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13화 (13/145)

# 13

위협

‘끝방놈이 변한 것이 지난 17일, 나흘이 지난 건가? 저 방에 있는 시체가 썩기 전에 처리해야 하는데….’

다행히 아직은 덥지 않은 날씨 덕에 시체가 부패하지는 않고 있었지만, 곧 썩는 냄새가 나기 시작할 것이다.

냄새도 냄새지만 위생 문제 때문에라도 고시원 내부에 둘 수는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체와 한 공간에 있고 싶은 마음은 절대로 없었다.

시체를 지나치며 흘깃 봤을 때 이상하게도 별 감흥이 없기는 했다. 그래도 치우려고 직접 만진다고 생각하자 마치 온몸에 개미가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듯, 기분 나쁜 소름이 돋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에휴~ 아침은 걸러야겠다.”

어제 아침 식사 후 먹은 것이라고는 물밖에 없어 위장이 제발 뭔가 넣어 달라고 쪼르륵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래도 아까운 음식을 토할까 봐 굶기로 하고 욱신거리는 몸을 억지로 움직여 4층 주방으로 내려갔다.

주방 벽에 걸려있던 커다란 쓰레기봉투 몇 장을 챙기고 랩을 꺼내서 팔에 감은 후 위생장갑 두 짝씩을 손에 낀 채로 다시 5층으로 올라왔다.

‘나 원래 이런 강심장이었나? 이것도 내 몸의 변화와 함께 온 변화인가?’

원래 고어 영화를 보면서도 맛있게 라면을 후루룩거리던 이진성이었다.

그렇지만 영화가 아닌 실제 시체를 앞에 두고 기분만 나쁠 뿐, 무섭거나 하지는 않다는 것이 스스로 이상해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시체를 자세히 봤다.

팔, 다리는 뼈만 남은 채로 관절이 끊어져 분리되어 있었고 골반과 갈비뼈는 거의 드러나 있었다. 그나마 살이 많이 붙어 있는 곳은 머리와 가슴 부위였다.

‘한번에는 못 옮기겠구나. 아니다. 오히려 옮기기 편해진 건가?’

팔뼈 4개와 다리뼈 4개를 가져온 봉지 하나에 넣고 다른 하나에는 머리부터 밀어 넣었다. 손에 닿는 물컹물컹한 살의 촉감은 얼굴이 저절로 찌푸려지는 감각이었다.

‘죽을 때 피가 다 빠져 사후경직도 없었나 보네. 으… 기분 더러워.’

팔다리가 담긴 봉지를 우선 들고 비상 탈출구로 나갔다. 애초에 시체를 어딘가 매장해 준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밑에 어떤 위험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위험을 감수하고 그런 선행을 할 만큼 착하거나 인도적인 인간이 아니었다.

뼈를 밑으로 쏟아버릴 작정이었다. 혹시나 올지 모를 약탈자들이 이곳에 좀비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끔 할 생각이었다.

피가 없음을 의심하는 놈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다 싶었다.

팔, 다리를 쏟아 버린 후 다시 안으로 들어가 몸통이 든 비닐을 가지고 나와 쏟아 버렸다.

떨어진 충격에 골반이 척추에서 분리되어 안 보이는 곳으로 튕겨 나갔다.

“너무 흩어진 건가? 에이. 상관없겠지? 그지?”

혼자 자문자답하고는 4층으로 가서 끝방놈 손가락 두 개도 잊지 않고 내다 버렸다.

그리고 주방에서 검은 비닐봉지를 찾았다. 시체 담았던 비닐봉지와 손의 위생장갑, 팔에 감았던 랩을 전부 담아서 창밖으로 던져 버린 후 며칠만의 샤워로 온몸의 찝찝함을 씻어 냈다.

정전으로 난방은 꿈도 못 꾸는 상황이다. 낮에는 좀 따뜻하다고 하지만 3월 말의 날씨는 찬물로 씻기에 여전히 추웠다.

더군다나 물탱크에 남아 있는 물은 더욱 차가워, 오돌오돌 떨며 샤워할 수밖에 없었다.

소름이 잔뜩 돋은 채로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비로소 안전한 공간을 확보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눈앞에 보이는 닭장 같은 고시원이 포근해 보이기까지 했다.

‘내방은 식량창고로 놔두고, 낮에는 차도 쪽방에서 정찰을 하고 잠은 깨끗한 방 골라서 자야겠군.’

뭔가 쓸만한 물건이 있을까 싶어 문이 열리는 방들을 뒤지 시작했다. 4층과 5층을 다 뒤져도 별다른 것은 없었다. 복도 벽에 꽂혀 있는 착탈식 랜턴이 그나마 쓸만했다. 꽂으면 불이 꺼지고 빼면 켜지는 비상 랜턴이었다.

‘고정장치까지 뜯어야겠네. 드라이버가 총무 아저씨 방에 있으려나?’

6층 중간의 총무 아저씨 방에는 역시 공구함이 있었다. 전동드릴에 이런저런 공구들이 있었지만, 전기로 쓰는 것들은 관심 밖이었다.

뭐가 있나 뒤적거리다 여차하면 무기로 쓸 요량으로 망치 하나를 챙기고 몇 개의 드라이버 중 제일 긴 것으로 하나 챙겼다.

나머지 방들도 봤지만 역시나 4, 5 층과 마찬가지로 별다른 것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들어간 방은 도로 쪽 끝방이었다.

“여기 있던 사람은 이걸로 뭘 한 거야? 저 앞 어디 여자라도 훔쳐봤나?”

책상 위에는 쌍안경이 곱게 놓여 있었고 어디서 구했는지 일본 성인 잡지 들이 흩어져 있었다.

방에 배어 꾸리하게 나는 냄새는 분명히 정액 냄새였다.

“으… 여긴 봉인해야겠다. 저 쌍안경도 손대기는 싫지만…….”

망치, 드라이버, 쌍안경 그리고 어느 방에서였던가 스틱 커피 반 상자를 득템(?) 하고 5층으로 다시 내려왔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이었다.

배는 빨리 먹을 것을 넣어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그래도 기념으로 밥을 해 먹겠다고 부랴부랴 쌀을 씻어 냄비 밥을 올렸다.

물이 끓는 것까지는 참았다. 그러나 밥 냄새가 풍겨 나오기 시작하면서 결국 너무 배가 고파 통조림 햄을 뜯어서 숟가락으로 퍼먹었다.

조금 전에 시체를 만지면서 기분 나빠 하더니 지금은 햄을 퍼먹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났지만, 햄은 맛있기만 했다.

우툽에서 본 방법에 따라 처음 해 본 냄비 밥은 기대 이상으로 잘 됐다. 설익지도 타지도 않았다. 약간 진듯했지만 며칠 만에 먹는 밥은 별다른 반찬 없이도 충분히 맛있었다.

배불리 먹고 스틱 커피 두 봉을 마시는 호사를 누리고 나서, 좋은 기분으로 현관문 앞으로 갔다. 끝방놈은 아직 거기 있었지만 조용했다.

“야. 너 왜 안 나가냐? 계단 내려가면 밖인데 몰라서 못 가냐? 배 안 고프냐?”

대답을 기대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와 말을 하고 싶었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배구공 윌슨에게 말하는 톰 행크스 아저씨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이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는 누군가와 말하는 것은 엄마와의 통화 이외에는 거의 없었던 이진성이다. 그래도 아무 불편이 없었으면서 지금 와서 말도 못 하는 좀비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내가 뭔가 많이 변하긴 했네. 후각은 엄청 민감해 졌고, 생각해 보니 소리도 전보다 더 잘 듣는 것 같아. 시체를 보고도 아무렇지 않은 것도 그렇고. 또 허전함이나 외로움 같은 것도 느끼는 것 같고.’

“야! 어디 가고 싶지 않으면 거기 있어라. 뭐 꼭 어디 가야 할 필요는 없겠지.”

놈이 이미 바깥에 나가 사냥한 시체를 끌고 와서 그곳에서 뜯어 먹은 후라는 것을 모른 채, 저놈이라도 있으면 덜 심심하려나 생각하고 있었다.

* * *

하루하루가 똑같은 1주일 하고도 사흘이 더 지나 어느덧 3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비명은 날이 갈수록 자주 들렸다. 망원경으로 보이는 남쪽의 보라매역 사거리와 북쪽의 병무청 사거리까지의 대방로에는 점점 좀비가 보이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망원경에는 저 앞의 길 건너 약국 건물 다세대 주택에서 나오는 좀비 아저씨가 보였다. 2~3일에 한 번씩, 오늘이 네 번째였다.

지금까지 매번 서너 시간 어디론가 갔다 와서 다시 그 건물로 들어가더니, 오늘은 어디선가 구한 하반신만 남은 사람의 발목을 움켜쥐고 질질 끌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걸 본 이진성의 뇌리에서는 뭔가 생각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흠… 좀비들이 둥지를 튼 건가 보네. 아마도 자기가 처음에 변한 곳을 둥지로 삼는 듯. 끝방 놈이 어디 안 가고 있는 것도 여기를 둥지로 틀었기 때문인가 본데, 그렇다면 주택가를 피하면 놈들을 만날 가능성이 줄어 드러나?’

비축해 놓은 식량이 떨어질 때까지 고시원에서 버틸 수는 없었다. 나가서 식량을 보충하던지, 아니면 식량이 얼마라도 남아 있을 때 떠나야 했다. 어머니가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조만간 어머니가 사는 안산으로 갈 생각 중이었다.

‘간다면 어느 길로 가야 하나? 이 앞길을 따라 내려가면 안양까지 가고 거기서 더 내려가면 수원이던가? 거기서 안산으로 가는 길이 큰길이긴 한데 안양, 수원은 주택가를 지나갔던 거 같아.

아니면 안산 가는 320번 버스 노선을 따라가야 하는데, 영등포 지나서 쭉 가다가 개봉역 지나 광명을 통과해서 가야 하잖아. 영등포 앞길은 상업지역이니까 둥지 틀고 있는 놈들이 적을 것 같다 해도 그 이후가 문제네. 영등포 지나면 주택단지인데….’

이전 저런 생각에 아무 결정을 못 하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귀에 약간은 다른 비명이 들려왔다. 이번에는 아주 가까웠다. 그리고 전과 다르게 싸우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 씨발 새…….”

“… 죽는다.”

“가만… 옴직…….”

정확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남자들이 욕하며 지르는 소리였다. 여자인 누군가는 계속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귀 기울여 들어보아도 좀비의 포효 소리도 없었다. 그리고 이 소리가 들릴 정도의 거리면 시큼한 냄새가 맡아져야 했다.

‘사람끼리 싸우는 소리다. 아마도 강도 같은데. 여자는? 씨발. 강간이군.’

계속 듣고 있으니 우당탕 소리와 함께 찢어지는 비명이 들리고 갑자기 조용해 졌다.

“헉! 죽였나? 저것들 살인강도잖아?”

저것들이 이리로 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고시원 주위로 단독들과 다세대 주택이 어느 정도 있으니까 털 집은 많았다. 그런데도 혹시라도 여기로 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이제는 어느 정도 무덤덤하게 느껴지는 좀비보다 더 무서웠다.

밑에 던져 놓은 시체가 제발 도움이 돼서 이곳으로 오지 않기를 바랐지만, 이진성의 운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다. 이틀이 지나, 재수 없게도 놈들이 고시원 1층 주차장에 있던 차를 털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다.

“야! 이거 봐라. 존나 말라 뼈만 남은 시체 있다.”

“에이 씨. 여기 괴물 있나 보다. 대충 털고 빨리 움직이자. 저 옆집에도 마당에 괴물 새끼 한 마리 있었잖아. 씨발 그 새낀 존나 문 닫혀서 나오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여기는 돌아다니는 새낀가 보다.”

강도들은 젊었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구성된 남자 다섯은 머리에 오토바이 헬멧을 뒤집어쓰고 저마다 손에는 칼과 몽둥이 또는 쇠파이프 등을 들고 있었다. 팔과 다리는 각목을 대거나 잡지로 둘둘 말아 박스 테이프로 칭칭 감고 있었다.

그중에 가장 키도 크고 몸도 좋은 한 놈이 시체를 가만히 보더니 한마디 했다.

“피가 하나도 없어.”

“뭐?”

“피가 하나도 없다고.”

“그게 뭐?”

“씨방새야! 대가리가 달렸으면 생각이란 걸 해라. 여기서 뜯어 먹었으면 여기 피가 쫙 깔렸어야 되는데 핏자국이 하나도 없잖아.”

“그게… 어쨌다는 거야?”

“에이 씨발. 존나 돌대가리 새끼들. 여기서 좀비한테 먹힌 게 아니고 누가 시체를 여기다 가져다 놓은 거라고. 이 병신 새끼들아.”

“왜? 누가 그런 존나 쓸데없는 짓을?”

“여기 괴물 새끼가 있다고 보이고 싶었나 보지. 여기 오지 말라고.”

강도들은 눈만 멀뚱멀뚱하면서 서로 쳐다보고 있었다.

“하. 병신 새끼들. 그렇게 말해도 모르겠냐? 여기 사람이 살고 있고 누가 들어 오지 말게 하려고 이 씨발 짓거리를 해 놓은 거라고.”

그제야 말을 알아듣고 건물 입구로 우르르 몰려갔다.

“야. 여기 학원 하나 있고 회사 하나 있고 나머지 고시원인데?”

“씨발 고시원에 있는 새끼들인가 보다. 시체를 저따위로 버려 놓고 씨발 새끼들 인간에 대한 준종이 없어 씨발.”

“병신아. 존중이겠지. 크크크.”

존중이든 준종이든 강도들이 할 말이 아니었다. 그리고 뒤에서 보고 있던 그 덩치 큰 녀석에 물었다.

“대장… 올라가 볼까?”

보이지 않는 위를 한번 힐끗 쳐다본 대장이라 불린 녀석은 대답 대신 앞장서 계단으로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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