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이진성은 하릴없이 5층 차도 쪽 방에서 망원경으로 본 곳을 또 보고 본 곳을 또 보고 있었다. 그런 그의 귀에 갑자기 남자들의 난폭하고 거친 말소리가 열린 창문을 통해 밑으로부터 뚫고 들어왔다.
그동안 들을 수 없었던 사람들의 대화 소리였기에 분명히 인식할 수 있었다. 며칠 전에 들었던 바로 그 살인강도들의 목소리였다.
잘못하면 저놈들한테 죽는다는 생각에 심장이 쫄깃해지고 등골이 오싹했다.
방에서 튀어 나가 현관문이 잘 잠겨져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끝방놈을 쫓아내며 분명히 잠갔지만 다시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5층 문은 잘 잠겨져 있었다.
‘4층과 6층은? 그때 분명히 잠갔던 거 같은데?’
다시 확인하려 비상계단으로 달리던 이진성이 문 앞에서 멈췄다.
‘지금 그거 확인한다고 사다리를 오르내리다 걸리기라도 하면 좆되는거다.’
일단 5층에서 숨죽이고 놈들의 동태를 살피기로 했다. 그리고 곧 위협이라도 하려는 듯 놈들이 벽과 계단 난간을 뭔가로 치면서 올라오는 소리가 계단을 타고 올라왔다.
“야. 학원에 아무도 없어. 문 깨고 들어가자.”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몇 분 지나 놈들의 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었다.
“씨발 존나 아무것도 없네.”
“올라가. 올라가.”
“씨발 여기 회사는 철문이잖아. 잠겼어 존나 씨발. 안에 뭐 비싼 거 있는 거 아냐?”
“씹세꺄. 지금 비싼 거 있으면 뭐할 건데? 먹을 거나 있으면 그게 젤 좋은 거야 씨발아.”
놈들은 3층에서 잠시 서성이다 다시 계단을 올랐다.
바짝 긴장한 이진성은 현관문을 통해 들려오는 놈들의 소리를 듣고 있다가 문득 끝방 놈이 조용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느낀 놈의 냄새는 항상 있던 5층이 아닌 6층에서 나고 있었다.
‘저놈 사람 쪽수 많다고 도망간 거야? 씨발 너도 좀비냐? 영화 보면 좀비는 사람만 보면 무조건 달려들던데? 넌 그런 좀비 아니란 말이냐? 씨발 이럴 때 니가 저놈들 다 죽여 줘야 하는 거 아니냐?’
비록 좀비일지라도 이진성에게는 자신에게 해를 끼칠 수 없는 끝방놈이 지금 떠들면서 올라오고 있는 저 살인강도로 추정되는 놈들보다 덜 위험했다.
좀비인가 인간인가는 자신의 안위를 생각할 때 선택의 고려사항이 될 수 없었다. 그러던 사이에 놈들은 드디어 4층에 도달했다.
“저기요. 거기 안에 있는 거 다 알아요. 문 좀 열어 주세요. 저희도 도망자거든요. 제발 살려주세요. 이렇게 빌게요.”
안에 누군가 있으리라 생각하는 놈들은 겁에 질린 목소리를 연기했다.
하지만 듣기에 전혀 겁먹은 목소리도 아니었고, 한쪽에서는 자기들 끼리 키득거리기까지 하고 있었다.
“안에 있는 사람들. 제발 저희 좀 살려주세요. 며칠을 굶어서 쓰러지기 직전이에요. 음식 조금만 나눠 주시면 그냥 갈게요.”
‘저놈들 여태 저런 식으로 강도질 하고 다녔나 보네.’
4층에서 아무런 인기척도 없자 놈들은 쉽게 포기하는 듯했다.
“야 씨발. 개 좆같은 새끼들 문 안 연다. 5층 가자.”
“존나 병신 새끼들. 존나 쫄았나 보네. 크크크.”
‘저 새끼들은 5층에서 자기들 소리 다 들리는 것도 모르나? 연기도 못하고 저렇게 조심성마저도 없어서 어떻게 사람들 속이고 문을 열게 했지?’
놈들이 하는 짓거리를 보니 저렇게 허술해도 강도질을 할 수 있었나 기가 찼다.
놈들은 5층에 다다라서 그 통하지 않을 허접스러운 연기를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이진성은 숨죽이고 놈들이 하는 짓에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코를 뚫고 전에 없던 냄새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고소한 냄새가 한 덩어리. 그 외에 달큰한 냄새가 조금 따로 난다? 뭐야? 나 사람 냄새도 맡을 수 있는 거야? 아니! 사람 냄새가 왜 고소하고 달큰하지?
자신의 코가 민감해졌다는 것은 이미 충분히 경험했다. 그 원인을 유전자 변형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좀비가 안 된다 해도 모든 사람에게 유전자 변형이 일어난다는 것은 ITL의 발표로 확인했다. 민감해진 코는 그래서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좀비에게서 시큼한 냄새가 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생명체로 변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의 냄새가 그전에 알고 있던 그런 체취와 전혀 다르게 느껴지자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씨발 나 뭐가 되어 버린 거야? 왜 사람 냄새가 이렇게 느껴져? 사람마다 다른 냄새가 나는 건 또 뭔데?
사람들도 유전자가 변형되면서 체취가 다 바뀌었나?’
그런 생각에 자기 몸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아 보지만 자기 체취라 그런지 별다른 냄새를 느낄 수 없었다.
그렇게 자기 냄새와 바깥의 냄새를 비교하던 중, 갑자기 끝방놈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 내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문밖에서 자기들끼리 되지도 않는 연기를 하며 킬킬거리고 있던 놈들은 갑자기 들리는 좀비의 괴성에 놀라 저마다 손에 들고 있던 무기를 들고 일제히 6층으로 몸을 돌렸다.
끝방놈은 이미 계단 반을 내려와 몸을 돌리고 있었고, 놈들은 당황했는지 ‘어 어 어’ 거리고만 있었다.
보이지 않는데도 끝방놈이 계단 위에서 점프해서 내려꽂히는 것을 이진성은 시큼한 냄새의 움직임으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져 들려오는 비명. 한 놈의 목이 물려 뜯긴 것이다.
“죽여! 씨발.”
“어서 찔러. 개새끼야.”
“씨발 칼이 안 들어가. 이거 뭐야?”
“몰라 새끼야. 너나 나나 처음인데 알 게 뭐야.”
“어! 이거 일어난다. 피해.”
이진성이 느끼기에 놈들도 좀비는 처음 상대하는 것 같았다. 여태 좀비는 피해 다닌 게 분명했다.
놈들은 나름대로 공격을 하는 것 같더니 다시 일어난 끝방놈의 공격에 또 몇 명이 피를 뿌리며 쓰러지고 있었다.
순식간이었다.
현관문 안에서 놈들의 터져 나오는 비명과 끝방놈의 그러렁 소리를 듣고 있으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역시 저놈은 맹수야.’
이진성은 한때나마 저 끝방놈이 인간들을 다 죽여 주길 빌었던 자신이 한심했다.
‘그런데, 저놈들은 끝방놈의 그 냄새를 못 맡았나? 바로 위에 있었는데 왜 몰랐지? 나는 한 층 정도 떨어진 건 움직임도 느낄 수 있는데?’
놈의 냄새를 맡지 못한 채 놈에게 물어뜯기며 죽어가는 놈들을 이상해하며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냄새와 소리를 통해 느끼고 있기를 잠시, 결국 놈들은 다 쓰러진 것 같았다.
얕은 신음이 들렸지만 이미 생기가 다 빠져나가고 있음을 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고소한 냄새는 더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남아 있는 냄새는 끝방놈의 시큼한 냄새와 한 명으로 생각되는 달큰한 냄새 단둘이었다.
달큰한 냄새가 있는 쪽에서는 ‘오지마 오지마’라고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놈은 공포에 질려 울고 있었던 것이다.
끝방놈은 하나 남은 강도 놈을 놔두고 사냥한 먹이를 뜯고 있었고, 강도 놈은 자신의 동료들이 뜯어 먹히는 모습을 보면서 미쳐가고 있었다.
‘뭐지? 왜 달큰한 냄새는 안 죽이고 있는 거지?
정리를 좀 해 보자. 좀비는 시큼한 냄새가 난다. 사람은 고소한 냄새와 달큰한 냄새가 난다.
더 많은 냄새가 있을 수 있지만 일단은 여기까지.
좀비는 고소한 냄새를 잡아먹는다. 달큰한 냄새는 안 먹는 건가? 아니면 다른 뭔가가 있나?
그리고 저들이 저렇게 확실한 좀비 냄새를 못 맡은 건가?’
고민하던 이진성의 귀와 코에 반갑지 않은 소식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밑에서부터 다른 시큼한 냄새의 움직임이 올라오며 그러렁 거리고 있었다. 이에 질세라 끝방놈 역시 그러렁 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끝방놈이 사냥을 시작하며 내지른 포효 소리가 다른 놈들을 불러들인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지만, 좀비는 셋이 되었다.
이진성은 저 셋이 자기들끼리 싸우지 않을까 기대를 했다. 놈들은 점점 더 올라와 마침내 5층에 거의 다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제발 싸워라. 그리고 다 여기서 나가라.’
하지만 놈들은 이진성의 기대를 무참하게 박살내고 언제 그르렁 댔냐는 듯 사이 좋게 식사를 하는 듯 한군데 뭉쳐서 조용해 졌다.
잠시 후, 계속 소리 지르며 울며 지랄발광하던 강도 놈에게 한 마리가 서서히 다가서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몇 초 지나지 않아 터져 나온 강도 놈의 비명소리. 그건 숨이 끊어지는 그런 소리가 아닌 상처 입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비명이었다. 그러길 잠시, 놈의 비명은 잦아들었지만 달큰한 냄새는 계속 흘러들어왔다. 그리고 냄새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진해졌다. 달큰하면서 시큼한 냄새 쪽으로.
이진성이 궁금해하는 현관문 밖에는 세 마리의 빨간눈이 시체를 뜯어 먹고 있었다.
그리고 한쪽 구석의 벽에 기댄 강도들의 대장이 팔에 피를 흘리며 부들부들 경련하면서 기절해 있었다.
약 한 시간이 지났다.
대장 놈은 부스스 눈을 뜨며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팔에서 흐르던 피는 멈춰 있었다.
몸을 일으킨 놈은 시체들 사이로 자연스럽게 걸어가더니 시체를 뜯어 먹기 시작했고, 나머지 빨간눈들은 당연하다는 듯 자리를 비켜줬다.
고기를 씹다가 잠시 머리를 들었을 때 보이는 눈동자는 암울한 느낌의 검붉은 색이었다.
문 안에서 이런 사정을 모른 채, 문밖의 상황에 귀 기울이고 있던 이진성은 갑자기 시큼달큰한 냄새가 움직이는 것을 느끼고서 상황을 추측하기 시작했다.
‘저놈이 ITL에서 얘기한 검붉은 눈이겠구나. 그럼 달큰한 냄새의 인간이 검붉은 눈이 되고, 고소한 냄새의 인간은 그냥 먹이일 뿐이라는 건가? 이걸 ITL 에서는 얘기 안 했어. 씨발 냄새 능력은 나만 가지고 있거나 최소한 ITL에는 없었다는 말이네.’
‘하. 씨발. 왜 하필 개 코야? 막 힘이 세진다거나 싸움을 엄청 잘 한다거나 그런 건 안 되는 거야? 내 참. 뭔가 능력이 생겨도 어째 이러냐 진짜.’
거기까지 생각한 이진성은 이제 자신의 냄새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자기가 놈들에게 물렸을 때, 먹이가 되느냐 아니면 검붉은 눈의 좀비가 되느냐는 그 냄새에 따라 결정될 판이었다.
자기 몸 냄새를 맡으며 킁킁거리기를 10여 분이 지나 이진성이 고개를 들었다.
‘햐. 달큰한 냄새네. 아까 저 강도 놈 냄새랑 비슷해. 그럼 갈기갈기 찢겨 먹이가 되지는 않는다는 말이군.’
‘씨발. 물리면 좀비로 살아야 되는 거야? 이거 좋은 거야 아닌 거야?’
‘그나저나 새로 온 두 놈은 집이 없나? 여기 같이 있을 건가?
방금 변한 놈은 여기서 변했으니 여기를 둥지로 삼을 거 같고. 졸지에 갑자기 좀비가 최소한 둘에 많으면 넷이네.
거기다 한번 강도가 왔으니 또 안 온다는 보장도 없고.’
그랬다. 지금 상황은 늘어난 좀비로 인해 증가한 위험과 또 올지 안 올지 모르지만, 인간에 의한 위험 모두를 대비해야 했다.
만약에 인간들이 많이 와서 저 좀비들을 다 죽인다 해도 그 인간들이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었다.
반대로 몰려온 인간들이 좀비들의 밥이 된다고 하더라도 방금처럼 좀비가 늘어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었다.
비관적으로 보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이진성으로서는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나쁜 경우를 생각하고 대비해야만 했다.
어찌할까를 한참을 생각한 이진성은 결론을 내렸다.
‘여기서 굶어 죽으나 저놈들에게 물려 좀비가 되거나 둘 중 하나면, 차라리 엄마한테 가다 죽자.
엄마가 이미 돌아가셨으면 시신이라도 수습하고, 만약 엄마도 좀비가 되어 집안에 갇혀 있다면 내 손으로 보내 드리자.
어차피 식량 떨어지기 전에 나가야 하는 거, 최대한 빨리 여기서 탈출하자.
이 동네에 좀비가 더 늘어나면 탈출하기만 더 어려워진다.’
현명하지 못하고 무모해 보이는 결정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끝장난 세상, 뭔가 해 보다 죽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그 바탕에는 최악의 경우, 죽지는 않고 좀비가 되는 것으로 끝난다는 얄팍한 계산이 깔려 있기도 했다.