨어. 그리고…….”
뚜뚜뚜뚜―
끊겼다. 이진성은 어머니가 살아계신 걸 확인하고는 일단은 안심이 됐다.
이 상황에서 70 넘은 노인네가 살아 있다는 게 좋은 일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려웠지만 일단은 좋은 일이었다.
바깥은 다시 소란스러워지고 있었다. 오늘은 어제보다 많은 차가 도로를 채우고 있었다.
사람들은 신호 따위는 지킬 생각도, 그럴 정신도 없었다. 교차로는 뒤엉키는 차들 때문에 점점 통행이 어려워졌다.
거기에 더해서 어제 도로에 버리고 간 얼마 되지 않는 차들이 흐름을 방해했고, 서로 먼저 가겠다고 무조건 머리를 들이밀다가 생기는 온갖 사고는 대부분의 좁은 도로를 통행 불능으로 만들고 있었다.
차들은 어떻게든 큰 도로로 나오려 했다. 그리고 큰 도로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차로 채워지기만 할 뿐 차량의 흐름은 더디기만 했다.
길에는 이제 심심찮게 변이체들이 보였다. 걸어 다닌 놈, 사람을 발견하고 뛰어서 쫓아가는 놈, 가만히 서서 뭔가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놈, 그리고 사람을 잡아서 뜯어 먹고 있는 놈, 저마다 나름의 뭔가를 하는 것이 마치 저들도 저들의 생활을 하는 것 같았다.
창밖을 보며, 좀비들이 더 많아지기 전에 최소한 이 공간의 안전이라도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창에 있는 파란색 방충망이 눈에 들어왔다. 모기장 재질 같은 방충망은 뜯어내기는 어렵지 않아 보였고, 안되면 찢어 버릴 수 있었다. 가능하면 잘 뜯어 나중에 혹시 그물로 쓰거나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다.
‘여기가 그렇다면 바로 밑 4층 방도 똑같겠지? 그럼 창문으로 4층 방에 바로 들어갈 수 있잖아… 그럼 안전하게 4층으로 내려갈 수 있고…….
확인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지?‘
그때 이진성은 손에 들고 있는 핸드폰이 생각났다. 동영상 촬영으로 켜 놓고 줄에 매달아 내려서 촬영 후 확인하면 될 일이다.
‘뭘로 매달지?’
방안에 끈은 하나도 없었다. 비상 탈출구에 있는 빨랫줄이 생각났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거기 가서 가져올 수 있는 상황이면 지금 이 짓을 하고 있을 필요 자체가 없는 것이었다.
이진성이 약해빠진 고시원 책상에 조심스럽게 올라섰다. 삐걱댔지만 무너지지는 않았다.
방충망은 쫄대로 창틀에 고정되어 있어 다행히 쉽게 뜯을 수 있는 구조였다. 쫄대 윗판을 걷어내고는 모기장 방충망을 혹시 쓸 일이 있을까 챙겼다.
준비를 끝낸 이진성이 동영상 촬영을 하려고 핸드폰을 보니 배터리가 12%밖에 안 남아 있다.
‘에구… 충천부터 해야겠네. 지금이 3시… 완충하고 나면 5시 정도 될 텐데 혹시나 불 안 켜진 방안이면 어두워서 뭐가 보이려나? 안 보이면 내일 낮에 다시 하지 뭐.’
충전되는 동안 새로운 소식이 있을까 싶어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을 뒤적였다.
혹시나 해 TV를 켰지만 역시나 나오는 방송은 없었다. 하루 사이에 공중파 방송국들은 기능이 마비되어 버렸다.
케이블 채널을 돌려 봐도 대부분은 검은 화면이었다. 어쩌다 몇 개 방송은 철 지난 드라마 재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컴퓨터에 예약되어 있던 자동 송출이었다.
‘인터넷은 언제까지 될까? 기계 고장만 없으면 계속되는 거 아닌가? 사람이 계속 뭘 해 주는 건 아니잖아? 아… 전기!’
다행히 아직은 인터넷은 되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많은 사람이 어딘가의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올리고 있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어제와 다르게 약탈과 방화에 대한 글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주로 자기 동네 편의점이 털렸다거나, 어디에 누가 불을 질렀다는 내용이었다.
인간이 하는 행동은 거의 예측 가능하다. 작년 소행성 라퓨타에 의한 종말 발표 때에도 저 지랄을 하더니 역시나 지금도 마찬가지다. 절대 달라지지 않는 인간들이다.
얼추 시간이 된 것 같다. 확인한 핸드폰은 어느덧 핸드폰은 100% 충전상태였다. 핸드폰을 집어 들고 올려다본 하늘은 이미 어둑했다.
“일단 촬영해 보고…….”
이진성이 책상에 올라가 핸드폰을 내리려는 순간이었다. 방의 전등과 컴퓨터가 꺼졌다. 동시에 창밖에 보이는 모든 건물과 집들에서도 불빛이 꺼졌다.
“씨발… 뭐 하나 되는 게 없냐… 왜 하필 지금 정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